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84 회: 딸과 함께하는 최후의 만찬 -- >
최회장은 가만있질 않았다. 가능한 모든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하여 마침내 날 찾아냈다. 나는 그 앞에 끌려가 죽지 않을 만큼의 고초를 겪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내 모든 것이 무너질 위기까지 왔다. 그나마 최회장 여식들의 섹스비디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나의 큰 무기였다. 그거마저도 없었다면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그렇다고 최 회장의 분노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안원장의 도움으로 연예계, 그리고 영화계에 진출해있던 장미와 지언이와 완희와 아진이는, 최회장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섹스스캔들과 섹스비디오유출 사건을 겪어야 했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사회에서 생매장을 당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내가 저지른 벌이 제발 그걸로 끝나길 바랬다. 하지만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끔찍한 마지막 재앙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아들 시헌이.......
이제 열여덟 살, 어린 내 아들이 실성을 해버렸다. 아진이의 섹스비디오 유출사건이 발단이었다. 이모인 아진이의 성교장면을 인터넷으로 버젓이 보게 된 내 아들놈은 그때부터 지옥과도 같은 학교생활을 겪어야 했다. 친구들은 끈질기게 아들 녀석을 괴롭혔고 아들 녀석도 끈질기게 저항을 했다.
하지만 한계에 곧 부딪혔다. 아들놈은 어릴 때부터 각종 운동으로 다져진 명품 몸매였지만 여러 명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학교생활 자체가 지옥이었다. 급기야 자기이모와 자기 엄마인 완희를 실컷 두들겨 패는 몹쓸 짓을 저지른 후, 미친놈이 되버린 것이다.
미스 조.
그 즈음 갑자기 나타난 미스 조도 내 아들놈이 미치도록 단단히 한몫했다. 그녀 또한 나완 지독하게 악연인 셈이었다.
“우리 이제 포기해요, 당신이 너무 힘들어 보여요.”
집을 나서려는데 내 아내 완희가 아들놈을 포기하자고 한다. 완희와 내가 결혼한지도 18년이 지났다. 나는 내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는다. 내 의붓딸이었지만 나완 피가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녀에게 미안할 뿐이다. 나는 그녀를 정말 좋은 남자에게 시집보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최 회장이 나와 완희의 섹스스캔들을 터트린 바람에 나는 급하게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여보, 미안해!”
아내는 무엇 때문에 내가 미안해하는지 잘 알고 있다. 섬세하고 불쌍한 내 아내. 나는 아내를 힘껏 안아주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강원도의 절에 가볼 생각이다. 거기가면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영적인 능력이 뛰어난 스님이 계신다고 한다. 대통령도 만나기 힘들다는 법력이 높은 그 스님과 스케줄을 잡게 된 건 안 원장 덕분이었다. 안 원장은 그 스님을 만나면 무언가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안미나.
그녀는 자신으로 인해 생긴 나의 모든 재앙을 사죄한다면서 한때는 목숨까지 끊으려고 했다. 지금은 경기도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은아와 함께 조용히 살고 있다. 시간나면 한번 찾아가봐야지. 나는 자동차의 속도를 높였다.
행선지가 절이다 보니 문득 향이가 생각났다. 내 사랑하는 딸 향이.
향이와의 밤샘 섹스가 있고 난 뒤, 향이는 한동안 방황을 하다가 근친상간을 벌였다는 충격을 못 견디고 결국 절에 들어가고 말았다. 충청도에 있는 조그만 절이었다. 향이는 내 딸이었지만 특이한 케이스였다.
중독기간이 가장 짧았지만 해독제를 먹고 난 뒤에도 여전히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자길 낳아준 아빠와의 육체관계에서 오는 충격이 너무 커서 그대로 지워지지 않고 각인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자동차는 교외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내 나이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환갑이다. 제길. 하루에 열 명의 여자들과 돌아가며 섹스를 벌였던 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나는 아들이 누워있는 병원에 전화를 넣어보았다. 병원엔 장미가 있었다.
“오빠,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사십대의 나이를 넘어버린 장미는 여전히 아름답다. 하지만 그녀 역시도 아내만큼이나 늘 미안하다. 날 잘못만나서 마음고생만 하더니 결국엔 더러운 스캔들에 휘말렸다.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점은 오히려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꼴 밖에 안 된다. 지언이도 마찬가지이고 아진이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왜 그녀들을 연예인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강원도에 도착한건 늦은 오후였다. 내비게이션 덕에 나는 쉽게 찾아갈 수가 있었다. 조용하고 작은 절이었지만 관광객들로 부산했다. 모두들 그 스님을 보고 싶어서 먼 길을 왔다고 하는데 그 스님은 정작 코빼기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안원장이 시키는 대로 등을 돌리고 있는 불상 앞으로 갔다. 여기 서있으면 머잖아 그 스님을 만날 수가 있다고 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매우 늙은 스님이 한분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스님의 눈빛은 십대 소년의 그것보다 더 강렬했다. 나는 스님에게 넙죽 절을 했다. 스님은 한동안 날 살피더니 입을 뗐다.
“석가가 말하길 지옥의 불길보다 더 뜨거운 것이 바로 애욕의 불길이라고 했습니다. 시주가 지금까지 겪었던 애욕의 불길은 당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오.”
그 말은 즉 내 아들이나 딸들까지도 내 죄를 그대로 이어 받는다는 소리였다. 그렇잖아도 최근까지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내 딸들이었다. 내 아들을 살리려고 왔는데 오히려 그는 또 다른 저주를 예고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아들을 살리게 되면 그 아들이 다시 불길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망아의 처지가 더 나을는지도 모릅니다. 지독한 악업이로고.......”
스님은 먼 산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스님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고 나는 오랫동안 그의 곁을 지켰다. 해가 뚝 떨어진 이후까지도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한편으론 그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법력을 가진 스님이 맞은 건지 의심스러웠다. 나는 안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장님! 혹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스님께 다 했는지요?”
“아닙니다.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에 대해!”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스님을 붙잡았다. 스님은 마침 어둠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내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스님은 내게 등을 돌린 상태에서 말했다.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린 순간 아들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아들도 아닌, 그렇다고 가짜아들도 아닌 그 아들은 애욕의 불길에 다시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제가 해줄 말은 그것뿐입니다.”
스님은 끝내 어둠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졌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아들을 살리려면 나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니. 그러나 애욕의 불길에 다시 휩싸인다니.......
여하튼 상관없었다. 스님의 힌트가 어렵긴 하지만 결국 풀 수 있는 수수께끼였다. 까짓것 아들만 살릴 수 있다면 아들만 제정신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난 죽어도 상관없었다. 나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나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도 스님의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아들이 누워있는 병원에 도착한건 아주 늦은 저녁이었다. 완희, 아니 내 아내가 있었다.
“여보!”
아내는 날 보고 또 울었다.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아내에게 나는 스님의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아내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안 원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안원장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뜻밖이었다.
“큰 굿판을 벌여야 겠습니다.”
“무당들이 춤추는 그 굿판 말입니까?”
“그것과 같은 맥락이지만 좀 더 큰 스케일을 의미하지요.”
“좋습니다. 아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온다고 하는데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안원장이 스케줄을 잡기로 했다. 나는 그날 밤 아내와 꼬박 밤을 지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