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5 44. 걔는 많이 배워야 해요. 윤현도가 애를 잡듯이 엄청 닥달할 거야. =========================================================================
다음 날 안명수는 출근해서 하루 종일 마음을 졸이면서 박PD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그를 만나기는 역시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를 만나지 않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그는 분명 윤현도 선배와 전화를 했을 것이고, 둘 사이에는 정수에 대해서 무슨 말이 오고 갔을 것이기 때문에, 박PD 입에서는 좋은 소리를 기대하기가 불가능 할 것 같다.
그런데 저녁때가 되자 강영훈이 안명수에게 나타났다. 그와 박PD 사이에도 무슨 말이 오가기는 했을 것이다. 안명수의 모든 촉이 그에게로 쏠린다. 그렇다고 강영훈 앞에서 안명수가 먼저 정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연하남이 이래 저래 안명수의 속을 썩이는 것은 옆에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천만 다행으로 이런 저런 말 끝에 강영훈이 정수에 대한 말을 먼저 꺼낸다.
"윤현도씨는 한정수라는 애를 좋게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몇 가지를 더 가꾸어야겠다는 입장이거든요."
"가꾸다뇨?"
"노래하면서 메시지를 전달 할 대 선명성이 문제라던데요."
"그게 무슨 말이죠?"
"걸그룹들이야 엉덩이 꺼내서 흔들고 젖가슴 드러내면서 퍼포먼스로 때워 넘길 수 있기 때문에, 퍼포먼스할 몸매가 되면 메시지는 크게 문제가 된다는 말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남자 가수는 그게 아니죠. 자기만의 메시지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전달해야죠."
"한정수의 메시지가 선명하지 않다?"
"이건 저나 윤현도씨나 같은 생각입니다. 지난 번 오디션에서 실패했다면 아마도 바로 그 문제가 거론됐을 것입니다."
그 때 박철호PD 가 들어선다. 강영훈은 그가 온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악보가 세 페이지 짜리 곡을 노래한다면 메인 메시지가 분명하게 있을텐데, 프로들에게는 그것이 생명입니다. 한정수라는 이 아이는 아직 프로가 되려면 멀고도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할겁니다. 윤현도씨가 걍 냅두지는 않을 테니까요."
이제는 박철호PD 가 그의 말을 받는다.
"자기 컨셉도 분명하지 않고, 메시지도 더더욱 그렇고. 걔는 많이 배워야 해요. 윤현도가 애를 잡듯이 엄청 닥달을 할거야."
박PD 앞에서 안명수는 꿀먹은 벙어리가 돼버린다. 강영훈이 그에게 인사를 하고, 윤현도의 생각이라면서 말을 덧붙인다.
"앞으로 두세달 정도를 고되게 연습하면 될 것 같대요. 기본기가 충분하기 때문에 그 기간을 잘 넘겨야 할텐데요. 그게 걱정입니다. 윤현도는 아시다시피 이 정권에서는 국내 활동에 제한을 걸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쪽에서 투어를 하다시피 할 생각이거든요."
"언제쯤 나간대?"
"내년 상반기는 미국, 하반기는 유럽입니다."
"그럼 M7 오디션은 어쩌고?"
"어차피 같은 목적지를 향해서 갈 것이라면, 배를 타더라도 기왕이면 같은 배를 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때 가서 오디션 안나가는 대신 한정수 솔로를 LBS 에서 라디오랑 TV 로 띄워야겠네."
"기왕이면 같이 띄우셔야죠. 솔로랑 그룹을 같이요. 해외로 나가기 전에 이번 연말에 자선음악회 뭐 이런 거를 열어서 미리 무대 트레이닝을 시켜도 되지 않을까요?"
"그 생각은 나도 하고 있어."
"하여간에 좋든 싫든 윤현도가 결정을 이미 내렸기 때문에, 이번 주말 지나서 다음 주 연습때 부터는 BY랑 같이 갈겁니다."
"그녀석에게는 죽음의 행진곡이겠군. 하하하"
"PD 님도 M7 이랑 광계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까 손을 좀 써주시든가요."
"나야 때가 되면 당연히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을거야. 상반기에 미국으로 갈 때에 한정수는 떨어뜨리고 가. M7 오디션, 그거 하나 어떻게 잘 시켜보자고."
안명수의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한정수는 정말로 인복이 엄청 많은 애 같다.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한정수 옆에 안명수가 설 자리는 아예 없어질 것 같다. 그의 양 옆에는 지금 박PD와 BY의 리더 윤현도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너무 쟁쟁하다. 이런 환경에서도 한정수가 성공적으로 해낼 수 없다면, 그는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맞다.
안명수는 퇴근길에 세탁소에 들렀다. 이 말을 전해주지 않고는 그녀가 이 밤을 무사히 보낼 것 같지 않아서이다. 그녀는 가는 길에 BY 와 다른 가수들의 무대 실황 동영상을 담은 USB 를 들고 갔다. 마침 한정수는 가게 정리를 하고 있다.
세영과 경애도 밖에서 세탁소 안으로 들어선다. 갑자기 세탁소 안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세탁소가 더워진다. 안명수는 경애와 정수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세영은 세탁소는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보라고 둘을 내보낸다. 안명수는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다.
그녀는 자기 노트북에 USB 를 꼽고 동영상을 플레이 시킨다.
"이것은 BY 무대 실황을 녹화한 거야."
"이 노래가 왜요?"
"네가 윤현도 선배라면 어느 부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를 생각해보고, 또 그는 어느 부분을 왜 그렇게 부르는가를 잘 봐두라고."
한정수와 안명수는 윤현도가 솔로로 또는 BY 그룹으로 노래 부르는 것을 들으면서 토론한다. 옆에서 경애는 조용히 듣고만 있다.
"다른 분들이 노래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야. 걸그룹은 예외로 하래요. 걔네들은 무대 퍼포먼스를 동시에 하니까."
안명수는 윤현도와 박PD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정수는 끄덕이면서 열심히 듣고 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경애는 저녁식사를 준비하겠다면서 주방으로 간다. 그러나 안명수의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도대체 안명수의 주방에 있는 것이라고는 컵라면 밖에 없다. 경애는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의 작업이 끝나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두 사람이 끝난 것 같다. 그런데 안명수의 눈빛이나 한정수의 태도가 너무 진지하다. 안명수가 한정수의 곁에 있는 한 경애는 안심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경애는 정수가 부럽다.
저녁식사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서 먹든가 배달음식을 주문하여야 했는데, 세 사람은 밖으로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들은 더 늦기 전에 가야한다면서 서둘러서 상가로 내려갔다. 삼겹살집이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었으므로 삼겹살로 해결하기로 했다. 경애는 두 사람이 먹을 고기를 부지런히 굽는다. 안명수는 계속 이야기하고, 정수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는다. 둘 사이에 오가는 얘기들은 경애로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정수는 좋겠네. 명수언니가 저렇게 친절하시니까."
"경애씨. 내 분야가 아니라서 나도 어깨 너머로 주워들은 것을 전해주는 입장인걸요."
"그래도 명수 누나가 아니었으면 나 다음주부터 엄청 혼날 뻔 했어요. 정말 고마워요."
식사가 끝나고 안명수랑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애가 정수를 위로했다.
"힘들더라도 열심히 하는 것 보니까 내가 기분이 좋아지거든."
"나도 누나를 생각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그런데 오늘 얘기가 뭐에 대한 건데 그렇게 심각해?"
"대중음악이니까 듣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려면 약간 테크닉이 필요하거든. 메시지를 전달할 때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는 테크닉에 대한 문제였어."
"그럼 지금까지는 그런 테크닉이 없었다고?"
"아무래도 혼자 하다 보니까 그런 데에는 약했지. 그러니까 내 연주나 노래는 너무 평면적이래."
"정수 노래를 내가 들을 때는 좋기만 하더만?"
"에이, 그건 누나니까 그렇게 듣는 거고. 세상 사람들은 냉정하거든. 아닐 때에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돌아선단 말이야."
경애는 그의 고민을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가 고민하지 못하는 것을 안명수가 지적해주고 또 그것이 박철호PD 나 윤현도에게서 온 생각이라는 것 까지는 알아들었다. 그렇지만 다음 주가 어쩌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다음 주에는 무슨 일이 또 생기는 거니?"
"윤현도씨네 BY 그룹에서 같이 연습한대."
"정말이야?"
"박철호 PD 게서 추천하셨거든. 어제는 거기서 오디션이 있었고."
"그런데 그걸 왜 나는 모르고 명수 언니는 알고 있지?"
"누나나 외숙모에게는 시작하게 되면 그때 깜작 이벤트로 말하려고 숨겨뒀었고, 명수 누나는 어제 나를 거기 데리고 가서 그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었으니까 아는 것이 당연한 거고."
"너 설마 우리를 따돌리는 것은 아니지?"
"누나,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미리 말했다가 불합격 먹으면 누나한테 얼마나 실망되겠어? 그래서 말하지 않았던 것 밖에 없어. 내가 왜 누나나 외숙모를 따돌려?"
"차라리 우리도 같이 알고, 안되더라도 같이 실망하면 안될까? 우리는 네 성공만 알고 싶어하는 바보가 되기는 싫거든."
"누나. 그건 ..."
"어쨌든 시작한다니까 다행스럽다. 축하해."
"이번 기회에 명수 누나한테 내 매니저를 부탁해야 할 것 같아."
"내 생각도 그래."
"그런데 명수언니가 너무 예뻐서 불안해. 헤헤"
"경애누나도 명수누나만큼 예쁘거든요."
"그런 말은 거짓말이라는 거 다 알아."
정수와 경애가 세영의 집에 들어왔다. 세영도 배달을 마치고 조금 전에 집에 도착했다면서 두 사람을 주방의 식탁으로 불렀다.
세영 : "아까 총무과장이 정수랑 직접 흥정을 하자고 하더라."
정수 : "무슨 흥정을 나랑 해요?"
세영 : "지난 번에 정수가 나온 TV 프로그램이 인기가 엄청 좋았대. 그래서 정수 사진으로 백화점 홍보를 하자는 거야."
경애 : "어떻게 하는데요?"
세영 : "이제 추석이랑 크리스마스 연말이 있잖아? 그럴 때는 백화점 바깥쪽 벽에 엄청 큰 광고판을 걸거든. 현수막이나 그림 사진 뭐 이런 것들."
경애 : "그래서 외숙모가 그러자고 했어요?"
세영 :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네 사진을 걸고 고객들을 끌면 각 매장들이 매출이 늘잖아? 그럼 백화점 측에서는 매장에게서 광고비를 위해서 다시 거둬들여요."
경애 : "백화점 하는 짓이 엄청 나쁘네."
정수 : "누나, 나는 아직은 이런 일은 하면 안되는 거지?"
경애 : "그래.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야."
정수 : "외숙모. 기회가 되면 우리 생각을 대신 말씀하세요."
세영 : "그런데 그게 ..."
경애 : "왜요?"
세영 : "요새 계속해서 너무 장사가 안되니까 다들 너무 어렵대."
정수 : "그럼 제 사진을 밖에 거는 것을 하지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해볼게요."
세영 : "사진 말고 또 뭘로 하려고?"
정수 : "누나, 사인회 같은 걸로 하면 안될까?"
경애 : "어떻게?"
정수 : "CD를 만들어서 일일이 사인을 해서 무료로 나누어준다든가, 아니면 약간 비싸게 판매해서 수익금을 불우이웃 돕기에 쓴다든가..."
세영 : "그런 것은 해도 되지만 무료 증정을 하려면 제작비는?"
경애 : "외숙모, 그건 정수한테 방금 떠오른 생각이니까 더 연구를 해보자구요. 혹시 윤현도님께서 오셔서 해주실 수도 있구요."
세영 : "뭐라고? 경애, 너 방금 윤현도라고 했니?"
경애 : "그니까 그 분과도 의논을 해야죠."
세영 : "경애야. 아니지. 정수야. 그거 꼭좀 어떻게 성사시키면 안될까?"
정수 : "이러언. 외숙모가 윤현도 광팬이시구나. 하하하"
정수는 욕실로 샤워하러 간다. 세영은 윤현도 사인회라는 말 때문에 놀란 표정이다. 그래서 경애가 세영을 달래야 했다.
"아직은 아무 것도 이야기 된 것이 없잖아요. 미리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마시고, 조용히 이삼주만 기다려 보세요. 정수가 뭔가를 할것 같아요."
세 사람은 각자 자기 침대로 갔다. 정수의 전화기로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박하나가 보냈다.
'누나 보고 싶지 않아?'
정수는 고민 끝에 박하나에게 답장을 한다.
'엄청 보고 싶기는 한데, 제가 너무 바빠서요.'
'그런 것 같아. 세탁소에 가도 없고, 배달도 사장님이 오시고..ㅠㅠ'
'요새는 배달 갈 시간이 토오옹 나지를 않아요.'
'알았어. 나 중국에 출장 가거든. 가기 전에 못 보면 갔다 와서라도 꼭 보자."
'네. 안녕히 주무세요.'
경애가 정수의 침대로 미끄러지듯 살그머니 들어온다. 정수는 경애를 안으면서 CD 제작비가 문제가 되면 혹시 박하나가 돕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경애는 벌써 정수의 몸 위로 올라와서 그의 입술을 빨고있다. 그의 가슴을 경애의 젖가슴이 누른다. 그는 경애를 힘주어 안는다. 그래도 경애는 으스러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