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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 회: 막내딸의 실종 -- >

나는 자릴 박차고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40분이었다. 지금껏 외박이라고는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내 작은딸.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무엇보다도 어제 본 신문기사 내용이 떠올랐다. 나는 찬물을 마셔가며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전화도 안 돼?”

“네! 받질 않아요. 흑흑흑!”

나는 급한 대로 혜린이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네! 아빠!”

“간밤에 아진이가 안 들어와서 그러는데 혹시 너한테 전화 온 거라도 있었니?”

“아뇨!”

나는 전화를 끊고 완희와 함께 아파트를 나섰다. 아진이의 학교로 가보려고 했는데 제기랄, 차가 룸살롱에 있었다. 간밤에 폭주를 한 탓인지 내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마음은 급한데 택시는 한 대도 보이질 않았다. 

 완희와 나는 전철역으로 달렸다. 전철역과 가까운 집을 사놓은 게 천만 다행이었다. 

전철로 완희와 함께 네 정거장을 같이 타고 가다가 내가 먼저 내리면 아진이의 학교와 가깝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땅속의 풍경은 가관이었다. 출근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와 완희는 저절로 사람들의 물결로 휩쓸리듯 떠밀려 들어갔다. 우리 딸들이 매일아침 이런 지옥 철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이 아팠다. 사람들의 힘쓰는 소리와 고함소리가 범벅이 되어 들려왔다.

“끄응!”

“밀지 좀 마세요!”

“아 씨발! 그만 좀 밀라니까!”

우여곡절 끝에 전동차에 오르긴 했지만 지난밤 먹었던 술기운 때문에 여전히 정신이 몽롱했다. 뭉클뭉클한 여자의 몸이 내 앞에서 떡처럼 엉겨있었지만 나는 별 다른 느낌을 갖지 못했다. 오로지 내 머릿속엔 아진이 생각뿐이었다.

“아빠, 아진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

“그, 그래!”

나는 지척에서 들리는 큰딸의 목소리에도 그냥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진이만 생각하면 이대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간밤에 먹은 그 독한 양주는 여전히 내 머릿속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울컥 욕지기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사람들이 뱉어내는 이산화탄소 때문이었다.

“아빠, 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나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큰딸의 몸과 내 몸이 밀착이 되어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제길, 어처구니없게도 그 순간 정신이 팍 돌아오면서 온몸이 확확 달아올랐다.  

“덜커덩, 덜커덩!”

하필이면 그때 전철이 코너를 도는 바람에 사람들이 크게 한쪽으로 쏠렸고 얄궂게도 나와 큰딸은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한순간이나마 떡처럼 엉겼다가 떨어졌다. 큰딸의 풍만한 젖가슴이 내 가슴에 찰라처럼 뭉개졌다가 떨어져나간 것이다. 나도 곤욕스러웠지만 큰딸의 목덜미와 뺨도 빨갛게 익어있었다.

콧속으로 큰딸의 살냄새까지 풍겼다. 나는 눈을 꽉 감았다. 그리고 머릿속에다 아진이의 모습만 떠올렸다.

문득 아진이의 담임이 생각났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아진이의 담임에게 전화를 넣었다. 

“황인아 선생님? 저 아진이 아빱니다.”

“어머 안녕하셨어요?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나는 아진이의 일을 말했다. 담임이 많이 놀란 것 같았다. 그렇잖아도 요즘 어린 여학생들의 실종사건이 서울바닥에서 종종 벌어지곤 해서 학교에서도 긴장을 하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나는 학교에서 뵙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큰딸과의 곤욕스럽고도 아찔했던 전철여행은 이윽고 막을 내렸다. 

전철에서 먼저 내린 나는 택시를 집어타고 아진이가 다니는 여고로 갔다. 딸이 하룻밤 안보인 다고해서 학교까지 찾아오는 나를 극성스러운 학부형으로 보든 말든 나는 상관이 없었다. 

나는 담임을 만나 아진이와 친했던 아이들의 전화번호를 입수했다. 내가 전화번호에 집착을 한건 알약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담임과 교감은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했다.

 일단은 기다려보라고 했다. 단 한 번도 외박을 안 해봤던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어느 날 문득, 묵혀두었던 불만을 폭발이라도 시키듯 아무 말 없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내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나는 경찰서에 가서 실종신고까지 냈다.

 집에 들어가 아진이의 사진을 한 장 가져왔다. 인쇄소에 가서 만장을 찍어달라고 했다.

만약에 오늘까지 전화가 없으면 나는 학교주변과 전철과 버스정류장에다 아진이의 얼굴이 그려진 전단지를 대량 살포를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해가질 때까지 전화를 기다려도 아진이는 연락이 없었다. 나는 부질없는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내게 알약을 주고 장사를 하게 했던 놈에게 전화를 또 넣어보았다. 역시나 꽝이었다.

나는 심부름센터직원까지 불렀다. 나는 딸아이의 사진을 몇 장주면서 말했다.

“찾아주기만 하면 다른 사람보다 두 배로 사례금을 주겠소.”

나는 착수금으로 천만 원을 주었다. 사기꾼처럼 생긴 녀석이라 믿음이 가질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일단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작은딸 아진이.......

지금쯤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나쁜 놈들에게 팔려가 인간으로선 도저히 할 수 없는 더러운 짓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피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바로 이 아비가 저지른 죄 때문일 것이다.

인과응보인 셈이었다.

“아진아 미안하다!”

나는 벽에 걸린 사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저절로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아진이의 담임에게 전화를 또 걸어보았다. 혹시 학교로 아진이가 왔냐고 물어봤지만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담임이 우리 집엘 오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며 말렸다.

허기가 졌지만 밥을 먹기가 싫었다. 힘이 빠져서 저절로 눈이 감겼다. 나는 소파에 길게 누웠다. 

“삑삑삑”

전자키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완희가 날 발견하고는 쪼르르 달려왔다.

“아빠!”

완희는 내 앞에 쪼그려 앉아 울었다. 이윽고 완희가 훌쩍거리며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밥을 퍼 담는 소리, 숟가락이 놓인 소리, 그 모든 것들이 다 싫었다. 조금 있자니 완희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아빠 식사하세요. 기운을 차리셔야 아진이를 찾든가 하죠!”

그 말은 맞는 말이었으나 나는 정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완희는 끙끙거리며 내 팔을 기어코 잡아당겼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완희를 부둥켜안고 울고 말았다.

“완희야! 크흐흐흑”

“아, 아빠!”

완희도 날 안고 울었다. 아무리 좋은 일엔 마가 낀다고 하지만 정말 우리가족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하필이면 딸들의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이번 여름 방학 땐 정말 근사한데로 가고 싶었다. 비싼 경비 때문에 차마 가보지도 못한 외국으로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잠시 후 우리 부녀는 식탁에 앉았다. 나는 밥을 먹은 후 완희에게 말했다.

“완희야! 이제부터 내 말 잘 듣거라.”

“네 아빠!”

“앞으로 남자든 여자든, 자고로 그 어떤 놈이 됐든 초콜릿이건, 혹은 달콤한 과자건, 너에게 뭔가를 먹어보라고 그러면 넌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 알았지?”

나는 말을 해놓고도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왜 진즉 이 말을 아진이에게 해주지 않았나, 도끼로 발등을 찍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완희는 내 말을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알약 몇 개를 가져왔다. 썰지 않은 거라 작은 사탕만 했고 초콜릿색이었다.

“자 잘 봐라. 이걸....... 이렇게 생긴 걸 누군가가 주면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 알았지? 아니, 한 번 더 말할게, 나는 내 딸을 믿는다. 남자도 사귀지 말아라. 키스 같은 것을 하지 말란 소리야. 키스로 알약을 넣을 수가 있거든.”

완희는 여전히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고개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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