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3.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10/14)

12.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태수는 화장실에서 나오다 문 앞에 서 있는 영주를 봤다.

그녀는 태수를 안으며 또 다시 키스를 하려 했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태수가 밀어낸 것이다.

“미안해. 아까는 실수였어. 많이 취했었나 봐. 너도 그렇고.”

“난 실수 아니에요. 정말 박대리님 좋아해요.”

“우리 이러면 안 돼. 난 유부남이잖아. 넌 얼마든지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어. 예쁘고 매력있다고.”

“지금 제 걱정해주시는 거에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런 거 다 알고 시작하는 거니까. 저는 지금 제 기분에 충실하고 싶어요. 박대리님이 좋으니까 그것만 생각할래요. 책임져달라고 안 할게요. 박대리님에게 피해 안 가게 잘 할 수 있어요. 저 갖고 싶지 않아요?”

영주가 다시 안기자 태수는 순간 흔들릴 뻔했다.

김성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태수는 또 다시 영주를 밀어낸 뒤 말했다.

마치 성주가 들으라는 듯.

“분명히 말하는데 더 이상 이런 행동 용납 못 해.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하는 게 좋겠어. 성주씨~ 영주씨가 많이 취한 거 같은데 밖에 데려가서 바람 좀 쐬게 해 줄래?”

태수는 그 말을 남기고 방으로 돌아 갔다.

그런데 방 문을 열다가 얼른 닫아야만 했다.

황부장이 시연을 안고 춤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본 거지만 황부장의 손이 분명 시연의 엉덩이를 더듬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고 태수는 문을 조금 연 뒤 그 틈으로 안을 훔쳐봤다.

음악소리 때문에 둘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지만 황부장의 손이 시연의 엉덩이를 움켜쥔 것만은 또렷이 볼 수 있었다.

난처해하는 시연의 표정. 그것이 태수를 더 흥분시켰다.

아내가 희롱당하는 모습에 분노해야한다고 이성은 말했지만 쾌락이라는 본능이 그것을 잊게 하고 있었다.

시연의 치마가 당겨올려지고, 비록 스타킹을 신었지만, 황부장의 손이 아내의 엉덩이를 더듬는 걸 보니 미칠 것만 같았다.

부풀어오른 물건 때문에 바지 앞쪽이 거북스러웠다.

그런데 태수의 흥분감은 거기서 멈춰야만 했다.

시연이 키스하는 황부장의 따귀를 때린 것이다.

태수는 마치 자신이 맞은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려 얼른 문을 닫았다.

시연이 자신에게 벌을 준 것 같았다. 문이 열리고 시연이 나왔다.

시연은 태수를 원망스럽게 쳐다본 뒤 태수를 밀치고 울면서 뛰쳐나갔다.

태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따라가 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황부장이 태수를 불렀다.

“귀찮게됐군. 그래도 뭐 나쁘지 않아. 몸부림칠 수록 굴복시키는 재미가 더하거든. 박대리 실력을 볼 때가 됐군. 어떻게 해서든 다시 데려와 내 옆에 앉혀. 실수였다고, 사과하고 싶단다고 말하는게 좋겠군. 그리고 기회봐서 내가 준 약을 술에 타서 먹여. 어때? 잘 할 수 있지? 혼자 온다면 내가 많이 실망할 거야.”

태수는 전철역 입구에서 시연을 찾았다.

전화로 겨우 설득해 위치를 알아낸 결과였다.

“오빠가 정말 미안해. 전화로도 말했지만 순간적인 실수였어. 나도 갑작스럽게 당한거라 어쩔 수 없었다고. 영주씨한테도 분명히 얘기했어. 앞으로 이런 일 없게 해 달라고. 못 믿겠으면 영주씨한테 물어봐도 돼.”

시연은 갑자기 당한 사람이 엉덩이는 왜 더듬었냐 따지고 싶었지만 싸움만 계속될 거 같아 참기로 했다.

펑펑 울고 났더니 기분이 좀 나아졌고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알았어. 오빠 믿을게. 나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먼저 들어갈게. 맘 같아서는 오빠 차 타고 싶지만 그러면 안 되잖아.”

“그러지말고 나랑 다시 가자.”

“어딜? 아까 거기? 오빤 내가 무슨 일 당한지 모르지? 나 회사 그만둘거야. 더 이상 힘들어서 못 하겠어. 돈은 여기보다 적게 받겠지만 다른 곳 알아볼거야.”

“부장님이 사과하고 싶데. 실수였다고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래.”

“혹시. 오빠, 다 본 거야?”

“아니야. 그런거. 부장님이 얘기해서 안 거야. 자기가 술 취해 실수했다며 너 좀 데려와달라고 했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대.”

시연은 믿기지가 않았고 황부장의 그 무서운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나 그 사람 얼굴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오늘 일이 아니더라도 계속 같이 일할 자신 없어.”

“사회생활 하다보면 어딜 가든 싫은 사람 만나게 되 있어. 다른 곳에 간다고 그런 사람 없을 거 같아? 직장은 기분 좋게 놀러다니는 곳이 아니야. 밀려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전쟁터라고. 여긴 그나마 나라도 옆에 있잖아. 그리고 우리회사만큼 월급 많고 복지 잘 된 곳 찾기 힘들어. 가장으로서 이런 말까지 하기 창피하지만 갚아야할 대출금을 생각해봐. 이 악물고 열심히 벌어야 한다고. 황부장이 사과한다잖아. 실수였다잖아. 남자들 술 마시면 그럴 수 있어. 더구나 너 같이 예쁜 여자가 눈 앞에 있는데 그런 맘 안 생기겠어? 황부장도 혹시나 해서 건드려 봤다가 너가 강하게 나오니까 꼬리내렸잖아. 지금 처럼 하면 돼.넌 잘 해낼 수 있어. 니가 잘 못한것도 없는데 왜 니가 피해? 그러니까 나랑 가서 황부장한테 사과 받고 기분 좋게 풀자.”

태수의 말은 하나같이 맞는 말이었고 부정할 수가 없었다.

시연은 자기 기분만 생각한 거 같아 태수에게 미안해졌다.

태수의 말대로 어딜가든 그런 남자들은 있게 마련이고 그 때마다 지금처럼 도망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알았어. 오빠. 그렇게 할게. 대신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줘. 믿을 사람, 오빠밖에 없는 거 알지?”

방에는 황부장 혼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시연씨 어서와. 아까는 내가 정말 미안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아니에요. 술 취해서 그러신건데 제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했나봐요. 저도 사과 드려요.”

“그렇게 이해해준다니 고맙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시연씨가 너무 예뻐서 정신을 놔버렸나봐. 우리 술 한잔씩 하면서 잊어버리자고.”

황부장은 시연과 태수의 잔을 채운 뒤 본인의 잔도 채우려 했다.

“제가 따라 드릴게요.”

시연은 얼른 술병을 빼앗아 화해의 의미로 황부장의 잔을 채웠고 세 사람은 건배를 한 뒤 잔을 비웠다.

황부장이 시연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연씨, 나랑 다시 춤 춰주지 않겠어? 제대로 다시 추면서 아까의 기억을 지워주고 싶어. 이번엔 정말 실수같은 거 없을거야.”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춤 추다 벌어진 일이니까 춤으로 푸는게 맞겠네요. 시연씨~ 부장님이 용기내서 부탁하는 거 같은데 한 곡 춰드리지 그래? 그 다음은 나랑도 한 곡 춰 주고.”

시연은 부담스러웠지만 황부장의 손을 잡고 일어 섰다.

자신이 거절하면 안될 분위기였고 태수가 옆에 있으니 괜찮을 거 같았다.

박부장은 시연을 데리고 무대로 나가면서 태수에게 말했다.

“박대리~ 한 곡 추고 나서 시원하게 마실 수 있게 잔 좀 채워놔줘.”

태수는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약을 타 넣을 시간이었다.

태수는 다시 고민되었다.

시연을 다시 데려오긴 했지만 이것이 잘 하는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약을 타는 순간 황부장의 계략의 공범이 되는 거였고 아내를 색마에게 파는 파렴치한 남편이 되는 거였다.

믿을 사람이 태수밖에 없다던 시연의 말이 자꾸 귓속을 울렸다.

시연이 나중에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떤 기분일까?

태수에게 실망할 게 분명했다.

어쩌면 헤어지자고 말할지도 모른다.

태수가 시연의 입장이라면 그럴 거 같았다.

태수는 서로를 안고 춤추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둘의 모습은 너무나 어색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작은 키의 황부장이 시연에게 매달려 있는 형상이었다.

황부장은 시선이 향한 곳이 시연의 가슴이었다.

키 차이 때문에 딱 훔쳐보기 쉬운 눈 높이었다.

황부장의 시선이 가슴에 고정된 것과 달리 시연의 시선은 계속 방황하고 있었다.

태수가 보고 있는게 의식되서인지 아니면 정말 싫어서인지 불편하고 싫은 표정으로 천장의 조명, 모니터 화면 등을 오가고 있었다.

태수는 두 사람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 몹시 흥분됐다.

멋진 왕자와 공주였다면 그냥 아름답게만 보였겠지만 난장이와 공주가 안고 있는 모습은 퇴폐적이고 강한 충동을 일으켰다.

난장이는 태수를 바라보며 약을 넣으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의 손이 공주의 엉덩이에 올려지는 순간 태수는 뭔가에 홀린 듯 약을 타고 술잔을 흔들었다.

시연은 황부장의 손이 엉덩이로 이동하자 당혹스러웠다.

더구나 태수에게 등을 보인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 난감했다.

정중히 치워달라 말하려던 찰라 황부장이 속삭였다.

“부탁이야. 이 정도는 봐줘.”

그렇게 말하니 차마 치우란 말을 할 수 없었다.

신경쓰였지만 태수도 이정도는 이해할 거 같아 내버려 두기로 했다.

다행이 그 이상의 추행은 없었고 음악이 끝나자 자리로 돌아갔다.

테이블 위에는 태수가 가득 따라 논 술잔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연은 조금만 마시려고 했지만

“시연씨~ 이 잔 다 비우고 나랑도 한 곡 추죠?”

라는 태수의 말에 잔을 비워야만 했고 태수에게 이끌려 다시 무대로 나갔다.

정신이 아롱거렸지만 태수의 품이라 안심이 됐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태수는 시연을 등에 업고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황부장이 알려준 모텔로 가기 위해서였다.

“꼭 그 모텔로 가야해. 내 이름을 말하면 특실로 안내해 줄 거야. 난 차 가지고 천천히 갈게.”

황부장의 말이었고 태수는 지금 아내를 넘기기 위해 그의 아지트로 가는 중이었다.

모텔 간판이 보였다.

태수는 아내를 등에 업고 멍하니 모텔을 바라봤다.

아내가 황부장 앞에 벗겨져 유린당할 장소였다.

태수는 갑자기 겁이 났다.

어둡고 칙칙한 주점 안에선 온갖 음란한 생각들에 지배됐는데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걸었더니 제정신이 돌아온 거 같았다.

아내는 어디까지 망가지게 될까?

태수가 원한 건 다른남자에게 안겨 흥분하는 아내의 모습 정도였다.

그런데 왜 하필 황부장인가?

그는 색마였고 단순한 섹스만으로 만족할 위인이 아니었다.

아내를 굴종시켜 노예로 만들게 분명했다.

그에게 시달리며 괴로워할 아내를 생각하자 가슴이 아파왔다.

더구나 그렇게 만든게 태수란 걸 안다면…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황부장에게 아내를 넘기느니 밤거리의 아무 남자나 불러서 아내와 자게 하는 게 훨씬 안전할 거 같았다.

아내를 업고 걷는 동안에도 아내를 힐끔거리며 입맛다시던 놈들은 수두룩했다.

모텔을 못 찾아 헤매다가 길에서 시연과 아는 사람을 만나 같이 보냈다고 할까?

그게 좋을 거 같았다.

일단 핸드폰부터 꺼둬야 할 거 같아 주머니를 뒤지는데 옆으로 차가 멈춰섰다.

“안 들어가고 거기서 뭐해?”

내려진 차 창으로 황부장의 얼굴이 보였다.

태수는 당황하며 얼버무렸다.

“지...지갑을 찾느라고요. 여...여기 있네요.”

“난 여기 있을거니까 빨리 방에 눕혀 놓고 나와. 너는 방키만 주고 가면 돼.”

그는 그 말을 한 뒤 다시 창을 올렸다.

태수는 빨리 바른 결정을 못 한 자신이 한심했다.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모텔 안에 들어서고 있었다.

태수가 아무말도 없이 머뭇거리자 카운터 안 쪽에서 가래 낀 듯한 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방 없습니다. 이 동네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예요. ”

태수는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얼른 다시 나가려는데 목소리가 태수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혹시 황치수 부장님이 보낸 분?”

태수는 황치수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대로 얼어 붙었고 목소리가 들리는 쪽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네.”

“말씀을 하셨어야지. 하마터면 그냥 보낼 뻔 했잖소? 굉장한 물건 하나를 건졌다더니 사실이네. 업혀있는 아가씨를 봤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한 소리 들을 뻔 했잖아. 고년 참 맛나게 생겼다. 카드 주슈~”

“네? 얼마죠? 현금으로 드릴게요.”

“현금 안 받아. 빨리 줘요. 카드.”

“현금 안 받는 곳이 어딨어요? 그러지 말고 얼마인지나 말해요.”

“어디있긴 여기 있지. 주인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 것이지 참 말 많네.”

태수는 안그래도 불안하고 혼란스러운데 그가 현금을 안받겠다고하자 짜증이 났다.

“뭐라고요? 지금 말 다 했어요?”

그러자 문이 벌컥 열리며 군복을 잘라 만든 반바지에 검은 쫄티를 입은 40대 중반 정도의 떡대가 태수 앞에 나타났다.

키는 태수와 비슷했지만 팔뚝, 허벅지, 어깨가 태수의 두배였다.

더구나 다리와 팔에 알수 없는 문신들이 가득 해 태수를 긴장시켰다.

“말 다했다. 어쩔래? 심부름 왔으면 심부름이나 잘 할 것이지 뭔 말이 그리 많어? 너 황부장 밑딲기 아니야? 밑딲기면 밑이나 잘 딲아. 이 새끼야.”

태수는 엄청난 모멸과 공포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존심을 세울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잘 못 한것도 없으면서 먼저 사과했다.

“죄송해요. 오래 업고 있었더니 좀 힘들어서… 카드 드릴게요.”

“이런 보물단지를 업고 있으면서 뭐가 힘들다고. 가까이서 보니 더 미치겄다. 이 년 엉덩이 봐 바. 캬~”

덩치가 우락부락한 손으로 시연의 엉덩이를 주물럭 거렸다.

“죽인다. 죽여. 이런 똥통이면 밤새도록 핥아줄 수 있는데. 크크. 이야~ 가슴도 완전 탱탱해. 이 년 도대체 정체가 뭐야?”

태수는 덩치가 아내를 희롱하는데도 아무것도 못 한 채 멍청히 서 있어야 했다.

덩치가 시연의 긴 머리를 쓸어 올려 얼굴을 보더니 또 다시 감탄했다.

“우리 형님 대단하네. 뭐 이렇게 이뻐. 얼굴까지 완벽하잖아. 이 년 눈매 좀 봐. 색기가 넘쳐서 얼굴만 봐도 빨딱 서겠는 걸. 아 씨발 꼴려서 바지 터지겠다. 아쉽지만 좀만 기다려라. 형님 다음엔 내 차례니까.”

덩치는 그제야 카드를 받아 들더니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뒤 태수의 손에 15만원이 찍힌 영수증과 방 키가 쥐어졌다.

“헛 수작 부리지 말고 얌전히 모셔 놓고 내려와. 충고하겠는데 형님 비위 건드려서 좋을 거 없어.”

태수의 등 뒤로 가래낀 음성이 그렇게 말했다.

태수는 이 여자가 내 여자다 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조용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카메라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 싶었지만 시연을 받쳐야 하기에 그러지 못 했다.

한 손을 빼면 시연이 떨어져 다치지 않겠는가.

방 안은 특실이라 그런지 꽤 잘 꾸며져 있었다.

넓고 쾌적한데다 욕실에는 커다란 월풀욕조도 준비되어 있었다.

태수는 시연을 침대에 내려놓았지만 업고 있을 때 보다 더 큰 무게가 느껴졌고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시계를 보고 있는 덩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여러 번 전화했지만 연락할 수 없었다는 핑계를 위해 시연의 가방을 열고 핸드폰 전원을 껐다.

이렇게라도 해야 죄책감이 덜 할 거 같았다.

이 상황에서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신이 한심했지만 그렇게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결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고 싶었다.

태수는 그렇게 그 방을 나왔다.

덩치가 뭐라 할까봐 빠르게 카운터를 통과한 후 황부장의 차로 갔다.

그에게 키를 넘긴 뒤 수고했다는 그에게 좋은 밤 보내세요 라는 말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불안하면서 흥분되고 잘 치뤘든 못 치뤘든 시험이 끝난, 조금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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