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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1 40. 아무튼, 넌 엄청 나쁜 남자야. (41/116)

00041  40. 아무튼, 넌 엄청 나쁜 남자야.  =========================================================================

이 남자는 잠자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안명수에게는 애처로운 마음이 들게한다. 코까지 골면서 자고있는 정수를 깨워야 한다는 생각이 안명수에게 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차를 집앞 주차장에 주차했으므오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기다리자면 내일 아침까지라도 갈 판국이다. 안명수는 독한 마음을 먹고 애처롭지만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깨운다. 

잠에서 깨어난 정수가 정신을 차리면서, 그가 이미 안명수의 집 앞에 와있음을 깨닫기까지는 약간 시간이 걸린다. 안명수는 그가 오늘 하루 종일 얼마나 연습에 몰두해 있었으며, 또 윤현도와 만났을 때 그가 얼마나 긴장해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잘 잤으면, 이제 올라가자."

"잘 자지 못했으면 안올라가도 되나요? 하하"

"뭐야? 코까지 골면서 자놓고 잘 자지 못햇다면 말이 되냐?"

"그게 아니라 너무 짧아요."

"거리가 가까운 것을 나라고 별 수 없잖아? 시덥잖은 얘기 고만 하고 어서 앞장 서세요."

정수는 그녀의 큼직한 가방을 받아서 들고 앞장서서 걷는다.  가을 밤의 기온은 제법 싸늘하다. 밤하늘에는 별도 몇개 보인다. 어느새 안명수는 그의 곁으로 와서 그의 팔에 팔짱을 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가 물었다.

"윤선배가 오늘 살벌한 얘기를 많이했지? 혹시 상처받지는 않았니?"

"상처라뇨? 나에게는 구구절절 다 맞는 말씀이고 필요한 말씀이었어요." 

집안에 들어서자 안명수는 그를 부등켜 안아버린다. 정수도 그녀의 몸을 당겨서 깊이 안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수는 안명수가 고맙다. 이 여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정수가 어떻게 감히 윤현도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또 정수가 노래부르는 것을 그에게서 구석 구석 평가를 받는다는 말인가? 정수가 BY밴드에서 그들과 같이 연주하고 또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정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믿어지지도 않는다. 오늘 그로부터 들은 말들을 정수는 자신에게 커다란 가르침으로 알고 가슴에 새겼다. 정수는 안명수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싱글거리면서 이야기했다.

"누나, 나는 참 운이 좋은가봐." 

"무슨 운? 로또라도 어떻게 됐어?"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

안명수에게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설마 그에게 이런 그녀의 마음을 들키기라도 할까봐서 그녀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정수의 입에서 혹시라도 명수를 만난 것이 커다란 행운이라는 말이 나올까를 안명수는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 만큼은 정수를 인정하고 또 감싸주기로 했다.

"아무튼, 넌 엄청 나쁜 남자야."

안명수가 포옹을 풀고 나가면서 갑자기 던지는 이 말에 정수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여간에 남자들이란 저렇게 이기적이고 세상을 볼 줄 모른다. 그녀는 정수를 밀어내고 욕실로 향했다. 정수는 소파에 옆으로 누워서  TV를 켰다.

안명수가 욕실에서 샤워를 끝내고 나왔을 때 그는 다시 잠들어있다. 그것도 소파에서. 도대체 얼마나 지쳐있으면 몸을 기대는 곳에서마다 잠을 잘까? 그녀는 TV를 꺼주었다. 이렇게 사람에게, 특히 여자에게 애처러운 마음을 불러일으켜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이 남자가 걸어오는 작업이야말로 완전 고단수이다. 정수는 정수라고 치고, 안명수 자신은 이 남자에게 왜 이렇게 마음이 한없이 약해질까? 마음을 웬만큼 강하게 먹지 않으면 오늘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그녀는 잠자는 그를 조용히 들여다보다가 화장대로 갔다.

안명수는 밤화장을 약하게 하면서 생각하니까 정수가 괘씸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쏟아지는 물 밑에서 샤워를 하는 데에도 잠을 자다니.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 본다. 하얀 피부나 볼록하게 솟은 이 젖가슴이 저 남자에게는 관심 밖에 있다는 말일까?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젖가슴을 앞으로 쑤욱 내밀고, 또 두 손으로 젖가슴을 아래에서 받쳐서 위로 약간 치켜올려본다. 아직은 쳐진 것도 없다.

얼굴 정리를 끝내고 머리를 헤어드라이어로 말릴까 하다가, 그가 잠자는 데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그냥 수건만으로 물기를 제거했다. 안명수 생각에 벌써 저녁 9시가 넘었는데도 두 사람은 아직 저녁식사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피자를 잘 먹는다는 생각을 하고, 전화로 피자를 주문했다. 피자가 도착할 때 까지만 더 자라고 생각하고 마스크팩을 얼굴에 썼다.

그녀는 그의 머리맡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었다. 대충 스케치 해 둔 시나리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둔 파일을 열었다. 그런데 눈길은 자꾸 옆으로만 가고, 관심도 그에게로만 쏠린다. 평화롭게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안명수는 망설이다가 손을 뻗어서 그의 뺨을 어루만진다. 잠자는 그가 미소를 띈다. 정수의 손이 자기 얼굴 위에 있는 안명수의 손을 잡는다. 이 남자, 지금 자는 것 맞아? 아니면 꿈을 꾸고 있나? 그의 꿈 속에서 그는 지금 웃으면서 누구의 손을 잡거 있을까?

프로그램 제작을 한번 더 깊숙이 관여하고싶은 생각을 요즈음 그녀는 거의 집착에 가깝도록 하는 중이다. 이번에는 박PD가 하고있는 예능 분야쪽으로 방향을 잡기로 했다. 그래서 정수도 한 번 출연시킬 생각이다. 오디션 프로그램도 계획해보았지만, 요새는 거의 모든 방송들이 전부 다 하고 있으므로 별로 매력은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냥 음악회를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번에 시청앞 광장에서 열었던 <풀뿌리 음악제>도 역시 안명수가 혼자서 기획과 시나리오까지 맡고, 박PD 는 몇군데 가벼운 수정을 했을 뿐이었다. 만일 이번 프로그램에서도 성과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아예 PD 쪽으로 전향을 해버릴까?   

드디어 기다리던 피자가 도착하고 그녀는 그를 깨워서 식탁으로 불렀다. 명수는 캐나다의 여가수 셀린 디온 (Celine Marie Claudette Dion)의 CD 를 넣고 스위치를 넣었다. 정수는 조용히 피자를 먹고있다. 둘이서라면 이렇게 피자를 주문해서 먹을 수도 있다. 피자 하나의 양은 안명수에게 너무 많아서 혼자서는 아예 생각도 못한다. 그녀는 정수의 잔에 와인을 따라준다. 정수도 그녀의 잔에 와인을 따른다.

셀린 디온이 를 열창한다. 안명수가 들을 때, 이 노래의 텍스트도 매우 아름답게 다가오지만, 이 노래를 부르는 그녀가 너무 열정적이다. <이 세 단어들은 우리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을 수 있어요. ...> 부분이 나오자 정수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다음 곡은   이다. 이런 노래에서 셀린 디온은 정성과 열정을 다해서 사랑을 고백한다. 마치 그녀가 혼신으로 이 노래를 부르다가 사랑의 힘으로 폭발해버릴 듯하다. 이 노래는 많은 남녀 가수들이 불렀지만 안명수는 셀린디온이 부른 노래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녀는 정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가 유투브에서 사랑이나 이별을 노래하는 동영상들을 모아놓은 것들이 몇개 있는데, 관심 있으면 줄까? 그런 것들이 혹시 너한테 도움이될까?"

"누나, 고마워요. 그런 것은 저에게 엄청난 도움이죠. 언어는 다르지만, 감정이나 내용은 똑같기 때문에, 그 표현 방법을 공부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이분 셀린 디온은 눈이 워낙 커서, 그 눈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녀는 사랑한다는 말을 할 필요조차도 없는 거죠."

"그래? 정수도 앞으로는 열심히 공부해야 할거야. 윤현도 선배는 음악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직접 스스로 경험하면서 엄청난 공부를 하신 분이야. 이분도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를 보면 감정은 모두 빠지고 엄청 건조하게 표현해. 그렇지만 텍스트 내용으로 모두 모자이크를 해서 본다면 그 마음을 알 수 있거든."

"음. .. 누나는 윤현도님의 광팬이구나."

"그렇긴 해. 그래도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나는 셀린 디온을 더 좋아해."

"누나!  누나는 지금 내가 엄청 걱정돼요?"

"하아~ .. 당연하지. 너는 걱정이 안돼? 네 인생에서 네가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이 이제 갑자기 열리려고 하잖아?"

"나라고 걱정이 왜 안되겠어요? 그런데 아직은 실감이 안느껴져요."

"그래서 그렇게 잠만 자냐? 아직 잠에서 덜깼나? .. 하하하"

안명수는 그의 볼을 어루만진다. 그녀의 손은 그의 어깨를 거쳐서 천천히 그의 가슴으로 내려온다. 그의 뺨이 와인 만큼이나 빨갛다. 그의 눈에 보이는 그녀의 빨간 입술이 그의 입술을 부르는 것 같다. 사랑스러운 이 여인 때문에 정수의 심장은 언제라고 멎을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그에게 몸을 기대온다.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녀의 향긋한 머리와 가녀린 어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의 숨결이 그의 목을 간지럽게한다.

그더 그녀의 어깨에 팔을 글렀다. 그의 팔이 등을 거쳐서 허리께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온다. 그녀가 턱을 들어서 다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번에는 아주 가까이에 와있다. 그에게 키스하고싶은 마음이 불같이 솟는다. 그렇지만 그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세상 일이 그의 마음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안명수가 팔을 들어올린 것이다. 그녀의 팔이 그의 목을 감아서 당겼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입은 그녀의 입으로 갔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닿는 순간에 안명수의 두 눈이 사르르 감긴다. 그의 입술이 짜릿해온다. 그가 입을 열었다.

"누나, ..."

그런데 정수가 안명수를 부르는 소리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굳게 닫혀있던 그녀의 입술이 열리면서 그녀는 벌써 그의 입술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입 안에 빨려들어가있는 정수의 입술을 혀끝으로 쓸었다.

안명수는 자신이 언젠가부터 이미 그를 향하여 마음을 활짝 열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마음이 열리면 몸은 따라서 열리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그의 입술을 빨면서 그의 뺨을 어루만진다. 그에게 느껴지느 것은 말랑거리는 그녀의 입술과 부드러운 그녀의 혀이다. 그에게서 언제나 풍기던 애잔함을 송두리째 흡입하기라도 하는 듯 안명수는 힘을 주어 빨기 시작한다. 이 입술 사이로 흘러 나오던 그 아름다운 노래들을 이번에는 안명수 자신에게로만 모두 빨아들이려는 것 같다.

정수는 자기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그녀에게 무너질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녀 앞에서 자신이 정한 한계나 선을 지킨다는 것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몸은 마음을 원하고, 또 마음은 몸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녀의 허리에 두 팔을 두른 채로 그녀의 몸을 끌어당기면서 그녀의 입술을 빨기 시작했다. 안명수의 마음 속으로 부드럽게 파고들던 그의 노래 만큼이나, 또 그의 노래에서 애잔함이 안명수의 마음으로 파고 들듯이, 그의 혀는 부드럽게 안명수의 입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안명수는 입을 그의 입에서 떼어내고, 참고 있던 숨을 몰아서 내쉬면서,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콩콩쳤다. 그리고 그를 불렀다. 그녀가 그를 부르는 소리도 그가 노래하는 소림 만큼이나 애잔하게 들렸다.

"하아~.. 자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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