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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5 54. 우리는 운대가 안맞나봐. 돈 버는 공연이 아예 없어. (55/116)

00055  54. 우리는 운대가 안맞나봐. 돈 버는 공연이 아예 없어.  =========================================================================

정수는 안명수에게 개 줄로 목을 묶인 것처럼 매일 안명수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래서 방송국에서는 정수의 별명이 <마약>이 아니고 <명멍이> 이다. 제법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아침에 방송국에 왔다가, 안명수가 외근 나갈 때에 따라나가고, 세탁소에 가서 일도 한다. 일주일에 두 번은 대학로 소극장에 가서 뮤지컬도 연습하고, 또 저녁에는 윤현도의 BY 와도 연습할 때도 있다. 안명수의 밀착감시는 계속된다.

어느 날 정수가 방송국 휴게실에서 안명수와 음료수를 마시면서 쉬고 있을 때였다. 그 휴게실로 라는 걸그룹 멤버 4명이 우루루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나같이 몸매는 끝을 내주는 애들이다. 정수도 저절로 눈길이 자꾸만 그녀들에게로 쏠린다. 안명수가 눈치를 채고 그의 허벅지를 움켜쥔다.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죽을래?"

정수의 인상은 죽음을 그린다. 그녀들도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정수는 그녀들을 알아보고 녹화 때문에 온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중 하나가 자꾸 정수를 쳐다보는 것이다. 정수와 눈길이 마주친 적도 있다. 그런데 잠시 후에는 한명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네명 모두가 아예 대놓고 그를 보고있다. 안명수가 정수 옆에 앉아있기가 무안한 정도이다.

그 중에 한명이 정수에게 물었다. 정수에게서 대답이 나오자 네명이서 저마다 그를 향하여 말을 뱉는다. 

"오빠가 마약이지?"

"응."

"어머머. 이 오빠 얼굴 빨개지는 것 좀 봐."

"오빠, 오늘 쫌 귀엽네." 

"오빠, 어디 소속이야?"

"오빠, 매니저 누구야?"

"오빠, 오늘 저녁에 우리랑 놀을래?"

그녀들에게 그제서야 안명수가 눈에 보였나보다. 그녀들은 안명수에게 아는 척을 하고, 안명수는 그것을 엄청 신기해한다.

"앗! 안녕하세요? Girl시대입니다."

"어머. 안기자님."

"너희들이 나를 알아?"

"안기자님, 우리 아직 정상이거든요."

"LBS 예능국의 퀸을 모르면 간덩이가 완전 부은거죠. 하하하."

"우리가 제일 부러워하는 분이 안기자님이라는 사실을 모르시죠?"

"예능국 기자는 해 본 적도 없으신 분이 어떻게 그런 막강한 자리를 꿰차시고 ..."

"PD 님도 안기자님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신다면서요? 하하하"

"안기자님, 저희 Girl시대 소녀들도 한번쯤 불러주시와요. 하하하"

그녀들은 마냥 즐거운 듯이 재잘거린다. 그녀들을 보는 안명수에게 딱한 마음이 든다. 한참 필 나이에 이 바닥에서 고생만 하고도 기라성 같은 거물급들 때문에 빛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 그래도 기획사에서는 연습은 죽어라고 시킨다. 정수는 쟤네들의 속타는 사정도 모르면서 뭐가 그리도 좋은지. 아마도 계속 혼자만 있다가 또래들을 만나니까 살판이 난 것 같다.

"요새는 연말 공연 때문에 바쁘고 힘들지? 연습은 많이 해?"

"아니오. 요새는 별로 힘 안들어요." 

"공연 일정이 잡히면 죽음이죠."

"엄청 빡씬가?"

"빡씬게 아니라 완전 죽어 나자빠져요. 발성-노래-안무-헬스 4시간씩 돌려봐. 완전 죽음이야."

"오빠는 아직이라서 그런 거 안하나?  때가 되면 오빠도 그럴껄?"

"그럴 때 힘은 들지만, 그래도 공연 끝나면 쉬잖아?"

"공연? 존나 짜증나거든.  그거는 돈 버는 공연이 아니라 무대 감각을 잊어먹을까봐 가끔씩 시키는거야."

"공연이라기 보다는 그냥 연습이지. 무대연습"

"우리는 운대가 안맞나봐. 돈 버는 공연이 아예 없어."

"우리도 공연하고 돈 좀 벌어봤으면 좋겠다." 

"그럼 완전 대박이지."

그런데 안명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잠시 후에 녹화 리허설을 보러 가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수도 같이 간다.  그녀가 정수에게 그만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으나, 그는 꿈쩍은 커녕,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안명수의 존재감을 완전 무시하는 모양이다.

한편으로 안명수는 갑자기 정수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나이에 제 또래 여자애들과 놀아보지도 못하는 것이 좋은 일도 아닌 것 같다. 요즈음 그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지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스트레스가 엄청 심할 것이다. 이렇게 수다를 떨면서 끼리끼리 노는 것을 보니까 다들 귀엽기도 하다. 오히려 오늘은 저희들끼리 하루를 놀게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더구나 오늘 저녁에는 윤현도에게 연습을 가는 날도 아니다. 그렇지만 리허설에 가는 것을 잊지는 않고 있겠지. 

그녀는 자리를 피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또 Girl시대 애들은 약간은 막가파 끼가 있어서 정수도 부담없이 하루를 같이 놀고 즐기기에는 괜찮을 것 같다.

안명수는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정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흥! 잘 해보셔!'

'누나, 영양가는 없어요. 네명을 한꺼번에 어쩌라고? ㅋㅋ'

뭐야? 그럼 만일 한명만 있었더라면 전망이 있었다는 말이네? 괘심하기 짝이 없다. 철딱서니라고는 쥐뿔도, 눈꼽 만큼도 없는 아이이다.

안명수는 그의 답장을 그냥 씹어버리고, 그 동안 조사해서 모아온 여러 가지 자료들을 검토했다.  그녀는 스튜디오에서 내일 녹화에 대비해서 리허설하는 것을 보러 가기로 되어있다. 원래는 정수고 같이 가기로 되어있고, 그도 알고 있다. 거기서 박PD와도 만나서 그동안 있었던 일도 얘기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만일 그가 말한 대로 안명수가 뮤직쇼를 진행한다면 이런 리허설을 보아두는 것은 그녀를 위해서 정말 중요한 공부가 된다. 저 여자애들도 리허설 때문에 왔을 것이다.

안명수는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마음이 초조해져 온다. 안절부절해진다. 이것은 시간이 다 되어가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한참 후에 연하남이 쏙 들어온다. 정말 뻔뻔함과 얄미움 그 자체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그가 반가울까? 그를 보자 긴장해있던 마음이 한 순간에 놓이면서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걔네들이랑 같이 안나갔어?"

"나가고는 싶은데, PD 님이랑 누나가 너무 무서워서요."

"나가서 같이 놀아. PD 님한테는 내가 말씀 드릴께. 그 대신 어디에 있는가는 가르쳐줘야 해. 오늘 하루는 봐준다.  그렇다고 만약 이상한 짓거리 하다가 내 눈에 걸리면, 넌 국물도 없을 줄 알아. 그 대신에 이것은 우리 둘의 비밀이다. 알았지?"

"에이. 이따가 저녁에 옐로우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거기가 사람들이 많아서 제일 안전할 것 같아서요. 이따가 누나랑 같이 갈 생각인데."

"싫다. 나도 오늘은 푹 퍼져서 쉬고 싶다. 지금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야. 이러다가 내가 쓰러질 것 같아."

"알았어요. 누나는 나 때문에 너무 피곤하시죠? 너무 미안해요."

"미안하면 마사지나 좀 해주든가."

"알았어요. 나중에 꼭 해드릴께요.  PD님 기다리시겠어요. 빨리 가요."

"할 줄은 알고?"

그런데 짜아식. 옐로우에서 만날 생각을 하다니 제법 기특하다. 이 아이가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동안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 꽤 되나보다. 그래도 아직 멀었지? 너한테는 언제 쯤이면 그런 것들이 쌓여서 내공이라는 것이 되겠니?

저녁때가 돼서 안명수는 퇴근하면서 정수를 엘로우 앞에 떨어뜨리고 갈까 생각했다. 그런데 안명수가 차마 그를 그냥 두고 갈 수가 없다. 그녀는 옐로우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한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서 정수를 불러 세웠다. 정수가 안명수의 옆으로 온다.

"나는 안 쪽에 있는 룸에서 시나리오를 보고 있을테니까, 끝나면 나한테 와." 

정수가 그녀의 허리로 팔을 두르려고 했다. 그러자 안명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허리를 비틀어서 몸을 뺀다. 그녀가 한 손으로 주먹을 움켜쥐고 그의 어깨를 콩콩 치며 말한다.

"이 철딱서니야. 여기 CCTV 가 모두 몇개인 줄 알기나 해?  지금 누구 인생 종치는 꼴 볼꺼니?"

정수는 뻘쭘해진다.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내린다. 안명수는 직원에게 룸을 달라고 하고, 정수는 홀 안으로 들어간다.

정수가 두리번거리자 구석에서 여자애 한 명이 정수에게 손짓을 한다. 정수가 그녀에게로 갔다.

"일찍 왔네?"

"너무 보고싶어서 달려왔다. 하하."

"그거 이미 한물 간 멘트 아냐? 하하"

"어쨋든.  .. 다들 어디 가고 혼자야?"

"난 장윤희야. 이름이 촌스럽지? 걔네들은 들어간다고 갔어."

"나한테 관심이 없나? 하하"

"나 하나면 됐지 넷을 한꺼번에 어쩌려고?"

"난 열명도 괜찮은데? 하하"

"아휴~. .. 이 짐승.  진짜 못말린다.  아직 저녁 안먹었지?"

"너네랑 같이 먹는다고 그냥 나왔어."

"룸 달라고 해서 들어가서 저녁 먹을래?"

"그래도 되고."

정수가 룸으로 옮겨달라고 하고, 저녁식사를 윤희가 원하는 대로 파스타와 샐러드로 주문했다. 장윤희는 화장실에 간다고 나가고, 한참 후에 음식이 룸으로 들어왔다. 윤희도 들어왔다.

"고기좀 먹을까 했는데."

"우리는 살찌면 큰일이야. 이게 찔 때는 총알같이 찌는데, 빠질 때는 거는 존나 안빠져."

"약간은 쪘다 빠졌다 하는 것 아니니?"

"얼마 이상 쪄서 안빠지면 짤려."

"돌겠네. 그럼 맥주 한잔 하지?"

"안돼.  술은 체지방 관리 때문에 마시지 못해. 나 지금 옐로우카드야. 경고."

"여기가 파스타 먹는 사람들한테는 룸 잘 안주는데."

"마약이 여기 단골인가?"

정수는 열심히 먹는다. 장윤희는 그가 먹는 것을 쳐다보다가 그에게 절반 정도를 덜어준다. 정수는 그것도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웬일이야? 굶다가 왔어?"

"원래 이 시간이면 나는 항상 배가 고파."

식사가 끝나자 장윤희는 그를 자기 옆으로 불렀다. 정수는 그녀의 곁으로 가서 앉는다.

"왜?"

"그냥. 남자 옆에 앉아서 기대고 싶어."

"윤희가 엄청 힘드나보다."

"우리는 이상하게 빛을 못보잖아. 돈이 없어. 기획사에서도 이제는 포기하나봐. 집에서 더 이상은 가져올 수가 없어."

"그럼 어떻게 해?"

"답이 없다. 우리 처음 만났는데 이런 얘기 막 해서 미안해. 연습이 없을 때에는 편의점에 나가서 알바도 해야 해."

"기획사에서 말 안해?"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 정도는 눈감아 주는데.  그게 돈이 되냐? 그래서 결국."

"결국 뭐?"

"골치아파."

"또 뭐가?"

"나도 처음에는 솔로였어. 그런데 대박은 고사하고 도대체 뜨지를 않는 거야. 그래서 노래에 문제가 있나 했거든. 작곡가한테 그런 말을 했지. 그런데 그 분이 다른 가수나 걸그룹들을 가리키면서 운대가 안맞는대."

"에이. 그런 말이 어딨어?"

"아냐. 그래서 걸그룹으로 바꿨거든. 그런데 요새 걸그룹은 섹시어필이잖아. 노출을 많이 해야하고. 그러다 보면 스폰을 받기도 해요. 우리 입장에서는 돈이 워낙 없으니까 받는 수 밖에 없어."

"그럼 해결 된 것 아냐?"

"바보야.  우리 같은 이름도 없는 애들한테 누가 스폰을 하겠니? 다 원하는 바가 있잖아."

"저런."

"처음에는 엄청 고민하고 힘들어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쉬워져. 한번이 두번이 되고, 이렇게 계속 가는거야. 그럼 소문이 안좋게 되고. 이;렇게 우리는 끝난 거 아니겠니?"

"너도 그런 거 오라면 가니?"

"아까 걔네들 지금 거기 갔어. 나는 빠졌고. 그러니까 내 기분이 존나 꿀꿀하잖아." 

"안가서 꿀꿀?"

"바보야. 나랑 같은 그룹 멤버들이 그런데 가니까 꿀꿀이지."

"음."

"나 솔직히 말해도 돼?'

"해."

"나 지금 너랑 하고싶거든."

"야아. 그런 말이 어딨어?"

"참나. 스트레스가 지금 너무 빡셔. 찌는 이유가 그거야."

"난 안돼. 안기자님이 여기서 기다리고 계셔."

"전화해서 나중에 만나면 안돼?"

"전화기 압수당했어."

"그럼 너 안기자가 밀착감시 하는거니?"

"응"

"어머머. 너 참 좋겠다. 완전 행운아네. 예능국에서 널 키우는거구나."

"일단 시도해보는 거야. 나중에 아닌 것으로 판정 나면 쫓겨나겠지"

"어디나 다 그래. 우리 잠시 밖에 나가자.”

“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기는 한데 또 답답해온다.  미치겠다."

장윤희는 정수를 데리고 계산대로 갔다. 그녀가 계산하는 것을 정수가 말리고 그가 계산했다. 윤희는 정수에게 팔짱을 끼고 도로로 나가서 길을 걸었다. 작은 숲으로 꺾이는 곳에 윤희의 검은 차가 주차되어있었다. 윤희는 차의 뒷문을 열고 정수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윤희도 따라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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