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6)

지수-중-1.

결혼이라는 걸 한다면 최소한 사랑하는 아내의 과거는 잊어 줄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서약에서도 ‘앞으로 검은 머리가 흰 머리가~’라는 익숙한 문구처럼 앞으로가 중요한 것이지 과거는 그저 과거일 뿐, 지금의 아내가 내 옆에 있을 수 있는 소중한 과거로서 그 과거도 아내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소중히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는 남편이어야 한다고 생각 했었는데....

“우리 오랜만이지?”

[.............]

전화번호를 신청만 하면 바꿀 수 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된 난 또 다른 새로운 번호로 거의 두 달 만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인지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아내는 아무 의심 없이 금세 받았지만 음성 변조된 내 목소리에 순간 침묵이 이어진다.

“전화 받기 곤란한 해? 아줌마? 왜 말이 없어?”

[약속..했잖아요. 한 달이 지나면...]

“약속? 아~ 그거야 나랑 한 약속이 먼저였지 않나? 물론 그 약속이란 걸 아줌마도 지켜줘야 성립이 되는 거고, 그런데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분명 당신이 시키는 대로 모텔까지 갔었고! 연락을 안 한 건 당신이잖아!]

“모텔에 오긴 뭘 와! 밤새도록 모텔에서 기다렸는데 어딜 왔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부..분명 모텔에...]

“엉뚱한 모텔이라도 갔었나보지? 방까지 두 개 예약해놓고 기다렸는데 사람을 핫바지로 보냐!”

[..그..그래도 이건 아니죠. 벌써 두 달이나 지났잖아요. 그리고 먼저 연락을 끊은 것도.. 아저씨잖아요.]

아내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안절부절 못 하던 모습이 겨우 진정이 되어 이젠 일상으로 돌아온 지 이제 겨우 이삼주가 지난 걸 느낀 나였다. 그리고 내가 너무 과한 장난을 치는 건 아닌지.. 미친 짓이니 이젠 그만 해야지..... 라고 예전의 나였다면 그냥 그렇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날 내 아내란 여자인 지수는 알코올에 만취해 내가 한 질문에 중얼거리듯 두 가지를 얘기해줬었다.

‘소라넷’

‘철근’

강과장 놈에 의해 소라넷이란 곳은 어렵지만 쉽게,, 그렇게 알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 한 그 변태적인 장소에서 많은 충격을 받게 된 나였다.

아내의 입에서 새어나온 이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갈수록 난 아내의 과거에 집착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알게 된 과거라도 모른 척을 해야 할 부부사이에 난 뒤늦게, 그것도 생각지도 못 한 방법으로 우연찮게 알게 된 이 음란사이트로 인해 아내의 과거에 더 한 의혹과 호기심, 그리고 질투 섞인 망상으로 인한 집착까지 하게 될 정도였다.

아내에 평소대로의 모습과 조바심 내는 모습까지..

모든 행동들이 과거와 연관 지어지는 실마리처럼 의문과 의구심만 증폭되어 미칠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사란 걸 했다.

두 달이라는 시간동안 아내와 강간범인 동시에 협박범이라는, 그렇게 막 시작하려던 관계를 잠시 접고 돈까지 쓰며 내가 가장 믿고 사랑해야 할 아내란 여자의 뒷조사란 걸 했다.

첫 뒷조사는 돈이 아깝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60만원이라는 돈을 어처구니없게도 사기를 당했고 제대로 된 조사를 위해 250만원이라는, 이것도 한 번 당한 사기에 대해 내 극악적인 경계심과 그 사기를 조사원에게 털어놓고 탐감 받은 거금이었으며 그 거금을 투자한 지 보름 만에 아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 귀중한 경험으로 현실의 밑거름이 되어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양분으로서 존재해야 비로소 현실에 만족할 수 있는 건 아닐까?.. 과거는 후회해도 후퇴하면 안 된다는 말처럼 아내의 과거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 무수히, 그리고 안간힘을 쓰며 노력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노력으로 인해 묘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 나였다.

아내의 과거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어떤 표정과 행동을 보여줬을까?....

깊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곤 더 낮게 목소리를 깔며 핸드폰 너머의 아내에게 다시 통화를 이어한다.

“그래서 싫다?”

[....]

“이거 왜 이러시나.. 소라에서 흑진주라는 아이디만 대도 다 알아주던 섹녀께서!”

[..................]

아내의 떨리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한 착각이 핸드폰에서 들리는 듯 했다.

“대단하던데.. 까무잡잡한 피부하고 딱 어울리는 닉네임이야. 흑. 진. 주”

[우..원하는 게 뭐야..]

“뭐야? 말이 짧다..”

[무..뭐에요.]

“두 달 전에도 말 했지만 나 그렇게 개차반 아니라고. 솔직히 말하면 직접 하는 것보다는 보는 걸 좋아한다고 해야 하나? 내 성적취향이 그래서 그 모텔도 거금을 주고 예약까지 한 건데 말이야..”

[가..갑자기 왜.. 왜 이제 와서 이런 전화를...]

“뭐.. 어차피 볼 거 안 볼 거 다 본사이니까, 까놓고 얘기하자고 어디서 많이 본 몸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 흑진주일 줄 누가 알았겠냔 말이지.. 이게 웬 떡이냐는 생각에 여러 가지 구상을 하는데.. 우선 확인이 필요하더라고. 아줌마하고 얘긴 별로 안 해봤지만 딱 불어지는 성격에 ‘증거 있냐!’라고 나오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

[......]

“그래서 이것저것 좀 조사해봤지. 주민번호야 다 확인했으니 조사하기도 쉬웠고 말이야.”

[무..무슨 증거가 있다는 거죠?]

“아! 아줌마!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말이지! 인터넷이라는 게 진짜 무섭더라고. 아줌마가 쓸데없이 댓글 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말이지.. 결정적인 건 집에서도 소라넷에 들어갔다는 걸 아이피로 찾아낸 거지만 말이야. 남편이 시원찮은가봐....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찾아서 들어가던데..”

[누.누가 시원.. 헛소리하지 말아요!]

“왜? 아니야? 하긴 그렇게 굵고 긴 자지에 박혀대다가 평범한 남편 만났으니 만족이 안 될 거야. 그치?”

[야!!! 이 개새끼야!]

아내가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에도 크게 욕을 했다.

단 한 번도 욕이라는 걸 해본 적 없는 아내가 자신을 음란하게 말하는 것에 화가 난건지 아니면 날.. 날 조롱하는 남자에게 화를 내는 건지 모를 욕을 들으며 잠시 침묵을 하게 된다.

[다시는 연락하지 마! 문자도 보내지 말고! 전화도! 한번만 더 전화하면 진짜로 신고할거...야!]

“마음대로 하라고. 남편한테 까발릴 걸 각오라도 한 거 같은데... 그런 구태의연한 발상은 두 달 전이잖아.”

[무..뭐라고?]

“남편이라는 작자에 대해서 좀 알아보니까. 착한 사람이던데...”

[...]

“사실대로 말하고 용서를 빌면 뭐.. 그래서 방법을 좀 바꾸기로 했다 이 말이지..”

[무..슨 말이에요?]

아내의 목소리가 다시 작아지며 떨림이 더 커진다.

“주소하고 전화번호, 실명.. 거기다가 적나라하게 찍힌 얼굴 사진까지! 제목은 뭐가 좋을까? 소라에 돌아온 흑진주? 아니면 흑진주 컴백!.. 오빠들이 그리웠어...요?”

[그만!!!]

“왜 이러시나.. 이 놈 저놈한테 다 대주고 다녔던 소라의 걸레년께서 이런 일로 울먹이기..”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런....]

아내의 목소리가 울먹거림으로 바뀌며 흐려졌다.

나도 가슴이 찢어질 듯 말을 잇지 못 했지만.. 이런 사실을 내게 감쪽같이 속였던 아내에게 느낀 배신감이 더 컸기에 아구를 꽉 다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럼 하던 거 계속해야지?”

[....]

“아!! 우선 뻥만 치는 놈이 아니란 걸 보여줘야 될 거 같아서 사진 하나 올렸는데 말이야.”

[사..진이라뇨?]

“조사라는 걸 하는 김에 아줌마 소라 아이디하고 비번도 좀 알아냈거든.. 소라에 들어가서 확인하시고 자~~알 생각해보고 저녁까지 대답을 하라고... 그럼 씨 유 어게인~~”

전화를 끊고는 핸드폰에 인터넷 창을 켠다.

출근 후 부장놈의 눈치를 보며 소라넷에 올린 아내의 사진 속엔 예상보다도 더 많은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오뎅바에서 직행한 모텔에서 스타킹을 갈기갈기 찢어발긴 채 팬티를 젖히고 최대한 스스로 찍어놓은 듯 조작했던 사진에 벌써부터 흑진주가 아니냐고 물어보는 댓글까지 있었다.

아내의 아이디로 온 쪽지도 그 짧은 시간에 100여 통이나 됐다.

“뭐해?”

“왔냐?”

“요즘 너무 농땡이 치는 거 아니냐? 너희 부장이 아주 벼르는 거 같던데...”

“벼르던지.”

“허~.. 근데 뭘 그렇게 골똘히 보냐?”

“.........볼래?”

“와~~~ 죽이네! 크큭~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시간만 나면 소라냐? 근데 이 여자 죽인다.”

강과장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아내의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혹시나 들킬까봐 후회하기도 했지만 다행이 지수일거라는 생각은 못하는 듯 보인다. 하긴 작년 모임 때 통통했던 와이프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져있었으니..

“흑진주?”

“썸타고 있는데..”

“...뭐?”

“그 여자랑 썸타고 있다고.”

“진짜!? 이 여자랑!!?”

“...”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보며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강과장의 얼굴에 묘한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안되겠다.. 사진 지워야지.”

“무..뭐?? 네가 올린거야? 아니.. 네가 찍은거야!?”

“...”

대답대신 묵묵히 사진을 지우는 모습을 일부러 보여주려 삭제버튼을 누르려 아래로 내리려던 중 잘 못 눌러 새로고침이 되는데 사진이 이미 삭제되어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아내가 보고 분명 지워버린 게 확실하다.

“펌사진이지?”

“...”

“진짜 펌 사진 아니야? 제수씨는 눈치 안 챘냐?”

“...”

“대박! 와! 진짜 늦게 배운 도둑놈이 임금을 턴다고 하더니! 어디까지 갔냐? 아니지! 이런 사진을 찍을 정도면..”

“그만두려고..”

“뭘? 이 여자를 그만 만난다고?”

“응.. 와이프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뭐가 미안해! 야야! 줘도 못 먹는 놈들이 수두룩한데.. 너도 거기에 끼려고 그러냐! 눈치껏 치고 빠지면서 활력소도 찾고, 그 활력으로 더 가정에도 충실하면 가화만사성이지!”

“가화만사성? 미친....”

“이런 여자랑 한 번만 할 수 있다면 와이프가 문제냐!?”

“그렇게 예쁘냐?... 각도가 잘 찍혀서 그렇지 그냥 평범하지 않나?”

“이,이 봐라~ 하여튼 있는 것들이 더한다더니.. 아무리 각도를 잘 놓고 찍어도 본바탕은 어딜 가는 게 아니란 말이야! 군더더기 없는 탄탄할 거 같은 허벅지 위로 풍만한 엉덩이가 얼마나 조임이 좋을 질 말해주잖아. 그리고 가슴은 완전 명품이 더만! 운동하는 여자가 확실해! 가슴이 그렇게 큰데 갈비대가 보일정도로 허리는 쏘~옥 들어간 게..”

“운동은 개뿔.. 아줌마다 아줌마! 애도 딸린 삼십 중반...”

나이와 아이 얘기를 극찬을 하는 강과장의 모습에 무심결에 해버렸다.

혹시나 눈치를 챈 건 아닌지 눈치를 살피는데, 이 강과장 새끼는 벌써 삽입하는 장면이라도 상상을 하는 지 지그시 눈까지 감고 찬양만 주구장창 이어간다.

“내 마누라가 이 반만 됐어도 내가 울 미스 홍을 안 찾는데.. 그래서?”

“...뭐?”

“뭐긴 뭐야 어떠냐고!? 정신 못 차릴 정도냐? 살살 녹아?”

“녹기는... 여자가 다 똑같지...”

“뭐가 똑같냐! 이 정도 엉덩이면 조임이 장난이 아닐 텐데. 칠 때마다 찰싹찰싹 붙어서 떡 칠 맛이 아주~~..사진 더 없어? 사진!.”

“이 친구가 왜 이래.. 나중에.. 나중에 보여줄게.”

강과장이 내 핸드폰을 뺏으려고 달려들었고 황급히 주머니에 숨기게 된다.

항상 봐온 아내의 몸이 남에겐 이렇게 섹스럽고 먹음직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처구니없는 내 생각에 곧 머리를 크게 흔들어 댔다.

가뜩이나 부장놈한테 찍힌 상태에 있던 난 눈치를 보며 업무를 마친 후 할 필요 없는 잔업까지 자처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된다. 당연히 일을 하려고 앉아 있는 건 아니다.

[여보세요..]

“남편은 퇴근했나?”

[....]

“그래서.. 내가 어떤 명령을 내려도 따를 준비는 됐나?”

[....단.. 조건이 있어요.]

음성 변조된 내 전화를 받은 아내는 잠시 동안의 침묵을 끊고는 조용히,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조건을 제시한다.

“조건?”

[..... 당신을 어떻게 믿죠? 당신 말대로 그 명령이라는 걸 제가 한다고 해도,, 한 달 이후에도 당신이 계속.. 계속해서 협박을 안 한다고 믿을 수 있냐고요.]

“음~ 그것도 그렇군. 하지만 안 믿으면 어쩔 건데?”

[.....]

“지금 입장이 곤란한 쪽은 아줌마잖아. 열쇠를 쥐고 있는 건 나 아닌가? 당신의 적나라한 사진들을 뿌릴지 말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나라고.”

[...저..질.]

“.....”

[...]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아줌마 마음이고. 첫 번째 미션을 주지.”

[미..션이라뇨?]

“지금이... 8시 40분이 조금 넘었군. 아줌마 남편이 근무하는 회사 옆에 보면 OO백화점 알지?”

[.....]

“그 주차장 골목으로 가면 지하에 미용샵이 있으니.. 9시까지 가라고.”

[미용샵이라뇨? 미용실이요?]

“제모 전문이니까. 거기 가서..”

[제모라뇨? 제모면..]

“뭘 새삼스럽게 놀라나? 옛날에는 많이 했잖아.”

[..지금 갑자기 제모는 힘..]

“힘들다?”

[남편이 알면 어떻게 해요. 갑자기 제모를 하라는 억지를..]

“그건 아줌마가 알아서 핑계를 대야지! 돈까지 다 지불한 내가 그런것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

[......]

“정확히 9시 10분에 예약을 해놨으니까! 알아서 하라고. 첫 명령, 약속부터 깨려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나도 나갈 준비를 한다.

앞으로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확인하기 위해 준비한 모든 것들 중 몇 가지를 챙겨 가지고 아내에게 말 했던 미용샵으로 향한다.

여러 군데를 둘러보던 중 우연찮게 발견한 가까운 이 샵은 내겐 금상첨화였다.

2층에 위치한 샵은 여러 개의 깔끔한 방으로 이뤄진 구조로 여러 가지 면에서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한 내 상황에도 딱 맞아 떨어졌다. 물론 왁싱전문가에게 들어간 곱절의 비용이 아깝긴 했지만..

업무종료 시간인 9시가 지난 후였기에 미용샵은 적막감마저 흐를 만큼 고요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미용샵에서 며칠 전 만났던 여주인이 아닌 남자가 내게 인사를 한다. 어렵게 섭외했던 긴 꽁지머리에 깡마른 남자다.

“조금 있으면 오는데.. 다 준비는 됐나요?”

“네. 그럼 저 안 쪽 방에서 기다리세요.”

남자가 이끈 방으로 들어가 멀뚱히 기다린다.

좀 이상하게 생긴 미끈거리는 흰색 침대에 앉아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여러 가지 물품들을 쳐다보며 몇 분을 기다리는데.. 시간이 너무나 지루하게 지나가는데도 지루함이라는 단어와는 달리 심장은 터질 거 같다.

과연 내가 잘 하는 짓인지..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작은 복수.. 작지만은 않은 복수를 계획하고 돈까지 썼으니...

아내는 날 속였다. 그것도 감쪽같이 날 속였고 아닌 척 했다....

어차피 아내는..

별의별 생각을 하며 초점 없는 시선으로 테이블 위의 물건들을 쳐다보던 내 귀에 아주 작게 열어놓은 문틈사이로 문에 달린 차밍벨소리가 들린다. 겨우 진정되던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어서오세요.”

“저..저기...”

아내의 목소리가 맞다.

“아..안녕하세요.”

“지수씨죠?”

“...네?...네.”

“네. 예약시간에 잘 맞춰오셨네요. 3호 방으로 들어가셔서 준비하시면 됩니다.”

“...네? 주..준비라뇨?”

“처음이세요?”

“.....”

“처음이시군요. 그럼 들어가시면 샤워하시고 보이는 가운을 입고 침대에 누워 계세요.”

“....”

“왜 그러세요?”

“그게.. 다른 직원 분은.. 안 계신가요?”

“다 퇴근했는데요.‘

“.....”

“아! 혹시 제가 남자라서 그러세요? 하하하하.. 걱정 마세요. 이 계통에서 일한지도 벌써 6년쨉니다. 이쪽에선 나름 유명하고요. 그리고 언니 몸엔 관심 없어요. 하하하하.”

잠시 동안의 침묵을 넉살좋게 웃어넘기는 남자의 서글서글함에 그나마 안도를 한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옆방의 문 열리는 소리와 남자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놓고 진행을 하라는 내 요구대로 남자는 문을 계속 열어놨고 그 틈으로 안을 훔쳐볼 수 있었다. 나갔던 남자가 다시 아내가 있는 룸으로 돌아왔다.

“어.. 아직도 샤워 안하셨어요? 저도 퇴근해야 되는데...”

“...샤워를 꼭 해야 하나요?.”

문틈사이로 가운을 입고 있는 아내가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모습을 훔쳐본다. 사실 왁싱의 경우 샤워까지는 필요 없다는 걸 설명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미 나와 짜인 각본대로 남자는 샤워를 권유한 것이다. 왁싱에 마사지겸용 샵이다보니 샤워시설이 갖춰진 장소도 어떻게 보면 내 계획의 맞춤형 장소이라는 생각을 하며 둘의 대화에 집중을 한다.

“네. 온수로 근육을 이완시켜야 왁싱할 때 부작용이 덜해서요.”

“......”

“그럼 샤워까지는 아니어도 사타구니하고 음부만이라도 온찜질 식으로 씻으세요. 좌욕해보셨죠? 그런 식으..”

“아..알았어요.”

남자가 다시 나오는 타이밍에 맞춰 문에서 살짝 떨어져 몸을 숨기자 마주친 남자가 희미한 웃음을 지어주며 카운터로 걸어갔다. 살짝 열린 문으로 훔쳐보려던 내 의도와는 달리 아내가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방음이 잘 된 룸인지 안의 샤워기 소리도 들리지 않자 시간이 더 더디게 흐르는 침묵이 이어졌다.

문에 바짝 기대고 있던 내게 다가온 남자가 가볍게 헛기침을 한다. 벌써 십여분이 지났다는 걸 깨닫고는 다시 몸을 숨긴다. 남자가 다시 문을 좀 열어둔 채 방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잔잔한 음악이 방안에서 흘러나온다.

“준비 되셨으면 매트에 누우세요.”

“저..저기..”

“네?”

“핸드폰 좀 써도 되요? 깜빡 잊고 배터리를 충전 안 해놔서..”

“네 그러세요.”

‘아내가 핸드폰 배터리를 체크 안 했다고? ’

너무 긴박하게 나와 배터리가 방전이 됐다고 해도 남의 핸드폰을, 그것도 처음 보는 남자의 핸드폰을 빌려 통화를 할 여자가 아닌데.. 라는 생각에 무심코 문을 열고 들어갈 뻔 했다.

“뭐 하세요?”

남자의 목소리에 놀란 난 문고리에 가던 손을 멈출 수 있었다.

“...”

“뭘 찾으세요?”

“아..니에요.”

“010- 6666~XXXX입니다. 궁금하시면 물어보시지! 하하하하.”

“...”

그제야 아내가 뭔 한 건질 이해하게 된다. 아내는 이 왁싱의 전문가라 칭하는 남자가 그 남자가 아닌지, 협박범으로 이 자리까지 자신을 불러들인 남자가 아닌 질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확인하려 한 게 분명했다.

“아..니에요. 정말 한 통화만 할게요.”

잠시 정적이 흐르는 찰나에 내 심장이 멈추는 듯한 진동을 느끼게 된다.

황급히 양복 안주머니에서 ‘윙윙’ 거리며 낮은 저음을 내는 핸드폰에 손을 가져가 스피커 아래 버튼을 길게 눌렀다. 남자의 핸드폰으로 아내는 내 익명의 전화로 통화를 시도한 것이다.

아내는 의심을 확인하려는 게 분명했고 난 적절하게 대처를 해야 한다.

조심스럽게 옆 룸의 문을 열고 들어가 음성변조 어플을 틀고 핸드폰을 받는다.

“샵인가?”

옆방처럼 방음이 확실하길 바라며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이 번호가 저인지 어떻게 아셨죠?]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할 말을 잊은 난 번뜩 떠오른 말로 대처를 한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그 핸드폰 주인을 나라고 생각하고 시키는대로 다 하라고!”

[....]

“걱정 마! 몰카나 녹음 같은 건 없으니까.”

[.......조건이 있어요. 전부는 안 돼요.]

“계속 쓸데없는 말만 하는군. 벌써 다 지시해놨으니까. 끝나고 전화나 하라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다시 조심스럽게 아내가 있는 룸으로 소리죽여 걸어간다.

“어떻게 할까요? 저도 좀 찜찜해서 하기 싫으시면 내일 다시 하셔도 오셔도 되고요.”

“아니에요.”

“그리고... 저 여자 몸에 관심 없어요.”

“네?”

“여자 몸엔 관심 없다고요.”

“그럼...”

“네!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누우세요.”

생김새와 몸짓이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정말 게이인 줄은 몰랐다. 남자의 그런 고백에 반신반의하면서 아내가 머뭇거리자 남자가 핸드폰을 다시 꺼내 뭔가를 보여줬고 그제야 아내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매트에 눕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남자가 뭔가를 시작한다. 등판에 가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뭔가를 바르는 듯 한 상황이 이어지더니 이내 아내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읍!..”

“조금 아프죠.”

“많이 아픈데...”

“하하하.. 첨이시구나.”

“...네.”

핸드폰으로 뭔가를 본 직후 아내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몸 관리를 잘 하셔서 당연히 경험녀 인 줄 알았어요.”

“관리는.. 치장할 시간도 없어요..” (아내가 말꼬리를 흐리며 잊고 있던 뭔가를 떠올린 듯 다시 눈을 감는다.)

“아닌데. 요즘 웬만한 처녀들보다 예쁘신데! 탄력도 좋으시고 무엇보다 피부가 정말 깨끗해서 처녀라고 해도 믿겠어요.”

“....”

“언니, 젊었을 때 남자들한테 인기 많았죠?”

“인기라뇨... 그냥...”

“인기가 많았습니다.”

“인기라뇨?”

“몇 장 못 건졌는데,,,,”

탐정이라 자신을 칭한 250만원짜리 조사원인 남자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서류가방에서 대봉투를 꺼내 내게 건네줬다.

봉투 안에는 총 여섯 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당연히 아내의 모습이었고, 얼굴에 모자이크가 되어있는 그 사진들은 아내의 과거모습이 확실했다. 아무리 야한 옷을 걸친 모습이었어도, 아무리 지금과는 다른 몸매의 아내였어도 난 알 수 있었다.

“남자들이 댓글로 아주 환장하고 달려들었던데요. 몸매도 몸매였지만 구리빛 피부에서 오는 색다른 섹시함이 남자들한테 더 맛있어 보였다고 해야 하나, 거기다가 가슴하고 엉덩이가 한국사람 같지가.... 하하하하.. 으흠.. 이정도면 이혼사유에 해당 될 정도긴 한데.. 이혼 재판이라는 게 좀 애매해서요. 더 많은 증거를 확보하시고 나서..”

“증거 확보요?”

“네. 이혼사유에 해당하는 증거를 입증 책임이 사장님한테 있거든요. 사실 아내의 과거가 혼인유지에 커다란 결격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게 일방적이긴 하지만 이런 과거라면 해 볼만은 합니다. 물론 유능한 변호사를 잡아야겠지만, 제가 이쪽엔 전문이다보니 싸게 소개도 시켜드릴 수 있고요.”

“....이건... 이 초대남이라는 게..”

캡쳐로 보이는 마지막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난 밑에 적혀 있는 내용의 글을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듯 조사원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최근 소라넷이라는 사이트에서 많이 봤지만 도저히 믿지 못 했던 내용의 글들이 누운 남자의 커다란 자지를 모자이크 속에서 보이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빨고 있는 아내의 사진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 그게 참...”

“이 초..대남이라는 게 그거 맞습니까? 여자를 돌려서... 같이 섹스를 하는.. 그럼.. 이 사진들이 전부 그..”

“네.. 철근이라는 남자가 올린 사진입니다. 다른 사이트에 올렸던 사진이고, 나머지는 소라에..”

“그게 문제가 아니고!!!”

큰 소리를 지르게 된 난 겨우 이성을 곱씹으며 최대한 목소리를 작고 낮게 죽여 다시 내 본심의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초대... 아내도 허락하고 다 즐긴 거냐고요.”

“그것까지는.... 확실한 건 초반 글들로 봤을 땐 정지수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았습니다. 사진구도도 그렇고 장면도 거의 골뱅이 상태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요.”

“그러니까.. 나중에는 아내... 지수도 초대란 걸 하려고 이런 사진을 올리고, 그럼 이 이후 사진은요? 초대라는 걸 했다면 후기라는 걸 많이 올리던데..”

“이상한 게 이 사진 이후로 활동을 접으신 거 같습니다.”

“이상하다뇨?”

“뒷조사 생활만 십 수 년이라서 아는데 보통 이렇게 사진 찍기 시작하면 끝장까지 가거든요. 사람 욕망이라는 한 번 맛본 쾌락이 무덤덤해지면 더 큰 쾌락을 쫓는 거고 당연히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두 명에서 세 명, 단순히 지에서 찍다가 모텔로, 차로 노출사진을 찍다가 나중에는 길거리나 공원 같은 대범한 장소로 확대되고요. 지수씨도 보면 점점 더 사진들이 노골적으로 변해가면서 단순 누드 사진에서 빠구리를 뜨는 사진부터 오럴까지 나오는 장면들로 발전하다가 나중에는 젖탱이를 주무르고 보지를 스스로 까발리고 찍은 사진도 올리... 아!.. 죄송합니다.”

주먹을 너무 세게 쥐었는지 손바닥이 아파왔다.

그런데도 그 아픔까지도 느끼지 못한 채 히죽거리며 웃던 남자의 얼굴을 매섭게 노려보기만 했다. 수줍게 내 손에 몸을 맡겨 잔떨림을 보여주던 그 첫날밤의 아내 모습이 갑자기 떠올라 날 더 당혹스럽게 했고 눈물마저 맺히게 한다.

“더 알아 봐 주세요.. 이 이 후에.. 이 사진 말고 더 있는 건지...”

“이정도면 이혼 재판 증거로는 충분할 거 같은데요. 마지막 사진을 지수씨랑 대조해보면 답이 딱 나오..”

“됐으니까!........ 철근이란 놈에 대해서도 더 알아보고! 아내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 봐.. 주세요.”

“..추가 조사는 당연히 추가 요금이 들어가는데.. 괜찮겠습니까?”

“......네.”

“하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이 자료도 탈탈 털어서 겨우 얻은 거 라서요. 아내 분이 갑자기 잠적한 것처럼 돼 버려서 이 자료 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

“다 됐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역피라미드로 앞에는 남겨 놨는데.. 마음에 드세요?”

남자의 목소리에 잠겨 있던 회상에서 깨어난다.

간간히 들려오던 아내의 신음소리도 잡념에 파묻혀 듣지 못 했던 난 그제야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확인한다. 벌겋게 달아오른 아내의 민둥산이 사타구니를 언뜻 확인 한 난 숨 죽여 옆방으로 아내의 전화를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하던 핸드폰의 진동이 손에 느껴진다.

[.....끝났어요.]

“수고했어. 사진은 나중에 감상하지.. 집에 돌아가.”

[....]

“대답은?”

[이..게 다인가요?]

“그럼? 뭘 더 바라나?”

[.....]

“또 전화 할 테니 기다리라고.”

[....알겠어요.]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의 인사 소리가 들린다.

아내의 나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매트에 앉아 다시 생각에 잠긴 나다.

많이 봐 왔던 야동의 주인공이 내 아내였다니..

나에겐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표정과 모습으로 그 커다란 자지를 빨고 핥고,, 박히면서 입을 벌리고 헐떡이는 모습의 음란함을 가득 담고 있는 여자가 내 아내였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고민하고 고뇌하게 된다.

지금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내가 왜 이런 연극까지 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망설이면서도 받아온 사진이 벌써 헤질 정도로 보고 또 보길 반복했다.

아내의 커다란 가슴을 우악스러운 두 손이 짖누르고 있는 사진과 아내의 구리빛 피부인 배에 허연 정액들이 방울 맺혀져 있는 사진, 가장 많이 본 입에 다 들어가지도 않는 커다란 자지를 빨고 있는 얼굴 모자이크 사진까지...

처음엔 용서가 안 됐다. 내 여자이고, 내 아이의 엄마인 내 아내가 이런 음란한 모습을 내가 아닌 다른 놈에겐 보여줬다는 사실이 용서가 안 됐었고 이렇게 긴 시간동안 날 감쪽같이 속인 아내란 여자에게 화가 더 크게 났었다.

너무나 큰 배신을 당한 사람처럼 정작 아내에겐 말도 뻥긋 못하면서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길 반복했다.

그러다가 엉뚱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 아내는 지금도 옛 모습을 숨겨두고 있는 건 아닐까?..

나라는 남자에게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는 몸을 숨긴 채..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그 커다란 자지의 남자의 맛을 몸이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연극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남자도 한 번 맛 본 여자에 대해 잊지 못하듯 여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온갖 망상들이 내 머릿속에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이다.

상상은 더 큰 상상을 불러일으켰고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것도 두려워 아내에겐 질문조차 못 하는 나 같은 겁쟁이는 그 상상이 망상이 되어 아내의 모습으 더 음란하고 섹기 쩌는 모습으로 묘사하며 머릿소게 그림까지 그리게 될 지경이었다.

“선물은 잘 받았나?”

[...이게 뭐죠?]

“뭐긴.. 예쁘게 왁싱까지 했으니까 어울리는 옷차림으로 입고 외출을 해야지.”

[외출..이라뇨?]

“삼일이나 지났으니 붓기도 다 빠졌을테고... 남편은 뭐라고 안하던가?”

[....]

아내는 삼일동안 내 앞에서 옷도 안 벗었다.

“하긴 그 빽보지를 봤으면 남편이 가만히 안 있었을테지..큭큭.”

[앞으로 26일 남았어요.]

“하하하하.. 좋아. 그럼 그 선물을 걸치고 동창회를 가라고.”

[동..창회라뇨?]

“내일이 동창회 아닌가?”

[그..그걸 어떻게 당신이..]

“중학교 동창회니까 남자들도 많이 나올테고, 스쿨러브에 올려놓은 작년 동창회 사진을 보니까 여자보다 남자가 훨씬 많던데. 오랜만에 끈적끈적한 시선들 좀 즐기고 오지 그래.”

[당..신 진짜 무섭군요...]

“내가 무서워? 당신이야 말로 무서운 여자가 아니고? 과연 남편이 아내라는 여자의 사진을 본다면 뭐라고 할..”

[알았어요! 나가면 되잖아요! 뚜~ 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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