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4 회: 뼈와 살이 타는 연극 -- >
“아빠! 우리랑 같이 살아요. 엄마도 아빠를 좋아하는 거 같은데 같이 살아요. 네?”
격렬했던 키스가 끝나자 은아는 간절한 메시지를 전했다. 나는 대답을 해줄 수가 없어서 은아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안원장이 들어온 건 바로 그때였다.
안 원장은 나와 은아를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별안간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아빠, 오늘은 저한테 섹스 안 해주실 건가요?”
안 원장은 급하게 쿠션으로 은아의 얼굴을 덮곤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먼저 나가 계실래요?”
나는 병실을 나섰다. 안 원장은 한참 뒤 나왔는데 눈이 충혈 되어 있었다.
“정말 죄송해요 사장님! 너무 부끄럽네요.”
오히려 내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 은아는 분명 어제의 황홀했던 나와의 섹스기억을 다시 되살리고 싶은 것이다. 안원장과 나는 연기학원으로 갔다.
안원장과 함께 원장실에 들어갔는데 그녀는 연극 대본을 짜본다고 했다. 안 원장은 어떤 주제로 대본을 짤까, 잠시 고민을 했다. 나는 힌트를 주었다.
“저하고 원장님이 부부가 되는 게 어떨까요?”
“네?”
안 원장은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대략 설명했다.
“우리는 부부지만 십년이 넘어도 여전히 금술이 좋죠. 지언이는 원장님의 여동생, 즉 처제가 되는 겁니다. 최근에 우리 집으로 들어온 바람에 밤마다 우리들의 부부관계를 훔쳐보며 괴로워하죠. 그러다가 결국 형부인 저하고 맺어지면서 엔딩!”
안 원장은 조금 흥분한 건지 물을 한 컵 마셨다. 그리고 질문했다.
“그럼 순수레즈비언에서 보통여자로 돌아오는 설정은요?”
“그건 상관없어요. 문제는 지언이가 나와 합체를 이루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안원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뭐, 말씀 하셨던 대로 이 연극은 상황 극이긴 하지만 딸들과 지언이에게 충격을 주기위해선 실제 성관계를 할 수밖에 없겠군요.”
막상 섹스를 해야 하는 대본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영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정실장 같았으면 신이나서 뚝딱 대본을 만들어 냈을 텐데. 약을 먹지 않는 여자라 아무튼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우선 적당한 방법을 제시했다.
“원장님이 내키지 않다면 그럼 저하고 원장님의 씬이 나올 땐 이불을 덮고 하는 척만 하는 건 어때요? 하지만 스킨십은 각오하셔야 합니다.”
안 원장은 멋쩍게 웃었다. 그 정도는 이미 각오를 한 것 같았다.
“호호호, 내가 어쩌다가 이런 연극까지 하게 됐을까. 사장님이 제 인생을 책임지실 분도 아닌데.......”
그 말은 곧 자기 인생을 내가 책임져달라는 소리로 들렸다. 사실 현재 나와 가장 잘 맞는 여자, 가장 잘 어울리는 여자가 바로 안미나 원장이다. 얼마 전 섹스를 가졌던 보연이 엄마도 내 맘에 들긴 했지만 그녀는 외국에 엄연히 남편이 있다. 오주선도 섹시함이 물씬 풍기지만 너무 남자를 밝히고 성격 또한 밖으로 튄다. 정난주실장도 왠지 거부감이 들고......
안 원장은 더 이상 내게 뭔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착실하게 대본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대본은 약 네 시간정도 걸렸다. 나는 그때까지 곁눈질도 하지 않고 꾹 참고만 있었다. 안원장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대본은 완성이 되었고 나는 몇 장 넘기다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헉! 이게 뭐예요?”
한마디로 이건 알몸 연극이 아니었다. 알몸인 경우는 베드신에서만 알몸이었고 그나마도 베드신은 전부 이불을 덮고 해야 한다.
“딸들도 벗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처리했어요. 괜찮죠?”
당연히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나는 부끄러웠다. 모두가 약에 취한 상대라면 모를까. 엄연히 맨 정신을 가진 안원장이 있는데, 딸들 앞에서 아빠가 자지를 덜렁거릴 순 없었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나는 안원장의 배려에 감사했다.
줄거리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또 있었는데 장미와 지언이와의 베드신이었다.
지언이가 음욕을 못 견디고 친구인 장미를 집으로 끌어들여 레즈플레이를 하는 대목이었다. 안원장이 자세히 설명했다.
“장미와 지언이가 무척 친한 거 같은데 아마도 장미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는 거 같더라구요. 뭐 이왕이면 지언이도 만족하는 신이 한두 개 정도는 있어야 연극할 맛이 나지 않겠어요?”
장미에 대해선 말도 안 꺼냈는데 아무튼 그녀의 눈썰미는 대단했다.
나는 전체적으로 대사를 읽어봤다. 그런대로 세련되었다. 나는 마지막장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언이와의 섹스도 이불속에서 해야 한다. 나는 좀 아쉬웠다. 지언이가 거부를 한다면 나는 그냥 지언이와 섹스 하는 척만 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가 약에 취한 상태라면 내 굳건한 자지가 지언이의 지보를 정확하게 꿰뚫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줄 수가 있었을 것이다. 안 원장은 마지막장을 읽고 있는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만약에 우리가 알몸연극을 했을 때 무슨 문제가 있나면요, 사장님과 지언이와의 정사를 지언이가 끝끝내 거부한다고 쳤을 때, 연극은 망치게 되고 사장님만 어색하게 됩니다. 지언이의 입에선 사장님을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지언이의 아랫부분은 사장님과의 결합을 원치 않을 수가 있다는 말 이예요. 지언이를 강간할 순 없잖아요. 즉, 지금 대본처럼 이불을 덮고 베드신을 연출하게 되면 굳이 싫다고 하는 지언이에게 삽입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아무튼 중요한 건 지언이와의 삽입이 실패했다고 치더라도 연극이 끝난 후 두 딸들은 다신 아빠와 지언이와의 그런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레즈를 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지혜로운 여자였다. 득보다 실이 많았다. 실제 성관계라는 달콤한 사탕이 하늘로 붕 떠버렸지만 그래도 알몸으로 스킨십은 할 수 있었고 또 포르노연극을 연출하고 난 뒤의 창피함과 공허함을 맛보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나와 자신을 천박하게 만들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맙습니다. 안원장님!”
나는 허릴 숙여 인사했다.
“연극은 언제 하실 건가요?”
안원장의 질문에 나는 달력을 보았다. 모레가 바로 캠핑을 가기로 약속한 날이니, 오늘 저녁정도 해야 적당할 것 같았다. 나는 안 원장에게 오늘 밤에 우리 집에서 극을 올리자고 말했다. 가볍게 흥분이 일어났다. 문득 병원에 있는 은아가 걱정되었다.
“저녁에 은아를 봐줄 사람이 있나요?”
“은아 이모가 있어요. 제 언니예요.”
“아!”
언젠가 티브이에서 본적이 있는 안원장의 언니 얼굴이 떠올랐다. 아침 생방송에서 봤다. 마음이 편해지자 나는 연극을 한다는 사실을 딸들과 장미와 지언이에게 전화로 알려주었다. 안 원장은 복사기를 이용하여 대본을 여섯 부로 만들었다. 안원장의 퇴근시간이 되자 그녀는 장미를 데리고 나왔다.
“우리 술 좀 먹어요. 긴장 좀 풀어야 겠네요.”
장미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 안 원장은 술을 사자고 했다. 나도 마시고 싶었다. 우리가 진짜 연극을 하는 것도 아닌데 취한들 무슨 상관이랴. 집 앞에 있는 마트에서 술과 안주거리를 몇 개 샀다.
“우와, 대가족이네 대가족!”
집에 들어오자마자 안 원장은 딸들과 지언이를 보고 그렇게 인사를 했다. 딸들은 처음에 안원장을 못 알아 봤다. 그러다가 나중에야 알아보고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다. 안 원장은 열장이 넘게 사인을 해주었다.
우린 술자리를 가졌다. 지언이를 제외하곤 다들 연극에 대한 기대와 설렘 때문에 조금은 흥분상태였다. 술이 어느 정도 올라오자 안 원장은 대본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딸들은 그저 그렇다는 반응을 보였다. 극중에서 내 딸들은 열 살 열한 살 소녀로 나오는데다가 섹스 신까지 없다. 하지만 대본을 넘겨대는 지언이의 표정은 정말 심각했다. 지언이는 특히 마지막장을 계속해서 훑어보았다. 지언이는 내게 물었다.
“오빠, 이불속이지만 실제로 하실 거예요?”
나는 씩 웃은 뒤 말했다.
“흠, 그렇게 되기는 좀 어렵겠지?”
그럼에도 지언이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안 원장은 지언이의 긴장감을 의식 한 듯 모두를 보고 말했다.
“어때요? 별로 어렵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