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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72 71. 내일은 아무 일정이 없는 거지? 우리 오늘 같이 죽자. (72/116)

00072  71. 내일은 아무 일정이 없는 거지? 우리 오늘 같이 죽자.  =========================================================================

정윤희는 원룸을 얻어서 이사했다. 또 그녀는 윤현도의 연습실에서 노래와 안무도 연습한다. 그녀의 연습 일정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또 그녀는 무대에 서기도 한다. 당분간은 그녀에게 이런 일 말고, 다른 큰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왕언니 사건 이후에 안명수는 그 기획사로 가서 사장을 만났다. 갑자기 퀸이 나타나자 사장은 어쩔 줄을 모르면서 당황해 했다. 그 기획사는 성상납의 전과가 있기 때문에 이번 뮤직쇼에는 단 한 명의 가수도 무대에 세우지 못하고 있다. 

안명수는 그 사장에게 먼저 그 사실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지금 기획 중인 다음 무대에는 반드시 우선적으로 고려해주겠다고 말했다.  

"방송사들이 정한 규칙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돼버려서 정말 사장님께 유감입니다. 저희는 지금 1월 무대를 기획 중이니까, 그 때는 반드시 사장님을 우선적으로 고려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말 때문에 퀸께서 직접 오셨을 리는 없고 ..."

"잘생긴 사장님과 커피도 마시고 싶고 ... 하하"

"커피라면야, 얼마든지 .."

"그런데, .. 사장님, 혹시 아세요? 거기 왕언니라는 애가 있다는데."

안명수는 사장에게 의 그 왕언니에 대해서 이야기를 모두 했다. 사장은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의 매니저를 사장실로 불러들였으며, 안명수 앞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해주었다. 안명수는 으름장을 놓는다.

"지금 우리 황제PD님이 얼마나 화를 내고 계신지 모르시죠? 만일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는 통화내용을 그대로 녹음해서 휴대전화기를 이용한 공갈 협박, 인신공격 등으로, 정보전자통신법 제 16조 2항을 들어서 고발하겠습니다. 그리고 고발한 것을 나중에 사정한다고 해서 합의보고 취하해주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안명수는 정보전자통신법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녀는 뻥을 친 것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왕언니 사건은 여기서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다.

뮤직쇼 <따뜻한 12월> 이 월요일에는 LBS(위대한 방송공사) 에 의하여 그 화려한 막을 올렸다. 저녁 7시부터 밤 11시 넘어서까지 스탭들은 네 시간이 넘도록 자기 자리를 지킨다. 실제 공연은 8시부터 10시 반 정도까지 두시간 반이 걸린다.  

LBS는 오프닝에서 두시간 반짜리 프로그램에 30분을 더해서 세시간을 했다. 수요일에는 CBS (문화방송)에서 주최하는 공연이다. 여기에 정수와 윤희는 신인가수로가 아니라 초대손님으로 출연했다. 

월요일 밤에 LBS 방송이 끝난 후, 화요일에는 세상이 정수와 윤희에 대해서 그다지 높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수요일 밤 CBS 에서 주최하는 공개방송이 끝나자 목요일에는 정수와 윤희도 매스컴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전부 짧막한 기사들 뿐이다.

금요일에도 정수와 윤희는 또 출연했다. 그러자 세상은 정수와 윤희를 띄워 올리려고 시도했다. 주말에는 두 사람에 대한 기사들이 제법 많이 떴다. 그런데 그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윤희나 정수와 인터뷰를 하려고 시도했다. 박PD 와 안명수는 이런 농간으로부터 이 둘을 차단시키려고 노력했다. 네 번째 방송부터는 더 이상 출연에도 응하지 않았다. 

윤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안명수에게 물었다.

"아직 노래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 왜 무대에 나가지 말라고 하시는 거죠?"

"작전이야."

"언니, 난 아직 더 커야죠.  열심히 나가서 얼굴도장을 찍는 것이 좋은 작전이 아닌가요?"

"맛이 별로인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이 나왔을 때 먹을 수 있겠니? 또 무대에 자주 나가다 보면, 너도 긴장을 덜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실수도 생겨. 나갈 때에는 나가는 것이 맞고, 잠수를 탈 때에는 잠수를 타는 것이 맞거든요. 그런 때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그것도 자기 스스로 수명을 단축시키는 거야. 지금이 딱 좋으니까, 여기서 잠시 숨었다가, 다음 무대에 다시 나타나면 효과가 훨씬 좋거든요."

퀸의 지휘하에 이들은 일주일 동안에 연달아 세 번을 갈겨놓은 후에, 그 다음 일주일 동안은 잠수를 타버린다. 마지막 주의 월요일은 12월 24일 크리스머스 이브이다. 이 날은 뮤직쇼 <따뜻한 12월> 이 다시 LBS 로 넘어왔다. 이 날은 안명수가 정수와 윤희를 다시 신인가수들의 무대로 출연시켰다. 

윤희는 이번에 장구를 다시 마련했다. 그녀는 장구를 제작하는 장인에게 가서 모양을 설명해주었다. 장구의 모양은 잘 빠진 여자의 젖가슴에서부터 엉덩이까지의 모습을 좌우 비대칭으로 만들도록 주문을 한 것이다. 윤희는 장인에게 자기의 알몸을 드러내어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야 했다. 그 노인 어르신께서는 윤희의 주문대로 정성껏 만든다.

세상은 걸그룹의 무대를 보고 나면 그 멤버들의 노래 실력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다. 오직 <아찔한 곡선>, <미친 볼륨>, <도발적인 허벅지> 들로만 기사를 쓴다. 이 나라의 걸그룹은 이제 음악을 하는 그룹이 아니라, 음악에 맞추어 퍼포먼스를 하는 그룹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은 윤희에 대해서도 윤희의 장구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윤희의 장구는 그 겉모습을 놓고 본다면 정말로 요염하고 섹시하다. 

장구가 섹시하기도 하지만, 그 장구를 들고 펼치는 윤희의 퍼포먼스 역시 요염하고 섹시하다.  

윤희가 벗고 노출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복 저고리 끝과 짧은 청바지 사이에 맨살 조금? 또 윤희는 가끔씩 한복 저고리의 끈을 풀어 헤처버린다. 그럼 과연 아찔하고 도발적일까? 개소리다.  

윤희가 입고 있는 저고리는, 안쪽에서 양쪽을 끈으로 묶었기 때문에 벌렁거리기만 하고 활짝 열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바로 그래서 더 미치겠다고 한다. 윤희가 저고리를 벗는 일은 전혀 없다. 게다가 저고리 앞섶이 열려도, 추위를 핑계로 안에는 탱크탑 같은 내복을 받쳐입기 때문에, 불룩 한 가슴의 형태 말고는 드러나는 것도 없다. 롱부츠와 짧은 청바지로는 노출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윤희가 몸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적다. 그러나 세상은, 윤희가 이렇게 자기 몸을 보이지 않도록 숨기는 것이, 드러내는 노출보다는 훨씬 도발적이고 요염하다고 윤희를 평가해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장구도 문제이다. 그녀가 장구를 등에 짊어지거나, 앞가슴에 끌어안거나 하면 카메라는 그 부분으로 포커스를 맞춘다. 화면에는 온통 윤희의 가슴이나 엉덩이와 장구가 만들어내는 볼륨과 곡선 뿐이다. 이 화면은 남자들의 머리에 들어있는 모든 음란 마귀들을 한꺼번에 잠에서 깨운다. 불쌍한 남자들은 화장실로 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여자들은 그런 화면을 보면서 질투와 원망을 늘어놓는다. 장구의 도발이다.

그렇지만 이런 것을 너무 자주 보게 되면 식상해져서 금방 식어버린다는 것이 박철호나 안명수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들은 윤희에게 장구 말고 다른 아이디어가 생길 때 까지는 무대 출연을 주구장창 하지 말고 중간에 짧은 잠수 기간을 넣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모두 아이디어를 짜기에 고심했다. 

이 때 정수가 낸 아이디어는 섹스폰이다. 

안명수는 일단은 거부했다. 

그러나 박PD의 생각은 다르다.

"아이이이. 뭐야아? 그건 색깔도 그렇고, 덩치도 너무 크고. ... 장구는 조그맣고, 앙증맞고, 귀여웠는데. .."

"바로 그겁니다. 장구는 크기가 작았지만, 이번에 새로 메고 나올 섹스폰은 크기가 크기 때문에, 장구와는  정 반대로 ..."

"흐으음. ..  야, 한정수."

"예?"

"너, 책임지고 정윤희한테 섹스폰 가르쳐. 시간은 열흘 준다."

"그건 음악학원에 보내면 되는데요?"

"그럼 3년 후에나 무대에 세울 수 있거든."

"......"

"꼭 필요한 부분만 짧게 연주를 하는 거야. 퍼포먼스를 하면서. 네가 전자바이얼린 할 때 구르는 것처럼."

다른 걸그룹들의 퍼포먼스는 몸으로 한다. 그 몸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그녀들은 옷을 벗어야 한다. 그녀들이 몸을 택한 이유는 몸 말고 다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참 딱하다.

그런데 윤희는 훌륭한 몸을 갖고 있으면서도 숨긴다. 숨긴 몸을 대신해서 장구를 휘두른다. 이것은 처음에 윤희가 생각해낸 아이디어이고, 이것을 섹시 컨셉으로 갈고 닦은 것은 정수이다. 또 그에 대한 평가를 한 것은 박PD 이다.

이번에는 섹스폰으로 가닥을 잡고 윤희는 섹스폰을 배우기 시작한다. 열흘만에 가능한가? 세상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수는 연주는 4마디만 하라고 했다. 그 대신에 섹스폰은 퍼포먼스에 쓰이는 것이다. 마치 장구처럼. 

윤희가 얼마 동안 섹스폰을 안고 허리를 비틀면서 온몸을 꼬다가, 그녀가 섹스폰을 불어대는 순간에 남자들은 그냥 싸버릴것이다. 정수가 생각해낸 <4 마디를 연주하는 것>도 사정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 것이다. 

이건 뭐. 음악이 음악이 아니고 별 해괴망칙한 것까지 다 해야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오늘날 대중이 원하는 것은 섹스이다. 섹스 컨셉이 빠지면 성공하기 어렵다. 러브 라인이 설정되지 않고도 성공하는 드라마는 있기는 있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희귀하다. 누구나 그런 것을 하려고 덤벼들면 일단은 망할 것이다. 

대중은 황홀해지고 싶어한다. 가난하고 못났다고 외면당하고 또 구박과 멸시를 심하게 받으면 받을수록 대중은 황홀경에 도달하는 것을 꿈꾼다.  대중은 문학, 미술, 영화, 연극, 음악에서 섹스를 경험하기를 원한다. 이런 섹스는 넣고, 쑤시다가, 싸지르는 섹스가 아니다. 섹스 중에서도 레벨이 좀 높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품위도 교양도 있고, 우아하기도 하고 .. 

참 지랄 맞은 세상이다. 말로는 어쩌고 저쩌고 씨부려도, 저들의 생각은 섹스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 세상이 그렇게 변하여 흘러가고 있기 대문이다. <본능에 충실한>, <느낌대로> 지랄을 떨어대니, 윤희라고 별 수 있겠는가? 이런 대중들에게 우리의 전통 민요를 밀었으니. 쯧쯧.

높으신 정치가들께서도 술자리나 골프장에서 정신줄을 놓으시고 나중에 아니라고 손사래 발사래를 치시는 세상이다. 또 요즈음 세상은 너무 변해서, 이런 일들을 숨겨두지 않고, 까발리는 세상이다. 무서운 사람이 그랬으면 절대 까발릴 수 없다. 그러나 종이 호랑이들은 완전 호구니까 가차없이 까발린다. 세상은 이런 사건이 터지면 처음에는 누구나 욕을 퍼붓는다. 여기서 웃기는 것은 누가 누구를 욕하느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진다. 또 다음 사건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렇게 해보지 못한 자신을 한심스러운 찌질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정수랑 윤희는 아직까지는 호흡이 맞는 것 같다. 정수는 윤희에게 곡을 써주고, 윤희는 그 곡을 부르고, 정수는 아이디어를 내고 윤희는 그것을 해낸다. 바깥 세상의 동태는 박철호와 안명수가 콘트롤 한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서 안명수에게는 연말까지 숨쉴 여유가 생긴다. 그녀는 퇴근하면서 정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밤에는 아무데에도 가지마. 공연 끝나면 데리러 갈께.'

안명수는 정수가 공연하는 극장 앞에서 정수를 기다렸다. 드디어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그녀는 정수에게 전화를 했다. 

"빨리 나와."

그녀는 정수를 차에 태우고 그들의 오피스텔로 왔다. 그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헤어진다. 안명수가 말했다.

"오늘 공연 했으니까, 내일은 아무 일정이 없는 거지?"

"네."

"한 시간 후에 건너와. 치킨 주문 할께. 우리 오늘 같이 죽자.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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