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5 64. 안명수 운명의 날 %26 김익환 소극장의 매진 %26 유석재의 %3C도전은 여기까지만%3E =========================================================================
안명수는 그녀가 제작하는 문화 예술 뉴스에서 정수가 열연하는 뮤지컬 를 심도있는 비평을 곁들여서 다루어주었다. 비평가로 나선 청소년 전문가 이현주 아줌마는 이 시대의 어른들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그가 한 이 비평은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다른 프로그램들도 계속 인용해서 다룬다. 누구나 공감이 가고 반성하게 되는 이야기이고, 바로 자신의 한심스런 작태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컴퓨터나 휴대전화기를 손에서 놓고 바깥 세상으로 나가 봤자 그들은 실망한다. 날은 춥고 밤은 어둡다. 그러나 그들이 오갈 데도 마땋치 않고 또 그들은 친구들과 같이 놀 곳도 없다. 이들은 학교 공부, 학원이나 과외를 해야 하고, 그리고 나서 남는 시간이라면 컴퓨터나 휴대폰이다.
어른들은 자기들은 별 유치한 변태스런 짓까지 다해가면서 신나게 놀지만, 자기 자녀들에게는 미래를 위한답시고 공부만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현주 선생님, 과연 이렇게 자란 애들에게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능력이 생길까요?"
"이 나라에 미래가 있어야 맡기고 말고 할 것 아닙니까? 얘네들이 이러는 한, 나라의 미래는 무신 얼어 죽을 미래입니까? 제 눈에는 이 나라의 미래가 토옹 쥐뿔도 안보여요."
"그렇게도 절망적입니까?"
"놀이는 인간의 본능 아닙니까? 재미있게 놀 줄 모르는 애들이 어떻게 공부를 합니까? 찌질하게 노는 애들이야말로 공부도 찌질하게 하지 않을까요? 안 놀고 공부하는 애들이 공부를 하기는 합니까? "
"생각해 볼 만한 말씀이네요."
"애들의 기억에 확실하게 남도록 애들이 놀아본 적 있나요? 그러니까 공부가 늘 해도 그 모양이 아닐까요?"
"그럼, 공부에 대한 문제의 해답은 놀이에서 찾아라?"
"어른들은 놀지도 않고 계속 일만 합니까? 그러면 그 스트레스를 다 어쩌게요? 우리가 단 한번 만이라도 애들의 스트레스를 보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저 자신이 엄청 부끄럽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김익환 소극장과 그 스탭들은 이 뮤지컬 를 통해서 이 나라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만남의 장을 열어주었다고 봅니다. 이 배우들이 하나같이 음악은 죽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들이랍니다. 그런데 주인공을 보시면 Tom 이나 Jery 가 정말 딱 맞는 인물들이 아닙니까? 저도 우리 애들 데리고 가서 봤는데요. 저도 재미있게 봤지만 애들이 정말 재미있대요."
"저도 애들 데리고 가보고 싶은데, 저는 아직 애가 없어서 ..."
"밖에 나가보니까, 바깥세상이 사이버 세상보다는 훨신 재미있는 곳이고 또 살만하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 같아요.
컴퓨터나 전화기를 끄면 울렁증이 나고 토나올 줄 알았죠?
걱정말고 빨리 끄세요!
친구랑 약속하고 밖으로 나가세요!
만나세요!
갈데 별로 없죠?
거기로 가세요!
그것을 보세요!
아셨죠?
그거 정말 재미있어요."
"아니, 지금 뮤지컬을 홍보하십니까?"
"그게 아닙니다. 제가 너무너무 답답해서요. 이번 연말연시 공연 프로그램 중에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것이 내놓을만한 것이라고는 별로였거든요. 이거 정말 속이 후련하거든요. 교육철학적으로 뚜렷한 점도 훌륭하고 ..."
이 나라에서는 <교육적>이라는 말만 나오면 학부모들이 입에는 게거품을 물고, 봉투에는 자기앞수표를 넣어서 들고 덤빈다. 그런데 여기서 이현주는 <교육적>이 아니라 <교육철학적>이러고 표현했다. 얼마나 우아하고 고상하게 들렸겠는가? 결과야 보나마나 뻔하지 않겠는가?
이현주의 비평 좌담은, 겉으로 보면 김익환 소극장과 뮤지컬 를 칭찬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잘 들여다보면, 이런 역할을 분담하는 주인공을 칭찬하는 것이고, 결국은 그녀의 연하남 한정수를 칭찬한다.
공연을 보고 온 사람들이 웹사이트에서 이 공연에 대한 기사들을 찾는다. 사람들은 댓글을 쓰는데, 청와대에 달리는 댓글들과는 달리, 전부다 감동과 감탄 그리고 칭찬이다. 안 그래도 매진인 김익환의 소극장은 예약판매까지도 매진 때문에 표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암표가 엄청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는 말이 나돌 지경이다. 이 때문에 김익환에게는 다른 큰 극장을 빌려서 공연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박철호가 그를 놀렸다.
"떼돈 벌겠네?"
"나중에 반띵하자고 하면 죽음이다!"
"그럼 한정수를 어쩐다? 12월 행사 때문에 우리한테 빼와야 하는데. 흐흐흐"
"야아아아!"
이 나라에서 최고의 입담을 자랑하는 유석재가 벌써 이런 한정수에게서 심상치 않다는 낌새를 알아챘다. 그는 자기 예능 프로그램에 한정수가 출연할 것을 제의해온다. 그러나 고집스런 안명수는 내년으로 미룬다.
"퀸의 생각을 우리가 모르는 것은 아닌데, 이 프로그램도 청소년들에게 파급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이번 12월 행사가 모두 끝나면 그 때 가서 다시 얘기해보자니까!"
"한정수가 우리 프로그램에 나오기만 하면, 우리 프로그램에서도 뮤지컬 를 같이 소개할게요. 어떠세요?"
"지금 나랑 딜하자고?"
"대한민국에서 유석재가 아니면 감히 누가 퀸과 딜을 하려고 꿈이나 구겠습니까? 하하하"
뮤지컬 홍보를 해주겠다는 말에 안명수는 훅 가버린다. 그것도 유석재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한정수를 위해서 이것은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그녀는 유석재에게 방송에서 한정수에게 할 질문 카탈록을 요구했다. 이 말은 방송시나리오를 달라는 말도 된다. 유석재는 머뭇거린다.
"싫으시면, 우리 여기쯤에서 없던 일로 할까요?"
"팩스번호 주세요. 참나. 퀸이 괜히 퀸이 아니네. 하하하"
"제가 퀸이니까 유석재씨에게 이래도 되지 않나요? 하하하"
안명수의 팩스기는 유석재에게서 날아온 질문 카탈록을 꾸역꾸역 토해낸다. 안명수는 그의 질문을 일일이 검토해서, 정수 개인의 신상에 관한 내용 또는 그의 가슴 아픈 과거에 대한 내용들을 모조리 삭제했다. 그리고 현재의 활동이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으로 바꿔치기를 해버린다.
이렇게 안명수의 수정과 보완을 거친 질문은 처음에 유석재가 생각했던 질문과는 영 딴판이 되어버린다. 유석재는 정수 한 사람에게 뮤지컬의 한 부분을 실제로 연기해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안명수는 혼자서 그런 짓을 하면 너무 없어 보이고, 초라해 보인다고 했다. 아예 그 소극장에서 배우들을 초대해서 그 장면을 같이 라이브로 시키든가, 아니면 그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과정을 촬영해서 방송으로 내보내라는 것으로 바꿨다.
유석재는 자기 방송 역사상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투덜거리지만, 안명수는 또 그를 취소라는 무기로 협박한다. 결국 유석재는 안명수에게 무릎을 꿇었다.
"마이 퀸, 이제부터는 제가 퀸의 충실한 기사가 되어 퀸을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방송이 실제로 이렇게 되는지 우리 PD 여러명이 감시를 할 것입니다. 약속을 어기면 정말 곤란한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한정수를 방송 현장에서 빼올 거예요. 그 때는 저도 책임을 못 져요. 아셨죠?"
"제가 방송에서 약속을 안 지킨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세요?"
"저는 유석재님이 방송에서 약속을 지킨다는 말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같이 출연하는 다른 사람들을 시켜서, 우연인 것처럼 돌발상황을 만들어낸 다음에, 엉뚱한 질문으로 출연자들을 당황시키는, 이런 쪽으로는 이미 달인이 아니신가요?"
"앞으로 한정수에게는 절대 그런 일이 생기기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주의로는 부족해요. 지금 아예 보장을 해주세요."
박PD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안명수에게 걱정하는 말을 했다.
"정수가 그 인간의 질문 공세를 견뎌 낼까?"
"선배님, 제가 미리 손을 단단히 써 두었는데요."
"네 손은 너무 부드럽고 예뻐. 너한테 단단한 것이라고 해 봤자, 그 능구렁이한테는 솜방망이야."
"우리 말을 듣지 않으면, 제가 방송 도중에 빼오겠다고 했어요."
"각서 썼어?"
"왜요?"
"걔가 태클 걸면, 나중에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해. 방송 중에 사람 빼오면, 방송 방해죄야."
"흠 .. 당장 쓰라고 할게요."
이렇게 해서 유석재는 방송 도중에 약속한 질문의 내용과 순서를 제대로 지키겠다는 각서를 쓰게 된다. 유석재가 <도전은 여기까지만> 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을 여러 해 동안 진행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란다. 그렇지만 그는 퀸의 기사가 되어 감사하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한정수는 유석재의 <도전은 여기까지만> 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다. 안 그래도 매진 때문에 고민하는 김익환은 즐거운 비명을 계속 지른다.
이제 안명수의 운명의 날이 안명수에게 하루씩 다가오고 있다. 그녀는 제작, 기술, 촬영, 그리고 프로그램 등 모든 분야에서 완벽에 가깝도록 PD 들을 시켜서 준비를 하고, 그 상황을 매일매일 점검하느라고 바쁘다. 뿐만 아니라 그날 MC 로서 진행에 필요한 시나리오도 익혀야 한다. 윤현도와 만나서 대화 부분을 따로 연습하기도 했다.
가끔씩 황제이자 그녀의 신인 박철호PD가 나타나서 한바탕 들쑤셔놓기도 한다. 그 뒷수습을 해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안명수가 할 일이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흔들어놓는 것이 안명수에게는 발전이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그것을 그녀의 신이 보고 있다. 그녀는 신에게 감사한다. 그렇지만 얄밉기도 하다. 인간들은 신에게 두 가지 다 준다. 한가지는 존경과 사랑 그리고 감사이다. 또 다른 한가지는 미움과 욕이다. 안명수도 박철호에게 그렇게 한다. 그는 그녀의 신이므로. ..
오프닝 하루 전날 12월 9일.
모든 준비는 끝이다. 공연 장소인 잠실 실내체육관도 사설 경비업체들을 시켜서 경비를 살벌하게 시켜두었다. 프로그램 진행 각 부분 모두를 체크했다. 윤현도와 따로 만나서 진행시나리오도 맞춰보았다. 별다른 문제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한정수와 정윤희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아침부터 오늘 하루 종일. 정수는 뮤지컬 때문에 소극장에 갔다고 쳐도, 윤희는 눈에 띄어야 할 것이 아닌가? 둘이 같이 갔나? 생각은 하지만 원가를 할 수는 없다. 안명수에게는 자신에게 다가와버린 그녀의 일이 너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정수와 그의 일에 대한 생각은 <다른 생각> 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될 수 없었다. 그의 일은 곧 안명수 <자신의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 만큼은 다르다. 안명수의 눈에는 불꽃이 자기의 발등에 떨어져서 활활 타고 있음이 보이는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끝나고 안명수는 밤 늦게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옆에 있는 정수의 텔에서 남녀의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아마도 정수가 내일 무대에 대비해서 윤희랑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두 사람이 아마도 연습하고 있겠지. 내일이 어떤 날인데 설마 이 시간에 침대에서 뒹굴고 있지는 않겠지?
믿는 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점검을 통해서 그 믿음이 확실해진다. 그래서 점검은 믿음보다 훨씬 더 좋다. 가보자.
만일 안명수가 뻘쭘할 상황이 오면 어쩐다? 칭찬을 많이 해주고, 이제 그만 쉬다가 자라고 말해주면 되지.
안명수는 정수의 문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에는 두 사람의 신발이 있다. 거실이 텅 비어있고, 욕실과 베란다에도 아무도 없다. 주방에도 옷방에도 없다. 그럼? 침실에? 이것들이 지금 제 정신이야?
그녀는 정수의 침실 방문을 열었다. 그것도 아주 위풍당당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