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7 36. 안명수와 박PD 의 프로그램 %3C일어서라 대한민국%3E =========================================================================
김경애는 M7 방송국으로부터 한정수에게 50 만원을 입금해왔다면서 깜짝 놀랐다. 정수가 지난 번에 그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오디션에 출연했는데, 방송국에서는 그 때 참가자들의 곡들을 모두 로 CD 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꾸준히 판매해왔다고 한다. 그 수익금 중에서 정수의 몫으로 50 만원이라는 배당금이 생겼다는 것이다.
"와아아~. 한정수 부자네?"
그러나 한정수는 김경애에게 1000만원이 더 있다는 말을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말을 하기는 해야하는데 ...
* * * * * * * * * *
안명수에게는 프로그램의 제작 뿐만 아니라 방송하는 일도 하나의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우선 방송 시간이 문제였다. 안명수는 토요일 저녁을 기대했으나, 그녀의 제안은 박철호 PD에 의하여 거절되었다. 주말의 황금 시간대를 누구도 양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자 안명수가 이번에는 금요일 저녁을 고집했다. 박철호 PD는 화요일 저녁을 권했으나, 안명수는 끝까지 금요일 저녁을 양보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방송 시간을 두고 박PD는 이번에는 수금 드라마 팀과 충돌하여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 방송사의 드라마와 경쟁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라면서 금요일 저녁 황금의 시간을 그들은 양보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박PD 는 금요일 저녁 뉴스가 끝난 다음에 10시 부터인 자신의 예능시간을 돌려야 했다. 안명수의 고집때문에 박PD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다.
"선배님, 죄송해요."
"이거 얼마짜리 프로그램인 줄 알기나 해? 류석재 한 사람 출연료만 해도 1000 만원이야."
"저도 지금 제 인생을 걸다시피한 거라서요."
"말을 해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퍼붓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
우선 따로 예고편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그 예고편을 만들면서도 박PD는 그의 4차원적인 발상으로 한정수를 요리해버린다. 그는 예고편의 마지막 장면에 슬픈 얼굴의 눈매를 흐릿하게 띄웠다가, 발라드 풍의 연주곡과 함께 실루엣처럼 처리해서 fade out 되도록 처리해버렸다. 그는 그 장면을 보는 사람 누구에게나 애처로운 마음을 가질 것이고, 그 강한 여운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안명수는 영상 하나에도 세심한 박PD 를 또다시 존경하게 된다.
안명수는 서울 시청과 밀고 당기는 흥정을 해야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게된 동기나 취지를 설명하면서 시청앞 광장에 대형 스크린을 걸자고 서울 시청에 협조를 부탁했다. 그런데 서울 시청은 월드컵도 아니고, 달에 착륙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말이냐면서 난색을 표하고 거절해버렸다. 당황한 안명수는 박PD 에게 달려왔다.
"선배님,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죠?"
"나는 만드는 사람이야. 제작자라고! .. 내보내는 것 정도는 안기자가 알아서 해!"
박PD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안명수도 스멀스멀 화가 났다. 안명수는 서울 시청을 향해서 이를 갈았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경찰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녀는 그 날 시청앞 광장에서 옥외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청서를 내버렸다. 그리고 신고한 옥외 집회와 행사 내용을 서울 시청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러면서 그 날 행사에는 3만 명이 모일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런데 3만명이라는 참가인원은 서울 시청 뿐만 아니라 경찰에도 부담이었다. 경찰은 서울 시청에 은근히 항의를 했다.
뿐만 아니라 안명수는 서울시에서 한강변에 조성한 공원 공사에 미심 쩍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면서, 의심이 가는 내용에 대해서 심층 취재를 하겠으니 협조해 달라고 공문도 보냈다.
결국 서울 시청은 꼬리를 내리고 안명수와 협조하기로 했다. 서울시청에서는 모든 필요한 편의 시설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그 댓가로 안명수는 이 프로글매 제작과 방소에는 서울시청이 협조한다는 자막을 한번 넣어주기로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박PD 가 안명수에게 찾아왔다.
"도대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수작을 꾸민거야?"
"누가 뭐래도 저는 선배님의 후배라는 사실! ..헤헤"
"시청을 건드리는 프로그램에 시청이 협조했다는 자막을 넣으러면 말이 되는거냐?"
"어차피 말이 안되는 공화국에 대한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냥 눈 딱 감고 한번만 해주세요."
박PD 는 서울 시청이 처음에 고자세로 나왔었다는 말을 듣고 안명수에게 말했다.
"개새X들. .. 이번 일 끝나면 그거 취재해서 다 까발려."
"그게. .. 저는 정치부가 아니라 사회부라서요."
"이거 또 왜이래? .. 공원이 정치냐? 이 사회에 공원이 있는 것 아니야?"
"지인짜 엉뚱한 저 고집. .. 참나~"
그렇다고 서울 시청에 화가 난 안명수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안명수는 그날 시청앞 광장에 무대를 설치하고 <풀뿌리 음악제>를 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나이는 아직 23세 미만이어야 하고, 기획사에 소속되어있지 않으며, 또 아직 무명이어야 한다는 엄청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출연자들을 선정했다. 이들은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음악회의 무대에 선다는 것 때문인지 경쟁이 제법 치열했다. 물론 이 조건도 예능국의 박PD 의 발상이었다.
이 풀뿌리 음악제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은 이 시대의 록가수 윤현도씨는 무료로 출연해서 어린 후배들에게 꿈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후원하겠다고 연락해왔다. 아마도 윤현도씨와 박철호 PD 사이에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같은 길을 걸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안명수는 이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위한 준비를 마무리 지었다.
얼마 전부터 LBS 방송국에서는 <일어서라 대한민국> 이라는 프로그램의 예고편과 풀뿌리 음악회의 홍보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자기들이 야심을 갖고 특별 기획에 의하여 제작했다면서, 오늘의 이 팍팍한 현실을 살고있는 국민들께 드리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자막을 띄웠다. 그들은 시청앞 광장과 시내 곳곳에 대형 스크린을 세울 것라면서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김경애는 포항으로 내려가려는 계획을 아예 늦추고, 이 프로그램에 대하여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대하고 있다. 안명수는 옷을 맡기러 올 시간도 없다면서, 세영에게 옷을 직접 가져다가 세탁해서 갖다달라고 부탁을 했다. 세영은 불만 없이 안명수가 하라는 대로 그녀의 말을 따랐다. 세영도 자기 세탁소가 한정수와 함께 방송을 탄다는 사실에 긴장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프로그램 <일어서라 대한민국> 이 금요일 저녁 10시에 방영되게 된다. 시청앞 광장에서는 초저녁부터 열리는 음악제 때문에 열기로 달아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심 곳곳에서는 길거리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시민들로 교통에 문제가 생긴 것이 사실이다. LBS 방송국에서는 이 장면들을 따로 촬영해두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처음에 이 나라의 경제에서 시작하여, 사회로 그리고 계속해서 국민과 정부에게로 포커스가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이 프로그램이 가진 메시지가 이 나라 국민들의 마음에 심각한 자극을 주고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을 멈추게 했으니까. 또 집안에서도 이 프로그램에 채널을 맞춘 사람들은 시선을 고정시켜버렸으니까.
누구나 하루하루를 살면서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 어려운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도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패배한 사람들 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방송에 나오면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속시원하게 긁어주었다.
그 이야기는 바로 보는 사람들 자신의 이야기였다. 누구보다 힐링이 필요한 이들에게 진심으로 힐링이 되려고 노력한 흔적이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안명수가 원래는 20분 짜리로 제작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40분짜리로 키워서 만든 이유도 흉내만 낼 것이 아니라 정말로 덤벼들자는 박PD 의 생각이었다.
이 프로그램 중간 중간에 들어가서 자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정수의 모습은 너무 뚜렸했다. 물론 프로그램의 제작자들은 그의 이름을 한경철이라는 가명으로 처리해버리지만, 시청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마약 한정수를 금방 알아차린 것이다. 바로 그의 눈이 문제다. 슬퍼보이는 또 그래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드는 그의 눈.
이 프로램은 정부를 탓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안명수의 발상과 박피디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우리의 숨기고 싶은 현실을 까발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성공만이 신화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실패 자체가 신화인 것도 아니다. 이제 이 프로그램을 보고 공감한 사람들이 성공신화를 만든다면 안명수와 박PD 는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해낸 것이다.
정부나 기업 누구도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항의를 해오지 않았다. 오히려 LBS 임원들은 박PD 를 칭찬하고 격려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마디로 성공작이 된 것이다. 이제 안명수도 기자가 아닌 방송작가로 떠버린 것이다.
방송되는 동안에 화면을 보고 생각중이던 박PD는 안명수를 불렀다.
"안기자."
"예?"
"이 마약이라는 애 말이야."
"마약이 왜요?"
"이번에 그 삽입곡들 제법 괜찮지 않나?"
"저한테는 엄청 딱인데 ..."
"얘가 가수를 하려면 그 오디션에 꼭 나가야 하는거야?"
"글쎄요. 저는 그 분야는 잘 모르는데."
"얘는 왜 나한테 음악 들고 오라니까 안오는거야? 내가 마약한테는 M7 보다 호구로 보이나?"
"몇번 왔었어요. 그런데 선배님이 바쁘셨거든요."
"내일 저녁 퇴근 시간에 이리 데려와봐."
정수, 경애와 세영은 퇴근해서, 거실에서 TV 앞에 모여 앉아서 화면을 주목하고 있었다. 세영이나 경애의 눈은 젖고있었다. 그들이 똑같은 프로그램을 같은 자리에서 보고 있지만,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다르다. 지금 세영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지만, 경애는 정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정이 넘었는데 정수에게 전화가 왔다. 안명수였다.
"박PD님이 곡 만든 것 전부 들고 내일 저녁에 오라셔."
"녹음한 것은 얼마 안되는데. .."
"그동안 뭐했대?"
"입에 풀칠하면서 먹고 살았죠."
"아무튼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오루 5시쯤까지 늦지 말고 와."
정수는 답답했다. 박PD 가 오라는 말은 전에도 했는데. 정수가 적극적으로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박PD가 가진 엄청난 카리스마와 정수에게는 한없이 부족한 자신감 때문이다. 내일은 정수가 또 학교 녹음실에서 보내야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