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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내는 왜? (3/14)

3. 아내는 왜?

태수는 하루 종일 시연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다. 만원 전철에서 못 내려 지각을 한 건 어쩔 수 없다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태수는 사무실에 들어선 시연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블라우스 단추가 브래지어 상단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풀려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무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시연의 가슴골로 집중되었는데 박부장의 ‘꿀꺽'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태수의 귀에 들릴 정도였다. 시연은 곧장 박부장의 옆으로 간 뒤 자신이 지각한 이유를 설명했다. 박부장은 시연의 가슴에 시선을 뺏긴 채 질책 대신 그럴 수도 있다며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인턴들과 만나던 첫 날 박부장이 강조한 건 딱 하나였다. 시간을 잘 지키고 절대 지각하지 마라. 그것 만큼은 엄히 꾸짓겠다.

시연은 너그러운 박부장에게 허리 숙여 감사를 했고 밑으로 부풀어 오른 가슴이 태수의 자리에서도 또렷히 보였다. 시연의 감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뒤 돌아서면서 핸드백을 놓쳤고, 그 속의 내용물들이 바닥에 쏟아졌고, 그것들을 줍는 동안 치마가 늘어날 정도로 한껏 부풀어 오른 엉덩이를 박부장이 맘껏 감상할 수 있게 해 줬다. 박부장은 어느새 시연의 엉덩이 쪽으로 의자까지 돌려 놓고 있었다. 태수는 박부장의 면전에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시연을 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내의 칠칠치 못함에 화가 났지만 시연이 많이 당황해서 그런걸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시연은 평소에도 잘 덤벙거리는 편이었다. 태수는 자신이 화가난 이유를 시연이 아닌 박부장에게로 돌렸다. 태수에게 박부장은 부하 여직원의 엉덩이를 의자까지 돌려가며 쳐다보는 파렴치한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핸드백에 물건을 챙겨 일어서던 시연이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진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연은 박부장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고 박부장의 두 팔이 시연의 허리를 감았다.

“한시연씨 괜찮아요?”

“죄송해요. 오래 숙이고 있었더니 현기증이 나서. 잠깐만 이러고 있어도 될까요?”

“난 괜찮으니까 정신 날 때 까지 앉아 있어요.”

“감사해요. 부장님이 안 잡아주셨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

태수는 속이 부글거렸지만 감정을 억누르며 끼어들었다.

“한시연씨 안 다쳤어요?”

태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박부장이 안고 았던 팔을 얼른 풀었고 시연도 다급하게 일어서며 대답했다.

“괘...괜찮아요. 박대리님.”

박부장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시선을 모니터로 돌렸고 시연은 자리로 돌아갔다.

태수는 당장 문자를 보내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정말 우연히 일어난 일이고 자신이 오버하는 거라 생각하며 다시 한번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블라우스 단추는 얘기해야 할 것 같았다.

<너 블라우스 단추 풀렸어. 빨리 채워.>

<오빠. 미안. 오늘 이상하게 실수만 하네. ㅠ.ㅠ

어떻하지? 전철에서 밀릴 때 떨어졌나 봐.

이따가 옷핀 사서 가려야겠다.

나 너무 덤벙거리고 바보같지?>

<그럴 수도 있지. 나 때문에 조금 밖에 못 자서 그런 걸 거야.>

<내가 덤벙거려서 그래. 오빠도 늦게 잤는데 피곤하겠다.>

<실수 한 건 빨리 잊는게 좋아. 오늘 하루도 열심히! 알았지?>

<웅웅>

또 다시 태수의 얼굴이 붉어진 건 그로부터 한 시간도 안 지나서 였다. 시연이 물어 볼 게 있다며 김성주의 자리로 온 것이다. 어제 태수가 인턴들에게 지시한 사항이라 태수에게 물어봐도 될 내용이었다. 물어보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시연이 마치 일부러 가슴을 보여주려는 듯 김성주의 얼굴 쪽으로 상체를 바짝 숙이고 있는게 문제였다. 시연은 김성주의 얼굴은 보지 않고 책상 위 서류만 보며 질문 했는데 태수가 보기에는 김성주가 자신의 가슴을 마음 껏 훔쳐볼 수 있게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그와 반대로 김성주는 시연이 물어보는 서류는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시연의 벌어진 블라우스 속에만 집중했다. 태수는 하마터면 김성주의 뒤통수를 때릴 뻔 했다. 손이 성주의 머리 위 까지 올라 갔지만 참아야 했다. 시연의 질문이 끝났지만 성주는 대답할 수 없었다. 시연이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주는 당황하며 대답대신 옆에 있는 황억만을 불렀고 그에게 대신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시연이 황억만 쪽으로 몸을 돌려 다시 묻기 시작하자 김성주는 의자를 조금 뺀 뒤 이번엔 시연의 엉덩이를 훔쳐봤다. 그러다 갑자기 태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태수는 얼른 모니터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김성주가 손으로 태수를 툭 건드렸다. 성주는 태수가 쳐다보자 손가락으로 시연의 엉덩이를 가리켰다. 그리고 양 손을 들어 시연의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라인을 그리더니 엄지를 치켜들며 입모양으로 ‘죽이죠~’ 라고 말했다. 태수는 성주의 행동에 어의 없어하며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난감했다. 마음 같아서는 무슨 짓이냐며 당장 꾸짓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김성주는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거리를 둘 게 분명했다. 태수가 나무란다고 시연에 대한 관심을 접을리 없기에 차라리 가볍게 동조하는 편이 날 것 같았다. 태수는 김성주가 시연의 엉덩이를 감상하는 동안 황억만을 관찰했다. 황억만은 김성주와 완전 달랐다. 시연의 가슴을 단 한 번도 보지 않고 오로지 서류만 보며 설명하고 있었다. 목소리도 지극히 사무적이고 건조했다.

오늘 늦게 출근한 건 황억만도 마찬가지였고 시연보다 5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하지만 시연과 다른 점은 어제 미리 양해를 구했다는 점이다. 그는 박부장과 태수에게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드려야 한다며 한 시간 정도 늦을 거라고 얘기했었다. 시연에게 관심 있어 집까지 쫒아온 놈이 사무실에선 눈길조차 안주는게 이상했다. 태수는 왠지 황억만이란 녀석이 두렵워지기 시작했다. 오늘 늦은 것이 병원에 간 게 아니라 시연을 쫒아다닌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돋았다.

태수를 불쾌하게 하는 일은 점심시간에도 이어졌다. 평소 사내 식당만 이용하던 박부장이 오늘은 왠일로 나가서 먹자고 했다. 뿐만아니라 자신이 사겠다며 시연에게 뭘 좋아하는지 물어봤다. 시연이 아무거나 괜찮다고 하자 그가 데려간 곳은 방으로 되어 있는 해물탕집이었다. 평소에는 부장이 먼저 자리를 잡으면 부장 옆에 태수가, 그리고 나머지 자리에 인턴들이 앉았었다. 부장은 6인석 테이블의 벽쪽 가운데 자리에 제일 먼저 앉더니 시연에게 손짓해 자신의 오른쪽인 안쪽 구석에 앉게 했다. 말로는 치마를 입었으니 안쪽에 앉으라는 거였지만 치마를 입은건 송영주도 마찬가지였다. 부장은 그것까진 생각 못했는지 시연이 자리를 잡자 태수를 불러 자신의 왼쪽에 앉혔다. 문쪽 자리에는 태수와 마주보고 송영주가 먼저 자리를 잡았고 김성주가 시연과 마주보는 자리를 차지 했다. 황억만은 제일 늦게 박부장과 마주보며 앉았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부장이 썰렁한 유머를 떠들어대자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억지로 웃어주며 부장의 비위를 맞췄다. 황억만은 예외였다. 그는 늘 그렇듯 고개를 숙인 채 테이블 밑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기만 했다. 아주머니가 반찬을 세팅하는 틈을 이용해 태수는 시연 쪽을 힐끔 봤다. 앞에 앉은 조영주가 계속 빤히 보는 바람에 시연을 보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서 였다. 시연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고 그 앞으로 멍하니 시연을 보고 있는 김성주가 보였다. 태수는 김성주를 노려보다 해물탕 좋아하냐는 조영주의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려야했다. 조금 뒤 해물탕이 들어 왔고 아주머니는 조리가 다됐으니 먹어도 된다고 했다. 시연은 자신이 떠 주겠다고 말하며 박부장 앞의 그릇을 집어 들었다. 시연이 해물탕을 담기 위해 엉덩이를 들자 태수는 깜짝 놀랐다. 치마가 올라가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 있어서였다. 스타킹을 신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자극적이었다. 태수는 김성주가 보던 것이 시연의 허벅지였고 그 위치에선 치마 속 까지 보였을거라 생각 들자 불쾌해졌다. 남자들이 시연을 흘끔대는게 처음은 아니지만 밑의 직원이 자기가 보는 앞에서 그런다는게 용납되지 않았다. 태수는 시연이 이 정도로 칠칠치 못했나 생각하며 화가 났다. 아까 시연 쪽을 바라보며 우스개 소리를 하던 박부장도 시연의 다리를 감상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지금 시연의 다리를 보고 있지 않은 건 황억만 뿐이었다. 시연이 박부장의 그릇을 내려 놓고 태수의 그릇을 집으려 하자 조영주가 먼저 집어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시연을 향한 태수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고 자기가 태수를 챙긴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태수는 고개를 돌려 그녀가 건네주는 그릇을 받았다. 조영주가 자신마저 똑같은 부류로 생각하는게 싫어서였다. 그리고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목구멍으로는 음식이 넘어가고 있지만 머릿속은 시연의 허벅지로 가 있었다. 해물탕을 담기 위해 어쩌다보니 치마가 올라간 거고 지금은 다시 고쳐입었을거라 믿고 싶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고 싶었지만 밥알을 깨작거리며 자신만 보고 있는 조영주의 시선이 그를 불편하게 했다. 태수는 고개를 돌리는 대신 시선만 옮겨 김성주를 봤다. 그런데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고 있었다. 몇 번을 다시 확인 했지만 김성주는 밥만 먹을 뿐 시연이 있는 쪽에 관심보이지 않았다. 태수는 그제야 안심이 됐다. 시연이 옷을 고쳐입은 게 분명해 보였다. 시연이 실수 한 거지 일부러 그럴리 없었다.

식사를 하고 나올 때 시연의 치마는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고 태수는 괜한 오해를 했다고 자책했다. 그러나 다시 혼란해지기까지 오래걸리지 않았다. 평소처럼 부장을 따라나서려는데 김성주의 손이 태수를 붙잡았다. 저 멀리 박부장과 시연의 뒷모습이 멀어져 갔다.

텅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태수는 김성주가 한 말을 떠올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잘 못 본 거라고, 오해한 거라고 말했지만 김성주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시연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줘서 경쟁자를 떨어뜨리려는 걸까? 그럴 거라 생각하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김성주는 시연이 작정하고 덤벼드는 모습이 꽃뱀 같다고 표현했다. 첫 인상 부터 남자 꽤나 홀릴 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저돌적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시연 같은 여자는 쉽게 따먹을 수 있다며 자신은 태수를 밀어주려 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박부장이 찜한 것 같으니 일단은 안 건드리는 게 좋을 거라 했다. 어떤 집단에 가든 그런 여자는 꼭 있으며 기다리면 기회가 온다고 했다. 시연은 그런 여자가 아니다. 더구나 정직원이 되기 위해 박부장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다. 태수가 있는 한 정직원은 따논 당상이며 박부장은 임시로 있는 것이고 곧 다른 부서로 갈 거라는 걸 태수가 알려 줬기 때문이다. 아무리 따져봐도 김성주가 잘 못 보거나 거짓말을 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태수가 고민하는 사이 박부장이 사무실로 들어 왔다.

“인턴들은 다 나갔지?”

“네, 다른 부서 인턴들과 같이 판촉행사 지원 나갔습니다. 거기서 바로 퇴근하는거라 부장님께 인사시켜서 내보내려 했는데 안 계셔서 제가 그냥 보냈습니다.”

“잘 했어. 박대리가 알아서 잘 하잖아. 머리가 복잡해서 옥상 가서 담 배 한 대 피고 왔어.”

“무슨 고민 있으세요?”

박부장은 비밀 얘기라도 하려는 듯 의자를 태수 쪽으로 당겨 앉았다.

“아무리 고민해도 판단을 못 하겠어서 말이야.”

“말씀 해 보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도와드릴게요.”

“내가 자네를 믿고 얘기하는 거니까 비밀 지켜야 돼. 알았지?”

“당연히 그래야죠.”

“아까 밥먹으러 갔을 때 말인데 한시연씨가 날 유혹하더라고.”

“네? 한시연씨가 부장님을요? 오해하신거 아니에요?”

태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니야. 확실히 그랬어.”

“뭘 어떻게 했길래요?”

“내 옆에 앉았길래 슬쩍 보니까 치마가 많이 올라가 있는거야. 처음에는 앉을 때 주의 못해서 당겨진거라고 생각했지. 허벅지가 훤히 보이길래 말 해줄까했는데 괜히 말하면 무안해 할꺼 같더라. 자기가 보면 고쳐 입겠지 하고 넘어갔어. 솔직히 다리가 너무 예뻐서 더 보고 싶긴 했지. 내 그릇에 해물탕을 담아줄 때 부드럽고 따뜻한 허벅지가 내 무릎에 비벼지는데 아주 미치겠더라.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걸 겨우 참았어. 그런데 왠지 일부러 비빈다는 느낌이 드는거야. 그리고 밥을 먹다가 힐끔 보니까 치마가 더 올라가 있었어. 이 때 까지도 좀전에 움직인 것 때문에 그런가보다 했어. 그 때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한시연씨가 나를 슬쩍 보더라고. 나는 얼른 안 본 척 했지. 그런데 갑자기 내 허벅지가 따뜻해지는거야. 밑을 보니까 한시연씨 손이 내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었어. 얼마나 놀랬는지 하마터면 씹던걸 다 뱉을 뻔 했다니까. 히야~ 근데 기분 묘하데. 예쁜 아가씨가 내 허벅지를 만지니까 아주 미치겠더라. 손도 너무 예쁜게 만져보고 싶더라고. 내가 원래 양손잡이잖아. 무슨 용기가 났는지 수저를 내려놓고 오른손을 한시연 손 위에 올려놨어. 조그만 손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거야. 왜 있잖아. 무의식적으로 옆 사람 만지고 그러는 사람들. 그런건데 내가 실수하는게 아닌가 겁이 났어. 왠걸, 밑에 있던 한시연 손이 갑자기 위로 올라와 내 손을 잡는거야. 손이 떨리고 있었어. 큰일났구나 생각하는데 내 손을 잡아당겨 자기 허벅지 위에 올려 놓는거 있지. 손과 마찬가지로 허벅지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어. 나까지 떨리더라고. 그래놓곤 자기는 밥을 먹는거야.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있다가 허벅지를 조금씩 쓰다듬었어. 얼마만에 만져보는 스타킹 감촉인지, 그리고 얼마나 부드럽고 따뜻한지. 처음엔 소극적으로 만졌는데 생각해보니 그럴 이유가 없는거야. 만지라고 대 줬으니 어떻게 만지든 내 맘 아니야. 그래서 꽉꽉 주무르며 한시연씨 반응을 보려는데 김성주 그 자식이 빤히 보고 있는거야. 테이블 밑이라 안 보일 줄 알았는데 녀석이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보더라니까.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인상을 팍 썼어. 한 참 무르익었는데 그 놈 때문에 짜증나더라고. 그랬더니 고개 처박고 밥만 먹더라. 그 다음 부턴 완전 내 세상이었지. 허벅지를 만지다보니 본능적으로 점점 안 쪽이 만지고 싶은거야.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데도 가만있길래 이왕 들어간 김에 거기까지 만지기로 했지. 그런데 깜짝 놀랐어. 스타킹이 아닌 야들야들한 맨살이 만져지는거야. 거 있잖아. 오줌 누라고 가운데 구멍난 스타킹. 그걸 입은거 같았어. 음란사이트에서나 보던 걸 한시연씨가 입고 있을지 누가 알았겠어.”

“정말 그런 걸 신고 있었어요?”

태수는 의심스러웠다. 오늘 아침 스타킹 신는걸 똑똑히 봤는데 그건 그저 평범한 팬티스타킹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거기에 구멍이 왜 있겠어? 아무튼 기분 좋게 만지다보니 손가락 끝으로 팬티가 만져지는거야. 처음엔 팬티 바깥으로 까실까실한 음모가 느껴졌는데 가운데 손가락으로 살살 긁으니까 점점 파이면서 그곳 윤곽이 드러나는 거 있지. 누를 때 마다 팬티가 조금씩 밀려들어가는데 느낌이 묘하데.”

박부장은 거기까지 말한 뒤 그 때의 느낌을 음미하는지 말을 멈췄다.

“그래서요? 그 다음은요?”

태수가 애가 타서 묻자 박부장이 감상에서 깬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깝단 말이야. 뜸 들이지 말고 손가락을 넣었어야 하는건데. 글쎄, 막 팬티를 제끼려는데 허벅지에 힘을 잔뜩 주면서 손을 빼게 하더라고. 아쉬었지만 어쩌겠어. 하지말라는데. 장화신은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데 괜히 미안해지더라. 변덕이 심한건지, 아니면 단계별로 진도를 빼자는건지 모르겠네. “

“끝이에요?”

“아직 하나 남았어. 둘이서 걸어 오는데 괜히 뻘쭘하더라. 방에서는 뭐에 홀린것처럼 만지긴 했는데 밝은 곳으로 나오니까 재정신이 들면서 너무 쪽팔린거야. 그 여자가 내가 좋아서 그랬을리는 없고 정직원되고 싶어서 미끼를 던진 게 뻔한데. 그걸 덮썩 문거나 다름없잖아. 어찌해야하나 고민하면서 걷는데 한시연씨가 먼저 말을 꺼냈어. 글쎄, 내가 좋다는 거야.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겠어. 그래서 말 나온김에 솔직하게 물었지. 정직원 되고 싶어서 그런거냐고. 그랬더니 절대 아니라는거야. 자기가 그렇게 까지 해야 정직원이 될만큼 형편 없어보이냐며,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자기 실력으로 충분히 될 수 있다고 화를 냈어. 그저 순순하게 내가 좋아서 그랬데. 볼 때 마다 웃어주고, 오늘 지각하고 실수까지 했는데도 너그럽게 용서하는 모습이 좋았데.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쓸쓸해보여 마음이 아팠데.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나서 뭐든 해주고 싶었데. 사람 마음이 간사한게,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진짜 나를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야. 왜 있잖아. 아빠같은 남자만 만나는 여자들.”

태수는 그래도 이해가 안 됐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것도, 시연이 장인어른을 많이 따른것도 맞지만, 박부장은 아무리 봐도 장인어른과 정 반대의 남자였다.

시연이 좋아할 구석이 전혀 없었다. 태수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동조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또 다른 말은 없었구요?”

“아까는 사람들 식사가 끝나 그런거라면서 퇴근 후에 시간있냐더군. 나랑 같이 저녁 먹고 싶데. “

“그래서 그러자고 했어요?”

“일단 알았다고는 했는데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서. 한시연씨 얼굴이랑 몸매를 생각하면 이게 왠 떡이냐 싶다가도 괜히 마누라나 회사에 알려질까봐 두렵기도 해서 말이야. 아까 김성주가 본 것도 찝찝하고. 김성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한시연만 붙여주면 소문내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김성주랑 한시연을 같이 붙이는 거야. 그러면 뒷 탈 없지 않을까?”

태수가 보기에 박부장은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시연 같은 여자가 날 가지세요 하는데 거부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박부장은 집이나 회사에 알려지는 것 보다 시연을 놓치는게 더 두려워 보였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잠깐 동안 맛 본 시연의 감촉만 들어 있었다.

태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됐다.

지금 박부장이 태수에게 말 한건 상의하는 척 돌려 말하긴 했지만 실무자인 태수에게 시연과 김성주를 합격시키라고 압력을 넣는거나 다름 없었다.

늘 몸을 사리던 박부장에게도 시연은 삼킬수 밖에 없는 독이었다.

태수도 그걸 잘 알기에 그를 막는것보다 시연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부터 알아내기로 했다.

“그렇게 되도록 처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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