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43화. 비에 흠뻑 젖은 채 모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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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니? 저 사람.”
“아이쿠. 깜짝이야. 아줌마, 놀랐잖아요···.”
용준이 건물을 올라가려는 찰나 갑자기 기둥 뒤에서 나타난 은경.
그녀는 세은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용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질문을 하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궁금증과 함께 질투심 같은 조급한 감정이 살며시 느껴졌다. 용준은 은경의 질문에서 자신이 추궁을 당하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아줌마가 설마 질투하는 걸까?
“아···. 학원 형이랑 아는 누나에요. 사실은 형이 5수생이라는 거 숨기느라 거짓말 했거든요. 저는 형 때문에 대학생이라고 속이고 만났던 거에요. 그냥 그 정도 사이에요.”
놀라운 거짓말이었다. 어쩌면 세은을 보낸 직후부터 이런 말을 준비했는지도 몰랐다.
은경 입장에서는 용준이 오죽하면 자신을 대학생이라고 속였을까라는 생각에 측은함이 들었지만 역시나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세은과 용준의 관계에 의심을 품었었고, 그것을 곧장 해소시켜준 용준의 변명을 믿어버렸는지 살며시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근데 여긴 왠일이래?”
“아, 친구들 만나기로 했대요. 잠깐 시간 때우려고 쇼핑 좀 했다던데.”
“그래? 흠···. 예쁘게 생겼던데?”
“네? 에이. 아니에요. 그런 거.”
은경이 자신의 거짓말을 믿는 것 같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용준이지만 다시금 뭔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은경의 표정 변화를 보면서 뭔가 모르게 마음이 뜨끔거리는 기분이었다.
혹시나 기둥 뒤에서 나타났던 은경이 숨어서 자신과 세은의 대화를 엿들은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용준은 더욱 더 은경의 기분을 풀어주기로 했다.
“에이~ 아줌마가 저 누나보다 훨씬 예쁜 거 같은데요? 한··· 3.18배 정도?”
“3.18배?”
“아, 수학 기호 중에 파이(π)라고 있거든요. 딱 그 정도 차이?”
“후후. 이젠 농담을 할 때도 공부 얘기를 하네? 요즘 공부 잘 되니?”
썰렁한 농담이었지만 용준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지 은경의 얼굴에 가득 미소가 띄어졌다. 용준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냥 그렇죠. 그래도 아줌마 볼 생각에 어젯밤에 잠도 못 잤다구요.”
“잠을 못 잤어? 왜?”
“아줌마 잠 안 재울려구요. 흐흐흐.”
“뭐? 어이구~ 재수생이 공부는 안 하구!”
히죽거리며 진심이 섞인 농담을 건네자 은경은 밤새 자신을 생각했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살짝 꿀밤을 때렸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더욱 더 밝아져 있었다.
더 이상의 의심은 하지 않는 표정. 그리고 오늘따라 화장이 잘 받은 은경의 얼굴이 더 예쁘고 섹시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용준은 은근슬쩍 방금 전 은경의 기분을 떠보기로 했다.
“혹시 이상한 생각한 거 아니죠? 저 누나랑 저와의 관계.”
“글세~.”
“어? 아줌마 질투하신 거 같은데? 히히.”
“무, 무슨 소리야. 아는 형이랑 친구라면서···.”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는지 은경은 순간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길거리에서 여자와 만난 어린 섹스 파트너.
물론 친구의 아들인 용준과 자신이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가 마주친 여자가 무슨 관계인지를 물어본 시점에서 은경은 분명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쉽게 의심이 풀렸고, 곧바로 찌르고 들어온 용준의 반격에 은경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잽 펀치 정도의 주먹을 날린 용준은 그것이 훅으로 바뀌어 얻어맞은 은경의 당황하는 표정을 보자 속으로 신이 났다. 평소엔 좀처럼 허락해주지 않는 더 진한 스킨십을 하기로 했다.
“괜찮아요. 전 은경씨 뿐이니까~ 다른 여자는··· 흐흐. 절대 눈에 안 차니까요.”
용준은 은경의 팔을 잡아끌어 자신의 팔에 끼워 팔짱을 했고, 나란히 주차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만 이런 행동을 허락해주는 은경이었지만 용준의 말에 감동받았는지 차에 도착할 때까지 팔짱을 풀지 않았고, 다행인 것은 두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마다 그들을 애인 사이보다는 엄마와 아들 혹은 막내동생과 큰 누나 정도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아줌마도 확실히 여자인 거야. 아무리 쿨한 사이라고 선을 그어도 결국엔 나랑 사귄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젊고 예쁜 여자를 질투하는 자신의 나이 든 섹파.
자신의 농담에 얼굴에 살짝 홍조까지 띄면서 당황하는 표정을 짓던 은경. 그 모습이 귀엽게 생각됐다.
“우리 이대로 좀 더 걸어요. 근처 공원도 걷고 연인들끼리 걸으면 헤어지게 된다는 길도 있거든요? 나름 명소던데 거기도 가봐요.”
근처에 있는 고궁 벽을 따라 펼쳐진 길.
연인이 그 길을 걸으면 헤어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보통 젊은 연인들이 자주 찾는 그 길을 용준은 은경에게 가자고 제안하고 있었다.
연인들은 보란 듯이 절대 헤어지지 않겠다면서 찾는 길. 용준은 이혼 후에 운동과 일에만 매진해온 은경을 데리고 그런 장소들을 가고 싶었다. 은경과 헤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인들이 찾는 길’을 그녀와 함께 걷고 싶었던 것이다.
은경은 세은을 만난 이후 그리고 용준에게 ‘아줌마 밖에 눈에 안 들어와요’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저 용준의 팔짱을 낀 채로 조용히 그를 따를 뿐 예전과 같이 어린 용준을 놀리거나 장난을 치는 일도 없었다.
용준은 근처의 관광 명소인 언덕길을 은경과 손을 잡고 걸어올라 가보기도 하고, 고궁 안을 들어가 산책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인 고궁 길을 따라 걸으려 할 때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헉? 비 오네···.”
“날씨가 많이 흐리더니 결국엔···.”
두 사람은 급히 지붕이 있는 곳으로 몸을 피했지만 몸은 이미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다.
“어떡하지?”
옷을 흔들면서 말리는 은경의 모습을 보며 용준은 순간 눈이 번쩍거렸다.
비에 젖어 몸이 달라붙은 그녀의 모습.
항상 가지고 다니는 수건을 꺼내서 그녀에게 건넸지만 머리카락을 완전히 적신 물기를 닦아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더욱 몸에 달라붙어버린 검은색 초미니스커트.
꾸준한 운동 덕분에 나날이 더욱 몸매가 좋아지는 은경의 각선미가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 더욱 길게 뻗어있는 느낌을 주었다.
하이힐 위로 계속해서 튀기는 빗물을 보며 은경이 투덜거렸다.
“무슨 날씨가 이렇게 변덕스럽데···. 비는 안 올 것 같더니만.”
“그러게요. 오늘 일기예보에도 흐리기만 하고 비는 안 온다고 했는데···. 그래서 데이트 약속도 잡은 거였는데···.”
데이트. 그 설레는 단어.
그동안 집에서 마음껏 서로의 육체를 탐닉했던 두 사람이지만 은경의 소녀적인 감성을 꽤나 흔들게 하는 말이었다.
이 아이는 지금까지 나랑 만나는 걸 모두 데이트라고 생각했었구나···.
눈물이 핑 도는 것만 같았다. 그저 연상인데다 몸매가 좋은 자신과의 섹스를 노리고 만나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까지 했었는데. 물론 용준의 첫경험 상대가 자신이긴 하지만···.
다시금 용준에 대한 욕망이 불타올랐다. 오늘 그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비록 나중에 어떤 결말을 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오늘만큼은 용준을 천은경이라는 한 여자의 남자로 만들고 싶었다.
“용준아, 우리 잠깐 쉬었다 갈까? 옷도 말릴 겸···.”
“쉬었다가 가자구요?”
“응, 근처에 모텔 같은 데라도 가서···.”
‘모텔?’
용준 입장에선 깜짝 놀랄 말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항상 은경의 집에서 데이트를 하던 두 사람.
물론 대부분의 시간이 밥을 먹는 것 외엔 섹스로 채워지긴 했지만 좀처럼 집밖에선 둘만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었다.
숙박시설은 고사하고 영화관에 가는 것마저 조건을 달아서 찾았던 두 사람인데 갑자기 모텔에 가자니. 그것도 한낮에···. 하지만 그녀의 그런 제안이 고맙기만 했다.
“야, 그걸 왜 찾냐? 너 잘 안 서냐?”
그동안 은경에게 밥을 얻어먹으며 돈을 조금씩 모았던 용준은 어제 학원에서 만난 윤진에게 발기부전제 하나를 부탁했었다.
중국산 짝퉁을 사라며 투덜거리던 윤진은 결국 어떻게 구했는지 정품 3알을 가져다 주었었다. 주머니 안에 있는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어느새 은경과 함께 모텔에 도착했다.
“방 주세요. 제일 비싼 방으로.”
“비싼 방이요? 네, 알겠습니다.”
골목 안에 있고,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을 것 같은 모텔을 일부러 골랐다.
일반 모텔과 다르게 호텔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겉으로 봐도 인테리어가 대단해 보이는 고급 모텔. 아마도 젊은 연인들이라면 가격이 부담돼서 찾지 못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곳이었다. 다만 이런 곳을 찾으려 돌아다니느라 비를 더 맞았다는 것이 문제였겠지만.
비가 오는 주말의 낮시간대. 손님은 생각보다 없었다. 카운터에 있는 사람은 직원과 용준, 은경이 전부인 상황. 어렵지 않게 키를 받아든 용준은 제일 비싼 방이 있다는 최상층으로 은경을 데리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안. 어색하기만 한 분위기가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물론 모텔에 아예 안 와본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을 보던 카운터 직원의 히죽거리는 미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두 사람을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그저 연상연하 커플? 아니면 돈에 팔린 몸 좋은 젊은 놈이 평소 관리를 잘 받은 부잣집 사모님을 서비스 해주는 관계? 흔히 말하는 스폰서 말이다.
[503호에요. 제일 끝방.]
툭명스럽게 방을 알려주던 직원의 말을 되새기며 용준은 드디어 문을 열고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이미 다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은데다 실내의 공기 때문에 눅눅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에어컨 바람이 쏟아지며 두 사람의 숨결을 조금은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잠시만요.”
용준은 입구 옆에 있는 욕실로 들어가 타올 하나를 꺼내왔다. 그리곤 그것을 바닥에 깔아놓은 후 은경에게 들어가라고 했다.
아직도 옷이 몸에 잔뜩 달라붙은 은경의 S라인. 그녀가 자기 앞에서 옷을 벗는 상황이 눈앞에 오자 아랫도리가 고개를 들었다.
은경의 매혹적인 알몸을 본 것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자신의 앞에서 달라붙은 옷을 흐느적거리며 벗을 은경의 모습. 왠지 굉장히 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줌마가 옷 다 벗기 전에 덮쳐버릴까?’
비 냄새가 나는 끈적한 몸. 그 상태로 은경과 밤새 섹스를 하는 것도 꽤나 매력적인 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은경의 입에선 예상 외의 답이 흘러나왔다.
“여자는 옷 벗는데 시간 오래 걸리니까 너 먼저 벗고 씻어.”
아차. 은경 역시 용준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몸에 달라붙은 티셔츠. 최근 들어 복근이 제대로 튀어나오기 시작한 용준의 몸.
그의 넓직한 가슴에 달린 두덩이 젖가슴과 그 아래 빨래판처럼 튀어나온 여섯 개의 주머니를 은경은 보고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지를 벗는 순간 두툼하게 튀어나와있을 팬티 안의 그것도.
“아줌마 먼저 씻으셔야죠. 전 잠깐 몸 좀 말리고 있을테니까 먼저 씻으세요···.”
“아니야. 너 먼저 씻으라니까. 난 씻으려면 오래 걸린다구.”
익숙한 은경의 집이 아닌 모텔.
아무리 호텔 수준의 모텔이라곤 하지만 건물주인 은경의 꼭대기 층 집과는 차이가 있었다.
낯선 환경 때문인지 남편과 이혼한 뒤 처음으로 남자를 만나고 있는 은경이나 동정을 그녀에게 바친 연애 미숙아 용준은 서로 먼저 씻으라는 말다툼을 한참동안 하고 있었다.
결국 용준이 팬티만 입은 채로 욕실에 들어갔고, 은경은 그 뒷모습을 보며 잠시 한숨을 내쉬며 생각을 하다가 빗물에 흠뻑 젖어있는 옷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베이지색 브래지어와 똑같은 색의 팬티만 남은 은경의 복장이 입구쪽 거울에 살며시 비쳤다. 은경은 다시금 한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욕실 문을 열었따.
“헉. 아줌마···. 저보고 먼저 씻으라면서요···.”
사실 용준이 욕실에 먼저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은경을 생각하며 먼저 자위 한 게임을 하려고 했던 것.
용준과 친하게 지내는 윤진은 섹스를 오래 하려면 자위를 먼저 한번 하고 여자를 만나라는 말을 평소에도 여러번 해주었고, 실제로 가끔씩 스트레스를 풀러 유흥가에 갈 땐 항상 화장실에 먼저 들러서 자위를 하고 갔다. 윤진과 어울리는 학원 동생들, 특히 유흥가를 함께 들락거리는 동생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용준은 자위를 하려고 하다가 걸렸다는 사실보다 눈처럼 아름다운 알몸을 한 채로 욕실에 따라 들어선 은경의 모습을 보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욕실에서 그녀와 마주친 것이 한두번은 아니지만.
처음 그녀를 안았던 그 날의 추억이 생각났다. 샤워를 하면서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하지만 그 때보단 많이 여유로웠다. 이제는 아줌마의 알몸을 보면 당장이라도 쌀 것만 같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생기진 않으니까. 용준은 수건 한 장을 은경에게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