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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1 10. 외숙모가 그 동안 많이 무섭고, 또 많이 외로웠나 보다. (11/116)

00011  10. 외숙모가 그 동안 많이 무섭고, 또 많이 외로웠나 보다.  =========================================================================

외숙모는 앞장서서 욕실을 향하여 걸었다. 정수는 빨래통을 들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외숙모는 빨래를 다시 세탁기에 넣었다. 빨래통에서 빨래를 꺼내서 세탁기 안에 넣느라고 또  외숙모가 허리를 굽힌다. 정수는 아예 눈길을 샤워기 쪽으로 돌려버렸다. 

보이는 것을 눈으로 보지 않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정수의 오해였다. 그 장면은 이미 너무도 선명하게 그의 머리에 저장되어 있었다. 보지 않아도 다 보인다.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눈을 질끈 감은 정수를 보고 외숙모가 한마디 한다.

"정수가 피곤하구나. 들어가서 자거라."

"전혀 안피곤해요. 이제 막 생가기 팍팍 나기 시작해요."

"자정이 넘었는데 왜 그런대? 너 올빼미과야?"

세탁기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자리로 돌아와서 와인을 마신다.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월요일부터 출근할래?"

"내일 당장부터 아닌가요?"

"안돼. 월요일에 백화점에서 하는 직원교육을 받고, 그 다음 날 화요일부터 일할 수 있어."

"알았어요."

"세탁소 간판을 <랏떼 세탁소>에서 <아이돌 세탁소>로 딩장 바꿔야겠어."

"예? <아이돌 세탁소>라뇨?"

"우리 가게에서 정수가 일 할거니까 당연한 것 아냐? .. 하하"

"저는 외숙모가 아이돌들을 모아다가 세탁하신다는 줄 알고 ...  하하"

"하하. 얘는?"

외숙모의 웃는 얼굴이 정수의 긴장을 약간은 풀어준다. 밖에서 내리는 비는 더욱 거세져 가는 것 같다. 정수는 피곤했기 때문에 들어가서 자고 싶다. 그런데 이모는 세탁기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는 것 같다. 정수는 이모를 따라서 같이 기다려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모는 정수에게 노래하는 것, 방송국에서 무대에 서는 것 들을 물었고, 정수는 그녀에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면서 와인은 한잔이 두 잔이 되었고 또 세번 째 잔을 따르고 있었다.

"내 정신 좀 봐. 

따라와. 네가 쓸 방을 보여 줄께.

청소를 한다고 하긴 했는데 ... "

그는 현관에 둔 가방 두 개를 들고 외숙모의 뒤를 따랐다.  거실 이쪽에는 주방과 외숙모가 쓰는 방이 있고, 그 반대편에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방 두 개가 있다. 거실의 길이가 제법 길어서 이쪽과 저쪽은 거리가 꽤 멀다.

외숙모가 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선다. 방에 책상과 책장이 있다. 그 옆에 있는 방은 제법 크고, 침대와 옷장이 들어있다. 그는 가방을 침대 한 쪽 끝에 두었다. 외숙모가 옷장을 열어보고, 또 쭈구리고 앉아서 침대의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있는 동안 편하게 잘 지내라." 

그 때 그의 큰 가방이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상체를 숙여서 침대보를 손보고 있던 외숙모가 가방을 들어올리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그 가방에는 그의 짐이 들어있어서 무겁다.  정수도 그 가방을 들으려고 몸을 굽지만, 이모가 훨씬 빨랐다. 정수의 얼굴이 외숙모의 등 위로 가까이 갔다. 그 바람에 외숙모가 놀라서 몸을 다시 일으킨다. 두 성인 남녀의 몸이 스쳤다.

외숙모의 몸이 돌면서, 그는 피하려고 피했지만, 그의 얼굴이 그녀의 한쪽 젖가슴을 누르면서 스쳤다. 정수가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떨어져 나간다. 외숙모는 방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린다.

"아흑~" 

"외숙모.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그는 얼굴에 뭉클했던 감촉이 아직도 얼얼하면서 얼굴이 빨개진다. 그의 눈에 외숙모의 얼굴도 빨개지는 것이 보인다. 외숙모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서 방을 나선다.

정수는 고민한다. 외숙모를 따라서 같이 나갈까? 아니면 그냥 있어야 하나? 외숙모가 나가고 나서도 방문은 열려있다. 

그는 그냥 방에 남기로 하고, 가방을 열고 옷을 옷장에 둔다. 생각해보니까 외숙모의 젖가슴도 제법 풍만했다. 몇 권의 책은 옆방에 있는 책상에 갖다 두려고 몸을 돌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외숙모가 방문 밖에서 그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지금 안잘거면 와인 한잔 더?"

"예"

"그거 마저 끝내고"

그가 나서려고 하자 외숙모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외숙모의 손에는 그녀가 마시던 와인잔이 들려있다. 그가 책을 들고 옆방으로 가자 외숙모도 그를 뒤따라왔다.

"여기가 외삼촌 서재였어. "

"예."

"저 옆방은 손님 오시면 썼고."

"......" 

"방금 내가 외삼촌 생각을 하면서 정신을 깜빡 했는데 그만 ...."

외숙모는 이 말을 하면서 고개를 숙여 유리잔 안에 담긴 와인을 들여다본다. 이러는 외숙모의 모습을 보기가 애처롭다. 활달하고 여장부같이 그를 몰아칠 것 같던 외숙모의 강한 카리스마는 간곳이 없고, 지금은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외숙모에게 다가가서 와락 안고, 등을 다독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든다. 그렇지만 그가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 대신에 그는 외속모의 팔에 팔짱을 꼈다.

"다 했어요. 가요."

외숙모는 팔짱 낀 그대로 그를 따라서 걷는다. 아까 팔이 스쳤을 때는 짜릿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가늘고 부드러운 이모의 팔이 느껴진다. 그의 팔이 이모의 옆구리에 닿는다. 정수가 짜릿함을 느끼면서 그의 심벌이 또 불쑥 커진다. 외숙모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그가 아까 마시던 잔에 아직 남아있는 한 모금을 마저 마셔서 잔을 비운다. 그의 빈 잔에 외숙모가 다시 와인을 따른다. 유리창에서 들리는 빗소리는 아직도 요란하다. 

"정수야, .. 엄마, 아빠.. 보고 싶지 않니?"

"보고 싶죠. .. 외숙모도 외삼촌 보고 싶으시죠?"

"많이. ... 그런데 요새는 미워 죽겠어."

"......"

"가려면 같이 가야지. 왜 혼자 가느냐구. 이 세상이 여자 혼자 살기가 얼마나 힘든데."

이 말을 한 외숙모가 유리창으로 얼굴을 돌린다. 정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구석에서 티슈팩을 들고 외숙모에게 갔다. 외숙모가 그에게 얼굴을 돌린다. 표정 없는 얼굴로 또 초점을 잃은 눈으로 자기에게 다가오는 정수를 바라본다. 

외숙모의 얼굴은 이미 눈물에 젖어있다. 그는 외숙모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티슈 두 장을 뽑아서 외숙모의 손에 쥐어주었다. 외숙모는 티슈를 젖은 눈과 젖은 얼굴로 가져간다. 그녀가 갑자기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한다.

"저 때문에 일부러 저 방에 가신거죠?"

"아니야. 나 거기 자주 가."

"외숙모. 힘드시면 저에게 잠시 기대세요."

그가 외숙모를 향하여 가까이 돌아앉으면서 팔을 벌리자, 외숙모는 마치 그가 하는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기대온다. 그가 팔로 외숙모의 어깨를 감싼다. 그런데 갑자기 외숙모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서 오열을 시작했다.

정수는 깜짝 놀랐다. 정수는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해한다. 마치 막혔던 둑이 무너지고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르는 것 같다. 그는 외숙모의 좁은 등을 토닥이면서 쓰다듬었다. 외숙모의 숨결과 눈물에 정수의 가슴이 아파온다.

"빨래는 제가 널을 테니까, 외숙모는 들어가서 쉬세요."

"이럴 때 혼자 들어가서 누우면 사람 미쳐버릴 것 같아."

외숙모는 고개를 저어서  그가 하는 제안을 거절했다.

세탁기에서 세탁이 끝났다. 두 사람은 욕실로 갔다. 베란다에 빨래를 다시 널어야 한다. 널어야 할 빨래 중에는 수건과 양말 그리고 겉옷이 있지만, 외숙모의 속옷도 상당히 있다. 그가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그는 일부러 겉옷이나 수건만 빼서 널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빨래를 그가 손에 들었다. 그런데 그것은 븕은 망사로 된 외숙모의 팬티였다. 그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냥 건조대에 널었다. 그러나 속마음은 아무렇지 않은 것이 결코 아니다. 이것과 비슷한 누나의 팬티가 생각난다. 또 지금 외숙모는 원피스 안에 팬티를 입지 않고 잇다는 사실과 아까 본 그 곳의 모습 까지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외숙모는 그러는 그를 바라보고 서있다. 이모의 얼굴 색이 방금 그 망사팬티의 색깔만큼이나 빨갛다.

빨래 널기가 끝나고 그들은 테이블로 돌아왔다. 이제 비는 약해진 것 같다. 정수는 그만 들어가서 자고 싶다. 그런데 외숙모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병 속에 남아있는 와인을 두 개의 잔에 나누어서 따랐다. 외숙모는 자기 잔에는 정수의 잔보다 훨씬 조금 따른다. 그런데도 정수가 느끼는 참으로 분위기는 어색했다. 그것은 꼭 망사팬티 때문 만이 아니다.  외숙모가 기분이 좋은지 웃으면서 말했다.

"정수가 있으니까 좋네. 비오는 날 무섭지도 않고, 기댈 수도 있고. ..."

"이 큰 집에서 혼자 사시려면 무섭기도 하셨겠어요."

"무섭지. 또 외롭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시면 안돼요?"

"이게 우리 신혼집이야. 내가 이 집을 버리고 어디로 가?"

외숙모가 배시시 웃는 표정으로 그를 보면서 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외숙모가 그 동안 많이 무섭, 도 많이 외로웠나 보다.

드디어 외숙모의 잔이 비고, 외숙모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수도 일어서야 하는데, 더 있고 싶다. 그런데 그의 잔에는 아직 와인이 남아있다. 외숙모가 먼저 들어가겠다고 그에게 말한다.

"이제 마음이 좀 가라앉았어. 먼저 들어간다."

"예.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아침에는 7 시에 일어나야 해. 일찍 자."

이 말을 하는 외숙모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 같다. 이모는 방 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보니까 외숙모가 비틀거리는 것 같다. 그렇지만 몇 걸음 안 되는 거리라서 그냥 혼자 가게 두었다.

정수도 나머지 잔을 마저 마시고 일어서서 촛불을 껐다. 그리고 방으로 가기 위해 거실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외숙모가 정수를 불렀다. 그는 외숙모가 부르는 곳으로 갔다. 

그 곳은 외숙모의 방이었다. 그런데 외숙모는 침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방바닥에 앉아서 침대에 기대고 있다.

"너무 어지러워."

"흐음 .. 조금만 드시지 .."

"정수랑 같이 마시니까 기분 좋아서 홀짝거리다가 보니까 .."

"침대 위로 올려드릴까요?"

"그게 아니고, 저기 옆에 욕실에 치솔 ... "

정수는 외숙모의 침실 옆에 붙어있는 욕실로 갔다. 외숙모의 치솔에 치약을 짜서 들고 갔다. 외숙모는 정수에게 고맙다면서 들어가라고 했다. 그런데 외숙모가 나중에 입을 어떻게 헹구지? 나가라는데 안나가고 있으면 변태 취급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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