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아내는 어떻게 우리 회사에 오게 됐나. (1/14)

1. 아내는 어떻게 우리 회사에 오게 됐나.

태수는 요즘 신이 나 있었다.

하는 일 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술술 풀려나갔기 때문이다. 정말 지금처럼만 계속된다면 대출금 상환도 문제 없을 거 같았다.

기회는 2개월 전 우연히 찾아 왔다.

자신이 속해 있는 인사과의 부장과 과장이 한꺼번에 회사를 그만두면서 행운이 찾아 온 것이다.

새로운 인사부장이 오긴 했지만 그는 이 쪽 일에 경험이 없을 뿐더러 관심 조차 없었다.

자신은 새로운 적임자가 올 때 까지 임시로 있는 거라면서 이번에 새로 신축되는 삼성동 사옥 쪽에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 결과 인사과의 일은 태수가 책임자나 마찬가지였다.

새로온 박지만 부장은 일 잘하는 태수를 좋아했고 같은 종씨라는 걸 알고 부터는 더욱 더 신뢰했다.

때 마침 취업 시즌이 돌아 왔고 태수네 회사에서도 각 부서 별로 인턴 사원을 모집하게 되었는데 그 모든 일을 태수가 총괄하게 되었다.

태수가 속한 인사과에도 두 명을 충원하기로 하고 4명의 인턴을 모집했는데 태수는 그 속에 자신의 아내인 한시연을 포함시켰다.

아내는 아이의 오랜 병원생활로 생긴 대출금 압박에 보탬이 되겠다며 취업을 결심했는데 졸업 후 공백이 있는데다 결혼까지한 여자가 좋은 자리를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직장을 얻는다 해도 적은 임금에 비해 업무량만 많은 곳들일 게 분명했다.

그것은 인사부에 있는 태수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회사 역시 결혼한 유부녀를, 그것도 경력이 없는 신입을 뽑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태수 자신이 모든 것을 총괄 했기 때문에 아내의 서류를 조작해 미혼에, 대학 졸업 후 어학연수를 다녀온 걸로 만들어 버렸다.

아내를 자신의 회사에 취직시키려는 더 큰 이유는 아내의 미모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남자들의 대쉬가 끊이지 않는 아내인지라 자신의 옆에 두어야 안심이 될 거 같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회사 내에서 아내인 한시연의 얼굴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럴수 있었던 건 결혼식 당일이 회사 사장의 검찰 출두일이였고 전 직원이 그 문제에 매달리느라 축의금만 전달했을 뿐 아무도 오지 않아서 였다.

태수는 지금도 이 사건에 감사하고 있었다.

아내인 시연을 그 당시 자신의 상사였던 황부장과 그의 똘만이 조과장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태수는 신부를 보겠다며 집들이를 하라는 그들의 성화를 한 장의 사진으로 무마시켰다.

그 사진은 지금도 태수의 책상에 놓여 있는데, 사진 속에는 정말 못 생기고 뚱뚱한 한 여성이 활짝 웃고 있었다.

그녀는 태수가 대학 다닐 때 귀찮게 따라다니던 후배였는데 발렌타인 데이 날 초코렛과 함께 그 사진을 선물했었다.

태수는 그녀를 자신의 아내라 말했고 그 사진을 버리지 않고 갖고 있던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황부장과 조과장은 회사 내에서도 호색한으로 유명했는데 그런 인간들에게 자신의 소중한 아내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태수의 생각대로 그 사진을 본 황부장과 조과장은 더 이상 집들이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 태수가 있는 한 시연는 이미 취업이 확정된거나 다름없었다.

시연은 태수의 도움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된 후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아이 죽음 이후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데다 임신과 결혼으로 자신의 꿈이 었던 멋진 커리어 우먼의 길도 접어야 했는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 왔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태수와 같은 공간에서 늘 붙어 있을 걸 생각하니 그것 역시 너무 좋았다.

시연이 처음 출근하는 날, 태수는 자신이 잊고 있던 시연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날의 시연은 아이 때문에 찌들어 병원에 있던 이전의 시연이 아니었다.

새로 산 정장으로 멋지게 차려 입은 시연은 영락없는 사회 초년생이었고, 처음 봤을 때의 싱그러움이 다시 느껴졌다.

더구나 출산으로 인해 전보다 한껏 부풀어 오른 가슴과 골반이 옷 맵시를 한층 돋보이게 만들며 여성미를 물씬 풍기게 했다.

태수는 하마터면 출근도 잊은 채 시연을 덮칠 뻔 했다. 늦었다며 시연이 재촉하지만 않았어도 정말 그랬을 것이다.

집과 회사와의 거리는 전철로 열 정거장 이었는데 두 사람은 함께 출근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을 철저히 감추기로 약속했기에, 또 그래야만 했기에 태수는 자신의 차로, 인턴사원인 시연은 전철로 출근해야만 했다.

언제나 새로운 인턴들이 들어 오면 회사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그들 중에서 시연은 가장 돋보였다.

물론 다른 예쁜 여직원들도 많았지만 시연에게서는 뭔지 모를 독특한 매력이 뿜어져 나왔다.

사실 시연은 원래부터 그런 여자였다.

대학 시절에도 수컷들의 본능을 자극시키는 뭔가를 가지고 있었다.

멀리서도 시선을 끄는 외모때문이기도 했지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때 짓는 멍한 표정과 그때마다 살짝 벌어지는 입술이 보는 이로 하여금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태수는 그런 시연이 자신을 좋아해 주고 결혼까지 해준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인사과에 배정된 인원은 시연을 포함해 총 4명이었는데 남자 둘, 여자 둘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일 처리하는 걸 본 뒤 모두 뽑을 수도 있고 한 명도 안 뽑을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남자 하나 여자 하나를 뽑을 계획이었다.

그 중 여자는 당연히 시연이었고 남자는 지켜 본 뒤 말 잘 듣는 녀석으로 고를 생각이었다.

태수는 어차피 떨어뜨릴 것이고 시연과 비교도 되야 하기에 한 명의 여자는 인턴 인원 중 가장 스펙이 떨어지는 인물로 골랐다.

그렇지만 학벌만 떨어질 뿐 23살의 송영주씨는 단정하고 예쁜 아가씨였다.

남자 두 명은 모두 외모가 제일 떨어지는 인물로 선택했다. 아내인 시연을 믿지만 남자로서의 본능적인 선택이었다.

한 명은 28살의 김성주라는 녀석인데 붙임성이 많고 태수를 잘 따랐다.

또 한 명은 23살의 황억만이란 녀석으로 개인적인 집안 문제로 군대 면제를 받았다는데 말수도 적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게 군대에 갔다면 딱 고문관이 됐을 그런 타입이었다.

그는 시키는 일만 했고 그 외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다. 딱 오덕스러웠다.

태수는 박지만 부장과의 첫 인사 자리에서 박부장의 시선이 계속 아내인 시연에게로 향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도 똑같은 남자이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박부장은 좌천되고 퇴직한 황부장이나 조과장 같은 사람이 아니란 걸 태수는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걸고 모험을 할 정도로 대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인사과에서 여직원 성추행 사건 때문에 난리가 났던 사실을 잘 알기에 알아서 몸을 사렸다.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탈은 가끔 시연의 몸매를 훔쳐보는 게 전부였다.

부장의 자리 바로 옆에 공용 사무기기들이 놓여 있었는데 시연과 송영주씨가 그것들을 이용할 때 마다 몰래 그들의 뒷태를 감상하며 입맛을 다셨다.

태수의 자리에서는 그런 박부장의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사무실의 자리는 T 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데 창가 쪽인 T자의 위쪽은 박부장의 자리였고 T자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남자들이, 왼 쪽은 여자들이 앉도록 배정했다.

태수는 박부장과 제일 가까운 옆자리였고 김성주가 태수의 왼쪽 옆, 그리고 황억만이 김성주의 옆인 제일 끝 자리에 앉았다.

태수는 아내인 시연을 자신과 마주보는 자리에 앉혔고 그 옆에 송영주를 앉게 했다.

아내를 박부장 바로 옆에 앉게 하는 게 찝찝했지만 그래도 자신과 마주보는 위치에 있는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태수는 박부장이 아내의 옆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게 짜증났지만 그 정도는 예상했기에 되도록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모든 실무는 태수가 처리하기에 사실 박부장은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태수가 올리는 결재 서류를 대충 본 뒤 사인 해 주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인터넷을 하거나 사적인 전화를 하며 시연을 흘끔거리며 보냈다.

태수는 두 남자 인턴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도 인턴 시절을 거쳤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직원이 되기 전까지는 다른 여직원들에게 찝쩍댈 여유가 없었다.

자칫 그런 모습을 보였다간 자신의 미래가 불안해질 게 뻔했다.

인턴 직원들이 들어 오고 처음으로 형식적인 부서 회식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2차,3차까지 여직원들을 잡아 놓고 술판을 벌였겠지만 지금 박부장은 알아서 몸사리는 타입이라 고기 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회식을 끝내버렸다.

부장이 먼저 떠난 뒤 시연을 포함한 인턴들은 전철역으로 향했고 태수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내가 오지 않자 태수는 시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시연은 인턴들끼리 한 잔 하고 있다며 조금 늦는다는 답문을 보냈다.

태수는 대충 끝내고 빨리 오라고 문자를 보내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시연의 핸드폰에는 태수의 이름 대신 엄마라고 저장이 되어 있어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별 문제될 게 없지만 자신이 아내를 너무 구속하려는 듯 보일까봐서였다.

그런 옹졸한 남자로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본인의 주량을 잘 알고 있는 아내이기에 알아서 잘 조절할거라 믿기로 했다.

문자가 오고간 뒤 두 시간이 지나자 태수는 조금 불안해졌다.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전철역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혹시 몰라 창이 큰 모자를 눌러 쓰고 나갔다.

개찰구 옆에서 기다린지 얼마 되지 않아 혼자 걸어 나오는 시연의 모습이 보였다.

태수는 반가워서 가까이 가려다 얼른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시연과 10미터 정도 떨어져서 황억만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숨어서 지켜보니 황억만은 스마트 폰을 꺼내 아내의 뒷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다.

태수는 시연이 자신의 옆을 지나갈 때에도 숨어서 지켜봐야만 했고 황억만은 시연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시연을 따라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러면서도 스마트폰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동영상을 찍고 있는 게 분명했다.

태수는 화가 나서 주먹을 한 대 갈기고 싶었지만 묵묵히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다.

녀석은 아파트 안 까지 따라 들어 갔고 시연이 엘레베이터를 탄 뒤에는 몇 층에서 멈추는 것 까지 확인 한 뒤 돌아 갔다.

태수는 돌아 나오면서 씨익 웃는 녀석의 표정을 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봐도 정상같지 않았다.

그저 오덕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태수는 녀석이 아파트 밖으로 완전히 사라지고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빠, 어디갔다 온거야?”

“차에 좀. 뭘 두고 온 거 같아서.”

태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연이 먼저 설명해 주기를 기다렸다.

시연은 그런 태수의 마음을 아는 듯 옷을 갈아 입으며 떠들어 댔다.

“오빠 가고 나서 전철역으로 향하는데 김성주씨가 인턴들 끼리 한 잔 하자는거야. 나는 빨리 오고 싶었는데 송영주씨도 좋다고해서 근처 호프집으로 갔어.”

“황억만은? 그 녀석도 갔어?”

“어. 먼저 들어간다고 얘기할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조용히 따라 오더라. 근데 회사랑 똑같았어. 술 좀 들어가면 더 친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고개 숙인 채 테이블 밑으로 스마트 폰만 만지작 거리더라. 그 사람 좀 이상한 거 같아.”

“뭐가?”

“아니. 그냥. 사회생활하기 힘든 사람 같아서. 아무튼 별 얘기 안 한 거 같은데 두 시간이 훌쩍 가더라. 나도 괜히 실수할까봐 술도 반 잔만 마시고 물어보는 것만 대답했어. 잘 했지?”

“그래. 잘 했어. 어때? 몇 일 해보니까 할만한 거 같아?”

“응. 재밌어. 아직 잡무 처리나 하는 정도지만 예쁘게 정장 차려입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니까 괜히 뿌듯한 거 있지. 더구나 오빠가 앞 자리에 딱 버티고 있으니까 엄청 든든하더라. 근데 송영주씨가 계속 오빠 멋있다 그러고 나한테도 관심없냐고 물어보는 거 있지. 오빠한테 관심 있는 거 같은데 마누라가 지켜보고 있으니 너무 잘 해주지 마. 알았지?”

“쓸데 없는 소리 하기는. 나 결혼 한거 다 알잖아.”

“요즘 애들이 그런 거 따지는 줄 알아? 자기만 좋으면 유부남이든, 애인이 있든 신경 안 써. 그러니까 애시당초 틈을 보이지 마. 알았지?”

“내 걱정 말고 너나 잘 해. 회사 남자들이 너 만 보면 힐끔거리고 모여서 니 얘기만 하더라. 사회생활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괜한 소문 나지 않게 조심해. 말 나온김에 찝적거리는 녀석은 없었어?”

“그런 사람은 없는데. 아까 호프집에서 김성주씨가 계속 이쁘다고는 하더라. 내가 자기 스타일이래.”

태수는 김성주에게 배신감이 느껴졌다. 자신에게 붙임성 있게 잘하고 사무실에선 시연에게 관심도 안보이길래 뽑아주려 했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넌 뭐랬는데?”

“호호. 걱정 마. 애인 있다고 했으니까. 딱 잘라서 말 했어. 사내 연애에는 전혀 관심 없다고. 나 잘했지?”

태수는 귀엽게 웃으면 말하는 시연이 너무 사랑스러워 볼을 잡아당겼다.

“으이구. 우리 이쁜이 참 잘 했쩌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얘기해. 알았지?”

“넵. 서방님.”

“근데 집에 올 때는 혼자 왔어? 같은 방향 없었어?”

“영주씨는 반대방향이라 혼자 갔는데 김성주 씨는 우리집 방향이더라고. 그래서 같이 타긴 했는데 집이 가까운지 몇 정거장 안 가서 먼저 내렸어. 집까지 바래다 준다는 걸 겨우 말렸다니까.”

“황억만은?”

“그 사람은 먼저 갔는지 안 보이던데?”

황억만은 몰래 시연을 따라 온게 분명했다.

태수는 녀석을 예의 주시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시연에게 그 녀석이 따라온 얘기는 하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태수는 씻고 오겠다는 시연을 억지로 눕힌 뒤 사랑을 나눴다.

시연은 그 누구의 여자도 아닌 바로 태수의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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