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당신 애인 생겼어? (2/10)

2. 당신 애인 생겼어?

"당신 목욕 안 해요?"

지연이 침대가로 걸어가 물었다.

"내가 어떻게……."

현우가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 아니오. 다음에 하겠소."

그가 손을 흔들었다. 한쪽 다리에 깁스를 했어도 목발을 짚고 화장실을 드나들 수는 있었던 것이다.

"그럼 저 목욕할게요."

그녀가 말했다.

지연은 욕실로 들어갔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나서 그녀는 옷을 벗었다. 벽에 걸린 거울에 젊은 여자의 알몸이 드러났다. 30대 초반이지만 늘씬한 몸매였다. 거울 속의 여자를 바라보던 그녀는 자기 자신의 몸매에 저절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곧 그녀는 욕조로 들어갔다. 물이 넘쳐흘러 하수구로 쏟아지는 물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따뜻한 물 속에 목만 배꼼이 내놓고 누웠다. 온몸이 나른했다. 문득 그녀는 이대로 물 속에 가라앉아 죽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남편 친구 상민에게 어처구니없게도 겁탈을 당한 후로 그녀는 삶의 의욕을 잃었다. 죽고만 싶었다.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때밀이 수건에 하얗게 비누를 묻혀 목덜미를 문질렀다. 그리고 가슴을 문질러댔다. 그녀는 터질듯이 부풀어 오른 유방을 쓰다듬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녀는 계속 유방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아랫도리께로 무엇이 저릿하게 퍼져나갔다.

그녀는 살그머니 두 다리를 벌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문득 상민이 떠올랐다. 그리고 몽둥이처럼 발기한 페니스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녀는 더욱 더 다리를 쩍 벌렸다.

"아."

그녀는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어느새 때밀이 수건을 든 손이 그녀의 사타구니를 더듬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녀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한참 만에 그녀는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타월로 몸을 닦고는 슬립을 입었다. 그리고 욕실을 나왔다. 그녀는 거실의 전등불을 끄고 침실로 들어갔다. 남편이 방으로 들어오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안 주무셨어요?"

"잠이 안 와서."

그가 말했다.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아 간단히 화장을 하고는 일어섰다.

"여보."

그녀가 침대로 올라갔다. 그리고 남편과 나란히 누웠다.

"당신, 내 생각 안 나요?"

"왜 생각이 안 나겠어."

"그럼 왜 내 옷 속으로 손 한번 밀어 넣지 않아요?"

"내가 그랬던가."

그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당신 몹시 외로웠던 모양이구만."

"그게 아니고……."

그녀는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왜 그걸 모르겠소."

"그게 아니에요."

그녀가 아니라고 부정을 했지만 남편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남편 친구 상민에게 겁탈을 당했는데, 만일 남편이 이 사실을 안다면 그녀가 성욕을 이기지 못해 그를 유혹을 해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생각할 게 틀림없었다.

"나 싫지 않죠?"

그녀가 일부러 콧소리를 내며 남편의 손을 잡아 그녀의 가슴 위에 놓았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의 풍만한 유방을 만지려고 하지 않았다.

"왜, 싫어요?"

"그럴 리가 있겠소. 단지 좀 피곤해서 그럴 뿐이오."

그가 말했다.

"그럼 주무세요."

그녀가 돌아누웠다.

얼마쯤이나 시간이 지났을까.

남편이 잠이 든 걸 확인하고는 그녀는 살그머니 침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방을 나왔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전화벨이 울렸다. 지연은 주방에서 저녁 설거지를 하다말고 거실로 뛰어나갔다.

"내 말만 듣고 있어."

그녀가 송수화기를 집어 들자 상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지금 대문 밖에 있으니 5분 내로 나와."

그 말만 하고는 툭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녀는 괜히 긴장이 되어 안방 쪽에 귀를 모았다. TV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TV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간단히 화장을 하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가 소리 안 나게 쪽문을 열고 나가자 저만치 상민의 승용차가 보였다. 그녀는 조수석 도어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잘 있었어?"

상민이 덥석 그녀를 끌어안았다.

"제발, 이러지 말아요. 여긴 대문 앞이에요."

그녀가 그의 가슴을 떠밀어내었다.

"그럼 당신 집 주방으로 가서 할까."

"아, 아니에요."

그녀가 힘없이 말했다. 그는 틀림없이 남편이 안방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주방에서 친구 부인과 정사를 벌이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진작 그래야지."

그가 좌석을 쑥 젖혀놓고는 그녀의 옷을 양파껍질처럼 하나하나 벗겨 내었다. 곧 그녀는 알몸이 되었다. 그가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입술로 애무를 했다.

"아아!"

그녀가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그가 계속 가슴을 애무하더니 이번에는 목덜미를 집요하게 애무했다. 이어서 그가 그녀의 사타구니에 입을 들이댔다. 그곳은 무서운 성감대였다.

"아아, 미치겠어요. 제발."

그녀가 그의 등허리에 손톱을 박았다. 그래도 그는 계속 그녀의 그곳을 애무했다.

이윽고 그가 발기한 페니스를 그곳에 밀어 넣었다. 그가 두어 번 절구질을 했을 때였다.

"당신이 날 차지하기 위해 남편이 사고를 당하기 전부터 한밤중이면 전화를 했죠?"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난 당신을 차지할 수만 있다면 살인도 할 수 있어."

"세상엔 저보다 아름다운 여자도 많아요." 

"물론 그렇지. 하지만 난 당신이 너무 좋았어."

"그래서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도록 불면증이 걸리게 했군요."

"잘 아는구만."

그가 중얼거리며 절구질을 계속했다.

아, 악마. 친구에게 한밤중이면 전화를 걸어 불면증 환자로 만들어 놓다니. 그래서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도록 하려고 했다니.

"그런데 상민씨 뜻대로 친구가 죽지 않아 유감이군요."

"죽진 않았지만 세상에서 쓸모없는 성불구자가 된 거야."

"나쁜 사람."

그녀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후로 상민은 아무 때나 지연을 불러내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샅샅이 훔쳐갔다. 그녀가 나오지 않으면 그가 직접 찾아온다는 말에 그녀는 기가 꺾였다. 어떻게 남편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 집안에서 남편 친구와 정사를 벌인단 말인가. 차라리 밖으로 나가 그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하루는 지연이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자 남편이 물었다.

"당신 애인 생겼어?"

"애인이요?"

그녀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 거 없어요. 난 당신밖에 없어요."

"물론 당신 맘을 내가 알지. 농담으로 해본 소리야."

남편이 말했다.

그녀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녀가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을 하려고 할 때였다.

"우리 각방을 씁시다."

"뭐라고요!"

그녀가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당신 정말 날 의심하는 거예요?"

그녀가 침대가로 걸어갔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

"당신도 눈치 챘겠지만 난 이번 사고로 성불구자가 된 거요. 그런데 아름다운 당신과 한 침대에 있으면서도 아무 짓도 할 수 없는 내 심정이 어떻겠소."

남편이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당신 방에 새 전화도 한 대 놓아요. 당신 친구한테서 전화가 많이 오는 것 같은데."

남편이 말했다.

"내일은 병원에 가 깁스를 풀어야겠소. 친구 상민이가 올 거요."

"그동안 너무 답답했지요?"

"사실이오. 그리고 모레는 회사에 나가볼 생각이오."

"벌써요?"

"회살 너무 비워 놓았소. 아무리 친구가 잘 한다고 하지만."

"그건 그래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당신 친구는 악마예요. 악마. 친구를 사지로 몰아넣고 미모의 친구 아내를 겁탈한 놈이에요.

"그런데 말이요. 아무래도 운전기사를 채용해야겠는데, 우리 직원 중에서 새내기 직원인 송아현이라고 그 친구를 쓰고 싶소."

"키가 작은 여직원 말이지요?"

그녀는 봄에 회사에 들렸다가 송아현과 인사를 나눴었다. 키가 유난히 작아서 금방 생각이 났다.

"맞아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녀가 순순히 말했다. 어떤 남자가 데려갈지 모르지만 정말 형편없는 여자였다. 그녀는 괜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출근 시간이 되자 어제 오후에 현우의 차를 몰고 간 송아현이 대문 앞에 승용차를 댄 모양이었다. 경적을 두 번 울렸다.

"차가 온 모양이요."

현우가 목발을 짚으며 말했다. 지연은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아현이 마당을 질러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현이 인사를 했다. 그리고 현우를 부축해 쪽문을 나갔다.

"다녀올게."

그가 목발을 먼저 차 안으로 집어넣고 가볍게 들어갔다. 여느 때처럼 그가 그녀를 끌어안고 가볍게 키스도 하지 않았다.

"사모님 다녀올게요."

아현이 차의 시동을 걸었다.

"다녀오세요."

그녀가 말했다. 차가 골목길을 빠져나가고서야 그녀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문득 지연은 몇 개월 전 일이 떠올랐다.

"여보."

남편이 차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말고 뒤따라온 지연을 끌어안았다. 그녀도 그를 끌어안았다. 그들은 뜨겁게 키스를 나누었다.

한 번은 너무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다가 남편이 참지 못하고 그녀를 조수석에 눕혔다. 그리고 그녀의 아랫도리를 벗겨 내었다. 그리고 남편이 서둘러 바지를 벗었다. 발기한 페니스가 덜렁 드러났다.

"여보."

남편이 그녀의 몸 위로 올라왔다.

"여보."

그녀가 남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남편이 절구질을 했다. 그녀는 괜히 남편의 출근 시간이 늦을까봐 손목시계를 힐끗 쳐다보았다.

마침내 남편이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당신 꼭 20대 청년 같아요."

그녀가 소곤거렸다.

"그런가."

그가 바지를 끌어올리며 멋쩍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연은 주방으로 들어가 커피를 한잔 타가지고 식탁 앞에 앉았다.

왜 남편은 나에게 손도 대지 않을까. 성교는 하지 못한다고 해도 얼마든지 애무를 하고 키스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왜 그럴까. 전혀 성욕이 일어나지 않아서일까. 알 수가 없다.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

이층에 전세를 사는 소영은 알 수 있을지 몰랐다. 소영은 결혼 전까지 종합병원 간호사로 있었다고 했다. 소영은 새색시였다.

지연은 곧바로 이층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그녀는 거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소……."

그녀가 방문을 향해 입을 열려다가 말고 입을 다물었다. 뜻밖에도 소영이 남편인 문 선생과 질탕하게 정사를 벌이고 있었다.

출근을 한 줄 알았더니…….

그녀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문 선생은 은행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쉬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비스듬히 열린 문틈으로 그 광경을 보고는 홱 돌아서려다가 말고 다시 호기심이 생겨 숨을 죽이고 엿보았다.

소영의 남편이 그녀의 몸 위에 올라가 절구질을 하고 있었다. 그의 등허리에 땀이 흠뻑 젖어 있었다.

"당신이 좀 해줘."

한참 만에 그가 그녀에게서 내려왔다. 그런데 시뻘건 그것이 엄청나게 컸다. 남편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큰 것도 있구나.

그가 방바닥에 벌렁 드러눕고 이번에는 소영이 그 위로 올라갔다.

"됐어?"

"아나, 좀 밑으로."

"이젠?"

"됐어."

그가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그녀가 천천히 절구질을 했다.

"아흐, 아흐……."

그가 여자처럼 교성을 질렀다.

지연은 넋을 놓고 그들의 정사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저렇게도 하는구나.

어머!

그러다가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녀는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다. 아래층으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보리차를 꺼냈다.

얼마쯤이나 지났을까.

이층에 사는 문 선생이 언제 아내와 그런 일을 벌였냐는 듯이 양복 차림으로 대문을 나가는 게 보였다. 아마도 늦게 출근을 하는 것 같았다.

"어서와요."

마침 소영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 선생님 지금 출근하시는 것 같던데?"

지연이 물었다.

"간밤에 숙직을 하고 늦게 왔어요. 그래서 아침 먹고 좀 늦게 출근한 거예요."

"그랬구만. 난 왜 문 선생님이 늦게 출근하나 이상하게 생각했지."

"남편 출근하는 걸 봤군요."

"그래."

그녀가 조금 전에 그들이 격렬하게 정사를 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참 커피 한잔 할 거야?"

"주스로 주세요."

"왜 몸에 해로울까봐서?"

그녀가 소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네에."

소영이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냈다.

"아침부터 그렇게 격렬한 운동을 해도 괜찮은 거야?"

그녀가 소영 앞에 주스 잔을 내려놓으며 가볍게 눈을 흘겼다.

"격렬한 운동이라니요?"

"능청떨지 마. 다 봤으니까."

"아니 그럼 조금 전에 이층에 올라왔었어요?"

그때서야 소영이 짐작이 가는지 물었다.

"그래. 남편 교통사고 당하고 첫 출근하는 날이라서 소영씨하고 커피나 한잔 하려고 했지."

그녀가 아무렇게나 말했다. 사실은 소영이 간호사로 일했다고 해서 남편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다. 성불구가 되면 전혀 성욕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냐고.

"여보, 내일이 친정아버지 생신이에요."

지연이 아침을 먹으며 입을 열었다.

"내일이?"

남편이 밥을 먹다 말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어쩐다? 내가 회사를 비울 수가 없어서 어쩌지."

"저 혼자 다녀올게요."

"그래도 괜찮겠소?"

"그럼요. 당신이 병원에 오랫동안 있어서 회사 빠질 수가 없는 거 부모님도 이해할 거예요."

"이해해 주니 고맙구만."

남편이 먼저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그녀도 수저를 놓고 남편 뒤를 따라 들어갔다.

"당신이 알아서 넉넉히 물건 좀 사가요. 그리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그가 지갑을 꺼내더니 자기앞수표를 십여 장 꺼냈다.

"고마워요."

그녀가 수표를 받아들었다.

"오해 안 사게 부모님께 말씀 좀 잘 드려."

그가 방을 나가며 말했다.

"염려 마세요."

그녀가 말했다. 곧 남편이 출근을 했다.

지연은 친정에 내려갈 준비를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버지 생신이 돌아오면 남편과 함께 친정에 내려갔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녀 혼자 내려가야만 했다.

그녀가 친정에 내려갈 준비를 하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세요."

그녀는 전화기 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당신이오? 몇 시에 내려갈 거요?"

남편이었다.

"10시 고속버스를 타려고요."

지연이 말했다.

"회사에 와서 상민이에게 이야길 했더니  당신을 모셔다 드린다는 거야. 마침 전주 쪽으로 출장 갈 일도 있고 해서."

"상민씨요?"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상민과 함께 친정에 내려가라니. 눈앞이 캄캄했다.

상민을 남편은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그는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친구 아내를 겁탈하고 그것도 모자라 남편이 퇴원을 해서 침실에 있는데도 주방으로 들어와 친구 부인을 희롱했던 자인 것을.

"그래요. 그럼 집에서 기다려요."

"아, 아니에요. 버스 타면 돼요. 왜 괜한 일을 해요."

그녀가 간신히 말했다.

"그럴 거 없어요. 지금 상민이가 출발했으니 잠시만 기다려요."

그녀가 미안해서 사양하는 줄 알고 남편이 고집을 부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 일을 어찌할꼬.

그녀는 전화를 끊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남편에게 상민과의 일을 털어놓을 수도 없고 해서 그녀는 난감했다. 만일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해도 몸이 아무렇지 않다면 그녀는 솔직히 남편에게 그간의 일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성불구자였다. 성불구자인 남편에게 남편 친구에게 겁탈을 당했다고 하면 곧이곧대로 믿었을까. 절대로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새를 못 참아 남편 친구를 유혹했냐고 오해를 할 것이었다.

지연은 참담한 심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20여 분이 지나고 나서였다.

빠앙, 빵! 빵!

대문 앞에서 경적 소리가 들렸다. 상민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가방을 집어 들고 현관문을 나왔다.

그녀는 쪽문을 열고 나왔다.

"어서 타요."

상민이 운전석 도어를 열고 나왔다. 그러나 지연은 그의 말을 못들은 척 했다.

"타세요."

그가 조수석 도어를 열었다.

"……."

그녀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차에 올라탔다. 곧 상민이 운전석 쪽으로 돌아가 차를 운전했다. 차가 골목을 빠져나가 거리로 들어섰다.

"내 말이 맞지?"

그가 밑도 끝도 없이 말했다.

"……?"

그녀가 영문을 몰라 그를 돌아보았다.

"친구가 내 말대로 곁에 안 오지?"

그가 말했다. 그녀는 무슨 말인가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교통사고로 성불구가 된 것을 확인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런 사람이 과연 남편의 둘도 없는 친구란 말인가.

"그래서 속이 시원한가요."

그녀가 톡 쏘아댔다.

"내 말을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내 말은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이야."

그가 말했다. 정말 착하시군요.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 그녀는 그렇게 톡 쏘아대려다가 그만두었다.

시가지를 벗어난 승용차가 이윽고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상민이 차의 속력을 높였다.

"오늘 전주에 도착하면 마음껏 놀아보자고."

"뭐라고요?"

그녀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놀라긴 왜 놀라는 거야? 나하고 차를 함께 타려고 할 때는 그 생각부터 했을 게 아니야."

"난 당신 차, 타고 싶지 않았어요."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법적으로 당신 남편인 사람이 사정하는데 어떻게 하겠어. 자기 아내 좀 잘 보살펴 달라고."

그가 이죽거리듯이 말했다.

"도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 거예요?"

그녀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신을 원해."

"뭐라고요?"

그녀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차가 전주 시내에 접어들었을 때는 오후 1시가 지나고 있었다.

"비빔밥이 유명하다던데 점심부터 하지."

상민이 지연에게 말했다.

"전 생각이 없어요. 당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어서 가요."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가 여기까지 내려왔을 때는 그냥 돌아가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녀의 육체를 탐하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그가 치근대기 전에 그녀가 먼저 선수를 치고 나선 것이었다.

"오호라, 그러고 보니 몇 달간 굶주리고 보니 하고 싶어 미치겠다, 이 말이지?"

"당신 맘대로 생각해요."

그녀가 아무렇게나 말했다.

"좋아, 당신이 원한다면 먼저 여관으로 가지. 그런데 어디가 좋을까."

"당신 맘대로 가요."

"알았어. 이제 뭐가 좀 통하는 것 같구만."

곧 상민이 가까운 여관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한낮인데도 여러 대의 고급차가 주차해 있었다.

"저기 좀 봐."

그가 운전대 앞에서 한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머리끝이 희끗한 노신사와 이제 갓 스물쯤 된 여자가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지 차에 올라탔다.

"저기도 좀 봐."

그가 또 손가락질을 했다. 이번에는 50대 초반쯤 된, 몸집이 비대한 여자와 소년티를 갓 벗어난 사내가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봤지. 세상은 요지경이야. 지연이도 너무 신경 쓸 것 없어. 알았지?"

그가 그녀의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았다가 떼었다.

그들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먼저 샤워하고 나올게."

그녀의 마음이 그에게로 많이 기울었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다정하게 말했다.

그녀는 침대 가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보, 참 서울로 전화해 줘야지."

욕실로 들어간 그가 곧바로 나왔다. 여보라니, 가관이었다.

"집에 가서 전화할 거예요."

그녀가 냉랭하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빨리 해. 그런 사람일수록 아내를 괜히 의심하는 거야."

그가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전화번호 버튼을 톡톡톡 누르다가 껐다.

"난 차 손보고 대전으로 간다고 말해."

그가 그녀에게 말하고는 전화번호 버튼을 다시 누르더니 그녀에게 내밀었다.

"여보세요."

곧 남편 목소리가 들렸다.

"저예요, 여보."

그녀가 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벌써 도착했소?"

"네. 방금 도착했어요. 조금 전에 상민씨가 돌아갔는데 정비소에 잠깐 들렸다가 대전으로 간다고 하더군요."

"그래. 장인 장모님에게 말씀 좀 잘 드려요."

"알았어요."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잘 했어."

그녀 앞에 서 있던 상민이 욕실로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녀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리고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가 그녀의 목덜미를 오랫동안 애무를 하더니 그녀의 옷을 벗겨 내렸다.

"당신은 정말 멋져."

그가 그녀의 셔츠를 벗겨내고는 브래지어를 한 젖가슴을 어루만졌다.

"정말 풍만한 유방이야."

그가 브래지어를 벗겨내더니 미친 듯이 그녀의 유두를 이쪽저쪽 빨아댔다.

"으음, 으음……."

그녀가 신음소리를 토해내었다. 곧 그가 그녀의 스커트를 끌러 내렸다. 하얀색 팬티가 드러났다.

"여보."

그가 그녀를 덥석 안아 들고는 침대에 눕혔다. 그녀가 침대 위에 길게 누웠다.

"친구를 배신하고 당신을 얻은 거야. 당신은 그만큼 가치가 있어. 매혹적이야."

그가 중얼거리더니 그녀의 하얀 팬티를 발 아래로 내렸다. 시커먼 음모가 드러났다.

"사랑해."

그가 그녀의 사타구니 깊숙이 입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곳을 핥아댔다.

"아으, 아으……."

그녀가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다리를 비틀었다. 그가 그녀의 사타구니에 머리를 박고 미친 듯이 핥아댔다. 그녀의 계곡에서 철철 샘물이 흘러나왔다. 그는 목이 마른 짐승처럼 계속 샘물을 핥아댔다.

"아으, 아으……."

그녀가 두 다리를 꼬았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계곡에 고개를 박고 샘물을 핥아댔다.

"좋지?"

그가 그녀의 몸 위로 올라왔다.

"몰라요."

그녀가 눈을 흘겼다.

"아!"

그녀가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그의 커다란 그것이 그녀의 몸속으로 쑥 들어왔다. 그가 절구질을 했다.

"아그! 아그!"

그녀가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그의 등허리에 손톱을 박았다.

지연의 친정은 전주 시내에서 택시로 30분쯤 들어가는 시골이었다.

친정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나서 지연은 집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저쪽 산 밑에 아직도 상여집이 있었다. 그녀는 상여집 쪽으로 걸어갔다.

여고 시절에 그녀는 상여집지기인 송씨에게 어이없게도 겁탈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날따라 하필이면 인적이 드문 상여집 부근을 지나가고 있었는지 몰랐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그녀는 비를 피하기 위해 무작정 상여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서른쯤 된 송씨가 그곳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아니, 네가 웬일이냐?"

송씨가 웃통을 벗은 채 잠을 자다 말고 배시시 웃으며 일어났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지금 갈 거예요."

그녀가 겁에 질려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할 때였다.

"왜 이래?"

송씨의 억센 손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이 손 놔 주세요."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사내가 눈 깜짝할 순간에 그녀를 눕혀 놓고는 능숙하게 옷을 벗겼다.

"이년 봐라. 다 컸구나."

사내가 그녀를 덮쳤다.

"이러시면……."

그녀가 중얼거렸을 때는 그의 페니스가 그녀의 몸속에 박힌 뒤였다.

"이 동네 여자들은 거의 다 내게로 온다. 어젠 이장 여편네와 했다."

사내가 절구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

거짓말. 당신처럼 고약한 사람에게 어떤 여자가 찾아온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넌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하겠지만 사실이다. 남편들이 살아 있다고 해도 죄다 남자 구실을 하는 게 아니거든. 내게로 와서 성욕을 해소하는 거야."

"거짓말 말아요."

"허허 아직은 네가 어려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하지만 너도 몇 년이 지나 시집을 가면 내 말을 알게 될 거다."

그가 말했다. 그가 그녀의 몸 위에서 내려왔을 때는 소나기가 그쳐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볕이 쨍 내려 쬐고 있었다.

지연이 상여집을 나와 콩밭 둑을 걸어갈 때였다. 저쪽에서 이장 며느리가 소쿠리를 들고 상여집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숨겼다. 3년 전에 시집온 며느리인데. 그녀는 호기심이 생겨 다시 상여집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니, 당신이 웬일이야."

송씨가 환하게 웃었다.

"내가 못 올 데를 온 거야?"

"어젠 당신 시어머니가 찾아왔거든."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도 한 마리 암놈이야. 신경 쓰지 말고 누워."

그가 말했다. 그러지 이장 며느리가 치마를 벗고는 다소곳이 누웠다. 사내가 아랫도리를 벗었다. 그러자 페니스가 덜렁 드러났다.

"어떤 년이 벌써 다녀갔구나."

그녀가 그의 페니스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신경 쓰지 마."

사내가 중얼거리자 이장 며느리가 그의 페니스를 입 안에 넣고 핥아댔다.

"남편이 가까이 안 오는 거야?"

"왜 안 오겠어. 매일 치근거리니까 미치겠어. 열 두어 번 절구질을 하다가 내려가니 미치겠는 거지."

며느리가 그의 페니스를 입에서 빼내고 나서 말했다. 어느 새 페니스가 몽둥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곧 사내가 그녀에게로 올라갔다.

"아흐흐, 아흐흐."

여자의 교성이 상여집 밖으로 흘러나갔다.

"언니."

뒤쪽에서 지연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수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모양이었다.

"언니가 이쪽으로 갔다고 해서 왔어."

그녀가 헐떡이며 말했다.

"잘 왔다, 혼자서 심심하던 판인데."

"피이, 언니가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심심하던 때가 있었던가."

"하긴……."

지연이 빙긋이 웃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연이 시집을 가기 전에는 책 한 권이면 하루 종일 심심하지 않고 좋았다. 물론 친한 친구라면 모르지만, 그녀는 별로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너 요새도 남자들과 사귀냐?"

지연이 불쑥 물었다.

"응."

"결혼하지 않을 사람이라면 정리를 해라."

지연이 말했다. 친정 여동생인 지수는 지연을 닮아서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예뻤다. 그런데 한 가지 흠이라면 남자를 너무 밝힌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여고에 올라가면서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녀가 점찍은 남자는 어떻게 하든 자기 남자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 남자에 연연하지 않았다. 단 한 번 또는 두세 번 관계를 맺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다 보니 말썽이 많았다. 한번 맛을 본 남자가 그냥 돌아서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상여집이야?"

지수가 말머리를 돌렸다. 그녀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부드럽게 대답을 했다.

"그냥."

"그냥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언니도 상여집지기 송씨와 사연이 있는 게 아니야?"

"뭐라고!"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놀라긴, 한번 농담으로 해 본 소리야."

지수가 일부러 웃으며 눙쳤다.

그들은 말없이 걸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상여집지기 송씨 소식 못 들었지?"

지수가 불쑥 물었다.

"무슨 소식?"

그녀가 지수를 돌아보았다.

지수도 여고에 들어가면서 상여집 주위를 곧잘 맴돌았다.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었다.

"작년 겨울이든가. 송씨가 동네 청년들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났어. 거기다가 거세까지 했다는 거야."

"거세를?"

그녀가 믿어지지 않아 지수를 쳐다보았다. 돼지나 소 같은 짐승의 불알을 까는, 즉 거세를 사람한테도 하다니.

"동네 청년들의 분노가 그만큼 컸다는 거야."

"하긴……."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꼬리가 길면 언젠가는 밟히는 법이다. 상대방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버젓이 남정네가 살아있는 여인을 건드렸다면 그것은 죄악이었다. 그것도 한두 명 이 아닌 동네 여인들을 죄다…….

"네 형부가 다리만 절룩거리면 얼마나 좋겠니."

지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럼 또 어디가 다쳤단 말야?"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친 채 침대에 누워 있던 지수가 긴장을 하며 일어났다.

"사실은 말이다. 네 형부가 성불구자가 된 거야."

"성불구자?"

"그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이런 이야긴 너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한다. 부모님이 아시면 안 된다."

"알아, 내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앤가, 뭐."

그녀가 가볍게 눈을 흘겼다.

"형부가 성불구가 되다니."

지수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형분 여자와 관계를 할 수 없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형부가 너무 불쌍하다."

지수가 뜻밖에도 훌쩍거렸다.

"세상에 널린 게 여잔데 관계를 맺지 못하다니."

"아이고 아까워라. 형부의 페니스여."

그녀가 중얼거렸다.

얼마쯤이나 지났을까.

"너 강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지연이 불쑥 물었다.

"강간이라. 어찌 생각하면 그것처럼 쇼킹한 정사도 없지. 왜 언니도 강간을 당하고 싶어서 그래?"

"너무 함부로 말하는구나."

"미안해."

그녀가 사과를 했다.

문득 지연은 남편 친구 상민이 떠올랐다. 어처구니없게도 남편 친구에게 겁탈을 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속수무책 상민의 손에 끌려 다니는 형국이었다. 친정 동네 근처에 와서까지 그에게 다릴 벌려주어야 했던 것이다.

"그럼 형부가 퇴원해서 한번도 언니 곁에 안 온 거야? 유방도 안 주물러? 사타구니도 안 만지고?"

"얘도 참."

그녀가 눈을 흘겼다.

"왜 내 말이 틀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이야. 네 형부가 원해서 지금은 각방을 쓰고 있어."

"각방을 쓰다니, 그건 말도 안돼! 형부가 너무 불쌍해. 나라도 찾아가 안아 주어야겠어."

지수가 큰소리로 말했다.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그냥 해 본 소리야."

"네 형부에겐 내가 얼마나 부담이 되겠니. 안 그렇겠냐?"

"하긴 언니 같은 미스코리아 출신의 늘씬한 미인과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게 형벌이 될 수도 있겠구나."

지수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었다.

친정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지연은 짐을 꾸렸다.

"언니 심심할 테니 강아지 한 마리 가지고 가."

대학에 다니는 여동생 지수가 말했다. 친정집에서 셰퍼드를 키우고 있는데 이번에 6마리 새끼를 낳았다고 했다.

"젖은 뗐니?"

"그럼."

"한 마리 가져갈까?"

"기왕이면 수놈으로 가져가. 6개월만 지나면 송아지만 하게 자라서 언니 보디가드가 될 거야."

"보디가드?"

"어지간히 건장한 사내보다 나을 걸?"

지수가 말했다.

지연은 강아지를 박스에 담아들고 고속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지수가 표를 사러간 사이에 지연은 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이오?"

현우가 반색을 했다.

"지금 서울로 올라가려고요."

"벌써 말이오? 하루쯤 더 쉬었다 오지 않고."

"당신 나 없으면 스케줄이 엉망이 되잖아요."

"그랬던가."

그가 허허 웃었다. 어쩌다가 그녀가 집을 비우면 그는 견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첫째는 치밀어 올라오는 욕정을 해소할 수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사고를 당하고는 그녀를 피하려고만 했다. 남녀의 관계, 아니 성불구란 사실이 그처럼 전도양양한 사내의 기를 꺾어놓았단 말인가.

지연은 곧바로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서울에 도착해 그녀가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뒤쪽에서 누가 불렀다.

"지연씨."

뜻밖에도 상민이었다.

"어서 타."

그가 그녀가 들고 있는 가방과 박스를 빼앗아갔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그의 차를 타야만 했다.

"웬 강아지야?"

뒷좌석에 놓은 박스를 그가 돌아보며 물었다.

"심심해서 키우려고요."

"잘 생각했구만. 강아지한테라도 정을 붙여야지."

그가 그녀의 허벅지 위에 손을 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당신이 많이 외로울 거야. 그렇다고 내가 매일 밤 당신과 동침을 할 수도 없고."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사람이란 이상한 거야. 옆에서 남편이 사내구실을 할 때는 모르다가 그 구실을 못할 때 사내가 그리워지는 것을."

그가 치마 속으로 한손을 쑤욱 밀어 넣었다. 팬티가 닿았다. 손가락이 팬티를 헤집고 들어왔다.

"그런데 내가 이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 줄 어떻게 알았어요?"

"그거야 뭐 간단하지. 처갓집에 전활 했어."

"처갓집이요?"

"당신 여동생이 아주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더군. 지수라고 여대생이라지."

"……."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형부 회사라고 하자 지수가 자신의 이름까지 알려준 모양이었다. 미친 년.

"당신 동생도 당신만큼이나 이쁠 거야. 목소리가 아주 곱더군. 내 말이 맞지?"

"글쎄요."

"조만간 한번 서울에 올라온다고 하더군."

"내가 모르는 일을 상민씨는 잘도 알고 있군요."

그녀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오해하지 마. 당신 동생이 자넬 고속버스에 혼자 태워 보내면서 생각을 했다는 거야. 언니가 너무 쓸쓸하다고. 그래서 조만간 서울에 올라가 언니와 형부를 위로해 주어야겠다고."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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