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4 3.그 여자들의 Y담 =========================================================================
3.그 여자들의 수다 3회
첫날은 우연의 일치라고 치자. 하지만 두 번째는 그래, 나도 오분 전에 도착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잖아. 그리고 그 사람하고 살던 유리 엄마는 퍽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잖어. 근대 그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이거야말로 놀랠 노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니.
그리고 무엇 보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내 이름을 불렀다는 거 였어. 너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언제 우리 이름을 갖고 살았니? 늘 하늘이 엄마, 아니면 누구 의 아내. 그것도 아니면 아줌마, 뭐 그런 식으로만 살아왔었잖어.
근대 그 사람은 내 이름을 불렀어. 나하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만 해도 감격할 지경인데, 수미씨 하고 내 이름을 불러 줬는데 내가 뿅 가지 않고 가만있었겠니.
물론 술 때문에 감정이 약해졌던 탓도 있겠지. 더구나 밀실 안에 단둘이 앉어서 목소리를 낯춰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들떠 있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감격하다 못해 내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 였어.
“수미씨, 그 날 학교에서 수미씨 한테 커피를 얻어 마시고 나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아! 추억은 이래서 아름다운 거야. 난 그때 단순히 유리 아빠라는 것 때문에 자판기의 커피를 빼 주었는데 재민씨는 그 자판기 커피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니 정말 대단한 거 아니겠니.
“어떤 생각을 하셨는데요?”
가슴이 졸아드는 듯한 긴장 속에 침을 삼키며 소녀 같은 목소리로 물었어.
“전 사실 그날 조용하게 유리 담임 선생님 만 면담하고 그냥 집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엄마 대신 아빠가 학부형 회의에 참석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수미 씨와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눈 후에는……”
재민씨가 감개무량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말을 끊더군. 그리고 담배 불을 붙이고 나서 마치 추억을 곱씹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어.
“한마디로 말해서 역시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우리 유리한테 아빠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 보여 주었던 것이고, 그 두 번째는 수미 씨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를 만난 게 그렇게 좋으셨어요?”
세상에서 자기 좋다는 남자를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니……호호호, 그래 무조건 좋다는 것은 모순이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성실한 남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데 기분 나쁠 거는 없잖아. 오히려 가슴이 마구 뛰는 거 있지. 괜히 내가 공주라도 된 기분이 들더라니까.
“네. 그 뭐라고 할까, 지금도 같은 기분이지만, 그 때도 잃어 버렸던 그 무엇을 찾은 듯 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머머, 이럴 수가? 잃어버린 그 무엇이 뭔지는 모르지만 대단히 소중한 것임에는 틀림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지 않았겠니. 그래……맞어……응……표정을 보니까 그런 기분이 단번에 들더라니까? 호호호……응 마치 프로포즈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어.
“제 말이 기분 나쁘셨다면 이해 바랍니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내가 어떤 생각이 들었는 줄 아니. 저런 딱하기도 하지, 난 항상 시간이 있었는데……깔깔깔 그런 생각이 들더라니까. 그래. 너도 그런 기분을 느꼈을 때가 있었다구. 언젠대? 설마 요섭이 아빠한테 그런 느낌을 받지는 않았을테구.
뭐? 너도 그 남자한테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고. 어머머, 너 정말 큰 일 내고 말 애다. 너 그러고도 요섭이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겠지, 나? 나야 이혼녀 아니냐. 완전히 프리 라고, 프리야. 그래……하긴 그때는 프리가 아니었지. 하지만 너 신중해야 한다.
남자라는 동물이 생긴 거 하고는 아무런 상관없이 한번 빨려 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빨아 당기는 힘이 있잖니. 그리고 너 한태 한마디 충고하겠는데, 그 사람 아직도 만나고 있니?
뭐라고? 너희들은 단순히 친구 이상의 사이는 아니라고? 피……그래 영원히 우정을 간직해 봐라. 자고로 남녀 사이란 하느님도 예측 못하는 거 아니잖니. 친구처럼 지내다가 언제 어느 날 호텔로 들어가서 알몸으로 레슬링 할 지 모르니까.
그래 ,알았어. 계속할게. 그 대신 너 내 이야기 끝내고 그 남자하고 어느 선까지 진행되었는지 꼭 말해 주어야 한다. 응……그럼 널 믿지.
재민 씨는 내 마음을 풍선처럼 만들어 놓고, 할 말 다 했다는 얼굴로 말없이 담배를 피웠어. 그 담배 피우는 모습이 얼마나 멋지게 보였던지, 나는 손에 땀이 흐르도록 가슴을 조이면서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어.
“수미씨?”
그러다, 내가 너무 목이 말라서 맥주를 한 모금 마시려고 컵을 잡을 때 였어. 재민씨가 갑자기 타는 듯한 눈동자로 나를 펴다 보는 게 아니겠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컵을 잡고 있는 내 손목을 턱 쥐는 게 아니겠어.
“왜……왜 요?”
난 남자의 손이 그렇게 뜨겁다는 걸 처음 느꼈어. 물론 하늘이 아빠하고 연애를 할 때도 느껴 보지 않았어. 그 인간하고는 너도 알다시피 친구처럼 지내다가 연인 사이로 발전해서 결혼 한 거 아니니.
근데 그이 의 손은 정말 불덩이 같더라구 단순히 내 손만 잡고 있었는데 내 몸 전체가 불덩이처럼 뜨거워지고 있는 것 같아 목소리가 떨려 나왔어.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되는 줄 압니다. 하지만 나는 수미씨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거니. 내가 철없는 이십대 초반의 아가씨도 아니고 초등학교 이 학년 다니는 딸이 있는 유부녀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날 사랑한다는 말이 통하기나 하는 거냐구.
하지만 그때는 그 말이 충격적으로 와 닿더라구. 일이 진행되려는 조짐이었는지 모르지만, 난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 속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어. 나 같은 걸 뭐가 볼 것이 있다고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사랑을 고백하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죄송합니다. 내 말에 화가 났군요.”
내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더니 재민씨가 한없이 절망하는 목소리로 사과를 하더군. 나는 그게 아니었는데 말야.
“아니에요. 화가 날 것 까지는 없지만……”
아! 뭐라고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거 있지, 그렇다고 고개를 들어서 재민씨의 얼굴을 볼 수 도 없었어. 보나마나 불타는 눈동자로 내 얼굴을 뚫어지도록 쳐다보고 있을 거니까. 하긴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 날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지만 말야.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 진실을 이해 해 주신 다니 전 더 없이 기쁩니다.”
내가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였어. 재민씨가 내 손을 힘주어 잡으며 기쁜 목소리로 그렇게 말을 하는 게 아니겠니. 그때서야 난 길게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었어. 일단은 그 사람을 절망 속에서 구해 줬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어.
“하지만 우린 서로 가정이 있는 사람들 이……”
그렇다고 내가 철부지처럼 마냥 그 사람의 사랑을 받아 줄 수는 없는 거 아니겠니. 더구나 난 그 인간하고 끝낸 사이가 아니고 법적으로는 엄연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이 였잖어. 그래서 내가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고 막 입을 열 때 였어.
“쉿!”
재민씨가 내 말을 끊으며 일어섰어. 그러더니 내 옆자리로 자리를 옮기는 거 아니겠니. 어머머, 이 남자가 뭐 하려고? 난 덜덜 떨면서 벽 쪽으로 자리를 옮겼어.
“그런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내가 수미씨를 사랑하고 있고, 수미 씨도 내가 수미씨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재민씨가 내 양손을 잡고 차분한 음성으로 말하는 가 했더니 내 어깨를 확 잡아당기는 게 아니겠니. 그 순간 내 기분이 어땠는 줄 알어.
뭐라고? 짜릿했을 거라고? 너 혹시 그 남자하고 그 선까지 간 거 아니니? 아니라구? 그럼 어떡케 그렇게 잘 아냐. 하지만 틀렸어. 난 안 그랬다구.
그 인간, 그러니까 가증스러울 정도로 미운 하늘이 아빠의 얼굴이 번쩍 떠오르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 무서울 정도의 수준을 벗어나서 몸이 떨려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거 였어. 그냥 재민씨의 품에 안겨 학질 걸린 여자처럼 바들바들 떨었어.
“아! 나도 내가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겨우 세 번째 만남이지만 수미 씨를 보고 있노라면 내 이성이 마비되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재민씨의 목소리가 조금 전과 다르게 몹시 떨려 나왔어. 그러는 가 했더니 양손으로 내 얼굴을 부드럽게 부여안았어.
“이……이러면 안돼요.”
나는 이럴 수는 없다고 재민씨를 뿌리치려고 했어. 하지만 몸이 말을 들어줘야지, 그렇다고 재민씨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도 없었어. 그냥 바들바들 떨면서 간신히 말했어.
“허……헉!”
그때 였어. 그이의 뜨거운 입술이 내 입술을 덮친 것은, 재민씨의 입술이 뜨겁게 내 입술을 짓누르고 있을 때서야 나는 그를 밀어내기 시작했어.
“아!……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