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3 62. 쟤는 저게 문제야. 예술가적인 센스가 완전 먹통이라니까. =========================================================================
사장과 함께 외출했던 박PD 가 돌아왔다. 안명수와 윤희가 바빠진다. 정수도 긴장한다. 안명수는 두 사람을 데리고 그의 방으로 간다. 윤희와 정수를 밖에 세워두고, 안명수 혼자 그의 방 안으로 들어선다.
"안명수, 론칭이 몇 일이라고 했지?"
"22일요."
"당겨."
"예?"
"이번에 우리보고 덮으래. 장관어르신 부탁이야."
"뭘 덮어요?"
"그건 정치얘기니까, 알 것 없고 .. 이번에 얼마 들어간다고?"
"지금까지 최소한 10억인데요. 앞으로 30억 정도는 충분히 더 들꺼고. .."
"제작비는 무제한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장소는 잠실 실내체육관으로 하고, 시간도 4시간 정도로 완전 스펙타클 하게 .."
"선배님!"
"론칭 오프닝은 12월 10일에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계속 때려."
"겨우 보름 남았어요. 그걸 무슨 재주로 해요?"
"못하겠으면 요술이라도 부려. 안되면 너랑 나랑 당장 사직서 내야 해."
"오후에 윤희 중간보고는요?"
"지금 윤희가 문제가 아냐. 다음에 해. 신인코너를 따로 만들어서 그냥 집어넣든가."
"선배님, 무슨 일인지 엄청 무서워요. 곧 쿠테타라도 일어나요?"
"쓸데없는 소리! 이따가 6시에 PD(제작감독 & 연출가들), AD(제작부감독들, 연출보조들) 까지 전부 다 회의실로 오라고 해. 이건 비상사태야."
"예."
"지금 윤현도가 와야 하는데. 안되면 강영훈이라도."
"연락하겠습니다."
안명수는 그의 얼굴에서 비장함을 읽는다. 그는 지금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 같다. 아마도 정치권에서 뭔가 대형사고가 나서 시끄러워질 모양이다. 이럴 때면 꼭 예능국이 희생양이다. 박PD가 제작비는 무제한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면, 이번에는 사태가 제법 커질 모양이다.
박PD와 안명수의 이야기는 끝났다. 안명수가 밖으로 나와서 윤희를 쳐다본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PD님께서 지금은 경황이 없으시니까, 다음에 기회를 보자. 미안해서 어떻해?"
"언니, 오히려 잘 됐죠. 나도 정수랑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윤희는 안명수에게 내일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방송국을 나갔다. 정수도 뮤지컬 오프닝을 위한 마지막 준비 때문에 소극장으로 갔다. 안명수는 이 틈을 이용하여 박하나를 만나러 갔다. 그녀가 방송국을 나설 때 윤현도가 방송국으로 막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손을 흔든다.
아까 오전에 박PD는 방송국 사장을 따라나서야 했다. 사장은 국립극장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다른 민영방송 사장들과 그들 예능국의 총괄PD 들도 나와있었다.
이 모임에 대해서 질문을 퍼붓는 기자들에게 발표하기로는, 문화 예술의 일선에서 일하는 이들을 장관이 격려하는 자리라고 했다. 오늘 저녁 뉴스에는 그렇게 나간다.
완전 겉 다르고 속 다른 얘기다. 그 자리는 암울하고도 침통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장관이라는 사람은 엄청 난처한 표정으로 대통령의 레임덕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임기 후반부에 식물 대통령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가 추진해오던 사업들도 효과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들은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또 기강이 해이해진 그의 수하들은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부정과 부패에 앞장서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은 터지고 있다. 이미 알려진 사건이 이 정도면, 아직 터지지 않고 있는 사건들은 얼마나 많은 것일까? 국민들은 뉴스에서 이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사정없이 욕질을 해댄다. 청와대 웹사이트에는 이런 욕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각 언론사의 뉴스에도 욕하는 댓글들 뿐이다.
어차피 대통령 선거에서는, 세금을 더 이상 올리지 않고, 서민들에게는 돈을 더 풀어주고, 게다가 고금리의 부채를 탕감해준다는 공약만 내세우면, 국민들은 또 찍어준다. 이 나라의 국민들이야 그 당을 찍어주는 기계나 마찬가지다. 부정 부패에 열정을 쏟아 붓는 사람들은 굳이 국민의 표를 의식해서 할 짓을 안할 이유는 없다. 이 나라의 국민들이야 돈 앞에서는 바보이니까. 국민들이 바보짓을 계속하는 한 이것은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이다.
이제 연말이 되면 각 언론사들은 한 해를 돌이키면서, <지난 한 해 동안이 나라에는 우리 나라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를 보도한다. 대통령과 정부는 이 보도에 자기들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보도의 정치분야에서 좋은 내용으로 보도할 것이 거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장관의 부탁은 12월에는 이 나라의 연말 분위기를 예능으로 후끈 달궈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공영방송이 앞장을 서고, 다른 민영방송들도 협력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온 국민의 시선을 아예 예능으로 돌리게 하자는 것이다. 각 방송사의 사장들은 자기네 예능국의 총괄PD에게 이 일을 맡긴다.
박철호 PD 역시 혹을 하나 더 달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박PD는 자기가 하는 일이 정치가들의 비리를 덮는 데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더럽고 아니꼽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그는 이번 일을 안명수에게 통째로 맡겨버릴 생각이다.
만일 안명수가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면, 내년부터는 자기의 AP(associate producer, 제작감독의 보조)로, 그러니까 예능국의 총괄PD 박철호를 보조하는 PD (Prodecer and Director, 제작감독)로 일하게 할 생각이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이것을 눈치채고, 박철호를 황제라고, 그리고 안명수는 퀸이라고 부른다.
그는 저녁 회의에서 자기의 건강이 너무 나빠졌다면서, 안명수에게 이 일을 위임하고 다른 PD 들에게는 안명수에게 협조하라고 말했다. 박철호의 이 말에 모두들 수근거리면서 박철호를 걱정해준다.
"위암이 또 재발한 거요?"
"여기는 퀸이 있으니까 빨리 병원에 입원하세요!"
"툭하면 지랄하는 쉬퀴들이랑 이런 장사를 우리가 한두번 합니까? 걱정 마세요."
"황제 못지않게 퀸도 잘 하더만 뭐가 걱정이래?"
저녁 회의가 있기 전에 박PD는 윤현도를 방송국으로 불러서 따로 만났다. 원래는 안명수가 그날 MC 로서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만일 이 프로그램 기획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하면 윤현도가 하도록 단단히 부탁을 해두었다.
"형님은 안기자를 형님의 후계자로 키울 생각이세요?"
"능력이 되면 누구나 하는 거지. 내가 뭐라고 누구를 키우고 말고 하냐?"
"그런데 제작하는 총괄감독한테 MC 까지 시키려고 해요?"
"이 자리에서 일하려면, 예술가적 감각도 있어야 해. 교육자적인 사명감도 또 저널리스트적인 센스도 필수야. 안명수가 다른 것은 다 좋거든. 그런데 예술 쪽은 여엉 먹통 같아서 걱정이야. 어차피 이번 행사는 시끄럽고 요란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안명수가 경험 할 수 있는 기회도 되고."
"아무리 그래도 여자 혼자 이 엄청난 일을 다 해낼거라고 봐요?"
"안명수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과 일을 매칭시키는 쎈스거든. 어떤 일에 무엇이 필요하고, 그 일을 누가 잘 할 수 있나를 생각해서 그 사람을 배치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그 사람이 얼마나 어떻게 잘 해내는가 지켜보는 거지. 자기는 MC 준비를 하면 되고."
"형님이 보기에는 안명수에게는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당연하지. 안명수도 못한다는 말 아직 안했어. 그런데 자네가 왜 그래? 안명수는 웬만한 스트레스는 잘 견뎌낼 꺼야. 나는 안명수를 믿어."
"글쎄. .. 내가 보기에는 .."
"걱정하지 말고, 너한테 자꾸 이런 거 시켜서 미안한데, 너 혹시 정윤희라는 애에 대해서 얘기 들어봤니? 요새 안명수 옆에 붙어 다닐텐데."
"아직요. 왜요?"
"걔 한번 테스트 해보고, 웬만큼 해내면 해외로 빼버려. 한류 뭐 이런 걸로."
"왜, 해외로 뺀대?"
"살기가 힘들어지니까 할짓 안할 짓 다 한 모양이야. 그걸 여기서 어쩌겠니?"
"알았어요. 형님 생각이 그러면 할 수 없지. 내가 내일 저녁에 시간 내서 이리로 올테니까, 형님이랑 같이 봅시다."
"고맙다. 시간 잡히는 대로 꼭 안명수랑 연락해서 나한테 말해. 알았지?"
다음 날, 방송국은 온통 벌집을 들쑤셔놓은 것처럼 요란했다. 기획사들로부터 매니저들이 벌써 어디서인지 소문을 듣고 모여들어서 출연을 따내려고 난리이다. 안명수는 기획사들의 매니저들을 따로 불러서 일일이 개인면담을 했다. 명목은 알고 지내자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성매매나 성상납 전과가 있는 기획사들을 모조리 배제시킨다는 의도였다. 그런 전과가 있는 기획사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녀는
"우리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아무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고는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보고 있거든요. 안타깝지만 다음 기회에 다시 뵙도록 하죠?"
라고 말하고 사정없이 쫓아냈다.
프로그램 쪽에서는 일찍부터 PD 들과 AD 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팜므 파탈(Femme fatale) 같은 걸그룹들에서부터 시작해서 통키타 가수들에 이르기까지 현재 활동중인 가수들도 추려냈다. 각 방송사들의 오디션에서 괜찮은 점수를 받은 신인들이나, 음악 동호회들로부터 출연신청을 받아서 심사를 하도록 했다.
저녁때가 되자 소극장에 갔던 정수가 안명수에게로 돌아왔다. 안명수는 윤현도로부터 연락을 받고 정윤희를 불러서 준비를 시켰다.
"저녁 먹고 8시에 시작할꺼야. 배고프면 죽도 밥도 안되니까 든든하게 먹어둬."
"언니도 참. 지금 밥이 넘어가요?"
"안넘어간다고 안먹어? 정 안넘어가면 억지로 삼키기라도 해야 해."
"누나, 말하는 것이 갈수록 PD 님하고 비슷해진다. 하하하":
"언니, 그런데 이렇게 바쁘신데도 오늘 가능해요?"
"이건 PD님 명령이야. 윤선배도 와있어."
윤현도가 와있다는 말에 정수는 엄청 좋아하지만, 윤희는 긴장해서 허리가 돌아가지 않을 지경이다. 자기가 윤현도 앞에서 노래를 부를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윤희는 정수를 보채서 각 부분마다 세밀한 연습을 하고, 또 전체적인 연습도 했다.
안명수는 윤희에게 시나리오를 짜주었다. 처음에 조명이 들어오면 무대로 입장한다. 인사가 끝나면 그녀의 동선을 따라 다니는 조명만 남고 다른 조명은 꺼진다. 등등
저녁 8시. 제8스튜디오.
안명수는 스튜디오에 고정 카메라 3대를 중앙과 좌우로 배치했다. 안명수와 박PD가 영상모니터로 들어오는 윤희의 카메라빨을 체크하기 위해서이다. 윤현도는 그녀의 노래나 안무를 보기로 했다. 그 무대에는 정수가 피아노 앞에 앉아있다.
안명수의 사인에 따라 무대 위에 조명이 들어오고, 윤희가 장구를 메고 나타난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색동저고리, 청바지, 롱부츠. 또 윤희의 장구라는 것은 가운데가 가냘프면서도, 양쪽으로 둥글고 풍만하게 퍼져나간 것이 윤희의 몸매랑 너무 잘 어울린다.
무대의 조명이 모두 꺼진다. 정수가 피아노 연주를 시작한다. 윤희가 무대 위를 오간다. 그녀의 노래와 춤이 시작된다. 조명이 윤희의 머리 위에서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비춘다.
윤희는 무대에서 환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카메라를 통해서 들어오는 화면에서도 윤희는 조금도 손색이 없다. 신체의 어느 부분을 클로즈업 시켜도 윤희는 아름답다. 그녀의 몸놀림과 장구가 매칭이 되어 너무 섹시하다.
윤희의 노래를 듣고 있는 윤현도도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분명 우리 민요가 아니다. 그런데 흥얼거리다 보면 어디에서인가는 분명 민요이다. 어깨가 들썩거려진다. 그러다 보면 또 현대음악이다. 이것을 살리는 윤희의 목소리도 청아하다. 뺨에 테이프로 붙인 마이크에서는 그녀의 발성뿐만 아니라 숨소리까지 모두 잡아낸다.
윤희의 노래가 끝났다. 정수의 피아노도 멈추었다. 윤희는 박PD와 윤현도의 눈치를 본다. 어느 누구도 손뼉을 치지 않는다. 안명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와 위대한 그들에게로 갔다.
박PD가 안명수에게 물었다.
"엄청 야한데? 이 컨셉은 누구꺼야?"
"장구랑 의상은 윤희. 안무는 정수가 이틀 동안 맡았습니다."
"정윤희, 자네가 장구를 부등켜 안고 허리를 비틀면서 엉덩이를 살짝살짝 움직이는 것을 보면, 완전히 성행위하는 모습이던데, 장구를 갖고 나온 이유가 뭐야?"
"민요풍의 리듬이 나올 때 리듬이랑 장구춤이 약간 들어갑니다. 또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는, 제가 무대에서 싱글이기 때문에 너무 단조로울 것 같아서, 머리를 쓴다고 쓴 것이 이 정도입니다."
"형님, 이건 걸그룹 애들이 엉덩이나 가슴 까발리는 것 저리가라야. 겉으로는 전혀 아닌데 알고보면 완전 그거야. 이거 완전 대박아니면 뭐겠어?"
"이 정도면 19금 판정이 나지 않을까?"
"에이. 형님도 참. 옷 하나 벗은 것이 없는데? 노출은 고사하고 덜렁거린 것은 장구밖에 없잖아요?"
"그게 문제지. 그 장구가 문제란 말이야. 이게 선정성이 너무 강해. 장구 끝에 볼록한 부분이 젖가슴 쪽이나 엉덩이나 허벅지 쪽으로 갈 때는 도대체가 숨을 못 쉬겠어. 어떻게 된 거야? 한정수가 이 안무를 고안했다고?"
"네, 제가 생각해냈습니다."
"형님, 분명 아닌데, 분명 그거 맞아. 그게 쥑이는 거지. 하하하."
"또 있어. 이 곡은 분명 현대음악인데 언제 슬그머니 잠깐 민요를 한바닥 해치우고 나온단 말이야. 이 곡 누가 썼어?"
"이 곡도 정수가 썼습니다. 윤희가 제 앞에서 어제 받았습니다."
"현도야. 너 정수 데리고 뭐했니? 이게 한정수라고?"
"나야 .. 형님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안 그러냐, 정수야?"
"돌겠다."
"예들 지금 쫄아서 기다리는 데, 형님이 합격 불합격을 말해줘야죠."
"내가? 네가 해야지."
"난 합격이야. 최우수."
"네가 그러면 나라고 별 수 있냐? 어차피 이번 행사에 나가보면 다 들어날텐데. 나도 합격. 최우수. 안명수 너는?"
"저는 진행이지 심사는 하지 않습니다."
"쟤는 저게 문제야. 예술가적인 센스가 완전 먹통이라니까."
정윤희는 참았던 울음을 터드린다. 안명수는 정윤희를 끌어안는다. 정수는 윤현도의 뒤로 숨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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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보이네요.
지금 생각은 해피엔드로 가려고 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