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22 21. 박하나 고객에게 또 배달 %26 이런 저런 일들 (22/116)

00022  21. 박하나 고객에게 또 배달 %26 이런 저런 일들  =========================================================================

"사장님,  수선인데 어떻게 해요?"

정수가 보관실을 향하여 세영을 부른다. 세영이 고객과 정수가 있는 접수대로 나왔다. 세영이 처음 보는 여성고객이다.

"저희는 클린피아 체인점이라서 수선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이 동네로 막 이사 와서 아는 데도 없는데 .."

"그럼 제가 수선만 다른 곳에 보낼께요."

여자 고객이 세영과 함께 준비실로 가서 흰색 바지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녀의 큼직하고 빵빵한 엉덩이와 쭉 뻗어 내린 다리가 그 하얀 바지에 의하여 곡선과 볼륨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세영은 바지의 밑 단을 접고, 수성펜으로 바지 길이를 표시한다. 정수는 그 사이에 접수증을 만들었다.

--- 접수증 ---

고객 성명 : 박하나

전화 : 010-XXXX-YYYY

주소 : 하리동 유성아파트 5동 805

옷 : 검정색 바지 2, 흰색 바지3, 초록색 바지 2, 흰색 바지 수선&세탁 1 

가격 : 25000 원

배달 -  14일 (월요일) 오후 9시 이후 전화 후 배달.

"박하나 고객님, 감사합니다."

"배달은 어느 분이 오셔요?"

"제가 갈 수도 있고 .. 아직 모릅니다."

"그럼, 혹시, 기왕이면, 그러니까, 어쨋든, 말하자면, 음 ..."

"예?"

"혹시 마약님께서 오시면 안돼요?"

"그럴까요? .. 하하하~"

"배달오실 때, .. 출발 전에 전화 꼭 부탁해요."

박하나 고객도 역시 정수에게 직접 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그녀가 그 말을 하는데에는 얼굴도 빨개지면서 시간도 제법 걸렸다.

세영은 수선할 바지를 차에 싣고 동네에 있는 수선집으로 가서 맡겼다가 그날 저녁때 찾아왔다. 그리고 박하나 고객의 세탁물은 그날 저녁에 마감하면서 크린피아로 보냈다.

약속한 14일에 정수가 배달을 간다고 나선다. 세영은 이미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에 그가 혼자 가도록 내버려두었다. 또 배달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돌아온 정수도 세영에게 특별한 말이 없다. 세영이 약간 수상쩍게 생각하고 그에게 묻는다.

"뭐라고 안해?"

"고맙다면서, 자기 바쁘니까 그냥 소파에 두고 가라고만 .."

"어이없네. 원래 안 하는 수선까지 했구만"

"별 일 있겠어요?"

"하긴, 색기가 없었나? .. 하하하"

"그누므 색기는 허구헌날 .. 하하."

이제는 이렇게 세영에게서 그에게로 한마디가 가면, 그로부터는 대꾸가 세영에게로 되돌아온다. 세영은 이렇게 밤마다 정수에게 이야기를 하면 그가 대꾸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

지난 5년간이 떠오른다. 아무리 한마디를, 열 마디를 해도,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것도 되돌아오지 않던 그 시절 ..

지금 세영은 행복하다. 이렇게 그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꼭 섹스를 하지 않더라도 행복하다. 마음을 담아서 오고가는 말이 세영을 기쁘고 행복하게 한다. 그와 함께 있으면 아마도 엔도르핀(endorphine)이 엄청나게 분비되는 모양이다.

정수는 처음에 오전 아니면 오후에는 음악공부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렇게 했다. 그런데 세영의 세탁소에 고객이 일찍부터 몰리는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전에는 하루 매장을 찾는 고객이 3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400명이 넘고있다. 또 고객들은 자기들이 퇴근하는 시간인 오후 5시쯤부터 몰리기 시작했었는데, 지금은 세시가 넘으면 바빠진다. 또 조용하던 한낮에도 매장을 찿아오는 고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수가 일을 시작하고나서 한달이 지날때 쯤부터 세영의 가게에는 이렇게 고객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임시로 일할 직원도 두 명을 더 뽑았다. 백화점의 거의 모든 매장이 죽겠다고 울상이지만 세영 혼자서 여유 있는 웃음을 날린다.

그에게 오전 아니면 오후에 공부하도록 가게에 나오지 말라던 세영의 계획도 무너졌다. 그는 아침에 세영과 같이 나왔다가 저녁에 같이 들어간다. 

목요일 아침에 가게 문을 열고 얼마 지나지않아서 여성 고객 여섯명이 우루루 들어왔다. 세영이 나서서 그녀들을 맞았으나, 그녀들은 정수를 찾았다. 세영은 준비실에 있는 정수에게로 갔다.

"색기가 단체로 침임해왔다."

"예?"

"빨리 나가 봐! 여기는 내가 할께."

세영은 낮은 소리로 말하지만, 그 말에는 독기가 서려있는 것 같고 또 말을 신경질 적으로 쏘아 뱉는다. 그래서 장수는 세영에게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접수대가 급한 것 같아서 우선 그녀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인사하면서 나갔다.  세영은 준비실에서 유리 틈으로 내다보면서 정수와 그녀들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듣고 있었다. 접수대로 들어서는 그를 본 그녀들이 일제히 탄식하며 한마디씩 한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고객님!"

"어머머~, 어쩜!"

"와아~ .. 진짜 마약이다!"

"아아앙~.. 완죤 대~박!"

그녀들 중에 한 명이 나서며 당황하는 정수에게 말했다.

"우리 지금 8층 노래교실에 가는 길인데요."

"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마약씨랑 같이 가면 안될까요?"

"그런데 어쩌죠? 근무 시간인데."

"사장님 잠시만 나오시라고 해주세요."

그녀들이 듣는 데에서 정수가 접수실을 향해서 일부러 큰 소리로 세영을 <사장님> 하고 부른다. 세영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나온다.

"사장님, 마약씨 한 시간만 빌리면 안될까요?"

"고객님, 지금 우리는 영업 중입니다."

"이따가 오후에 우리가 다같이 세탁물 한보따리씩 맡기러 올텐데."

세영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녀들의 갑질을 받아들여야 했다. 정수를 올려 보내겠다고 그 조폭같은 패꺼리들을 일단 무마시켜서 올려 보냈다.

"흥! .. 자알 한다."

"제가 뭘요?"

"내일부터는 아예 노래교실로 출근 해!"

"존경하는 사장님, 왜 또 그러십니까?"

"잔말 말고 올라가 봐!"

"알았어요!"

"끝나면 바로 와서 식사 교대 책임져!"

세영은 불안했다. 저 마녀 패거리들에게 끌려간 정수에게 아무 일 없도록 빌어야 한다. 점심시간이 되어 세영이 정수를 기다리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세영은 직원식당으로 갔는데, 정수는 거기에도 없다. 이미 노래교실은 한참 전에 끝났을 것이다. 세영은 푸드코너로 내려가서 다른 식당들에 혹시나 하고 들여다본다.

그는 이탈리아 식당에 있었다. 불쌍하게도 그는 마녀들의 틈바구니에 껴서 화기애애하게 파스타를 먹고 있었다. 밖에서 들어선 세영에게는 눈길 한번을 주지않는다. 세영은 고갯짓을 하면서 혼자 직원식당으로 올라갔다.

정수는 노래교실 회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그가 가게로 와서 쉬고 있는데, 세영은 또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준비실에 쳐박혀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정수의 전화기가 진동음을 낸다. 안명수 고객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자기, 오늘 퇴근 몇 시?'

그는 지난 주에 있었던 심야의 배달사건이 떠올라서 답장을 바로 보냈다.

'고객님, 누가 물어보냐에 따라 다릅니다. ㅋㅋ'

'이게 무슨 말이야?'

'빼어나게 밝으신 VIP 께서 왕림하시면 밤을 새워서라도 기다려야죠? ㅋㅋ'

'자기 순 자겁꾼? ㅋㅋ'

'고객님께 자겁 안 걸면 그게 남자야? ㅋㅋ'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안명수 고객이 뭐라고 더 보내오기를 기다렸으나 더 이상은 오는 것이 없고, 조용했다. 그는 그가 마지막으로 보낸 내용이 너무 강했나 생각했다.

그런데 마녀들은 약속대로 들이닥쳤다. 오후 네 시가 넘었는데 열명이 넘는 여자들이 비닐 팩을 하나씩 들고 한꺼번에 나타났다. 세영은 정수와 함께 그녀들의 세탁물 접수를 진땀을 흘리면서 끝냈다. 혼이 몇번을 들낙거리는 것 같다.

정수가 접수증을 쓰고 있는데, 어떤 여자는 과감하게 손을 뻗어서 그의 뺨을 쓰다듬기도 한다. 세영은 독하고 강하게 <성희롱> 이라고 한마디를 쏘고 싶었으나 참아야 했다. 지금 이 마녀들은 슈퍼 갑이다. 세영이나 정수는 슈퍼슈퍼 을이다. 세영은 격분을 참고 삼켜야 했다. 그런데 정수는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아마도 오늘은 그의 <광대상승의 날> 같다.  

그녀들은 모두 배달을 요구했다.  그것도 마약에게.

세영의 머리가 터질 것 같다.

태풍처럼 휘몰아쳐온 그녀들이 다시 태풍처럼 몰려 나갔다. 한 명씩 다니면 참으로 하나 같이 우아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백조이련만, 저렇게 패꺼리를 지어서 나다니면 조폭질을 할 때에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지. 

오후에는 선영이 법원에서 우편물이라면서 커다란 서류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어떤 고객이 세영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는 것이다. 세영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자기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쥔다.  정수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으나 세영은 아무 대꾸도 없었다.

정신 없이 한참 바쁜 시간이 지나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세영과 정수는 마감을 시작했다. 그런데 안명수 고객으로부터 정수의 전화기로 문자 메시지가 또 들어왔다. 그러니까 아까 점심때 그 메시지가 마지막 메시지가 아니었다. 오후 동안 잠시(?) 소강상태가 흘렀을 뿐이다.

여성 VIP 고객 안명수.

그녀는 그의 뇌리에 착하고 아름다운 인상으로 남아있다. 한번쯤 다시 만나고싶고 또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여인이다. 무엇에 대해서든지 같이 이야기하고싶다. 그녀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좋다. 곁에 있기만 해도 기분 좋은 여자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생각만 하고 또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아도 짜릿한 기분을 숨길 수 없다. 

그녀에게 자신은 누구일까? 벌써부터 그녀에 대해서 그가 거는 기대가 너무 큰 것 같다. 늦은 밤에도 친절하게 배달을 해주었다는 것 때문에 그녀는 고맙다면서 커피산다는 약속을 지키려는 것 밖에는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데. 정수가 그녀를 생각하면 누나 한경애가 떠오른다. 두 여자의 공통점이라면 착하고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정도?

그녀로부터 도착한 메시지를 읽으려고 그가 전화기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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