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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 회: 망가진 선배들과 엄마의 팬들 -- > (198/272)

< -- 199 회: 망가진 선배들과 엄마의 팬들 -- >

“시헌이 말도 일리는 있어. 불쌍한 시헌이를 이용하면 안 되겠지만 시헌이 포박당한 거 때문에 지금 전국에서 동정표가 쏟아지고 있어. 생각해봐. 일 년 동안 정신을 놓치고 살다가 겨우 완치가 되어 학교로 돌아왔어. 그런데 복귀하자마자 못된 놈들에게 자기 엄마를 욕하는 걸 들어야 하는 고통을 당했다구. 어차피 뚜껑은 열리고 말았어. 두고 봐. 우리들을 동정하는 여론은 더 크게 형성될 거야.”  

나는 지언이이모의 말에 덧붙였다.

“최회장의 압력으로 기사를 더럽게 쓴 여기자들도 만날 거야. 반드시!”

엄마는 여기자이야기가 나오자 속이 상한건지 얼음물을 마셨다. 나는 엄마를 보며 말했다.

“난 엄마가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 언제까지 죄인처럼 아파트에 갇혀 지낼 순 없잖아. 엄마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어? 이모들도 무슨 잘못을 했냐구! 암튼 나한테 맡겨줘. 이걸 전쟁이라고 치면 난 무지 유리한 상태야. 왜냐면 난 엄마와 이모들 때문에 미친놈이 되었다가 다시 정상이 되었으니까. 사람들 심리라는 게 그렇게 어려움을 겪고 일어선 사람에겐 절대로 돌을 못 던져. 또 나는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장미이모가 내 어깨를 꽉 껴안아주었다.

“우리 시헌이 어른 다 됐구나. 모든 게 다 잘 될 거 같애. 고마워 시헌아. 하지만 넌 절대로 무모하게 움직이면 안 돼. 아직은 아냐!” 

이번엔 엄마가 말했다. 

“아들, 우리 천천히 시작하자. 난 아들만 다치지 않는다면 영원히 컴백을 하지 않아도 좋아. 그냥 이대로 죄인처럼 살아도 좋아. 그러니 모든 걸 순리대로 맡기는 거야.”

엄마는 결국 날 포기시키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일단 엄마의 말을 알아먹는 척했다. 

“그럼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않을게. 그냥 학교 착실히 다니면서 공부만 할게.”

엄마는 촉촉한 눈길로 고갤 끄덕였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왔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해가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피곤이 극심하게 몰려왔다. 의식이 점점 희미해졌다.

아침에 나는 일찍 일어났다.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어제보다 더 시끄러웠다. 휴! 낯부끄러워라.

최시헌의 팬 카페까지 생겼다. 엄마를 욕되게 한 못된 선배들을 두들긴 게 그 카페생성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카페에 접속해보았다. 거기엔 어제 내가 포박 당했던 장면을 찍은 사진까지 실려 있었다. 그 기집애가 올린 모양이었는데 나는 굳이 그 애를 만날 필요가 없어졌다.

“시헌아, 오늘 어디 나가지마. 귀한 손님이 오기로 했거든.”

지언이 이모가 말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안원장이라고 했다. 자기 딸 은아와 함께 온다고 했다. 당시 은아는 엄마나 아진이이모 또래였으니 내게도 이모가 되는 셈이었다. 설마 아직까지 마약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안원장모녀가 나타난 건 점심 무렵이었다. 

“이야! 이게 누구야?”

오십이 훌쩍 넘었는데도 안 원장은 여전히 아름다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은아 이모도 거의 변함이 없었다. 그 옛날 병실에서 봤을 땐 바짝 마른입술에 다크서클이 눈 주위에 포진되어있었지만 이제 그런 건 없었다. 다만 그늘진 표정은 여전했다. 그것이 그녀의 매력이었다. 안원장이 우리 집으로 찾아온 용건은 반갑게도 엄마의 방송 복귀문제였다.    

“아직은 시기상자지만 머잖아 마음의 준비를 해둬야해.”

안원장의 말에 엄마는 거부했다.

“전 싫어요.”

“자넨 다른 여자들관 달라 시헌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컴백해야한다고!”

엄마는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갤 갸웃거렸고 안원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명예회복을 하라는 거야. 자네가 명예회복을 해야 시헌이의 앞날도 편해져. 시헌이까지 죄인 만들 거야? 사람들의 분노는 언제까지 지속되지 않아! 시간이 가면 결국엔 가라앉게 되어있어. 어제만 하더라도 시헌이가 학교에서 작은 소동을 일으켰는데 오히려 그게 동정표를 얻었지? 자네 팬들이 여전히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입증한 셈이야.” 

이야기는 길어졌다. 안 원장은 엄마에게 힘이 되는 자료까지 들이 밀었다. 우리도 미쳐 몰랐던 것인데 대부분 엄마나 이모에 대해서 동정이 섞인 기사들을 오린 것들이었다.

“따분하지? 나하고 같이 놀래?”

은아이모가 내 손을 잡았다. 그늘진 분위기의 이모였지만 이렇게 웃으니 그 옛날의 철딱서니 없던 소녀처럼 보였다. 우린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컴퓨터를 켰고 은아이모는 내 방을 구경했다. 여전히 내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은아이모가 내 목을 뒤에서 껴안고는 감탄사를 토했다. 

“너 짱 유명해진 거 알아?” 

이모의 유방이 물컹 목에 닿았다. 그 옛날 병실에서의 섹스가 생각이 났다. 이모는 다짜고짜 내게 아빠라고 부르며 섹스를 요구했었다. 이모는 내 볼을 비비면서 속삭였다.

“너 진짜 아빠 많이 닮았어. 아빠는 좋은 분이셨는데!” 

여차하면 뽀뽀라도 할 판이었다. 이모의 입술과 내 입술이 닿기 직전이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담임선생인 배이화였다.  

“너, 또 울학교 명예를 떨어뜨렸어. 너 내가 가만 안 놔둘거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무슨 학교 명예를 떨어뜨려요?”

명예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제야 뭔가 생각이 났다. 담임이 왜 그렇게 날 미워했는지! 그녀의 아버지는 바로 우리 학교의 이사장이었다. 사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우리학교의 이미지는 나 때문에 떨어진 게 사실이었다. 

내가 미치광이가 된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우리학교의 아이들이 날 괴롭힌 탓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학교에 불량서클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까지 드러나기도 했다. 가뜩이나 어젠, 내가 졸업생들을 팬 것이 오히려 동정표가 되어 돌아왔다. 담임은 거의 실성한 여자처럼 고함을 쳤다.  

“썅놈시키! 내 친구 중에 기자도 있다는 사실도 알아둬! 나 분명히 진실을 밝혀낼거야. 어제 네가 졸업생들에게 소강당에서 무슨 짓을 한 건지 다 알고 있어. 증인도 확보할거야.”

“그 말 하려고 전화 한 거예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툭 뱉었고 그러자 담임은 즉각적으로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너 당장 학교로 와. 일 커지기 전에 당장 오라고!”

“좋습니다. 어제 소강당엔 초희누나도 있었는데 연락해서 대질심문을 해보시죠.”

전화를 끊고 나니 화가 뻗쳤다. 은아이모와의 회포는 나중에 풀기로 하고 나는 당장 학교로 갔다. 물론 가기 전에 약은 챙겨 넣었다. 담임에겐 약을 써야 할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단숨에 학교로 날아갔다. 졸업식이 끝난 학교라 썰렁했다. 

배이화는 교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녀 곁엔 소강당에서 내게 따먹힌 졸업생 기집애하나가 훌쩍 울고 있었다. 짧은 파마를 한 기집애였다. 다른 선생님들은 없었다. 나는 담임 앞에 앉았다.

“대체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세요? 증거 있어요?”

“얘가 증인이잖아! 이래도 발뺌할래?”

 나는 기집애에게 말했다. 기집애의 이름은 윤선이었다.

“누나, 분명히 누나가 날 유혹하고 누나가 날 따먹었지? 솔직히 말해봐! 누나가 날 추행했잖아!”

나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썼다. 약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억지가 가능했다. 윤선이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부정했다. 담임은 콧방귀를 꼈다. 나는 윤선이의 손을 잡았다. 

“누나, 상담실에서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올래?”

나는 5분만 이야기하고 온다며 담임에게 양해를 구했다. 단둘이 누나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 담임은 썩은 미소를 짓더니 5분후 각오하라고 했다. 아마도 내 죄를 스스로 시인한 걸로 착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가지 단서를 달았다. 

“선생님, 만에 하나 윤선이 누나가 날 추행한 게 맞다 면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연해 볼게요.”

“니 알아서 해 인마.”

 담임은 씨도 안 먹힌 소리는 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상담실로 윤선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약을 절반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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