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나 자취하거든? (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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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나 자취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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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준씨는 어디 살아요?”

“성수동 근처요.”

“성수동? 그럼 우리 집이랑 가깝네?”

“어디 사시는데요?”

“우리 집? 면목동.”

‘면목동···?’

그리 가까운 거리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용준의 나이가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미라의 관심은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았다.

글래머 스타일에 화장이 짙은 미라는 일부러 그런 복장을 한 듯 가슴 부분이 잔뜩 파인 셔츠를 입고 있었다.

하얀색에 줄무늬 라인이 몸매의 선을 따라 그어진 상의

얼핏 보면 줄무늬가 몸매라인인 것 같다는 착각을 느끼게 해줄만한 옷이지만 용준이 보기엔 그 라인의 가슴 라인보다 실제 미라의 가슴이 훨씬 큰 것 같았다.

화장을 진하게 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예쁜 얼굴이었기 때문에 미라의 얼굴은 네온사인 아래에서 더욱 섹시하고 예쁘게 보였다. 최소한 학원에서 마주치는 재수생 여학생들보다 더.

“우리 말 놓자. 누나라고 불러도 되구. 아님···.”

“음···. 누나라고 부를게요. 미라 누나.”

“후후. 생각보다 성격이 좋네? 서울대생은 다들 그런 건가?”

“아니에요. 그런 거···.”

재수를 하기 전까진 공부라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한 게 거의 전부라고 볼 수 있는 용준은 처음에 서울대생이라고 거짓말을 해버린 윤진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남녀가 만나는 부킹의 현장이라서 그런지 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정도가 전부였지만 혹시라도 삼각함수나 어려운 영어단어에 대한 질문이 나올까봐 용준은 조심스러웠다.

“너 오늘 우리 집 갈래?”

“누나네··· 집?”

“응, 우리 집 비었거든. 라면이라도 한 그릇 먹고 가든가.”

“라면이요? 저 배부른데···.”

“얘가 순진한 거야? 멍청한 거야? 너 저기 안 보여?”

용준의 대답에 깔깔거리며 웃던 미라가 손가락으로 테이블 바로 앞쪽을 가리켰다.

건너편 테이블에는 윤진과 세은이 서로의 얼굴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술을 입에 넣은 채로 상대방의 입에 건네주기도 하고, 서로의 볼과 목을 핥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술기운이 올라왔는지 세은의 입에 있던 침이 입가에 흐르자 윤진은 그것을 혀로 날름 핥아먹으며 씨익하고 웃어보였다.

세은은 그런 윤진의 반응을 보며 다시금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는데 그 순간 용준의 눈에도 세은의 젖가슴을 옷 위로 마음껏 주무르고 있는 윤진의 손이 보였다.

세은의 가슴은 미라보다 크진 않았지만 입고있는 상의가 달라붙어서인지 브래지어의 문양까지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 위를 한없이 세게 주무르고 있는 윤진의 손길이 용준은 부럽기만 했다.

“어때? 오늘 우리 집 갈래? 나 자취하거든.”

“그래두 집에···.”

“아, 미친새끼 정말!

“네? 누, 누나···.”

순간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난 미라가 짜증난 얼굴로 용준을 향해 소리쳤다.

“병신같은 게 사람 가지고 노나. 야!”

“······.”

“이 정도 말을 하면 알아들어야지. 어리다고 유세부리나.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그런 생각도 없이 룸에 들어오라구 한 거야? 재수없어. 정말!”

“왜? 무슨 일인데?”

그 때까지 소파 위에 거의 눕다시피한 채로 세은과 키스를 나누던 윤진이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용준과 미라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던 윤진은 상황을 눈치챘는지 한숨을 쉬었고, 얼마 후 미라의 손에 이끌려 세은이 룸을 나가자 윤진의 한숨소리는 이전보다 더 커져갔다.

“야, 장용준.”

“네···.”

“아까 내가 한 말, 무슨 뜻인지 모르겠냐?”

“그게···.”

“동생이 됐으면 형이 잘되길 빌어줘야되는 거 아니냐? 다 된 밥에 니가 지금 재 뿌린 거라구. 알기나 하냐?”

“죄송해요···.”

“휴우···. 됐고. 그만 들어가자.”

“형, 앞으로 잘 할게요. 다시···.”

“됐엄마. 더 해봤자 너만 힘들구, 나도 귀찮구. 그냥 들어가자구.”

“······.”

두 사람은 클럽을 나와 곧바로 헤어졌다. 윤진은 정말로 기분이 상했는지 용준의 인사를 받자마자 곧바로 택시를 타고 가버렸고, 잠시 후 용준 역시 택시를 잡아타고 홍대입구를 떠났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불꺼진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낯익은 실루엣이 그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장용준!”

“어, 엄마···?”

“너 정말···.”

“엄마, 그게 아니라···.”

“어서 이리 앉아봐!”

정숙은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있다는 듯 그를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곧바로 용준을 타이르기 시작했다.

“너 학교다닐 때 내가 공부 못 한다고 혼내길 했니? 잔소릴 했니? 재수도 네가 해보겠다고 해서 군말 없이 보내준 거잖아? 한 달에 너한테 들어가는 돈이 얼만줄 알아? 아무리 아빠가 사업하구 돈이 있다고 해도 꽁돈 들여가면서 널 공부시키는 게 아니잖아.”

“······.”

“공부도 안 하고 놀러다니기나 하구. 엄마가 어떡해야 되니···. 용준아, 대답 좀 해줘봐! 내가 어떻게 해야 네가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겠니?”

“그게···.”

“학원에서 선생님한테 전화왔었어. 너 요즘 공부도 안 하구 딴 생각만 하는 거 같다구. 혹시나 집에 늦게 들어오면 나쁜 길로 빠질지도 모른다고 얼마나 걱정을 하셨는지 아니? 근데 이렇게 빨리··· 흐흑.”

“엄마···.”

밤새도록 울 듯이 꺼억거리며 눈물을 쏟아내는 정숙을 보며 용준은 그저 미안할 뿐이었다. 이 때만큼은 가끔씩 눈가에 아른거리는 듯한 비에 젖은 은경의 모습도 잊은 듯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너무 멍청했어···.’

자신의 신세가 재수생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용준은 잠시 학원에 열심히 다니고, 밤늦은 시간에 학원 담임이 운영하는 자습시간에도 남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운동에 시간을 더욱 투자하면서 다른 생각을 접으려는 듯 열심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결심 역시 그리 오래가진 못 했다. 은경과 집에서 마주치는 일이 많아지면서부터 다시금 용준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오랫동안 자신이 바래왔던 듯이.

초가을의 어느 날 저녁, 운동 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용준은 거실에서 엄마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은경과 제대로 마주쳤다.

아주 오랜만의 만남. 갑작스럽게 그녀를 집안에서 마주친 용준은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현관문 근처에 서있었고, 그 모습을 본 은경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용준을 바라보았다.

“용준이 왔구나? 더운 데 수고했네? 어머머, 내 정신 좀 봐. 이제 가봐야겠다. 용준아, 우리 다음에 보자?”

운동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젖어 돌아온 용준.

은경은 그의 옆을 스치고 지나갈 때 잠시동안 온 몸을 찌르릇 홀리는 듯한 전기를 맛 보았다. 

젊고 강한 남성의 신체에서 나오는 땀냄새 때문일까? 아니면 얼핏 봐도 큰 키에 건장한 체구가 든든한 용준의 몸에 자기도 모르는 본능적인 욕구를 느낀 것일까?

현관문 근처에서 멈춘 은경은 자기도 모르게 야릇한 시선으로 용준을 바라봤지만 잠시 후 자기 머리를 톡톡 손끝으로 치면서 정숙의 집을 떠나버렸다.

“엄마, 냉커피 좀 타줘.”

“알았어. 수고 많았어. 아들~.”

한 밤의 꾸짖음 후에 정신을 차린 듯 열심히 학원을 다니는 아들. 

정숙은 목이 마른 아들을 위해 커피를 타주었다. 용준은 냉커피를 마시며 잠시 거실에 앉아 TV를 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엄마.”

“왜?”

“근데 은경이 아줌마는 어디 살아?”

“은경이?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진 않은데 살어. 걔 이혼한 건 알지? 남편한테 위자료로 건물 받아서 아무 우리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릴 거야.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아니···. 매일 우리 집에 오는 거 같아서···. 어디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구.”

별다른 뜻이 없는 질문임에도 갑자기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듯한 용준을 보자 정숙은 무언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왜 용준이 자기 친구한테 관심을 가지고 집이 어딘지 물어본 걸까? 한번도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는 애가. 

정숙은 그런 아들에게 눈을 가늘게 뜨면서 소파 옆자리로 바싹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마치 관심있는 여학생에 대한 질문을 한 남학생을 바라보는 여학생의 친구처럼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농담을 하며 물었다.

“그래? 호홋. 우리 아들도 남자라구, 예쁜 여자한테 관심을 가지는구나?”

“그게 무슨 말이야···.”

“후후. 은경이 아줌마 예쁘지? 그치?”

정숙은 더욱 은근한 목소리로 용준의 허벅지에 자신의 허벅지를 붙여가며 다가가 물었다. 빨리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하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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