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4 회: 황홀하고 살벌한 졸업식 뒤풀이 -- >
“선생님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자신이 져야 할 겁니다. 나는 분명히 오늘 선배들에게 모욕을 당했습니다. 울 엄마가 그런 취급을 당하는데 자식 된 입장에서 어떻게 가만있으라는 겁니까?”
“그래도 인마, 걔들을 그렇게 패면 어떻게 해? 소문이라도 나면, 아니 기사라도 나면 너만 손해야 인마. 니가 깡패라고 소문이 나도 좋아?”
“상관없습니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인터넷에 올릴 겁니다. 과연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사이버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볼 겁니다. 그니깐 날 개작살내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십쇼.”
학생주임은 기가 질린 표정으로 날 한동안 쳐다보았다. 나는 본관 안으로 들어가 내가 오히려 교무실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쾅!”
선생들은 별로 없었다. 쫓아 들어온 학생주임이 말했다.
“흠, 이번 한번만 봐주지, 대신에 반성문을 써라. 이메일로 쓰면 된다. 볼펜으로 쓰지 않게 하는 것도 다행으로 알아라. 열장 분량이다.”
학생주임은 내게 명함을 줬다. 명함의 하단엔 그의 이멜주소가 있었다. 나는 명함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반성할게 없는데 반성문을 쓰라고 하니 할 말이 없군요. 하지만 저는 학생이고 선생님은 선생님이시니 하라는 대로 해야지 별수 있겠습니까?”
“이 새끼가 정말!”
그는 날 때리려는 폼을 잡았고 나는 뻣뻣이 고갤 내밀었다.
“반성문을 내 블로그에 올릴 겁니다. 그럼, 반성문이 올라가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알겠죠.”
“너 이 자식!”
학생주임은 내게 어떤 말을 할까 답을 내리지도 못했다. 항상 약자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렇게 온라인으로 오픈을 해버릴 거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 학교는 썩었어요. 대체 우리가족들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날 미치게 한 겁니까? 앞으로 이 학교를 다니는 2년 동안, 나는 내 가족이 잃어버렸던 걸 다 돌려놓겠습니다.”
나는 그대로 교무실 문을 쾅 닫고 나왔다. 복도에서 몇몇 아이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시헌아 기다려!”
상냥한 여자의 목소리에 뒤를 봤더니 배이화 담임보다 더 화려하고 예쁜 여선생이 서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최랑. 조그만 금테안경에 긴 파마머리를 한 그녀는 겨울날씨답지 않게 화사한 블라우스와 짧은 스커트를 차려입고 있었다. 영어선생님이었고 몇 안 되는 시헌이의 아군이었다. 최랑 선생님은 내게 음료수를 하나 뽑아주며 말했다.
“널 보면 항상 안타까워 시헌아. 나도 다른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아. 어떻게 병들고 아픈 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가 있는 건지....... 이건 군중들이 만들어낸 헛소문들 때문이야. 아니 기자들이 너무 과장되게 기사를 쓴 것 때문이야.”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했다.
“헛소문이요?”
“너네 가족들의 경우, 건국 이래 가장 큰 스캔들로 커져버렸어. 돌아가신 너네 아빠가 기획사 사장이라는 게 너무 큰 약점이었어. 또 너네 엄마하고 나이차도 많잖아. 그래서 그런 소문들이.......”
선생님은 다른 말을 하려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생님은 촉촉한 눈으로 날 안아주었다. 나는 심장이 울렁거렸다. 전장이나 다름없는 학교에서 아군을 만난다는 건 그만큼 행복한 일이었다.
최랑 선생님과 헤어지고 나는 교실로 들어갔다. 날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빛들은 각양각색이었다. 크게 세 가지 부류로 추려낼 수가 있었다. 내게 호의적인 애들. 날 적대시 하는 애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들.
“내 자리가 어디야?”
나는 앞에 앉아있는 녀석에게 물었다. 녀석은 빈자리 하나를 가리켰다. 나는 거기에 앉았고 그 후에도 아이들은 날 계속해서 힐끔거렸다. 이미 내가 운동장에서 선배들과 싸웠다는 걸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다 들렸다.
“너 2학년부터 다시 다닌다면서?”
눈이 작고 코가 오똑하게 생긴 예쁘장한 여자애가 내 옆으로 앉았다. 짝꿍인거 같았다. 계집애는 내가 확실히 완쾌가 되었는지 물었다.
“내가 여전히 미친놈처럼 보이냐?”
나는 차갑게 대꾸했고 여자애는 조심스럽게 자릴 빠져나갔다. 그 후로도 몇몇 아이들이 내게 말을 붙였다. 친근하게 대하는걸 보니 아들과 친하게 지냈음이 분명했다. 잠시 후 담임이 들어왔다. 담임은 날 한번 노려보더니 이런저런 지시사항을 알렸다. 특히 선배들의 졸업식 뒤풀이행사에 같이 휩쓸리지 말라고 했다. 학교전통 같은 건 무시해도 좋다고 했다.
“알몸으로 기합을 받고, 가혹행위를 하고, 그게 어디 학생들이 할 짓들이니?”
잠시 후 선생은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라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교실 문을 나서는데 담임이 날 불러 세웠다.
“졸업식이 끝나면 시헌이 넌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 뒤풀이 때 절대 돌아다니면 안 돼. ”
나는 반항심이 솟구쳤다.
“아뇨 선생님. 전 선배들에게 할 말이 많습니다. 학교 졸업이 얼마나 어렵다는 걸 똑똑히 보여줄 겁니다.”
“정신 차려. 넌 후배야. 니가 선배들에게 당한다구!”
“제가 왜 당합니까?”
나는 담임의 말을 무시하고 교실을 나섰다. 운동장엔 개미새끼들처럼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우리 반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잠시 후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지루했다.
특히 수십 년 만에 들어보는 기나긴 교장의 연설 앞에 나는 혈압이 올랐다. 드디어 졸업식이 끝났고 운동장은 말도 못하게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밀가루를 뿌린 녀석들은 양반이었다. 계란은 물론 별 해괴한 물건들까지 판을 쳤다. 케첩에 콜라, 심지어는 졸업생하나를 나무에 묶어놓고 다른 졸업생이 스프레이를 뿌리기도 했다.
“시헌아, 시헌아, 빨리 집합하래!”
“누가? 선생님이?”
우리 반으로 추정되는 녀석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아니 선배들이.”
내가 따라 간곳은 연극무대를 올리는 소극장 같은 곳이었다.
“퍽!”
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뒤통수로 둔중한 느낌이 들었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촤아아!”
시원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높은 천정이 보였다. 그런데 몸이 무지 불편했다. 내 몸은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졸업생들 몇몇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이 씹새끼가 선배를 때렸단 말이지?”
한 놈이 내 얼굴을 자근자근 밟았다. 아프진 않았지만 가슴이 폭발할 것처럼 혈압이 올라왔다. 다른 두 놈이 내 윗몸을 일으켰다. 무대가 보였는데 놀라운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이십여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죄다 알몸이었다. 여자애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내 동기생들이었다. 한 놈이 내 뺨을 찰쌀찰싹 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