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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4 13. 이대로 포항에 쳐박혀 있을 수 만은 없다. (14/116)

00014  13. 이대로 포항에 쳐박혀 있을 수 만은 없다.   =========================================================================

월요일부터 한정수는 랏떼백화점에서 이세영이 운영하는 매장 <랏떼세탁소> 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누구나 백화점에서 근무를 처음 시작하면서 교육을 받는다. 이 백화점 안에 있는 어느 매장에서 어떤 조건으로 일을 하든지 반드시 이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제일 먼저 백화점의 통무과에서는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원에 대한 교육> 이라는 것을 한다. 주로 안전교육 그리고 친절교육이다.

월요일은 정수가 출근하는 첫날이다. 정수는 세영과 함께 백화점으로 갔다. 세영은 6층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있는 세탁소로 정수를 데리고 들어갔다. 오늘 그가 할 일은 교육받는 것이다.

"매장 직원이든, 백화점 직원이든 사람을 상대해야 하니까 항상 조심하고, 이름과 얼굴을 익혀뒀다가 어디서 만나면 꼭 인사를 해야 해요."

세영은 정수에게 몇가지 주의를 주고, 그를 8층에 있는 회의실로 올려보냈다. 정수가 거기서 오늘 하루 종일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곳에는 정수 말고도 다른 직원들이 몇 명 와있었다. 모두 오늘부터 새로 일을 시작하는 직원들이라고 한다.

오늘의 교육을 담당하는 총무과의 여직원이 김영희가 들어왔다. 그녀가 먼저 출석체크를 하다가 정수를 알아보고 말했다.

"혹시 마약이세요? .. 하하"

김영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난 주에 오디션에 출연했던 한정수라면서 그를 소개했다. 그런데 아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있었다.

오전 교육이 끝나고 점심 시간이다.  외숙모 세영이 회의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직원 식당으로 갔지만, 외숙모 세영은 정수를 데리고 푸드코너로 데리고 갔다. 군데군데에서 정수에 대해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외숙모는 그를 데리고 제일 위층으로 갔다.

"산책 해야지. 식사 후에는 걸어야 해요. .. 하하"

세영은 그를 앞세워서 제일 위층에서 시작해서 몇 군데의 매장을 돌고 에스카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곳곳에서 정수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수근거리기에 바쁘다. 세영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오후 교육은 저녁 6시까지 계속되었다.

소화기 사용법, 응급 처치법, 비상 연락망 활용 등등 ...

늘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말들 ...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감사합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고객님, 안녕히 가십시오."

교육이 끝나고 그는 6층에 있는 세탁소로 내려갔다. 세영은 다른 직원과 함께 매우 바쁘게 일한다. 정수가 세영의 모습을 보자 너무 반가웠다. 점심시간에 세영과 잠시 같이 있었던 것을 빼면 그는 마치 다른 나라에 있었던 느낌이었으니까.

그는 세영이나 직원이 시키는 심부름을 했다. 마감 시간이 되어서 세영은 직원을 퇴근시키고, 가게를 정리해서 함께 퇴근할 준비를 한다.

"정수가 있으니까 정말 좋네. 출퇴근도 같이 하고."

"여기서는 사장님이 외숙모시니까, 외숙모가 갑이네요."

"칼질이건, 갑질이건, 난 확실하게 하거든요. .. 하하"

정수는 내일부터는 세탁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배워야 한다. 세영이 정수에게 말했다.

"정신 바짝 차리세요. 진짜 교육은 내일부터야."

정수는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실감이 들면서 긴장한다. 그런데 과연 이 일이 그가 감당해 낼 수 있는 일일까? 그는 순간적으로 한없이 작아지고 약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갑자기 누나 경애가 생각났다. 언제나 정수가 무슨 일을 벌여 놓으면, 누나는 달려와서 뒤치닥거리를 해주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외숙모 세영과 함께 해결을 하여야 한다. 저 카리스마의 여인은 약간 무섭다. 그는 보관실 정리하는 일을 거의 끝내고 있었다.

그런데 문 밖에서 외숙모가 있는 정수를 불렀다. 

"한정수씨! 손님께서 찾아오셨어요!"

그가 준비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외숙모에게 소리쳐 물었다.

"벌써 저를 찾는 사람이 있어요? .. 누구래요?"

"20대 미모의 여인! .. 하하하"

그런데 그가 묻는 말에 대답한 여자는 외숙모가 아니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이기는 한데?그는 <누구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이 시간에 그를 찾아온 20대 미모의 여인?

누나 김경애다.

누나가 서있다.

누나는 그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누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를 보고 웃으며 기다려준다.

그의 누나는

그가 힘든 이 세월을 살면서 지칠 때, 그를 부등켜 안고, 

그를 대신해서까지 굳세게 버텨주고,

또 그에게 같이 버티자면서 그의 손을 잡고있다.

그가 실패하고, 이 세상에 혼자 있다라고 느꼈을 때,

그의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송두리째 감싸면서 뒤흔드는 서러움.

누나는 그에게서 이 모든 것을 말끔히 빼앗아갔다.

몇 발자욱 떨어진 저 문 앞에 

바로 그 누나가 서있다.

이제는 그가 누나에게 다가설 때도 된 것 같은데.

그는 아직 그럴 일은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서는 아직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패배와 설움으로 

또 무거운 짐을 지고 

오디션 홀과 합숙소를 떠나올 때,

누나는 그의 아픔과 어려움을 모두 헤아리며 

차분하게 그를 배려해 주었다.

누나는 그에게 눈빛 하나를 주더라도,

그 눈빛에 자기가 가진 전부를 가득 담았었다. 

그가 현실에서 막막하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서러울 때, 

누나는 그의 입장을 모두 이해해주었다.

그가 이 넓은 세상에 자신은 혼자 서 있다고 굳게 믿고,

자기가 들어있는 동굴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누나는 그에게 손을 뻗어서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야> 임을 믿게 해주고,

그에게 크나큰 위안을 주었다.

그리고 그를 그의 동굴에서 끄집어 냈다.

그에게 떨림이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그의 눈과 입술은 울음으로 가득차 있어서 

언제라도  흘러넘칠 것 같다.

이제 그가 그 누나에게 다가선다.

한 걸음 가까이,

더 가까이.

그가 누나를 덥썩 안아버린다.

누나도 그를 안는다.

드디어 그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의 울음은 지체없이 그녀에게도 울음을 터뜨린다.

이들 남매의 서러움의 눈물이고, 한의 눈물이다.

승리와 패배로 덕지덕지 점철된 이 세상.

바람 많은 이 거친 세상.

그가 흔들리지 않고 또  쓰러지지 않으려면 

아직은 시간이 더 걸려야 하지 않을까?

경애가 그의 누나로서 

그에게 바람막이가 되고 

또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은데.

그의 곁을 지키고 그의 주변을 맴돌며,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릴 수 있는데..

어렵게 가야하는 너의 길을 

네가 쉽게 가도록 내가 도와줄 수 있는데..

너는 아직 이 답답한 현실을 바라볼 필요 없어.

그건 내가 맡을께.

너는 너의 이상만 보고 달려.

내가 너를 사랑하기도 전에 

또 네가 나를 사랑하기도 전에

너의 뉘우침이나 나의 충고가 무슨 소용이 있어?

너의 실패에 대하여 나에게 뉘우치지마.

너는 나한테 무죄야.

그래서 나도 너에게 충고하지 않을거야.

이렇게 우리가 서로에게 나타나주는 것,

우리가 서로를 발견하고, 

부등켜 안으면서 

우리의 심장을 가까이 마주 대고 

같이 울어버리는 것.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야.

누가 뭐래도 이건 사랑임에 틀림없어.

사랑이 우리 몸과 마음을 후벼 파면서 우리에게 들어오고 있어.

이것이 우리의 진짜 현실이라고 믿자. 

비록 속는 한이 있어도.

바깥 세상은 가짜 현실이야.

우리의 이 진짜 현실로 

바깥 세상의 가짜 현실을 이기고 극복하자.

노력한다고 다 이겨내는 것은 아니지.

그러나 때로는 이겨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사랑으로 바깥 세상의 저 가짜 현실을 

우리의 진짜 현실로 이길 수 있음을

또 정수 너도 그런 승리자가 될 수 있음을 

꼭 보여주자.

사랑하는 동생 정수야.

다시 무대에 서라.

거기서 꼭 보여라.

거기서 네 세상을 열고, 네 꿈을 펼쳐라.

어둡고 싸늘한 그 무대에 일단은 너 혼자 서야 해.

그리고 나서야

너를 향한 밝고 화려한 조명, 그리고 환호가 있어. 

그러면 너는 

무대 뿐 아니라 홀 전체를 불가마로 달궈라.

이 둘을 보는 외숙모 세영은 마음이 안스럽다. 갑자기 경애의 엄마와 아빠도 떠오른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웃는 얼굴로 이들을 달랬다.

"얘들은 헤어진지 며칠이나 됐다고 찔끔거린대?

생가지 찢기듯 헤어졌다가 몇년 만에 이산가족이 눈물의 상봉이라도 하는거니?

이렇게 서서 울기만 하다가 이 건물에 갇히면 여기서 밤샘을 해야하거든.

어서 나가서 저녁먹자.

정수도 오늘은 하루 종일 교육받느라고 지금쯤  맛이 갔을 거야."

경애와 정수는 세영의 차 뒷자리에 앉았다. 세영이 이들을 데리고 가는 곳은 삼겹살집이다. 오늘은 정수에게 몸보신이 필요하다면서 세영에게도 고기가 쏠린단다. 이 말을 하는 세영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정수의 눈에 보인다. 

"누나는 포항에 있어야지, 여기로 와버리면 어떻해?"

"그래? 그럼 나 다시 내려갈까?"

"언제는 서울 포항이 이웃집이 아니라며?"

"그래서, 누나 오니까 좋다는거야, 아니면 안좋다는거야?"

"내가 좋은 거야 더 말하면 잔소리지."

경애는 정수의 손을 잡았고, 정수는 경애의 손에 아주 깊숙하게 손깍지를 낀다. 

* * * * * * * * * *

포항에 온 경애의 마음이 심난하기 짝이 없었다. 손에 아무런 일도 잡히지 않았다.

지나온 모든 일을 돌이켜 생각하면 아픈 마음이 그렁그렁해진다. 더구나 이번에는 그와 살을 섞기까지 했다.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두려웠으나 나중에는 오히려 당연한 듯이 경애가 나서서 그의 몸을 탐하기도 했다. 내려 오기 전에 그와 보낸 이틀 밤에 그와 가진 섹스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팬티가 흥건해진다. 손은 저절로 젖가슴을 만지게 돠고 다른 손은 허벅지 사이로 간다.

누나 김경애는 동생 정수를 서울에 두고, 자기가 이대로 포항에 쳐박혀 있을 수 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머지않아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 또 아직은 여름이어서 과메기 사업이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경애는 한달 정도를 서울에 있기로 했다. 과메기는 친구에게 맡겨두고, 외숙모 세영의 말대로 노트북 하나만 들고 <이사끝!> 한 것이다. 세영과는 이 문제를 의논앴으나 정수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경애는 과천 세영의 집, 정수의 옆방에 머물렀다. 경애가 할 일은 정수나 숙모를 돕는 일도 있지만, 그동안 등한시했던 과메기블로그를 새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도 큰 일이다. 주구장창 똑같은 내용을 그대로 두면 식상하지 않은가? 이를 위해서 경애는 자바스크립트를 배우고, 또 웹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을 배워서 지금 몇년째 스스로 사이버가게를 운영해오고 있다.

세영이 경애의 블로그를 군침을 삼키면서 눈여겨보자 경애가 한마디 했다.

"외숙모도 이참에 웹가게 하나 오픈하죠?"

"그거 .. 배달 해대려면 정신 없을텐데?"

"주문은 와장창 늘지 않을까요?"

"그걸 누가 다 관리해? 너무 골치아플 것 같아. 나는 그냥 동네 장사나 할란다."

정수는 이번 학기를 휴학했다. 그는 학교 앞에있는 자기가 살던 원룸을 친구에게 넘겨주었다. 경애가 나서서 정수를 그의 원룸으로부터 이사시켰다. 경애는 많지 않은 그의 짐을 모조리 세영의 집으로 실어오고 말끔히 정리까지 해주었다. 또 정수가 자는 옆방에 침대를 새로 들여서 자신이 잘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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