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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6 35. 검은 돈은 검게 생각해야 해. - 자그마한 말라깽이가 어찌 저렇게 간이 부었을까? ==========================================… (36/116)

00036  35. 검은 돈은 검게 생각해야 해. - 자그마한 말라깽이가 어찌 저렇게 간이 부었을까?  =========================================================================

정수가 말해놓고 나니까 그동안 계속 고민만 하던 머리 속은 시원하다. 그런데 정수의 고민이 박하나에게 넘어간 것 같다. 그의 말을 들은 박하나가 무엇 때문에인지 고민을 하는 것 같다. 정수는 고민 대신 이번에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거짓말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박하나에게 고민이 되지 않게 했어야 하는데, 정수가 너무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이럴 때는 빨리 정중하게 사과를 해야한다. 그는 기회를 찾으면서 박하나의 눈치를 살핀다.

그런데 먼저 입을 연 것은 박하나이다.

"마약씨. .. 너, 혹시 무슨 사고라도 쳤니?"

"아니고. 이제 치려고."

"나랑? 다른 여자랑? 혹시 여자 사고니?"

"하하하. .. 그게 아니야.

부동산에서 날더러 땅을 사라고 권하거든. 이번 선거가 지나면 땅값이 엄청 오른다고, 지금 미리 사놓으래요. 전부 다 하면  800 억 정도가 된대."

"쫌 많네. 덩치가 큰가? .. 그걸 다 한꺼번에 사야한대?"

"아냐. 800 억은 농담이었어. 내가 들은 정보가 그건데, 난 거기 대해서 아는 것이 없잖아."

아까부터 차갑게 굳은 박하나의 얼굴이 좀초럼 풀리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녀는 말 없이 소주잔만 비운다. 정수의 고민이 이제는 하나의 고민으로 바뀌어버렸다. 하나는 정수에게서 고민을 전염받은 것이다. 긴장한 정수는 초조하게 하나의 입에서 나올 그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

"간단해."

이 말을 들은 정수의 눈이 빛났다. 어떻데든 무슨 말이든 박하나가 말을 이어서 계속해준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우면서 그의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다.

"어떻게 간단해?"

"800억이건 900억이건 내가 내줄테니까 한꺼번에 다 사버려."

"누나, 설마? .. 그걸 어떻게 그래?"

"그 대신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너는 그 정보가 어디서 나온 정보인가를 확인해야 해."

"맞나 틀리나가 아니라?"

"그런 정보는 맞고 틀리고가 없어.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달라져."

"만일 그들이 하는 말이 맞다면 그걸 다 산다고?"

"땅은 거짓말을 안해요. 지금 네가 그 땅을 산다고 치자.  그런데 나중에 우리가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우리가 망하는거니?"

"누나, 글쎄 내가 바로 그걸 모른다니까."

"생각해보세요. 그 땅값이 지금 공시지가보다 터무니 없이 높으면 위험해요. 그렇지 않고 거의 비슷하면, 그 땅값이 거기서 더 이상 떨어지지는 않을거야."

"음 .. 이해 된다."

"그럼 이제는 800 억이라는 돈이 문제인데."

"그렇죠. .. 나 같은 사람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

"마약씨, 웃겨.  .. 내가 전에 검은 돈 얘기 해줬잖아?"

"검은 돈이건 흰 돈이건 간에, 그 엄청난 거금을 어떻게 개인이 해결 해?"

"내가 지금 비서실장이고, 내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비자금 관리하는 것이라고 했지? 어차피 내가 관리하는 그 돈들은 지금 한동안은 그냥 쌓아놓고 있는 돈이야. 그 돈을 꺼내다가 땅을 사서, 나중에 그 땅을 다시 팔아요. 그리고 나서 원금을 다시 갖다 두는거야. 거기서 우리는 그 차액을 손에 쥐는거지."

"누나, 소름 끼친다. 거기서 만일 뭐 하나 잘못되면?"

"그럼 몇년 살고 나오면 되죠. 거금 800억 나누기 몇년 해봐요. 일년에 그 돈 벌 수있을 것 같아?"

"음 ...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도저히 아니다."

"검은 돈은 검게 생각해야 해. 그런데 마약씨는 지금 그게 안되나봐."

"그럼 백분에 일만큼만 하면?"

"잘못돼서 당하기는 그거나 그거나 마찬가지야. 별 차이 없어."

"숨막힌다. 살도 떨리고 ..."

"그 돈 갖고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잠시 빌려쓰고 다시 갖다놓겠다는데?"

"만일 사전에 허락을 받는다면?"

"말은 잘하네.  이 바보야, 너 같으면 그걸 허락해 주겠니?"

"후덜덜이야."

"최악의 경우를 예상해서 이렇게 시나리오를 짜보세요.

(1) 내가 너한테 800억을 준다.

(2) 그리고 나는 한국을 떠.

(3) 너는 그 돈으로 두배 세배를 만들어 놓는 거야.

(4) 나중에 너는 나를 불러들여.

(5) 내가 원금을 되갚아 줘.

(6) 정 지랄을 하면 내가 들어가서 몇년 살고 나와.

안될까?"

"소설같다."

"소설이건 야설이건 그게 뭐 대수냐? 그러니까 내 말은 돈 액수를 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야. 그 정보가 어디서 나왔으며, 또 앞으로 그 정보가 바뀌면 어떻게 바뀔까를 캐야 해. 정보도 항상 살아서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돼. 정수 네가 그 일을 할 수 있겠어?"

"아직은 ..."

"에휴~ .. 누나가 알아서 할께. 너는 너한테 그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랑 나랑 연결을 시켜줘야 해. 그것도 못하겠으면 이 일은 그냥 없던 일로 해."  

"누나, 도대체 왜 이렇게 통이 커?"

"내 통? 무슨 통? 젖통? .. 하하하하.  그건 좀 더 컸으면 좋겠다."

"지금 그런 농담이 나와요?"

"마약한테는 이번 일이 처음이지만, 이 누나는 주로 하는 일이 그런 쪽이야. 나 이번에 미국 갔다 온 것도 그런 일 때문에 갔던 거고. 이번 건은 액수는 좀 큰 것 같은데, 나한테는 전혀 큰 일도 아니거든."

정수는 혹을 떼려다가 혹을 더 붙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고민을 말했다가 더 큰 고민을 얻었기 때문이다. 건너편에 앉아있는 박하나가 무서운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자그마한 말라깽이가 어찌 저렇게 간이 부었을까? 정수가 이 일에 대하여 아직 뭐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손 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맞는 것 같다. 강유리와 다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는 박하나의 집 앞에서 그녀와 헤어졌다. 오늘 저녁에는 정수가 안명수 기자에게 가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지난 번에 백화점에서 촬영하던 날 그는 그녀와 약속을 했다. 또 그의 전화기에는 이미 문자 메시지가 들어와있다. 그녀는 지금 자기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가 안명수의 집에 와서 벨을 누른 것은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안명수는 그를 맞으면서 눈을 흘긴다.

"왜 이제야 나타나시는데?"

"미안. .. 먹고 살기가 쉽지 않잖아."

"저게. 왜 거짓말이야?"

"내가?"

"세탁소에서는 점심때 나갔다던데?" 

"서울에 갔었다니까. 학교에 일이 생겨서." 

"그래?"

그제서야 안명수의 뾰로통해 있던 얼굴이 웃는 얼굴로 바뀐다. 

"누나는 약간 삐져있을 때가 훨씬 더 귀여운 것 같다."

"나의 이 미모를 너는 어떻게 주체할 수 없나봐? 하하" 

"고객님, 오늘은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오늘은 고객 아니잖아. 배달 온 것도 아닌데."

"그럼 뭐할꺼야?"

"새로 만든 곡 있어?"

"녹음을 아직 안했는데.  왜요?"

"음 ..."

"급하시면 내일이라도 녹음을 하면 되는데."

"지금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에 백그라운드 음악 몇곡이 있어야 하거든. 차라리 네가 만든 곡을 넣으면 어떨까 해서."

"그럼 연주곡이라햐 하겠네?"

"아냐. 네가 부른 노래도 괜찮아. 여기 시나리오 있으니까 보고 생각해봐요."

"언제까지 전해주면 돼?"

"내일 저녁이나 아니면 모레. 내가 들어보고 고를 수 있으면 좋은데."

"내일 하루 종일 녹음하면 5곡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

"우선 그거라도. 메인에서 쓰려면 두 곡 정도가 필요하니까."

"음. 녹음실이 비어있을 지 모르겠네."

"정 안되면 내가 방송국 녹음실 말해줄까?"

"아냐. 기다려 보세요."

정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하고, 안명수는 와인을 테이블로 가져왔다. 정수는 기가 예술 대학의 학교 녹음실을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 스케쥴이 겹지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학기 초라서 여유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급하면 다른 녹음실을 하루 종일 임대하면 되니까. LBS 방송국의 녹음실을 빌려서 사용한다는 것은 두세시간이라면 모를까 하루 종일은 좀 무리이다.

그 다음 날 정수는 세탁소에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세영과 경애를 설득해야했다. 그 대신에 김경애가 그를 따라나섰다. 그러자 세영이 안심했다. 

그는 학교의 녹음실에서 녹음을 끝냈다. 오후 늦게 일이 끝나자 정수는 곡을 담은 USB 를 들고 LBS 로 안명수를 찾아갔다. 안명수는 경애와 정수를 맞아서 박철호 PD 의 작업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박PD는 방송국에 없다고 했다. 

안명수는 헤드폰을 쓰고 정수의 곡들을 모두 들어본다. 그의 노래를 듣고있는 안명수의 고개가 까딱이고, 두 눈은 사르르 감긴다. 그의 곡들은 너무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마치 이 세상을 벗어나서 다른 세상에 가 있는 느낌이다. 인간 안명수에게 있는 감정이라는 덩어리를 움켜쥐고 이리저리 돌리고 비틀면서 어떨 때는 위로하고 또 어떨 때는 더 아프게도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곡들은 만들어지고 나서 내가 처음으로 들은거라 이 말이지?"

"네."

"좋아요. 내일 PD 님과 의논해서 결정할께요. 아마도 내가 저녁에는 연락해 줄 수 있을거야. 우리 집으로 올래? 만들어지면 바로 체크해야해. 지금 편집은 거의 끝났어. 이제 방송 일정만 잡히면 바로 나갈꺼거든."

"명수언니, 정말 잘 부탁해요."

"이건 내가 하는 것이 아니야. 마약한테 실력이 충분히 있어야 하고, 또 박 PD님 마음에 들어야 하거든. 내가 들어보니까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PD 들은 다른 차원에서 사는 사람들이라서, 우리가 그 분들 속 마음을 알기가 쉽지 않거든. 걱정하지 말고 이만 들어가서 쉬세요.  우리 마약씨 얼굴이 완전 반쪽이네."

김경애는 안명수의 손을 잡고 잘 부탁한다면서 인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수는 이미 잠들어버렸다. 경애는 운전하면서 옆자리에 뻗어있는 동생 정수를 본다. 

정수는 하루 종일 녹음한다고 예민한 상태로 긴장해 있었다. 한 곡을 녹음하고, 듣고, 다시하고, 또 듣고를 반복했다. 다섯곡을 녹음하는데 아마 10시간은 걸린 것 같다. 

녹음이 끝나자 그는 안명수에게 곡을 넘겨주어야 한다면서, 그 곡들이 그녀의 프로그램에 맞는 곡일지에 대하여 그는 고민을 엄청 많이 했다. 지금 안명수가 받아준 것으로 일은 일단락이 지어졌지만, 내일 박PD와 마지막 결정을 하는 과정이 정수에게는 문제다. 그에게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는 그 자리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더 궁금해 할 것이다.

경애는 차를 세영의 집 앞에 주차했다. 경애는 정수를 깨워서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그를 차마 깨울 수 없었다. 경애는 곤히 잠들어있는 정수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손으로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정수야, 누나는 너를 믿어.

너는 꼭 해낼꺼야."

정수는 경애가 하는 이 말을 알아들었는지 눈을 떴다. 그들은 가볍게 키스하고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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