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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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가족들에 대한 호칭을 단번에 고쳐 불러야 하는 건 꽤나 어렵고 어색한 일이었다. 더구나 나는, 내 딸들과 장미와 지언이보다 한세대 위에 있었는데 오히려 그녀들보다 한세대가 다운된 자식뻘이 되었다. 

나는 간혹 십대의 젊음으로 돌아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하지만 그때 꿈꾸었던 십대의 몸으로 돌아간 지금, 나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지금의 내 몸은 내 아들의 몸이었고 나는 무엇보다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인터넷으로 십대후반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과 습성이나 잘 쓰는 은어 같은 것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외계어 수준이었다. 낱말사전을 만들어 외우고 다녔지만 나중엔 그만 뒀다. 도무지 어색해서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나는 내가 쓰던 방을 그대로 썼다. 거기엔 여전히 악마의 약이 있었고 해독제도 있었다. 엄마는 돌아가신 분의 방을 쓰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원래 내 방이라 편했다. 

엄마. 류완희.

아무리 생각해봐도 엄마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신비한 여자다. 어쩔 땐 아주 오래전부터 내 엄마 같은 느낌이 들지만 어쩔 땐 사무치게 예전의 어린 내 아내 같다. 삼십대 후반의 여자치고 엄마만큼 분위기 있고 섹시한 여자가 또 어디 있을까. 

엄마가 연예계를 은퇴한지 꽤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엄마를 잊지 못하는 팬들은 많이 있는 편이다. 나 또한 엄마 팬 중에 한사람으로서 엄마가 나오는 드라마는 빼놓지 않고 다 봤다. 엄마는 대사도 없이 그냥 커피한잔만 마시고 있어도 매력이 풍겨 나오곤 했다. 길게 파마한 머리를 뒤로 묶곤 창밖을 내다보는 서글서글한 눈동자.  

그렇듯 중년의 매력을 물씬 발산하는 엄마였지만 나는 항상 엄마를 보면서도 과거 내 딸이었던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중년의 무르익은 매력 속에는 엄마가 여고 때였던 모습이 분명히 녹아있다. 생각난 김에 엄마의 옛날 사진들이나 봐야겠다.

  나는 안방에 들어가 노란색 앨범을 펼쳤다. 노란색에는 엄마의 학창시절, 즉, 나와 엄마가 처음 만났던 그 때의 사진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엄마가 약을 먹고 나와 육체적인 사랑에 한껏 빠져있던 여고 시절의 모습이기도 했다. 나는 수영복을 입은 엄마의 사진을 집중적으로 구경했다. 

“응큼한 녀석! 엄마 어릴 때 수영복은 왜 보니?”

언제 들어온 건지 엄마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엄마처럼 예쁘고 몸매 잘빠진 여자를 어떻게 사귀지? 그럼 맘 잡고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 녀석아!”  

엄마는 날 때리는 시늉을 하더니 얼굴을 식히려고 손부채를 만들어 휘휘 흔들었다. 엄마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예쁜 버릇은 여전하다. 엄마가 말했다. 

“그나저나 학교 다시 나가기 전에 희연이라도 세지 좀 만나고 그래. 너 몸이 다 나았다고 하니깐 물어보고 난리가 났어.”

 희연이와 세지. 그녀들은 나의 친척이다. 희연이는 장미이모가 낳은 딸의 이름이고 세지는 아진이 이모가 낳은 딸의 이름이다. 원래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지만 집에 실성한 사람이 생긴 다음부터 집안으로 들어오질 못했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이제 집에 들어오라고 그래 엄마. 안 괴롭힌다고.......”

“그래도 당분간은 밖에 있겠데.”

“참 나, 언제는 날 물어보고 난리가 났다더니 집에 들어오라고 하니깐 안 들어온다는 심보는 뭐야?”

“호호, 그게 다 여자의 심리란다.”

“우린 친척인데 여자는 무슨!” 

“가까운 가족이니 더 그런 거야. 널 많이 섭섭해 하면서도 무서워해.” 

그 대목에서 마음에 걸린 게 있었다.

“그나저나 내가 엄마하고 이모를 때렸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엄마, 그때 많이 아팠어?”

“아, 아니야, 하나두 안 아팠어.”

어찌 안 아팠겠는가? 가뜩이나 운동으로 다져진 내 몸. 엄마는 그날일이 떠오르는 건지 눈물을 흘렸다. 나는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엄마를 안아주었다.

“엄마, 미안해!”

 엄마도 날 안았다. 미치겠다. 그냥 편하게 안아주고 싶은데 껴안기만 해도 나는 엄마와 섹스를 하고 싶어서 몸이 발광을 한다. 내가 아빠였을 때 엄마를 안았던 때보다, 내가 아들이 되어 풍만하고 아늑한 엄마를 안아보니 더 성욕이 동한 것 같다. 십대의 몸이란 역시나 위험천만하다.  

짧은 포옹을 마치고 엄마와 함께 방을 나섰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아들의 일기장을 보았다. 컴퓨터에 저장된 아들의 일기를 본 것도 오늘로써 이틀째. 마치 호러 소설을 보는 것처럼 아들 녀석은 지옥과도 같은 학교생활을 겪었다는 걸 한 눈에 알 수가 있었다.

 녀석들은 공개적으로 아들을 괴롭혔다. 간밤에 너네 엄마 사진보고 딸을 잡았다는 둥 너네 이모 나오는 야동보고 딸을 잡았다는 둥....... 그런 소리들을 듣고도 참아야 했으니 내 아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 너네 엄마들은 약 먹고 발정이 난가 안 난가 보자 개자식들아.”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아들을 괴롭혔던 녀석들은 상당히 많았다. 어쩌면 전교생이 다 아들의 잠재적인 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여학생들로만 이루어진 불량 서클도 있었는데 그녀들은 아들의 여친까지 희롱했다. 그년들은 레즈비언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서클 이름도 냄새가 잔뜩 풍기는 ‘릴리’ 즉 백합이다.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이름이 ‘진후나’ 라는 여학생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있었다.

나도 후나에 대해선 들어본 적 있다. 얼굴은 자기 엄마를 닮아서 여우처럼 예쁘게 생겼다. 하지만 인간성은 자기 엄마를 닮아서 말도 못하게 더럽다고 적혀있었다. 

후나의 엄마는 아직도 티브이에 나오는 중견 탤런트인데 한때는 엄마와 경쟁관계였다. 엄마가 주연으로 발탁되는 바람에 그녀는 드라마에서 무려 여섯 번이나 고배를 마셔야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그녀는 정말 엄마와 많이 닮았다. 비슷한 이미지의 배우들끼리 겪는 악연이란 지금도 연예계에 존재하는 법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엄마를 극도로 싫어했고 그래서 엄마의 섹스스캔들이 터지자 그녀가 가장 좋아했다. 

그녀의 딸 후나가 더 난리였다. 앞장을 서서 엄마의 스캔들을 구체적으로 떠들고 다녔다. 아이들은 차마 듣지 말아야 할 숨겨진 스캔들까지 낱낱이 후나를 통해서 듣게 되었다.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모녀가 아닌가? 나는 다음페이지를 넘겼다.

“아 씨발!”

대충 훑어보다가 절로 욕이 나왔다. 이번엔 선생들이었다. 대부분 여선생들이었는데 어떻게 선생이란 것들이 내 아들의 상처를 감싸주지 못할망정 날이면 날마다 오징어안주처럼 질겅질겅 씹어댈 수가 있었을까.

어쩌면 예술학교 여선생들이 특히 엄마를 씹었던 이유는 그녀들도 한때는 탤런트를 꿈꿔왔지만 고배를 마셨고, 그래서 좌절 돼 버린 그 상처를, 엄마를 통쾌하게 씹는 쾌감으로 달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아들이 정말 좋아했던 여자애가 이별을 고했다. 이름은 채선.

 채선이는 엄마와 이모들의 야한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바이바이를 선언했다. 채선이의 엄마는 연극배우라고 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잘 모르겠다. 나는 컴퓨터를 껐다. 아들의 일기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내 아들이 겪었던 슬픔과 좌절의 크기가 도무지 가늠되지 않았다.

 나는 사진속의 나, 그러니까 내 아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아빠는 너와 다르다. 아빠는 너처럼 순수하지가 못해! 순수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장점이야. 나는 영악한 어른들을 수도 없이 많이 상대해봤으며 추악한 얼굴을 가리고 겉으로 천사인척 하는 사람들 또한 많이 상대해봤단다. 설사 내 눈앞에서 또 다시 엄마나 이모들의 섹스비디오를 들이댄다고 해도 나는 눈 하나 깜짝 안할 자신이 있다. 그런 걸로 날 상처주진 못할 것이다.”

 나는 달력을 보았다. 이제 봄이 되어 새 학기가 시작되면 나는 다시 2학년이 되지만 친구 놈들은 졸업반이 된다. 

학교 내에서 모든 일이 처리되면 다음 목표는 세 자매들이다. 그녀들은 여전히 아름다워 중년을 넘어선 나이임에도 강렬한 매력을 풍기고 있다. 정말 후회스럽다. 왜 그녀들에게 나는 해독제를 먹여주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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