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13화. 못 먹는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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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보게 된 핸드폰 속의 사진들.
그날 이후로 용준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은경과의 채팅이었다.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면 평소 얼굴을 마주치고 하지 못했던 말들이 과감하게 쏟아져나왔다.
은경은 아직 메시지를 보내는 법을 잘 모르는지 문자에 쓰이는 이모티콘 같은 잡다한 것을 물어보곤 했고, 용준은 그런 것들을 가르쳐주다가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나 고민들을 말하게 되었다.
[정말이야? 너도 클럽에 가봤어? 하긴···. 네가 그런 델 못 갈 나이는 아니지.]
이상하게도 그런 문자메시지를 볼 때면 마치 은경이 자신의 눈앞에서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는 듯한 아쉬움이 느껴졌고, 용준은 그것이 혹시 은경의 질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더 과장해서 말을 해주었다.
[정말? 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고? 혼자산다고 하면서?]
[네.]
[그거 완전 꼬리친 건데···. 너 정말로 안 간다고 했다구? 여자애 얼굴이 별로였니?]
[아니요. 꽤 괜찮았어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정말?]
다른 대화들과는 달리 용준이 만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은경은 집요하리만치 그 때의 상황들을 물어보았고, 용준은 은근히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근데 왜 안 따라갔어? 여자애 쪽에서 널 마음에 들어했던 거 같은데?]
[몸매가 별로였어요.]
[뭐? 몸매도 좋다고 했잖아?]
[전 눈이 꽤 높거든요. 최소한 은경이 아줌마 정도는 돼야···.]
뒷부분을 적어놓고도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용준은 결국 메시지를 보냈고, 잠시동안 은경은 답장이 없었다.
[우리 용준이 아줌마 놀리는 구나?]
[놀리긴요. 제 진심인데요? 아줌마 몸매 엄청 예쁘시잖아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사실은요···. 그 때 아줌마 핸드폰 설정하다가··· 몰래 봤어요.]
[헉. 어디까지 봤는데?ㅠㅠ]
눈물 흘리는 표시인 ‘ㅠㅠ’가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검은색 옷 입으신 모습 봤어요. 카메라 보고 윙크하고 계신 거.]
메시지를 보내면서 용준은 자기도 모르게 큭큭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야, 장용준!”
“은경이 아줌마?”
“너, 왜 허락도 받지 않은 짓을 했어? 속옷 입은 사진 다 봤단 말이야?”
“네···. 어쩌다 보니···.”
“아이구.”
“히히. 히히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용준. 한번 터진 웃음은 그치지 않았다. 은경은 그 소리를 듣고 약이 오르는지 몇 번 잔소리를 했지만 결국에 가서는 그녀 역시 용준처럼 핸드폰에 대고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근데 아줌마 몸매 정말 예쁘시더라구요. 사실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처음엔 옷 입은 사진만 보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계속 넘기다 보니···. 아줌마, 죄송해요.”
“휴우. 쪼그맣던 게 이렇게 커가지구···.”
“쪼그맣던 게?”
“그래. 요 녀석아!”
“히히. 절 언제 보셨다구 쪼그맣단 말을 하세요?”
“왜 못 봐! 너 기저귀 갈아주던 게 엊그제 같은데!”
“기저귀? 정말요?”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은경은 언젠가 정숙의 부탁을 받고 아기 용준을 보던 일들을 얘기해주었다. 용준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그럼 아줌만 옛날에 내 나체를 다 본 거네? 내 젖꼭지도, 엉덩이도, 그리구 꼬추도.’
살짝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자극이 됐다. 언젠간 그걸 핑계로 은경에게 벗은 몸을 보여달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하면서.
“휴우···. 어쨌든 너 다음에 만나면 알밤 먹여줄거야. 쪼그만 게 응큼해가지구!”
“알았어요. 얼마든지 맞아드릴게요. 아줌마가 때리신다면요. 헤헤.”
두 사람의 대화는 단 한 번의 끊김 없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것은 평소에 또래 여자애들이 유치해 보여서 대화도 잘 섞지 않는 용준이나, 자기보다 19살이나 어린 용준과 분명 세대차가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던 은경이나 모두 신기하게 생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용준아, 남자들은 다 자기보다 어린 여자가 좋지?”
“네? 뜬금없이 왜 그런 걸 물어보세요?”
“예전에···. 아줌마가 예전에 말이야···.”
은경은 어느덧 용준과의 대화가 편해졌는지 전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엔 경제적으로 어렵게 시작했던 두 사람의 결혼생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잦아들고, 결국에 가서는 스무 살 가까이 어린 여비서와 바람이 나버렸던 전남편에 대한 험담.
은경의 목소리에는 이제 전남편에 대한 배신감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아쉬움이 가득해 보였다.
여자로서의 자신감이 줄어들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부심 역시 줄어들어버린 은경.
용준은 그런 은경과의 대화에서 어쩌면 그녀가 운동에 집착하고 외모를 가꾸는 것은 전남편의 배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간 만나면서 인생 망친 거지 뭐···. 어린 나이에 아무 것도 모르고 5살 많은 남자 만나서 이거 하라고 하면 이거 하구, 저거 하라면 저거 하구···. 시집와서 살림하고 남편이라는 뒷바라지하면서 20년을 가깝게 보냈어. 그러다가 정신 차려보니까 이렇게 아줌마가 돼있지 뭐니. 완전 세월을 도둑맞은 기분이야.”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줌만 지금도 엄청 예쁘시고, 몸매는 더 멋지신데요. 왜 자기 자신을 그렇게 낮게 보세요? 제 눈엔 아줌마처럼 아름다운 여자도 없는 거 같은데···.”
“정말? 호호. 우리 용준이 말하는 거 봐. 너무 예쁘다, 너.”
“제 진심이에요. 아줌만 정말 예쁘고··· 섹시하시기까지 한 걸요?”
“섹시? 너 섹시하다는 뜻이 뭔줄 아니?”
“제가 왜 모르겠어요? 그건···.”
‘남자가 여자랑 자고싶다는 뜻이죠’라는 말이 입 언저리까지 튀어나왔지만 용준은 말 끝을 흐렸다.
“후후···. 나도 지금이라도 다른 남자 만나서 데이트도 하구, 새 인생 살고 싶다···. 그래, 용준이 너처럼 요즘 젊은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키 크고 잘 생긴 남자. 나도 그런 남자 좋아해.”
“아줌만 아직 젊으시잖아요? 운동도 열심히 하시구.”
“말이라도 고맙다.”
“진심이라니까요?”
“그래. 용준이 너도 정말 멋있어. 웃을 때 특히 얼마나 귀엽고 잘생겨 보이는지 몰라. 운동을 해서 그런지 몸도 정말 멋있구.”
“우와. 아줌마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은데요?”
“나도 진심이야.”
“히히. 저도 말이라도 고맙네요.”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분위기는 너무도 좋았지만 서로가 약간은 껄끄럽고 높아 보이는 두 사람 사이의 벽을 넘을까 말까 고민한다고나 할까? 어색함을 느낀 은경이 먼저 가벼운 농담을 해보았다.
“내가 열 살만 젊었어도 용준이 너한테···. 아니구나, 스무 살은 더 어려져야 되네? 나 너무 늙었다···. 정말···.”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뭐?”
어쩌면 은경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그녀를 생각하며 책상 앞에 앉아서 바지를 내릴 때도, 샤워를 하다가 불현 듯 생각난, 비오는 날의 은경을 생각하며 단단하게 발기된 자신의 심볼을 잡고 용두질을 칠 때도. 용준은 은경에게 말 할 이 대답을 준비한 것인지도 몰랐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세요. 절대로 못 먹는 것도 아니잖아요? 싱싱하고 예쁘고 잘 생기고 귀여운 감이면 찔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잖아요?”
오랫동안 생각해온 말이라서 그런지 말을 하는 순간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말을 마친 직후 용준은 너무 어설픈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 더 세련되고 은밀하게 말을 했어야 했는데···.
진심이 담겨있는 용준의 말. 은경은 충분히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아직 어린 용준이 객기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은 당연히 들 수 밖에 없었고. 용기가 필요했다. 어설프고 설익은 아들의 친구의 대쉬에 대한 진실된 대답을 할 용기.
“용준아.”
“······.”
“정말로 찔러봐도 될까? 정말로 못 먹는 감인지, 먹으면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고 싶은 감인지···.”
“아줌마···.”
“응?”
“그럼 아줌만 가만히 있으면 돼요. 제가 먼저 다가갈게요. 아줌마한테 작업도 먼저 걸구, 아줌마 상처입지 않게, 내가 다 할게요.”
속사포처럼 진심을 말해버린 용준. 그리고 다시 은경의 대답을 듣기 위해 핸드폰을 귀에 가까이 가져갔을 때 전화기는 꺼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