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34)

그녀가 다급하게 얼른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내 손을 잡아채려 할 때 난 기습적으로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그녀는 놀랐지만 나의 기습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대로 내게 입술을 맞긴 채 축 늘어졌다. 무릎을 꿇어앉은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받친채 그녀의 입술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혀를 내밀어 내 혀를 맞아주었다. 뜨거운 키스가 이어지던 중에 난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녀의 질 속에 들어갔던 내 검지손가락을 키스하는 그녀의 입술 사이로 밀어넣었다. 그녀는 놀라지도 멈추지도 않고 내 혀와 손가락을 동시에 핥기 시작했다. 내가 입술을 떼며 얼굴을 떼고나서도 그녀는 집중한 채 내 손가락을 빨았다. 손가락을 빨아주는 그녀의 혀는 체온이 아주 따듯한 뱀처럼 내 손가락을 휘감았다. 그 느낌이 내 몸 전체로 번져나가는 느낌으로 나를 자극해주었다. 

그녀는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도 무척 도발적으로 내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마치 내 아랫도리를 원하고 있다는 듯이 그렇게 공격적으로 빨아댔다. 슬며시 손가락을 바꿔서 가운데 손가락을 물려주자 그녀는 그것도 역시 자극적인 모습으로 빨아주었다. 손가락으로부터 전해오는 그 자극적인 느낌으로 인해 내 아랫도리는 터질 듯 팽창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녀의 입에 그것을 쑤셔 넣고 싶었지만, 내 취향대로 천천히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스렸다. 

침으로 젖은 손가락을 빼내면서 다시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그녀는 아까보다 더 뜨거워진 혀로 내 혀를 받아주었다. 난 그녀에게 키스를 하면서 침으로 젖은 손으로 그녀의 음부를 만졌다. 이미 애액을 충분히 젖어버린 그곳은 미끈거리는 음란한 느낌이었다. 손가락으로 갈라진 틈 사이를 천천히 만져주니 그녀의 입에서 끈적한 신음이 새어나왔다. 손가락을 꺾으면서 질 속으로 밀어 넣었을때는 짧께 끊어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신음 소리는 내 입속으로 흘러들어와 울렸다. 

손가락을 깊이 넣으면서 바로 앞에 있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의 동공이 풀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계속되는 나의 자극과 깊은 키스로 인해 이미 이성의 허물을 벗어내고 욕정의 늪에 발을 담가놓고 있었다. 질 속의 손가락을 꿈틀거리자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등을 받친 내 팔에 더욱 몸을 기대왔다. 

“같이 볼래요?”

그녀는 풀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내 말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M자형으로 벌린 자신의 다리 사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마치 출산을 기다리는 임산부의 자세로 자신의 질 속을 자극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 역시 그런 그녀를 보면서 손을 움직였다. 그러다 손가락을 빼내고는 다시 하나를 더 붙여서 이번에는 두 개의 손가락을 한꺼번에 밀어넣었다. 

“하읍..”

그녀가 신음을 뱉어내며 내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질 속에 들어간 내 손가락을 빼내려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엉덩이를 좀 더 앞으로 내밀면서 내 손을 당겼다. 더 깊이 넣어달라는 행동이었다. 그녀가 원하는데로 두 개의 손가락을 깊이 밀어넣었다.

“흐으응..”

그녀가 깊은 신음을 뱉어냈다. 두 개의 손가락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질 속을 파고들었다. 난 그 수월한 느낌 속에서 그녀가 지금까지 대줬을 남자들의 수를 헤아렸다. 내가 아는 그녀는 무척이나 자유분방한 여자였다. 사고방식의 자유분방함은 고스란히 그녀의 삶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그녀의 성생활에도 연결이 되고 있었다. 아내 연주를 통해 그녀를 자주 만나게 되었던 나는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얼마나 자유롭고 도발적이고 모험적인 여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녀간의 사이에 대해서도 얼마나 자유럽게 생각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아는한 그녀는 미국생활 때 이미 백인과 흑인을 가리지 않고 몸을 섞었었다. 그런 그녀의 몸이 겨우 두 개의 손가락에 버거워할 리는 없었다. 

내 움직임이 조금씩 속도를 내자 그녀는 몸을 뒤로 젖히면서 침대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난 손가락을 넣은 채로 몸을 움직여 그녀의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는 양 손으로 오금을 잡아 다리를 벌린 채로 내 손가락을 받아들였다. 너무도 자극적이고, 너무도 음란한 자세였다. 자신의 남자도 아닌 남자에게 그런 자세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얼마나 섹스를 즐겨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하아.. 하아... 이젠... 이젠 넣어줘요.. 어서요.. 어서.”

한동안 손가락을 움직이며 흥분으로 치닫던 나는 그녀의 애원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내 묵직한 물건을 그녀의 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미 흥분의 끝으로 치달은 그녀는 날카로운 손톱을 세운 채로 내 등을 긁어댔다. 시원하면서도 강렬한 쾌감 같은 것이 등어리의 살가죽으로부터 느껴졌다. 

“하으응.. 어떡해.. 더.. 더 박아줘요.. 더 깊이.. 흐응.. 흐응.. 어서.. 어서..”

그녀는 평소에 그랬을 자신의 습관을 고스란히 내보이며 내 성욕을 자극했다. 

“안에다.. 싸줘요.. 당신 씨를 받고 싶어..”

“헉..헉.. 하..지만..”

“괜찮아요.. 흐응..흡.. 어서.. 안에다 싸줘요.. 느끼고 싶어요..”

“헉..헉... 흐으윽...”

안에다 싸달라는 그녀의 도발적인 말은 나는 더 이상 참을길이 없었다. 절정의 끄트머리에 도달해있던 나는 그대로 그녀의 질 속에 정액을 뿜어내고 말았다. 그녀의 질속에서 아랫도리가 울컥거릴 때마다 몸속의 뜨거운 기운이 덩어리째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정후 난 그대로 그녀의 몸 위로 쓰러져버렸다. 그녀는 그런 나를 뿌리치지 않고 두 손으로 내 머리를 끌어안아주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그녀가 내쉬는 가쁜 숨만큼이나 바쁘게 들썩거렸다. 내 귀에는 그녀의 빠른 심장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제니는 나와 관계를 가진 뒤로 더 노골적인 옷차림으로 집안을 활보했다. 속이 비치는 아이보리색의 면 원피스를 입었던 날이 있었는데 몸에 달라붙는 니트 소재라 속옷도 입지 않은 그녀의 젖가슴과 둔덕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난 그런 그녀를 돌처럼 여겨야만 했다. 아내 연주가 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연주가 있는 날이면 오히려 더 그런 옷을 입고 나를 괴롭혔다. 그러고는 재미있다는 듯이 내게 윙크를 하고는 방으로 사라지곤 했다. 

어느 날 새벽, 혼자 맥주를 마시며 거실에서 영화를 보고 있을 때 그녀가 안방에서 나왔다. 망사 소재의 속이 비치는 슬립 차림이었던 그녀의 모습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눈을 비비고 나온 그녀는 나의 시선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탱탱한 육체가 망사 속에서 더욱 탐스럽게 느껴졌다. 물을 마시고 주방에서 나오던 그녀가 거실에서 잠시 멈춰섰다. 

“뭘 그렇게 훔쳐봐요?”

“아.. 그..그게..”

“미치겠죠?”

“소..솔직히..”

“하지만.. 안된다는거 알죠?”

“아..알지만..”

연주의 존재가 그녀와 나를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짜증이 밀려왔다. 남자의 성욕이란 방해를 받게되면 그 어떤 것이라도 그런 반응을 보이는 아주 단순무도한 것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나의 심정을 알았는지 위로라도 해줄 요량으로 내게 두어걸음 다가왔다. 그러고는 속이 비치던 망사슬립의 치맛자락을 배위로 걷어 올려주었다. 검은 털 숲으로 덮인 둔덕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입에 고인 침을 소리나게 삼켰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 음란한 곳을 만지려할 때 그녀는 얼른 뒤로 몸을 빼며 치맛자락을 내렸다. 그리고는 나를 약올리듯 흘겨보고는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런 상황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보름이 넘게 지속되자 난 안달이 나고 말았다. 차라리 다른 공간이었다면 참을 수 있었겠지만, 편한 옷차림으로 있는 내 집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너무 힘들었다. 잠자리에 든 나는 연주와 제니가 누워있을 안방 침대를 떠올렸다. 두 여자 사이에 누워있는 내 자신을 상상하며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달랬다. 하지만 아직도 넘쳐흐르는 내 성욕을 그런 상상만으로 달래기는 벅찬 것이었다. 몰론 밖에서 미숙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욕 자체를 참아내고 있엇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그저 그녀와의 관계일 뿐이었다. 제니로부터 느끼는 성욕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었다. 

제니같은 남자에 능숙한 여자가 그런 내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나의 간절함을 조이기 위해 일부러 더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혹시 연주를 대신에 내게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도 했다. 

“후우우...”

금요일 저녁, 이른 퇴근을 하고 들어와 방에서 쉬던 나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제니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쉬었다. 연주와 함께 TV를 보며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성욕이 힘겨워졌다. 잊으려 책을 펼쳐보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은 것 같았다. 내가 잠에서 깨었을 때 방안은 칠흙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곧 두 눈이 어둠에 적응하며 사물을 분간했다. 사물들의 형체를 구분할 수 있을만큼 적응이 되었을 때 내 귓가에 여자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예민한 사막여우의 귀처럼 내 귀가 파르르 떠는 것처럼 느껴졌다. 

‘윗집인가?’

난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라 생각하고는 그 속삭임으로부터 머리를 털어냈다. 그리고 다시 잠들려는데 다시 그 속삭임이 귀를 간지럽혔다. 

‘뭐지?’

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섰다. 그 ‘혹시’라는 것은 제니의 도발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두어 걸음 나섰던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다 안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무드 등만 켜놓은 듯 노란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주 살며시 열린 그 옅은 틈 사이로 불빛과 그녀들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난 반사적으로 거실 벽에 걸린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간표시와 바늘 끝이 야광으로 되어 있어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새벽 2시를 조금 못미친 시간이었다. 

‘이 시간까지 뭘 하는거지?’

난 순간적으로 연주의 수면습관을 떠올렸다. 연주는 특별히 어떤 행사가 있지 않는 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잠을 안자는 여자가 아니었다. 제니 역시도 우리집에 와있는 동안 생활패턴은 규칙적인 편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건가? 아니면 내 얘기라도 하는걸까?’

난 그녀들의 속삭임이 무척 궁금해져서 발걸음을 안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행여 그녀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을 안은 채로 숨을 죽이고 안방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안이 보이지도 않을만큼 아주 살며시 열린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방안은 보이지 않았다. 귀를 기울여 그녀들의 대화 내용이라도 들어보려 했지만 그것도 선명하지 않았다. 고민하던 나는 문을 조금만 더 열어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손가락을 편 채 그 끝으로 문을 밀었다. 손에 힘을 최대한 뺀 채로 밀어야 했기 때문에 제법 힘든 동작이었다. 손가락이 하나 들어갈 만큼 문을 여는데 성공한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틈 사이로 방안을 살폈다. 

방안의 두 여자를 확인한 나는 한 순간에 뒷머리에 종이 울리듯 멍멍해지고 말았다. 이불 밖으로 상체가 드러난 두 여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듯 젖가슴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연주는 제니의 팔베개를 베고 그녀의 품안에 안겨 있는 상태였다. 제니는 마치 자신이 남자인양 연주를 품은 채 그녀의 머릿결을 스다듬어 주며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녀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뭐...뭐지.... 대체.. 이건..’

전혀 예상도 못했던,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난 그 어떤 추측도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멍멍해진 정신을 어떻게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할 것 같았다. 서로에게 따듯한 시선을 맞춘 채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었다. 방에서 시선을 거둔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은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최선배 문제와는 또 다른 것의 충격이었다. 난 애써 그 두 사람의 문제를 축소시키려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미국 생활 때 서로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서로에게 의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 정도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난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난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제니가 비스듬히 연주의 위로 몸을 포개고 있었고 두 사람은 아주 뜨거운 딥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제니의 한 손이 연주의 젖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영락없는 남자의 행동이었다. 그 광경만 봐도 제니가 남자역할을 하고 있었고, 연주는 여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가슴을 만지던 제니의 손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곧이어 연주의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아아..”

제니의 손이 연주의 음부를 자극하는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그런 상태로 꽤 오래동안 키스를 나누었다. 난 그들의 행동에 홀린 듯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 행위에 빠져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제니가 입술을 떼면서 말했다. 

“시간이 많이 늦었네. 이제 그만 씻을까?”

연주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제니가 먼저 이불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뒤이어 침대에서 내려온 연주 역시도 알몸이었다. 그리고 이불을 걷어낸 침대 위에는 연두색 실리콘으로 된 남자의 성기를 닮은 기구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검정색으로 된 기구도 있었다. 손잡이에 스위치가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진동이 되는 모델인 듯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미 한바탕 두 사람만의 관계를 가졌던 것이 분명했다. 내가 보기 시작한 시점은 이미 그들의 관계가 끝난 시점이었던 것이다. 난 다시 방에서 눈을 떼며 벽에 몸을 붙였다. 그리고 다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새롭게 알게 된 두 사람의 관계가 놀라웠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아내 연주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머리를 감싸 쥔 채 어떻게든 충격으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안방 문이 열렸다. 그리고 제니가 알몸인 채로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어둠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향했다.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어떻게든 그녀에게 발각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 그녀의 뒤를 따라 연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난 활짝 열린 안방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연주는 보이지 않았다. 안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다급히 몸을 일으킨 나는 발뒤꿈치를 든 채 몇 걸음을 걸었다. 그리고 주방쪽을 살피려던 순간 주방에서 나오던 제니와 맞닥뜨렸다. 

“헉...”

“어머.”

서로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여..여기서 뭐해요?”

“아.. 그..그게..”

안방에서 새어나온 노란 불빛이 그녀의 알몸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녀는 나와 마주친 것에 놀란 나머지 자신의 모습을 잠시 잊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알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뒤늦게 두 손으로 가슴과 음부를 가렸다. 그녀는 내가 걸어 오고있던 안방 쪽을 살피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다 본건가요?”

“.....”

“본거군요..”

“...”“연주가 알아요?”

“아..아뇨.”

“그럼.. 어서 들어가세요. 연주가 보기 전에..”

“그..그러죠.”

그녀를 지나 방으로 들어온 나는 소리나지 않게 문을 닫고는 곧바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마치 등산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천정을 응시하고 있는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스쳐갔다. 하지만 어떤 해답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인지.. 특히 연주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할 것인지가 가장 어렵고 힘든 문제였다. 복잡한 생각에 지치던 나는 나도 모르게 잠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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