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4 63. 선배님 허벅지가 그냥 두고 보기에는 너무 섹시해서요. =========================================================================
안명수는 윤현도에게 박PD가 부른다는 말을 전했다. PD 들과 AD 들에게도 비상사태임과 회의에 가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나서 회의 전에 비는 시간을 박하나를 만나는 데에 활용하기로 했다. 안명수의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아서, 자기 개인의 일이라면 팽개치고 싶지만, 저 연하남의 일이므로 그럴 수는 없기 때문에, 그녀는 박하나에게 전화를 해두고, 차를 몰고 여의도로 향했다.
그런데 박하나는 상당히 현실적이고 게다가 구체적이었다. 증권회사 임원의 비서실장답다. 그녀는 안명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런 질문은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았던 질문이다. 처음에는 불쾌한 생각이 들 정도였으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박하나라는 이 여자 정말 매력 있는 여자이다.
"우리가 한정수씨 개인 통장으로 입금할 수는 없나요?"
"저희 방송사에서는 후원금 입금 계좌는 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바닥에 쩔어있는 지저분한 스캔달과 근거 없는 헛소문으로부터 한정수를 지키는 일에 협조해주십시오. "
"우리가 입금하는 돈이 한정수의 공연활동과 그 준비를 위해서 스이는 것이 분명하죠?"
"평일 일과 시간에는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지출 내역을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정수 개인에게 따로 전해줄 수도 있나요?"
"그것은 당사자 둘 사이의 일이고, 우리가 운영하는 후원금과는 관계없습니다. 단지 우리로서는 말라고 말리고 싶어요. 말씀하신 그 부분이 바로 스캔달이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투명하게 우리 통합창구를 이용하십시오."
"그럼 우리가 한정수 개인을 따로 만나는 것도 반대하시겠군요?"
"원래는 오늘 한정수와 제가 같이 왔어야 합니다. 한정수가 출연하는 뮤지컬이 이달 11월 말일에 프리미어 그리고 12월 1일에 개봉입니다. 한정수가 이런 상황임을 감안해 주신다면, 그가 오늘 이 자리에 같이 오지 못한 것을 용서하실 수 있겠지요? 앞으로도 그가 어느 정도의 궤도에 도달할 때 까지는 저질 예능 뉴스에 불필요하게 노출되는 것을 차단할 예정입니다. 이점도 양해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저희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한 사람을 키워서 그의 어깨에 커다란 책임을 얹어주고 싶기 대문이고 또 그에게는 그러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또 있어요. 이 나라의 TV 방송사들이 기획하는 매머드급 뮤직페스티벌이 12월 10일부터 시작됩니다. 연말을 화려하게 장식하자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한정수가 음악적인 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지 충분히 접하실 수 있읍니다."
"완전 개변태새X들이군요."
"예? 정수가요?"
"하하하. 아닙니다. 이 바닥에 있으면 방송사 예능국들이 움직이기 전에 무슨 일이 있는지 훤히 보이거든요. 욕먹어가면서 오래오래, 치매 올 때까지, 벽에 똥칠하면서 사실 분들이 엄청 많아서요. 그분들께 제가 칭찬해드린 것입니다."
"아. 예에. .. 만일 지금 결정을 내리시기가 곤란하시면, 12월 한달 동안 그의 활동이 공개되기 때문에, 충분히 검토하시고 다음달에 결정하셔도 됩니다."
"그럴 필요가 있나요? 저희 회사 내규에는 매 분기별 순이익금의 일정부분을 문화예술에 기부하여 국민들의 삶을 풍요하게 하는 데에 기여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 내규에 의해서 일년에 네 번 분기 결산이 끝날 때마다 계산해서 입금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정수는 기획사에 소속되어있지 않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당분간은 저희 방송국에서 관리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레벨에 오르면 저희는 깨끗하고 능력있는 기획사나 예술단체로 소개할 생각입니다."
"그렇죠. 지금 그 단계에서는 들어가도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더 많이 겪다가 바닥에서 퇴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겠네요."
"바로 그 점이 우리가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럼, 제 생각에는 안명수 기자님께서 한정수를 관리하는 일도 직접 하실 것 같은데, 맞나요?"
"제가 총괄PD님을 돕다 보니까 얼떨결에 맡아서 직접 하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 있는 입장입니다."
"어머머? 예능국 총괄PD를 어씨스텐스 하세요? 그럼 안기자님이 바로 그 퀸이라는 분이세요?"
"죄송합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말씀을? 퀸을 몰라본 제가 죄송하죠. 이런 분에게라면야 저도 관리를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걸요?"
"부끄럽습니다."
"지금은 저희뿐 아니라 이 나라가 모두 바쁠 때니까 곤란하지만, 이 바쁜 시기가 지나고 나면, 우리 언제 꼭 만나요. 같이 식사하면서 안기자님 일하시는 그 쪽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안기자님으로부터 직접 듣고 싶어요. 저야 뭐 이쪽에 돌아다니는 찌라시를 통해서만 알고 있으니까요."
"양파껍질처럼 까도 까도 지저분한 일만 무성한 곳이 저희 분야입니다. 그렇지만 일하다 보면 또 고생하는 보람을 느낄 때도 한두번이 아니죠. 꼭 불러주십시오. 숨김없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도 증권투자에 대해서 궁금하고 또 알고 싶은 것이 많은데. ..."
"그럼 우리 둘은 만나면 할 얘기가 많아서 밤샘을 해야겠네요. 하하하. 그날을 위해서 우리 오늘은 일찍 헤어지죠?"
박하나는 안명수를 1층 로비까지 배웅했다. 안명수는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점점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녀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저 철딱서니 없는 애송이가 만일 그녀의 손에 걸리면,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헤어날 수가 없을 것 같다.
드디어 11월 30일이다. 뮤지컬 의 프리미어(premiere, 시사회) 가 소극장에서 프리미어를 하는 날이고, 내일 12월 1일에는 개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소극장의 연출가는 김익환이지만, 그는 이 소극장의 주인이기도 하다. 김익환 감독은 손님들을 초대하여 프리미어를 열었다. 끝나고 나서는 와인파티도 열었다.
안명수는 바빠서 갈 틈이 없었지만, 초대받은 박철호PD가 갈 수 없는 상황이므로 그를 대신해서라도 가야만 했다. 그녀는 정윤희를 데리고 같이 갔다. 톰은 여배우가 맡았는데, 완전 거구였다. 키는 190에 가깝고, 체중은 아마도 150킬로는 넘을 것 같다. 제리는 보기만해도 애처로운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애송이 연하남이다. 그 자리에는 초대받은 손님이 300명 정도 온 것 같아. 모두를 배를 잡고 울고 또 눈이 부어오르도록 울었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사람 애간장을 여러 번 들었다 놓고, 또 여러 번 넣고 빼고, .. 안명수는 김익환 감독이 왜 박철호PD마저도 인정해주는 사람인지 직접 경험했다. 그의 탁월한 실력이 부러울 정도이다. 저런 사람의 손에 한정수가 있으니, 연하남 한정수는 얼마나 고마워해야 하느냐 말이다. 로또 당첨은 저리가라인데, 알고나 있을까?
프리미어는 성공이었다. 끝나고 나서 배우들이 인사하고, 포토타임도 가졌다. 안명수는 김익환 감독, 정수 그리고 윤희와 같이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 윤희가 말했다.
"지난 번에 정수가 나한테 뮤지컬을 해보라고 말했었는데, 그때 할껄 ..."
"왜 안했어?"
"당장 돈이 필요한데, 그걸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럼 지금은 답이 나오니? 내가 바빠서 깜빡 했는데 요새는 어떻게 살아?"
"PD님께서 저에게 일단 2000만원을 빌려주셨어요. 이달에 있을 행사가 지나면 저에게 들어오는 돈이 짭짤하게 있을거라면서 그때부터 갚으래요. 만알 떼어먹고 도망치면 지옥에까지라도 따라와서 받아가실 거래요. 하하하"
안명수의 가슴이 울컥해온다. 박철호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인가? 그가 간혹 인간적인 면을 보였던 것이 사실인데, 지금 윤희 얘기를 들으니까 안명수가 부끄럽다.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으로 가정을 꾸리고 애 둘을 키우는 그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이럴까? 그의 성격으로 볼 때 그에게 따로 비자금이 있을 리도 없다.
"PD님 사모님도 완전 좋으신 분이던데요. 이번 연말에 오갈 데 없으면, PD님 댁에 와서 같이 지내자고 하셨어요. 애 둘이 성격까지도 아빠랑 완전 붕어빵인데, 이 애 둘을 보기가 너무 버겁다면서, 와서 애도 봐달라셨어요. 그런데 제가 애를 볼 재주가 없잖아요? 그것도 둘 씩이나. 설마 쌍둥이는 아니겠죠? 오늘 본 뮤지컬을 써먹어봐야겠어요. 헤헤헤"
"쌍둥이 맞을 껄."
같이 일하는 자신도 모르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니. 자기와 한마디 의논도 없이 이런 반란을 일으키다니. 안명수는 박PD가 얄밉고 또 배신을 당한 기분도 든다.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 그리고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짜릿해온다. 이것이 교주와 그를 믿고 따르는 신도의 차이인가? 지금이야 신도가 안명수 1명뿐이지만 이 종교의 신도는 앞으로 꽤 많이 늘어날 것 같다. 혹시 다음 번 대통령 선거나 서울 시장에 출마하도록 꼬득여 볼까? 이런 사람이 시장이나 대통령을 해야 하는데...
신은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어렵게 해서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그런데 또 신은 우리에게 박철호PD와 같은 사람과 같이 살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신은 오랜 세월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욕도 먹지만 존경도 받는 것이 아닐까?
박철호는 각 방송국들의 예능국 총괄PD들을 불러서 회의를 했다. 잠실 실내체육관은 12월 한달동안 TV 방송사들이 붙잡고 풀어주지 않을 계획이다. 방송사들이 무대를 설치하는 작업은 엄청난 공사가 될 것이므로 당장 시작하기로 했다. 한달 동안의 지휘부를 최철호의 방으로 하고, 각 방송사들의 공연 일정도 확정했다. 또 출연하는 멤버들이 겹쳐지지 않도록 서로 협조하기로 했다.
또 그 회의에서 그는 과거20년 동안에 성상납이나 성매매에 개입한 적이 있거나 그런 스캔들에 휩싸인 적이 있는 기획사들을 배제해달라고 호소했다. 만일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는 박철호가 엄중하게 공개적으로 항의를 하겠으며, 그 방송사는 앞으로 있을 이런 공동 행사에서 빼기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그의 생각에는 이 그 말이 지켜질 것 같지는 않다. 바로 그 회의장에 있는 쉬퀴들이 벌써 한몫을 단단히 챙겼을 것 같아서이다. 팔이 안으로는 굽어도 밖으로 굽을 리는 없지 않은가? 벌써 그가 이란 말을 하는 동안에 고개를 떨구거나 외면하는 총괄PD들이 눈에 띈다. 박PD가 빡친다. 그가 꼭지가 돌아서 악을 쓴다.
"이 자리에는 그런 한심한 떨거지들이 한 분도 안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몸보신을 해야 할 정도로 늙은 퇴물들이 지금 이 자리에 나와서 나랑 같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여기가 경로잔치도 아니고 말이야. 죽을 때가 다 됐는데도 죽지 않고 바둥거리며 살아있는 것들이 예능국 개망신을 다 시키거든. 정신 안 차리면 이번에 내가 가진 비밀 문건을 공개해버리는 것도 고려 중입니다. 자기는 안 그랬는데 억울하다고? 신기하죠? 그런 문건에 내 이름 박철호는 안 보이는데 억울하다는 사람 이름은 꼭 보이거든. 했냐 안 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까마귀 우는데에 백로가 갔냐 안 갔냐가 문제 아닌가? 우리는 정치가들이 아닙니다. 정치가들이야 해놓고도 안했다고 우겨보죠. 2박삼일도 못 가면서. 그러니까 그들이 안 했다는 말은 결국 했다는 말이죠.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의 역설적 표현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러면 곤란합니다."
안명수가 볼 때 이건 쫌 심하다. 그는 정도를 한참 지나쳐왔다. 그녀는 박PD의 얼굴을 보며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제서야 박PD가 입을 닫는다.
회의가 끝난 후에 박철호는 안명수를 불렀다.
"그 얘기는 네가 해달래서 했는데, 왜 꼬집었어?"
"선배님 허벅지가 너무 섹시해서요 .. 히히"
"하긴 내가 쫌 .."
"예 맞습니다. 투덜투덜"
"이렇게 가지 한 것이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전부야. 더 이상은 안돼. 나한테도 힘이 없어."
"선배님, 더 이상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MC 말인데, 어려우면 윤현도랑 같이해."
"안그래도 그러려고 시나리오 쓰고 있어요. 입담은 제기 딸릴 것 같은데."
"입담만 딸리냐?"
"예? 또 있어요?"
"현도한테 물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