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34)

“고마워요. 혜영씨.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

 “왜 말이 없어요? 혹시 기분 상하기라도 한건 아니죠?”

 “아뇨. 저도 기뻤어요.”

 “정말요?”

 “네. 정말.”

 “그럼. 우리 이제 더 가까워지는거죠?”

 “...”

 “왜요? 두려워요?”

 “네. 조금은..”

 “걱정 마요. 아무도 우리의 비밀을 모를테니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네. 그럴 거에요. 걱정 말아요. 우리 둘만 서로를 지켜주면 되요. 다른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녀는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체온이 아늑했다. 얼마간의 휴식에서 기운을 차린 나는 다시 그녀의 몸 위로 올랐다. 그녀도 싫지 않은 지 다시 나를 받아주었다. 그녀의 몸속은 아까보다 더 뜨겁고 황홀했다

새로움은 곧 설렘이고, 설렘은 신비로운 유혹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룻밤이 황홀한 기억만으로 혜영의 존재가 이렇게 깊이 파고들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며칠 동안 그녀와 난 전화상으로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뿐 만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을 섞으면 좀 더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오히려 그것이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보고픔에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그 조급함으로 그녀를 다그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그녀의 부담감을 더 키워주는 꼴이었다. 인내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우린 서로가 서로를 충분히 배려해주어야만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그녀를 단 하룻밤의 여인으로 생각지 않는 이상 최대한의 배려를 해주는 것이 맞는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은 많아졌지만 최대한 단순해지려 노력했다. 

아침 출근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버거웠다. 일어나는 순간도 버겁고, 준비하는 시간도 버겁고, 출근길의 수많은 사람들도 버거웠다. 전철역에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운이 좋아 제일 앞에 줄을 설 수 있었다. 내가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전철이 떠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자리에 앉아갈 수가 있었다. 아침 시간에 자리에 앉고, 못 앉고의 차이는 상당했다. 선채로 한 시간여를 가는 것은 엄청난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mp3로 음악을 들으며 선로위에 멍하니 시선을 맞추고 있던 나는 전철이 도착함을 알리는 안내음성에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들어 전철이 오는 쪽으로 돌렸다. 순간 저만치 옆문 줄에 서있는 낯익은 여자를 발견하고는 초점을 맞췄다. 

‘김미숙 대리?’

그녀가 왜 거기에 서있는지 순간 혼란스럽다가 며칠 전에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금방 의문이 풀렸다. 그녀가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했던 기억이었다. 서른 한 살의 이미 꺾인 나이지만 어느 남자라도 쉽게 지나치지 못할 만큼 꽤나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녀는 아직 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았다. 마른침이 자연스레 삼켜질 정도로 탐스러운 몸을 갖고 있었다. 더구나 오늘 그녀의 옷차림이 그녀를 더욱 관능적으로 보이게 하고 있었다. 

몸에 달라붙는 니트 소재의 원피스 덕분에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원피스는 남자들의 성욕을 무척이나 자극하는 옷이었다. 더구나 색상 역시 옅은 베이지 색상이라 밝은 태양아래에서는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일 것만 같았다. 

평소 그녀의 옷차림이 과감하긴 했지만, 오늘은 내가 본 중 가장 대담하고 도발적인 옷차림인 것 같았다. 둘만의 공간에서 그런 차림이었다면 정말 숨이 막힐 수도 있을법한, 너무도 대담한 옷차림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 말고도 다른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도 그런 시선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은 더욱 묘하게 흘렀다. 노출증 같은 약간은 변태적 성향을 지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야릇한 성욕이 치솟았다.

몸의 곡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니트 소재의 원피스는 보면 볼수록 도발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육감적인 육체를 상상하기가 쉬웠다. 정말 햇볕아래에서는 속살이 보일 것 같았다. 아랫도리는 이미 곤란할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어 신문으로 가리기에 바빴다.

등 뒤로 타이트하게 묶인 브래지어 끈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것도 짙은 계통의 색깔이었다. 보통 여자라면 속옷이 잘 드러나지 않게 겉옷 색에 맞춰 입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녀는 평소에도 흰색 블라우스나 셔츠 안으로 화려한 속옷이 비쳐보이곤 했었다. 그래서 남자들끼리 있을 때에는 종종 그녀의 속옷에 대한 얘기가 오가곤 했었다.

그녀를 훔쳐보는 동안 손을 들어 그녀에게 아는 척을 할까 했던 마음은 어느새 쑥 들어가 버렸다. 그녀가 나의 존재를 알아버리면 그렇게 마음 놓고 그녀의 몸을 감상할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탐욕에 젖은 눈으로 그녀의 몸을 감상하는 동안 전철이 들어섰다. 다행히 여기저기 자리가 빈곳이 많았다. 가끔 운이 좋을 때는 그런 날도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전철에 올라탄 나는 맞은편으로 보이는 빈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김미숙을 찾았다. 그녀가 건너편에 나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귀에는 나처럼 mp3를 꽂고 있었다. 그녀는 피곤한지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감았다. 넓은 숄더백을 잔뜩 오므린 두 다리위에 올려놓고 그 위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그녀가 나를 보지 못한 것이 천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두 눈은 가지런히 뻗은 그녀의 흰 다리로 향했다. 몸매도 몸매지만 늘씬하게 뻗는 두 다리는 정말 예술이었다. 또 한 번 마른침을 삼켰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지만 그렇게 마음껏 감상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 어찌 보면 무척 추접한 일일 수 있었지만, 난 내 스스로 음흉한 늑대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앞과 그녀의 앞쪽으로 사람들이 늘어서긴 했지만 다행히 사람들 사이로 그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아주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그녀의 두 다리는 여전히 내 성욕을 자극해왔다. 짧은 치마위로 숄더백을 올려놓아 남자들의 시선을 막으려 했지만, 맞은편에 앉은 내 시야에는 가방 아래쪽의 두 다리가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었다. 

내 두 눈은 그녀의 얼굴과 다리를 오가며 그녀를 감시하랴, 그녀의 다리를 쳐다보랴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행여라도 그녀에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내 입장이 말이 아닐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나, 둘 역을 지나칠수록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다행히도 그녀의 다리를 보는 틈 사이는 메워지지 않았다. 이젠 그녀가 날 발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난 사람들의 틈사이로 그녀의 두 다리를 마음껏 훔쳐볼 수 있었다. 

그녀가 잠이 들었는지 잔뜩 오므렸던 두 무릎이 서서히 벌어지는 것이 보였다. 남자든 여자든 잠이 들면 자연스레 다리에 힘이 풀어져서 벌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그녀의 두 다리가 조금씩 벌어지는 동안 내 가슴은 빠르게 맥박질 쳐댔다. 그녀의 치마 속을 볼 수 있는 행운이 따르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마른침을 연신 삼켜댔다. 

전철이 덜컹거리는 순간에 그녀의 두 다리가 놀란 듯이 오므라들었다. 절망이었다. 여태 기다린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행운을 안겨주었다. 잠에서 깼던 그녀가 눕혀두었던 숄더백을 자신의 몸 쪽으로 세워들었던 것이다. 순간 짧은 치마 아래로 드러난 하얀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선 남자들의 시선도 그녀의 하얀 허벅지를 훔쳐보고 있는 중이었다. 

몇 정거장 더 지나면서 그녀와 나 사이의 사람들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다행히도 그녀의 다리는 계속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가 서서히 깊은 잠에 빠지면서 또 두 무릎이 힘없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치마 끝단이 허벅지 중간까지 당겨져 올라가 있어 한뼘 정도만 벌어져도 치마 속이 훤히 보일 것만 같았다. 여자를 처음 보는 사춘기 소년이라도 된 듯 간절하게 기다리는 나 자신을 깨닫고는 약간은 추잡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본능을 단숨에 꺾어 버리기는 힘들었다. 

그 간절한 바람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눈 앞에서 이뤄졌다. 아래쪽 양 발목이 엑스자로 교차되고 무릎은 치마폭이 팽팽해질 만큼 벌어졌다. 그 순간 그녀의 다리 사이로 팬티에 가려진 둔덕이 드러났다. 숨이 멎을 것처럼 가빠졌고, 심장의 맥박질이 버겁게 느껴졌다. 옅은 베이지 니트 소재 천은 전철의 환한 불빛을 그대로 투과시켜 치마 속을 밝혀주고 있었다. 

내 두 눈은 그녀의 다리 사이로 고정되어 최대한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나는 한번 더 놀랐다. 그녀가 입고 있는 흰색 계통의 앙증맞은 팬티는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일만큼 투명한 망사였다. 처음엔 무늬라고 생각했던 검은 부위가 그녀의 음모였던 것이다. 

심장과 아랫도리가 동시에 벌떡거렸다. 마치 협연이라도 하듯 위아래에서 힘겨운 맥박질이 이어졌다. 숨도 고르지 않아 주위 사람들이 눈치 챌까 두려웠다. 내 두 눈은 자주 그녀의 얼굴을 살펴야만 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나를 본다면 지난번 혜영과의 일처럼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바보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오랫동안 깨지 않았다. 덕분에 난 망사팬티 사이로 그녀의 둔덕과 검은 숲을 마음껏 훔쳐볼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앞으로 바짝 다가가 두 다리를 활짝 벌려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램일 뿐이었다. 

내려야할 역이 다가올수록 조바심이 일었다. 평생 있을까 말까한 그 행운의 시간은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뇌리 속에 조금이라도 더 깊이 저장시켜두고 싶은 마음에 단 1초도 그곳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정거장이 남았을 때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충격이 다가왔다. 

그녀는 아주 도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혹시 잠에서 깨어나 몽롱한 정신으로 초점 없이 쳐다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은 내 바램일 뿐이었다. 그녀는 분명한 초점을 가지고 아주 또렷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식은땀이 흘렀다. 순간순간 그녀의 시선으로부터 눈을 피했지만, 그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벌어진 다리를 오므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두려운 마음을 느끼면서도 힐끔거리며 그녀의 아래쪽을 훔쳐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복잡하게 추리하려 했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여전히 나를 빤히 쳐다보며 다리를 움직였다. 엑스자로 교체되었던 발목을 가지런히 뻗어 어깨 넓이만큼 벌렸다. 그리고 두 무릎 사이가 아까보다 더 넓게 벌어졌다. 심장이 두 배쯤 더 빠르게 뛰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의도적으로 다리를 벌려주고 있었다. 그것이 화가 나서 볼테면 한번 봐봐라는 식의 의미인지, 정말 보여주고 싶어서 하는 도발적인 행동인지는 분간할 길이 없었다. 

내 목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심한 갈증이 느껴졌지만 그 순간 느끼는 긴장감보다 더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그 넓은 숄더백을 눕혀서 허벅지를 가렸다. 하지만 맞은편에 앉은 내 눈에는 여전히 그녀의 다리 사이가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두 손이 가방 밑으로 내려가더니 양 허벅지에서 손바닥으로 치맛자락을 가볍게 눌렀다. 그리고는 살며시 위쪽으로 끌어올렸다. 

또 한번 목구멍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손발이 후들후들 떨리기까지 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어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듯한 도도한 모습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녀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내려야 할 역을 알리는 안내목소리가 들려왔을 때쯤 그녀의 그 도발적인 행동이 멈췄다.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리를 오므리고는 치마 자락을 내려 옷매무새를 고쳤다. 그리고는 내게서 시선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면서도 그녀는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마치 나를 못 봤다는 식의 행동이었다. 

그녀가 내릴 문 앞으로 다가갔을 때에서야 나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아랫도리는 오히려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전철이 멈추고 문이 열렸을 때, 그녀는 저만치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쏟아지듯 내렸다. 나는 일부러 그녀와 거리를 두고 내렸다. 에스컬레이터 앞의 긴 줄에 몸을 맡기고 그녀를 찾아보았을 때에는 이미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전철 역사를 빠져나와 지상에 오르는 동안 내 머릿속은 복잡해 있었다. 회사에 들어가 그녀와 마주쳤을 때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또 그녀가 나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회사로 향하는 대로변에서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차피 잠시 후면 회사에서 마주칠 사람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걷던 중에 무심코 고개를 드는 순간, 10미터쯤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그녀가 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걸음을 멈칫했던 나는 그녀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회사 쪽으로 바로 걷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그녀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의 뒤태를 보며 걷기 시작하자 머릿속의 혼란스러움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밝은 태양아래에서의 그녀의 그 니트 원피스는 옷이라고 하기엔 너무 파격적이었다. 아까 전철에 오르기 전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충격을 줄 정도였다. 

옅은 베이지색상은 강렬한 햇볕아래에서는 거의 흰색이나 다름없었다. 그 속으로 비쳐 보이는 짙은 색의 브래지어는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의 엉덩이였다. 걸을 때마다 살의 출렁거림이 느껴질 정도로 몸에 달라붙은 니트 안으로 팬티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아까 분명 망사팬티를 보았던 나로써는 잠시 동안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T팬티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칠 듯한 흥분이 다시 밀려왔다. 

그녀와 거리를 두려했던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좀 더 가까이에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니트에 달라붙은 탱탱한 엉덩이 살이 탄력있게 출렁거리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너무 탐스러웠다. 내게 인내의 힘이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그녀를 바닥에 눕혀놓고 옷을 찢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육감적인 육체는 내 통제력을 마비시킬 만큼의 강력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그 도발적인 모습에 넋을 잃은 남자들이 꽤 많았다. 한 여자의 육체를 여러 남자들이 탐하고 있다는 사실에 야릇한 흥분이 느껴졌다. 그녀는 정말 남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것 같았다. 남자들의 시선이 뜨거워질수록 그녀의 발걸음도 더욱 도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빌딩 로비로 들어서자 경비원을 비롯해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자들 또한 그녀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걸음걸이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녀도 분명 다른 이들의 시선을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대담한 용기가 나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두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무심코 그녀의 뒤를 따라가던 나는 그녀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았을 때 무척 당황하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흥분에 가득 찼던 내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녀의 얼굴 표정은 기분 나쁠 정도로 무표정이었다. 여자에게 이토록 위압당해보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더구나 그녀는 나보다 직급도 아래였다. 

그녀의 도도함에 압도되는 것이 꼭 내가 잘못해서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상당히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도도함에서 이상하리만치 강한 힘이 느껴졌다. 여자 앞에서 이렇게 작아지는 느낌은 난생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본능적으로 그녀의 매력에 끌리는 느낌이었다. 서서히 중독되어가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그녀가 먼저 올랐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녀와 함께 타는 것이 왠지 모르게 두려웠다. 하지만 뒤에 서있던 사람들에 떠밀려 마지못해 같이 탈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밀리고 밀려서 자리를 잡은 것이 하필이면 그녀의 바로 옆자리였다. 심장 맥박소리가 뒤틀리듯 뛰었다. 이마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다른 이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만큼 사람들로 꽉 찼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자마자 아래쪽으로 누군가의 손이 다가왔다. 그녀의 손이었다. 하마터면 소리를 낼 뻔 했지만 잘 참았다. 그녀의 손이 묵직한 내 아랫도리를 움켜잡았다. 처음엔 힘을 주어 잡아 약간의 아픔이 느껴졌다. 그녀가 내게 복수라도 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그녀의 손이 뱀처럼 움직이며 내 아랫도리를 어루만졌다. 비록 바지위로 만지는 것이었지만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그 사람 많은 공공장소에서 직장 상사의 중심부를 애무하는 그녀의 손길은 도발 그 자체였다. 

흥분과 긴장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층을 알리는 숫자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표정 또한 아무렇지 않은 듯한, 아주 편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존재가 더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동시에 꼭 그녀를 갖고 싶은 매혹적 유혹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도도한 여자를 꼭 한번은 정복해보고 싶은 그런 유혹이었다.

짧은 순간에도 그녀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렸다. 여자 앞에 그리 무력한 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공격은 나를 너무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다. 그녀의 손이 지퍼를 만지작거렸다. 당황한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지만, 그녀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손을 놓아버렸다. 바지 지퍼는 순식간에 내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잔뜩 얼어붙은 채로 그녀의 손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녀의 손은 너무나 능숙한 솜씨로 바지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손쉽게 팬티 안으로도 들어왔다. 그곳에서 그녀는 터질듯이 발기된 뜨거운 살덩어리를 찾아내고는 손으로 감싸 쥐었다. 아기 피부같은 느낌의 부드러운 손길이 예민한 곳을 만지니 안 그래도 터질듯 하던 살덩어리가 더욱 팽창하며 미친 듯이 맥박질 쳐댔다. 

와이셔츠 카라가 다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랫도리에서 전해지는 그 흥분감에 황홀해했다. 그곳에 있는 누구 하나라도 그 광경을 보는 순간에는 내 직장생활은 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황홀한 자극이 최면을 걸듯 내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는 달리 너무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 위험한 스릴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그런 그녀의 존재가 크게만 느껴졌다. 

그녀가 내 물건을 밖으로 꺼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그리고 동시에 온 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너무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이어서 그것을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의 손은 밖으로 드러난 나의 뜨거운 살덩어리를 아주 부드럽고 유연한 손짓으로 어루만지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눈빛에는 나를 유혹하는 듯 한 촉촉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는 입술 사이로 혀를 내밀어 자신의 윗입술을 핥았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도발적인 유혹이었다. 

시간이 멎은 것 같았다. 숨도 멎은 것 같았다. 온통 머릿속이 멍했다. 그리고 그 순간 띵- 하는 맑은 벨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정신을 차리고 번호판을 올려다보니 23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앞쪽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고, 그녀도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 발기된 살덩어리를 팽개쳐놓고 사람들을 따라 내렸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손발이 후들거렸다. 사람들이 내려 공간이 생기면 밖으로 내놓은 아랫도리가 발각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얼른 물건을 바지 속으로 밀어 넣고는 양복 자켓으로 앞을 여몄다. 두 손을 앞으로 모아 가린 채 서둘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복도 끝에 있는 남자화장실을 향해 뛰었다. 누군가 내게 인사를 건네 왔지만 누구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당황한 나는 인사를 받지도 않은 채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간 나는 문을 잠근 뒤에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 씨발..’

속으로 자연스럽게 욕이 나왔다. 돌이켜보니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평소에는 그저 한번쯤 따먹고 말 여자로만 생각했던 그녀에게 너무 크게 압도당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는 그녀의 묘한 매력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안겨준 그 특별한 경험들이 나로 하여금 더욱 그녀가 끌리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녀에게서 좀 더 특별하고 대담한 경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앞섰다. 

옷을 고쳐 입고 나온 나는 세면대에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그렇게라도 정신을 차려야만 할 것 같았다. 잔뜩 긴장했던 몸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 했다. 발걸음을 옮겨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서 환하게 웃어보였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어? 어.. 그..그래.. 좋은 아침.”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머리가 쭈뼛쭈뼛 설정도로 소름 돋았다.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변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그녀만이 가진 능력인지, 아니면 모든 여자들이 가진 공통된 능력인지 헤아릴 길이 없었다. 머릿속은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업무를 보는 오전 내내 그녀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자기 일에 몰두했다. 업무적인 일로 내게 왔을 때도 아침의 일을 전혀 티내지 않고 업무적인 얘기만 하고 돌아갔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안 내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그녀는 다른 여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갔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물끄러미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부서 동기인 최과장과 점심 약속이 있어 빌딩 로비에서 동기를 만나 식당가로 나섰다. 그 친구가 오늘따라 돈까스가 땡긴다며 나를 이끌었다. 회사 근처에 괜찮은 일본식 돈까스 집이 있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종업원이 창가 쪽으로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이미 식당은 테이블이 거의 다 차서 북적거렸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컵에 물을 따르면서 무심코 식당 안을 돌아보다가 오른편 대각선 방향의 테이블에 앉아있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녀도 나를 발견하고는 내 시선에 눈을 맞췄다. 그녀의 눈빛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눈빛이었다. 그녀는 금새 촉촉이 젖은 눈빛이 되어 나를 쳐다보았다. 

“어허, 이 친구야. 뭐해. 물이 넘쳐.”

 “어? 아.. 미안, 미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거야?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아냐. 그냥 별거 아냐.”

나는 얼른 네프킨을 집어 들고 테이블 위에 쏟아진 물을 닦아냈다. 물 양이 네프킨으로는 안될 것 같아 종업원을 불러 닦아달라고 하니 금방 달려와 테이블을 닦아주었다. 내 시선은 다시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도 나를 쳐다보았다. 반사 신경의 반응처럼 그녀의 눈빛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그녀가 슬쩍 나를 향해 골반을 틀어 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양 무릎이 벌어졌다. 동공이 커졌다. 나도 모르게 내 앞에 앉은 동기를 살피고는 내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누군가 그녀를 보고 있지 않나를 살폈다. 다행히 그녀의 그 위험한 행동을 의식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주 앉은 최과장이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건성으로 그의 말에 맞짱구 쳐주면서 시선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다리를 벌려놓고 있었다. 전철에서 보았던 그 장면이 고스란히 보여졌다. 아랫도리가 터질듯이 팽창했다. 그녀는 다른 여직원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면서도 나를 향해 다리를 벌려주고 자신의 치부가 보여지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토록 도발적인 여자가 또 있을까. 난 그녀가 왜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매번 일어나는 그 순간들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평생 동안 그런 기회조차 못 갖는 남자들이 숱하게 많을 것인데, 내 스스로 그런 기회를 거부한다면 그건 너무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넋을 잃고 그녀에게로 시선을 두고 있을 때 최과장이 테이블에 올려놓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이, 박과장.”

 “어? 어? 왜?”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어디에 그렇게 정신이 팔려있는 거야?”

 “응? 아..아무것도..”

최과장이 고개를 돌렸다. 순간 김미숙 대리도 다리를 오므렸다. 정말이지 동물적인 자기방어 능력이었다. 최과장이 썩소를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저 여자한테 관심 있는거야?”

 “어? 과..관심은 무슨..”

 “하긴 저 정도 여자한테 안 넘어갈 남자가 없겠지.”

 “....”

 “근데 저 친구에 대해서 좀 알아?”

 “어떤?”

 “저 친구 여기 오기 전에 K그룹에 있었지?”

 “맞아.”

 “거기서 사표 쓰고 나온 이유가 뭔 줄 알아?”

 “아니. 뭔데?”

 “저 친구가 좀 지나치게 노출 벽이 있어서 거기에 홀려서 넘어간 남자들이 몇 있었나봐. 거기에 간부급도 끼어 있었고.. 그래서 발칵 뒤집혔던 모양이야. 저 친구만 나온 게 아니라 저 친구랑 관련된 남자들도 죄다 사표 쓰고, 간부 한명은 지방으로 좌천 됐다지? K그룹이 사원들 도덕성에 유독 철저한 거 자네도 알지? 뭐 우리 회사도 만만치 않지만 말이야.”

 “근데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아?”

 “거기 내 친구가 근무하잖아. 저 친구랑 같은 부서였거든.”

 “그래?”

그녀의 정체를 알고 나니 갑자기 머릿속이 멍해졌다. 지금까지 우리 회사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으니 내가 그녀의 첫 희생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도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다시 다리를 벌렸다. 얼른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 그녀에게 빠져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리 소심한 놈은 아니었지만, 내 직장까지 걸어가며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의 시선을 피한 채로 한참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동료 여직원들과 함께 우리 테이블 옆을 지나가며 인사를 건네 왔다. 

“과장님, 식사 맛있게 하세요.”

 “어? 아.. 그..그래요.”

나는 애써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건성으로 대답해버렸다. 그녀의 정체를 알고 나니 그녀의 그런 행동이 이젠 뻔뻔스럽게 느껴졌다. 사람 마음이란게 이처럼 간사한 모양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에는 그녀의 관능적 육체가 가득 차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녀를 멀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최과장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한 모금 길게 들이키더니 길게 내뱉었다. 담배연기가 내 얼굴로 날아와 손짓으로 부채질을 하며 피했다. 

“담배는 완전히 끊은 모양이네? 얼마나 됐지?”

 “1년 넘었지.”

 “벌써 그렇게 됐나?”

 “아무튼 대단해. 어? 잠시만 전화 좀 받을게.”

최과장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통화를 하는 동안 미숙을 떠올렸다. 그녀가 왜 내게 그런 무모한 행동을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길이 없었다. 그녀가 입사했던 2년 전부터 시작해서 최근까지의 일들을 되짚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와 나 사이에 어떤 썸싱이 일어났던 적은 없었다. 물론 회식자리에서 그녀와 춤을 춘 적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교적 몸짓이었을 뿐이었다. 

전화를 끊은 최과장이 급하게 연신 담배를 빨아들였다. 그리고는 바닥에 던진 뒤 구둣발로 비벼서 껐다. 역한 담배냄새가 풍겨와 머릿속의 미숙을 지워버렸다. 최과장이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먼저 들어 가봐야겠다며 뛰듯이 빌딩으로 향했다. 최과장의 뒷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두 손을 주머니에 깊이 찔러 넣은 채로 터벅 걸음으로 걸으면서 다시 미숙을 떠올렸다. 그 여우같은 연기력과 관능적인 육체가 교차하며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 모르겠다. 그냥 없었던 일로 생각하면 되지. 복잡할 것도 없어. 그냥 평소대로 행동하면 돼.’

애써 그렇게 마음을 다그치며 빌딩 로비로 들어섰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라 빌딩 로비는 한산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사람도 몇 안됐는데 그마저도 내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멍하니 엘리베이터 숫자판을 쳐다보다가 도착한 다음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나 혼자였다. 23층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누르려는데 다급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요.. 과장님. 같이 가요.”

반사적으로 열림 버튼을 눌렀다. 그녀가 헐떡거리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 순간 나는 얼굴이 창백해져버렸다. 그녀였다. 어디에 있다가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당황스러웠다. 

“뭐하세요? 안올라가실거에요?”

 “어? 아...아참.. 내 정신 좀 봐.”

나도 모르게 힘을 주어 누르고 있던 열림 버튼을 그제서야 놓았다. 그녀의 가쁜 숨소리가 엘리베이터안의 좁은 공간에서 메아리 쳤다. 그녀와 나, 단둘이 있는 그 공간이 숨 막혔다. 갑자기 그녀가 움직였다. 한걸음 움직여 내 시야로 들어오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힐끔거리며 그녀를 살폈다. 무표정하던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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