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9 48. 시궁창같은 이 바닥에서 그 녀석을 잘 지켜야 해. =========================================================================
무대에서 윤현도가 하는 짓 때문에 박철호 PD 의 숨이 멎는 듯 하다. 정수의 노래가 끝나고 그가 무대 뒤로 사라지자 관중들은 앵콜을 소리친다. 윤현도는 잠시 기다렸다. 그러나 관중들의 요구는 갈수록 거세진다. 윤현도가 난감해하는 표정이 대형스크린에 나온다. 그는 한정수를 다시 무대 위로 불러올린다. 그가 무대 위로 올라와서 윤현도 옆에 서자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온다. 윤현도가 팔을 들자 그제서야 조용해진다.
"한정수씨가 이런 상황에서도 그냥 들어가버린다는 것은 팬들을 완전 배신하고,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썩 좋은 무대 매너는 아니죠. 이럴 때는 한 곡 더 부르셔야 합니다. 준비하신 곡이 있나요?"
"이 정도일 줄을 예상하지 못해서 준비한 곡은 없는데요. 혹시 제가 선배님의 노래 <겨울아침>을 불러도 될까요?"
"이러언. 그 곡은 내 십팔번이거든요?"
"딱 한번만 허락해주십시오."
둘이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이 스크린에 나온다. 윤현도의 노래를 부르겠다는 그의 뻔뻔함이 묻어나는 것 같다. 윤현도가 딱 한번만이라면서 허락하더니 정수의 어깨에 일렉트릭 기타를 메게 해준다. 그가 마이크 혼자서 앞에 서고 윤현도는 뒤로 물러서서 키보드의 자리를 뺏는다.
한정수가 사인을 넣자 드럼이 시작한다. 키보드가 따라 나온다. 드디어 BY 모두가 한정수와 합세한다. 한정수의 노래가 시작된다. 중간에는 한정수의 혼을 담아내는 듯한 처절한 그의 기타연주가 이어진다. 정수는 드럼과 둘이서 깔끔하게 해치운다. 2만 관객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스크린을 주시한다. 다음 부분에서는 윤현도가 앞으로 나서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다시 정수에게서 빼앗아오는 것 같다. 그게 아니다. 둘이서 같이 부른다. 멜로디는 한정수가 해내고, 윤현도가 그이 노래에 화음을 얹는다. 천상의 궁합이다. 윤현도가 저 아이를 물은 이유가 바로 저것일 것이다.
윤현도가 처음으로 그와 같이 연습을 하고 나서 했던 말이 박철호 PD 에게 새삼 떠오른다.
"형님. 이 녀석 이거 완전 악마예요. 함 두고 보세요."
"이 사람아, 그건 자네가 키우기 나름 아니겠는가?"
"그게 아니라니까요. 얘는 노래를 정말로 느낌으로 불러요. 똑같은 노래를 다섯 번을 쉬지 않고 부르게 했더니, 다섯 번을 다 소화해내는데, 그때그때 완전 다르게 해치운다니까요. 나 완전 미치는 줄 알았어요."
그의 노래가 끝났다. 관중들은 다시 열광한다. 한정수는 작별하는 것처럼 두 팔을 들어서 흔들고 넙죽 인사한다. 그리고 무대 뒤로 사라진다.
박철호 PD는 안명수를 바라본다.
"선배님, 어떠세요?"
"안기자. 쟤네들 따로 리허설 한 것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야?"
"한정수는 BY 연습 때 같이 묻혀서 한 것이 아마 네번 정도 일껄요. 거기서 You raise me up 을 연습했을 리는 없잖아요? 겨울아침은 했었을 수도 있겠네요."
"안기자. 오늘 뒤풀이 어디서 한다고 했지? 옐로우인가?"
"네. 그럼 오늘은 선배님도 뒤풀이까지 가시게요?"
"윤현도를 거기서 아니면 따로 볼 수가 없잖아?"
자선음악회는 모두 끝났다. 마지막으로 이 도시의 시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인사를 한다. 그러나 관중들의 반응은 차갑다. 그들은 시장 혼자 떠들게 두고 모두 자리를 뜨고 있다.
안명수는 한정수를 불러서 차에 태우고 옐로우로 출발한다. 가는 도중에 정수가 또 잠들까봐 안명수는 불안하다. 그런데 그도 흥분해있는 것 같다.
"자기 오늘 어땠어?"
"죽는 줄 알았어요. 내 정신이 아니었어."
"엄청 잘 하던데? 침착하고 정말 멋있더라."
"멋있는거야, 원래 제 바탕이 ... 하하하"
짜아식.
이건 뭐. 어쩌다 이렇게 한번 띄워주면 끝없이 기어오른다.
"자기는 아직 모를 거야. 지금 박PD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 지구상에 없어. 그가 자기에 대해서 아직 자신의 속마음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런데 나는 아까 조금 엿본 것이 있어서 짐작은 해."
"그 생각을 하면 나도 엄청 긴장돼요."
"이제 다 끝났거든. 긴장할 일은 하나도 없어. 그런데 이 사인회나 음악회는 원래 자기 아이디어였잖아?"
"그랬기는 한데, 이정도 규모일 줄은 나도 몰랐죠. 내가 2만 무대에 서다니. 꿈만 같아요."
"그게 바로 윤현도의 파워야. 오늘 같이 꼽싸리 끼려고 덤벼든 가수 개그맨이 전부 몇명이었는지 모르지?"
"그래요?"
"그래도 그 중에서 반응은 자기가 최고였어. 왜 그런 줄 알아?"
"제가 쫌 잘하잖아요? 하하하"
"쪼오오옴. 장난 고만 치고. 자기가 처음이라는 것 때문에 마스크의 파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야. 그런데 윤선배가 자기를 밀었다는 것이 문제야. 자기는 보증수표였단 말이다. 그리고 무슨 자선 음악회를 방송국에서 녹화까지 하냐? 클래식 음악회도 아닌데. 이건 자기한테는 확실한 이벤트였어. 오늘을 절대로 잊으면 안돼. 오늘처럼 반응을 맨들어 낼 연구를 계속해야 해. 알았어?"
"얍!"
콘서트장에서 옐로우로 간 사람들은 100명이 넘는다. 모두 옐로우는 다른 손님들을 받을 수가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또 이날의 뒤풀이는 랏데백화점과 과천시에서 부담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돈 아끼지 말고 더 빵빵하게 하기로 했다. 이런 일들은 모두 강영훈이 일궈낸 성과이다.
옐로우에서는 윤현도와 박PD에게 따로 별채에 있는 방을 내주었다. 그리로 안명수도 따라갔다. 안명수는 정수를 홀에 있는 강영훈의 손에 부탁했다.
별채에서는 박PD의 심문이 시작되었다.
"현도, 네가 나를 이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어?"
"형님, 난 그저 안기자가 시키는 대로만 .."
"앗! 윤선배님! 이건 아니죠. 그 말씀은 하지 않기로 약속하셨는데요?"
"뭐야? 그럼 안기자 네가?"
"형님, 그게 아니라. 정수 얘가 악보를 우리한테서 받은 거요."
"그걸로 해명이 된다고 생각하냐? 나를 바보로 알아?"
"걔가 준비를 우리 악보로 했으니까, 당연히 우리랑 호흡이 맞을 수 밖에. 우리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음악으로 이야기를 하잖아요."
"좋다.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그럼 그 악보는 한정수 손에 며칠이나 있었지?"
"이틀? 삼일? 선배님, 제가 윤선배님께 받은 것이 지난 일요일 밤이었어요. 한정수 손에 전해준 것이 월요일 아침 출근할 때였고. 정수는 그 주에는 윤선배님 연습실에 얼씬도 안했어요."
"음... 그래서, 현도 너는 얘를 어쩔 셈이야?"
"칼자루를 손에 잡으신 형님이 그걸 나한테 물으시면, 내가 할 말이 있나요?"
"이 생각은 어때? 앞으로 토요일 저녁때 뮤직쇼를 하는 거야. 너는 프로그램 진행은 못해도 나와서 노래 부르는 것은 해도 되거든? 그때마다 네가 얘를 데리고 나와서 책임질래?"
"형님, 오늘 못 보셨어요? 쟤는 솔로로 해도 충분해요."
"그게 아니야. 음악을 하는 거랑, 무대를 소화하는 거랑은 다르지."
"아휴~. .. 이 답답하신 형님아. 오늘 무대가 2만짜리였어요. 게다가 야외무대였어. 방송국 홀에, 겨우 이삼천 밖에 더 돼요? 그 정도는 한정수가 씹어버릴 정도로 잘 해낼 꺼요. 걱정 말고 두 다리 주우욱 뻗으세요."
"그럼 일주일에 두세곡을 얘가 소화해낼 수 있겠어?"
"그건 쫌. .. 또 허구헌날 무대에 나가면 식상해질텐데."
"그럼 안명수는 이제 안기자 고만하고 안PD 하자. 하하하"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죠?"
"현도, 오늘 든 기획사가 전부 몇개였어?"
"스무개 정도?"
"끄으응..."
"왜요?"
"안명수는 한정수 밀착감시를 해야 해. 걔네들이 한정수한테 월급주고, 연습실, 녹음실 무료 제공하고, 안무나 헬쓰까지 다 시켜준다고 덤빈다. 그러니까 한정수한테서 휴대폰 뺏고, SNS 전부 없애고, 블로그 폐쇄하고, 홈피 죽이고 .. 알았어?"
"벌써 그 정도일까요?"
"아까 무대에서 못 봤냐? 오늘꺼 편집해서 연휴 둘째날 띄워. 그러면 기획사들 발칵 뒤집어 질꺼야. 토요일 저녁 여섯시부터 한시간자리 뮤직쑈 제작 준비를 해. 두달 후에 론칭하게 할꺼야."
"예, 선배님 알겠습니다. 그럼 정수는 우리 방송국 전속인가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방송국에서 가수를 전속으로 하는 일이 있어?"
"그럼 제가 어떻게 관리하죠?"
"앞으로 일년 정도는 앨범 내지 못하게 하고. 다른 무대에 절대 못서게 해야 해. 우리 무대에는 윤현도처럼 거의 한달에 한번 정도만 세울꺼니까, 그것도 너무 자주일 수가 있거든. 자선 무대에는 서도 돼요. 걔 노래가 거의 사오십곡 될 때까지는 절약마케팅을 쓰란 말이야. 그 다음에 확 터뜨리는 거야. 그럼 한방에 뜬다. 확실해."
"그럼 밖에서 광고하고 이러는 거는요?"
"그런 것은 절대 나서지 못하게 일단은 매장시키란 말이야. 희소성 쪽으로 나가자구."
"그럼 얘는 뭘로 먹고 살아요?"
"그거는 윤현도네 스폰들 중에 몇을 짤라서 붙이면 돼요. 일년을 잘 견디면 완전 대박이야. 그런데 그 일년 동안에 개지랄 떨면 쫄딱 망하는 거고. 알았어? 매일 아침에 아예 방송국으로 출근시켜서 개줄처럼 묶어두고 잘 감시해. 윤현도네 연습실에는 꼭 보내고. 현도가 연습은 책임질 수 있지?"
"형님, 내 말이 바로 그말이잖아요."
"그리고 얘한테 뮤지컬을 일년 동안 시켜버려."
"그거는 가수가 한 물 가고 나면,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기도 하지만, 얘한테 무대를 가르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야."
"선배님, 또 있으세요?"
"아직은 없어. 나는 내가 뭐라고 했는지 벌써 죄다 가먹었네."
"선배님, 여기 제가 다 메모했어요."
"안명수, 지금 빌라에 산다고 했지?"
"예."
"옆에 붙어있는 거 혹시 비지 않을까?"
"제가 이사를 하면 되죠."
"두개 나란히 붙어있는 걸로 아파트를 아예 사버려. 돈은 있어? 너희 둘이 만일 같은 집에서 짓거리 하면 큰일 난다."
"참나. 제 나이가 몇개인데요? 하하하"
"불장난에 나이가 따로 있냐? 현도 너 돈 가진 것 없어? 명수한테 모자라겠는데?"
"그럼, 스폰 불러야죠."
"그럼 오늘은 그 정도에서 마무리 하자. 이번 계획은 밀착감시가 뚤리면 무조건 실패야."
"형님은 도대체 뭘 겁내시는데요?"
"애가 좀 반반하잖아? 저런 애들은 바로 킬이야. 돈 앞에서 장사 봤냐? 저 녀석 정도면 일주일에 천만원이 시작일껄? 갈수록 비싸지고. 그럼 끝이야. 끝. 알았어?"
"선배님 걱정은 ... 그럼 혹시 ... 성상납?"
"그래. 시궁창같은 이 바닥에서 그 녀석을 잘 지켜야 해. 앞으로 일년이 문제야.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요."
뒤풀이가 끝나자 안명수는 그를 차에 태워서 이세영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이세영과 한경애를 만나서 오늘 있었던 얘기를 모두 해주었다. 그리고 안명수도 윤현도의 스폰서로가 집을 마련해 줄 때 까지는 세영의 집에서 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들은 지금 신과도 같은 안명수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럼 기가예대는 어떻게 하죠?"
"이번 학기는 휴학이니까 걍 두고, 다음 학기는 다녀도 될껍니다. 어쨌든 그것도 PD 님께 알아봐야 해요."
"경애야. 이게 꿈이 아닌 것 맞지? 하하하"
"외숙모. 저 녀석이 분명 언젠가는 대형사고를 칠 꺼라고 제가 말했잖아요? 하하하"
"명수언니, 고마워요."
"나한테 고맙다고 할 일은 아니야. PD 님께서 하신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