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7 66. 위기의 극복 : 자신을 알고 또 자신을 발견한 날이다. 나는 요정이다. =========================================================================
정수가 씻고 나서 안명수에게 외숙모의 집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그는 외숙모 세영과 경화 누나에게 늦게라도 가겠다고 말을 해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기서 내일 아침에 늦잠 자면 정말 대형사고야. 전화하고 그냥 여기서 자. 아니면 건너가서 윤희랑 자든지."
정수는 외숙모에게 전화를 한다. 내일 준비가 이제 끝나서 건너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외숙모는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오겠다며 꼭 오라고 한다.
정수는 내일 아침 9시에 다시 오기로 하고 안명수의 집을 나섰다. 안명수는 자기가 잠들기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개운해진 것 같다. 그가 있는다면 좀 더 몸부림을 치다가 자겠지만, 그가 없어서 아쉽다. 윤희도 자고있겠지?
다음날 아침 안명수는 혼자서 차에 탔다. 정수도 늦지 않고 나타나서 세영의 차에 윤희를 태운다. 세영이 직접 운전한다고 한다. 승용차 두 대가 방송국을 향해 출발한다. 마지막 회의 시간 11시 까지는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도로에 차도 별로 많지 않고 몇 군데의 공사 구간을 빼고는 정체구간도 없다. 이들은 시원스럽게 달려서 방송국에 도착했다. 세영은 정수와 윤희를 내려놓고 돌아갔다.
안명수의 방으로 가는 복도에는 아직도 기획사의 매니저들이 어슬렁거린다. 기자들도 누군가를 붙잡고 얘기를 하고 있다. 여자 PD들 몇 명이 안명수에게 온다.
"퀸! 오늘 화이팅입니다. 하하하"
안명수는 자기 방에 도착하자 침착하게 회의실로 갈 준비를 한다. 오늘은 뮤직쇼에서 일을 치뤄내는 것 말고는 다른 외부 일정이 아예 없다. 박PD가 조용한 것을 보니까 그는 아직 도착하기 전인 것 같다.
안명수는 1분짜리 예고편을 제작해서 각 방송사에 전해주면서, 시간 날 때 마다 방송을 하라고 했다. 지난 12월 1일부터 모든 방송사에서는 이 예고편을 계속 방송해왔다. 입장권은 이미 동 났다.
그런데 장관실에서는 투덜댄다. 분위기가 아직 달궈지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정신 빠진 사람들 같다. 아직 한 일이 없는데 뭘로 달궈? 일단 오늘 스타트를 해봐야 달궈지든지 말든지 결판이 날 것이 아닌가? 저러 머리로 어떻게 정치를 하지? 저거 지구인들 맞나? 자기들은 마누라가 침대에 있으면 침대로 가는 동안에 달궈지냐? 만일 그렇다면 분명 조루일테니까 그야말로 사고지. 불륜이라면 또 몰라. 그런데 불륜은 불륜 자체가 이미 사고이다.
안명수는 회의실에 들어섰다. 그녀는 담당 PD 들과 준비해온 상황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날씨가 예년과는 다르게 약간 따뜻한 편이어서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공연을 했어도 될뻔 했다는 말이 오고간다.
"그럼 스타트에 별 이상은 없는 거죠?"
"음 ... 그렇죠?"
안명수는 PD들을 한 바퀴 둘러본다. 모두 그 동안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했다. 황제 박철호PD가 없어도 모두들 개인 생활은 나몰라라 하고 여기에 매달렸다. 우리는 모두 힘을 합해서 기적을 창조해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지금까지 <이런이유 때문에 안돼요> 는 단 한번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어요>뿐이었다. 가슴이 뿌듯해온다.
그런데 구석에서 젊은 여자PD 한 명이 반란을 일으킨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의 다양성이다. 그런데 저 PD는 이제 막 시작하는 애송이 같다. 본 기억도 없는 애이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있는 것 같은데요."
"뭔데요?"
"퀸이 문제 아닌가?"
"내가? 내가 왜?"
"오늘 저녁에 MC 를 하려면, 사우나, 헬쓰, 피부마사지, 화장 뭐 이런 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들 그러던데?"
"에이. 난 자연미인이라서 그런것 안 해도 돼요."
안명수가 그녀의 말을 뱉지만, 그녀는 자기가 한 말에 자신이 없다. 회의실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런데 곧 조금씩 웅성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 애송녀 주변에 앉은 젊은 남녀 PD 들이 합세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죠. 그대로 나갈 꺼면 근접촬영은 하지 말라고 카메라 감독한테 미리 말해두세요. 코털에 모공, 눈 가에 잔주름 다자오면 TV 화면이 짜글거려요."
"정 그러면 이따가 오후에 잠시 나가서 하고 오면 되죠."
"그게 어디 잠시로 될 일인가요? 결혼식 앞두고 신부 화장 먹히게 몸을 확 뒤집어 엎는데 한달 걸린다는 말 모르세요?"
"나는 안그래도 된다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 생각이고. 다른 쇼 MC 들은 새로 맞춤디자인 드레스를 엄청 고급으로 보일락말락 하게 가리고 나오던데. 퀸은 설마 청바지에 남방 입고 나가는 건 아니죠?"
"내가 입을 옷은 코디네이터가 정하는 것 아닌가?"
"자기가 입을 옷 100벌을 코디실에 갖다 주면, 코디네이터는 그 중에서 뭐랑 뭐랑 입으라고 정해주는 거죠. 지금 없는 옷을 어디 가서 사다가 해줘요?"
"뭐야? 그럼 오늘 일은 나 때문에 망친다고?"
이 때 박철호PD가 들어왔다. 안명수는 그를 보자 마치 구원군이 도착한 것 처럼 엄청 반가워한다. 그때 자신이 사면초가였음을 깨달았다. 황제가 구해주겠지.
"왜들 이렇게 웅성거려?"
PD 들은 박PD 에게 안명수의 무지함을 폭로했다. 잘못했다가는 안명수 때문에 오늘 일은 망칠 것 같다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다. 안명수만 빼고.
"간판이 후줄근 하면 그 집 음식은 보나마나 아닌가?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오늘 회의는 다른 PD에게 넘기고 자기 몸에 신경 써야 하는 게 맞구만."
듣고 있던 박PD는 안명수를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회의를 끝내고 안명수를 자기 방으로 따로 불렀다.
"이제 어쩔래?"
"에이. 설마 그 사람들 말이 사실이겠어요?"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신데렐라처럼 요술을 부릴 수도 없고..."
"이브닝 드레스 하나 빌릴 데 없어? 아는 여자 없어?"
"아뇨. 저는 선배님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 히히"
"인터넷에서 드레스 대여해주는 곳을 찾아. 거기 알아보고, 정 안되면 그냥 청바지에 남방이라도 입는다."
"예?"
"그럼 발가벗고 알몸으로 나갈래?"
안명수가 말은 그렇게 주고받았지만, 사실 자신의 의상이나 피부관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잘못하다가는 TV 화면에 크고 작은 모공까지 다 나올 판이다. 대한민국을 경악에 빠뜨릴 수는 없지. 그녀는 인터넷에서 검색을 시작한다. 그런데 별로 마음에 드는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윤현도가 그녀의 방으로 들어섰다. 안명수는 마음이 조급한데, 그는 어디까지나 여유만만이다. 안명수가 약이 오른다. 생각하지도 않은 말이 약간 신경질 적으로 윤현도에게 나가버렸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지도 못하는데...
"오늘 나랑 같이 MC 하려면 헬쓰, 피부관리, 사우나, 화장 이런거 해야죠."
"퀸. 그런 것은 한번 한다고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야. 난 몇년째 계속 해오고 있거든. 오늘 하루는 하지 않고 쉬어야 저녁때 화장을 잘 받아. 뭘 알고 하는 소리겠지?"
"그럼 드레스는요?"
"하하하. 남자가 무슨 드레스? 남자는 슈트면 되지."
"하아~ 왜 나는 남자가 아닐까?"
"그런데 듣고 보니까 퀸이 문제네?"
"어떻해요? 난 아까 알았는데."
"무지하다."
"예쁘면 되죠."
"막지도 하다."
"놀릴래요?"
"당연하지. 황금같은 껀수를 잡았는데. 하하하"
"빨리 국난 극복을 위해 슬기를 모으죠."
"그런 일에 나는 관심 전혀 없음."
"아아아아. .."
"한가지 방법은. ..."
"있기나 해요?"
"여체의 몸매를 살리는 방법에는 드레스처럼 내놓으면서 해도 되지만 가려가면서 해도 되지않나?"
"앗!"
"레깅스에 쫄티. 어때? 하하하"
"그 정도면 드라마 코디실에 가서 빌려도 되겠다."
"거기 가서 상담 받으세요. 난 갑니다."
"그게 아니라."
"왜?"
"우리 둘이 콜라보레이션 해야 하지 않나?"
"콜라나 마셔. 설마 진짜 레깅스로 오는 건 아니겠지?"
그는 가버렸다. 저 정도면 동료가 동료가 아니다. 안명수는 혼자서 코디실로 갔다. 코디네이터들이 드라마에 쓰이는 옷들을 모두 모아서 관리하는 곳이다. 그녀는 나이든 코디네이터와 상담을 했다. 안명수가 하소연하다시피 말하는 것을 듣고 난 그녀는 한참을 웃었다.
"미녀는 겨울에 얼어 죽고, 여름에는 쪄 죽는다는데, 이 추운 겨울에 실내체육관에서 한다며 무슨 얼어 죽을 드레스야?"
"예?"
"실내체육관에서 스포츠 중계방송 하는 여기자들 못 봤어요?"
"그거야 스포츠니까."
"실내온도 기것해야 15도 정도밖에 안돼요. 추워 죽겠는데 스포츠면 뭐하고 뮤직쇼면 뭐해요? 이리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래요?"
"저질 걸그룹이나, 불쌍한 치어리더들이나 홀랑 벗고 덜렁거리면서 흔드는 거지."
"아, 예에에."
그녀는 안명수를 팬티와 브레지어만 남기고 옷을 모두 벗게 했다. 제일 먼저 브레지어를 벗겼다. 그녀는 우선 감탄부터 했다.
"흐으음."
"왜요?"
"가슴. 너무 실하다. 그런데 이런 가슴이 추위를 많이 타거든. 겨울에는 불안하다가 누가 꼬옥 만져주면 안심되고 안그래요?"
"맞아요."
"가슴이 추위를 타서 그래."
그녀는 윗몸을 거의 다 덮는 탱크탑을 내주고 입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 위에 내복처럼 얇으면서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는 반팔 티셔츠를 입으라고 내주었다.
"이것을 입으면 체온을 3도 정도는 올릴 수 있어요. 요새는 에너지 절약한다고 대통령도 입는 옷이야."
그 위에 빨간색과 흰색 목폴라를 얹어보더니 흰색을 입으라고 했다. 갈색은 배경색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런 정도면 가슴 라인하고 옆구리가 확실하게 살잖아요? 젖가슴은 벗고 내놓고 흔들어도 섹시하게 처리가 되지만, 퀸은 볼륨이 충분하기 때문에 이렇게 라인을 조금만 살려줘도 엄청 도발적으로 섹시해. 몰랐죠?"
"끄덕끄덕."
"그 다음에는 이 목걸이를 걸면 가슴 쪽으로 확실하게 액센트를 ..."
가는 목걸이이지만 쇄골 바로 아래 중앙으로 노란 소라모양의 금덩이처럼 생긴 것이 매달린 목걸이를 걸어준다.
"생각해보세요. 오늘 보나마나 걸그룹 애들이 다 까제끼고 흔들어 댈텐데, MC마저 그러면 품위가 없어요. 퀸은 마스크가 우아하거든요. 이렇게 단순하면서 액센트를 강하게 확 넣고 또 따뜻하고 실속있게 입으면 완전 예술이야. 차라리 이게 낫지 않아요?"
"어머머머머 ... "
안명수는 자신의 모습을 전신거울에 비춰보고 놀란다. 거울 안에는 전혀 다른 여자가 들어있다. 놀랄 일이다. 저건 완전 팜므파탈이다. 드러낸 것 하나 없이, 겹겹이 꽁꽁 감쌌는데도 이렇게 섹시할 수가 없다. 이제 앞으로는 항상 이런 식으로 입고 일해야겠다.
"너무 감사해요. 그럼 바지는요?"
"두 가지가 가능해요. 또 퀸은 둘 다 어울려요. 한가지는 위에서 꽉 조였으니까, 아래에서는 풍성하게 와일드팬츠를 입어도 돼요. 대비효과를 노리는 거죠. 또 하나는 위에서 조인 그만큼 아래에서도 조이는 거죠. 둘 다 테스트를 해봅시다."
그녀는 팬티스타킹과 일단 레깅스처럼 하체를 꽁꽁 감싸는 얇은 옷을 내주고 입으라고 했다. 그 위에 넓고 풍성한 바지를 입어서 여유있게 했다.
"그런데, 이건 쫌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나요?"
"그건 색깔 때문이야. 이거를 초록색으로 하면 분위기는 확 달라져."
그녀의 말이 맞았다. 우아하고 단정한 그러나 여유있는 모습이다.
그 다음에는 스키니진이다. 검정색이나 청바지 계열 또는 초록색 어느 것이나 좋다고 하면서 물이 하나도 빠지지 않은 짙은 청바지를 입자고 했다.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거울 속에 들어있는 안명수는 더 이상 일에 찌든 딱한 여인이 아니라, 한 마리의 생기발랄한 요정이었다. 엉덩이는 보기만해도 움켜쥐고 싶어서 손이 움직일 정도이다. 앞에서는 둔덕이 크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튀어나오지도 않았다. 안명수 자신이 쳐다봐도 앞, 옆, 뒤 어디나 침이 꿀꺽 넘어간다.
"허벅지가 굵지 않고, 다리가 긴 편이면서 힙이 쳐지지 않아서, 스키니는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는 체형이거든요. 그런데 엄청 부럽다."
"됐죠?"
"감사합니다. 끝나고 바로 돌려드릴께요."
"그거.. 이제 곧 새로 들어올 품목들이니까 반납 안하셔도 돼요. 맘에 들면 그냥 입으세요."
"어머머. 감사합니다."
"스타일리스트들한데 입술 색을 너무 강조하지 말라고 하세요. 피색깔 나는 입술이 흰 색에는 어울리기는 해도, 너무 저질스러워서 퀸 마스크에는 안어울려. 머리도 옆쪽으로 손 좀 보고, 알았죠? 요새 걸그룹들 보면 토나오지 않아요? 남자들은 그런 것을 보면 불끈불끈 한다는데. 여엉 저질은 저질이랑, 쓰레기는 쓰레기랑 맞나봐. 하하하"
위기를 무사히 극복했다는 생각에서 안명수는 깊은 한숨을 내보낸다. 자칫하면 이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험에 처할 뻔 했다. 그것도 자신의 무지 때문에. 그러니 이 위기는 안명수 자신의 슬기가 아닌 코디네이테의 갚은 고뇌와 쎈스로 극복된 것이다. 안명수는 날아갈 듯이 기쁘다.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글이 델피 신전에 적혀있었지만, 그 글을 읽고 그 대로 따라서 한 소크라테스님. 저는 제 자신을 알았습니다. 나, 요정 맞죠? 헤헤헤.
그녀는 스타일리스트들에게 갔다. 여자 두 명은 머리로,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은 화장으로 덤벼들었다. 안명수는 마지막에 자신은 어떤 모습이 되어 이 방을 걸어 나갈까 하고 생각하면서 궁금해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의 비쥬얼에 대해서 너무 무감각하게 또 무표정하게 살아온 것 같다. 오늘은 자신을 알고 또 자신을 발견한 날이다. 나는 요정이다. 오늘은 제2의 생일이다. 너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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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야하지 않고 깔끔하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