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2 회: 두딸의 생일에 양다리를 걸치다 -- >
사진 빨도 좋아서 누가 보더라도 모델 감이었다. 하지만 죄다 여자 친구들하고만 찍은 사진들뿐이었다. 남자라고는 단 한명도 없었다.
“완전히 남자라는 동물을 혐오하는 군!”
나는 장미의 방을 나섰다. 샤워를 하고 새 옷을 갈아입었다. 벌써 약속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딸들과의 약속이 우선이냐 향이와의 약속이 우선이냐, 아직도 나는 갈팡질팡했다. 나는 오주선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이 무슨 날인지 물었다. 그녀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랐다.
“글쎄, 오늘이 무슨 날이지?”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맞다, 오늘은 아진이 생일!”
향이와 아진이의 생일이 같다는 걸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오주선에게 화부터 냈다.
“이봐! 아무리 의붓딸이라고 너무한 거 아냐? 오늘 향이 생일이지?”
“아! 맞아! 향이 생일, 그걸 어떻게 알았어?”
“잔말 말고 빨리 집에 들어가 생일이나 준비해! 대체 여자가 저렇게 못돼 처먹어서야 원!”
나는 전화를 끊고 아진이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곤 생일 축하한다는 말부터 꺼냈다.
“씨....... 오늘 여섯시까지 내 생일 기억 못하면 내가 아빠를 여섯 달 동안 속 썩여 버릴려고 했단 말야!”
“그래, 그래 미안하다. 내 딸! 아빠가 선물....... 그런데 오늘 시간이 좀.......”
향이에게도 가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한 것이다.
“왜 그래 아빠? 선물 사주러 온다는 거야 안 온다는 거야?”
나는 차마 못 간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 갈게, 어디니 거기?”
딸들과 장미는 시내에 있었다. 나는 시내로 나갔다. 솔직히 아진이 에겐 선물 몇 개만 사주고 후딱 향이에게 넘어가고 싶었다. 아진이야 그간 숱하게 생일을 치러줬으니 올해는 꽃다운 열여덟이 되는 향이에게만 집중을 해주고 싶었다. 나는 회사 핑계를 댔다.
“아진아, 선물은 뭐든지 사줄 테니 아빠가 회사에 좀 가보면 안 되겠냐? 일이 좀 있는데!”
하지만 통하지가 않았다.
“내일부터 일한다고 했잖아, 아빠! 나한테 지금 거짓말 하고 있는 거지? 또 그때처럼 이상한 아줌마 만나려는 거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꼼짝없이 백화점부터 들르기 시작했다. 아진이에겐 물론, 완희에게도 선물을 사주었고 장미에게도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된 기념으로 작은 선물을 사주었다. 장미는 여고생처럼 좋아했다. 백화점을 나와 근처 식당으로 갔다. 음식 맛을 하나도 느낄 수가 없었다. 향이가 기다릴 텐데.......
“아빠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냐!”
완희는 날 걱정했고 장미는 손수 상추에 고기를 싸서 넣어주었다. 역시 섬세한 여자였다.
“띠리리리링”
전화가 왔다. 오주선이었다.
“뭐하세요? 지금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미안해, 오 부장! 오늘 못 가게 생겼어!”
딸들과 장미가 심상치 않은 내 분위기를 눈치 챘다. 작은딸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아빠, 진짜 회사 사람하고 약속 잡은 거야? 흥, 딸 생일 때 약속 잡은 사람이 어디 있어? 얼른 가봐!”
“괜찮다, 난 안갈 거다!”
“맘 변하기 전에 빨랑 가라구!”
나는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미안하다 아진아! 요즘 회사문제로 좀 복잡했나보다!”
식당을 빠져나온 뒤 부리나케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MP3며 핸드폰이며 닌텐도며 전자사전이며, 그런 것들을 후딱 지른 뒤, 향이네집으로 차를 몰았다.
“허억 허억!”
선물꾸러미를 들고 향이네집에 도착한건 그로부터 40여분 만이었다.
“어, 사장님! 못 오신다고 했잖아요!”
“자 이거 받아라!”
향이는 선물 앞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엄마가 말했어요? 제 생일이라는 거?”
“아니, 그냥 짐작한 거야. 만약에 네 엄마 생일이었다면 넌 내게 말을 했을 테지!”
향이는 눈물을 훔치곤 고갤 끄덕였다. 향이의 친구들이 뒤에서 나타났다.
“우와 선물이 진짜 대박이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좀 키워주시면 안돼요? 헤헤헤! 농담 이예요!”
내 이야기를 들은 건지 아이들은 장난을 치며 인사를 했다. 나는 아이들 틈에 끼었다. 모두들 순수하게 보였고 예고생들이라 그런지 보통여고생들보다는 확실히 튀었다. 그러다가 향이의 방에서 나온 아이를 보고 나는 머리칼이 빡 설 정도로 놀랐다. 향이와 쌍둥이는 아닐지언정 자매라고 보면 딱 맞을 정도로 닮은 아이였다. 내 표정을 본 아이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깔깔 웃었다.
“사장님, 재 이름은 보연인데, 별명이 향자예요!”
“향자?”
“향이와 닮아서!”
“하하하!”
나는 실컷 웃긴 했지만 보연이라는 애는 향자라는 별명이 싫은 건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오주선이 밥을 가져왔다. 밖에서 딸들과 먹고 왔지만 나는 억지로 밥을 먹었다. 함께 앉아있는 향이 친구들이 반가웠다. 어차피 만나고 싶었는데 이번기회에 눈도장들을 찍게 되었다. 오래 앉아있고 싶었지만 날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일찍 자릴 떴다.
“다음에 보자, 자주 회사에 놀러오구!”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하지만 내 눈엔 내 딸 향이밖에 안 보였다. 오주선은 주차장까지 배웅했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큰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빠! 우린 집에 들어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