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episode15. 큐라 (4)
*
처음에는 의심했다. 성하가 날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고.
그렇기에 나는 무리해서 내 감정을 전달했다. 이것이 좋아한다는 감정인 줄 모르고 지나쳤다면 미래의 나는 땅을 치고 후회했겠지.
다른 인간들에게서는 짜증, 귀찮음, 환멸, 역겨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자연스레 배웠다.
하지만 너만은 달랐다. 너는 내게 좋은 감정을 알려준 유일한 사람이다. 유일한 존재다.
저 자신을 고결하다 하는 드래곤보다 네가 더 대단하게 보였다.
그렇다 해도 너는 마냥 좋은 감정만을 알려준 것은아니었다.
“큐라, 괜찮아?”
[괜찮다.]
너는 좋은 만남을 알려주고, 호감이란것을 알려주고, 사랑이란 것을 알려줬다.
하지만 네가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 모습을볼 때면 그런 감정보다 다른 부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이별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내가 아닌 다른여자가 받는 사랑에 대한 질투.
그런 감정들은, 내 행동을 부추겼다.
인간이 되고 싶다.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성하와 같이 삶을 나란히 할 텐데.
같이 늙어가며, 추억을 회상하는 그런 하나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 아닌, 정말 성하와 같은 인간으로. 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바라게 된다.
[성하. 정말 내가 좋으냐?]
“응. 좋아하지.”
귀찮은 여자라고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해서 확인받고 싶었다.
확인받고 나면 어느새 나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미소가 만개하고 있었다.
“다음부턴 이렇게 자해하지 마. 아프지 않아?”
[…괜찮다. 금방 나을 거다.]
“나처럼 낫는 거 아니잖아.”
[웃.]
그렇게 성하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와중, 성하가 갑자기 내 손을 놓고 멈춰섰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쭈그려 앉아 내 가슴을 보고 있었다.
내가 목부터 흉골까지 긁어내린 상처에서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는 걸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무리 괜찮다. 고 말해도 성하는 내 상처를 만지작거리며 피를 닦아주었다.
“내가 치유 마법은 못 쓰니까…”
너는 정말 상냥한 사람이야. 너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 떼어낼 수 있어.
그렇게 해도 널 붙잡을 수 없다면 그만한 가치가 내게 없기 때문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은 속물적이라고 해도 모르지만, 나는 너의 가치를 찾았기에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가치는 너에게 밖에 없었기에 더더욱.
[성하가 옆에 있어 준다면 나는 그걸로도 만족한다. 이런 건 신경 쓰지 않아.]
“신경 좀 써. 더 아프면 어떡하려고 그래.”
좋아한다는 감정을 처음 들었을 땐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었지.
그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알게 된 지금, 나는 그 감정을 가슴에 안은 채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같은 것을 보고 싶고, 같은 것을 먹고 싶고, 같은 것을 입고, 같은 곳에서 자고 싶다.
“다돌 모였어?”
“네!”
성하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의 장소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족인 것을 숨기려 머리카락의 색을 흰색으로 바꾼 마족 남매가 대답했다.
“…집은 있어?”
“사람 수가 많다 보니 집을 구하긴 해야 하는데.”
“돈이라면 보태줄게”
타국의 여자는 돌아와서 집을 물었다.
거처가 있다면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니 그걸 찾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 집을 구하면 치요랑 내가 같은 방을 쓰도록 하지.]
타국의 여자 옆에 있던 신기 ‘가브리엘’은 그녀가 마음에 들었는지 딱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 방이 다섯 개는 있어야겠네?”
그 말에 성하는 무언가를 세더니 방 다섯 개라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성하랑 내가 같은 방을 쓰고, 마족 남매끼리 같은 방을 쓰고, 신기 둘이랑 타국 여자가 쓰면 세 개만 있어도 되는 거 아닌가?
[이왕 쓸 거라면 그대가 신기 둘과 함께 방을 쓰면 되는 것 아닌가? 가장 큰 방을 쓰면 될 것 같다만. 성하는 나랑 같이 쓰면 되고,]
“그렇게 하면 확실히 방이 세 개로 줄긴 하네.”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하니, 타국 여자는 눈을 끔뻑이며 ‘미카엘’과 ‘가브리엘’을바라보았다.
그리고 성하는 뭔가 고민하는 듯 침음했다.
[계속 같이 자면 되지 않느냐? 응?]
“그래 그래. 그렇게 하자.”
왜 고민하느냐. 하루만 자고 끝낼 관계라면 처음부터 부질없는 관계가 아닌가.
애원하듯 성하의 옷자락을 잡고 몸을 밀착시켰다.
그렇게 설득하니 성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쓴웃음을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하나 또 이룬 기분이었다.
*
집을 구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방도 네 개나 있는 집이었다.
‘미카엘’은 따로 잔다는 듯했다. 뭐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성하도 잘 자거라.]
오늘 낮을 회상하며 눈을 감았다.
좋아한다고 용기 내어 말했던 것이 후회되지 않았다.
성하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성하도 내 마음을 알아줬기에 나는 만족했다.
“…왜 자?”
[밤이지않느냐?]
“오늘 하기로 했잖아?”
어?
[자, 잠깐. 나, 나는 성하가 그만큼 나를 좋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있었던 것뿐이다. 지금 당장 아이가 갖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섞는다고 알고 있었다.
짐승들은 그저 번식을 위해하던 것이, 인간들 사이에선 애정표현으로 쓰인다고 하니 그걸 떠올려 말한 것이었다.
성하가 하겠다고 하면 그걸로 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만족한 것이었다.
하지만 성하는 이미 할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지 몸을 일으켜 내게 다가왔다.
“자. 그토록 하고 싶던 거 아니야? 저항하지 마.”
[우, 우와앗. 버, 벗기지 마.]
“내게는 보여준다면서 왜 가린대. 소중한 사람이 아닌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저항하려고 했지만, 성하의 힘이 은근 강해서 뿌리칠 수가 없었다.
내 몸을 가리던 새하얀 원피스가 힘없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나체가 된 나는 몸을 가리려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성하는 기가 죽은 듯한 모습으로 입을 비죽였다.
왜인지 내가 낮에 했던 말들이 거짓말이 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자, 어때?”
[윽, 으윽?]
성하에게는 허락해도 되겠지. 성하는 상냥하니까.
몸을 끌어안던 손을 풀고 조심스레 나체를 보였다.
그러자 성하는 손을 내게 가져다 댔다. 그 손은 천천히 움직여 내 사타구니로 향했고, 성하는 손가락을 움직여 내 음부를 훑었다.
전류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듯한 감각이었다.
[으극? 아, 앗? 앗. 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나를 괴롭혔다.
시야가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허리가 활처럼 꼿꼿이 펴지고 주체할 수 없는 몸은 이리저리 배배 꼬이고 있었다.
“기분 좋아?”
[자, 잘 모르겠. 다.]
이게 기분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찌릿거리는 감각만이 뇌리에 스칠 뿐이었다.
“큐라가 하고 싶었던 게 이거야. 단순히 번식만 하는 게 아니라.”
[그, 그런 거였던가. 어, 어쩐지 손으로만 앗?!]
“손으로 해도 기분은 좋잖아?”
[으앗! 아극, 으읏?]
성하의 손이 더 깊게 들어왔다. 내 안을 억지로 쑤시는 감각에 조금 아프기도 했지만, 왜인지 싫지만은 않은 아픔이었다.
다리를쭉 펴고 허리를 앞을 접었다. 성하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바들거리는 몸을 버티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으, 뭐, 뭔가 온, 와. 자, 잠깐. 서, 서, 성하. 이, 이상해. 뭔가, 오, 으그극]
파직. 하고 머리에 스파크가 튀는 감각이 일었다.
몸에 저릿한 감각이 점멸하며 더욱 강해져 갔다. 이게 무슨 감각일까.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등줄기를 태우는 것 같았다. 몸이 계속해서 저려오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강해지는 이 저림이 쌓이고 쌓여서 버틸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참다 참다 그 끝에 참는 것을 관두었다. 그 순간 이상한 감각이 터져 나왔고, 견딜 수 없게 된 몸은 제멋대로 허리를 튕기며 몸을 꼿꼿이 펼쳤다.
앞으로 숙였던 몸은 어느새 뒤로 넘어가 있었고 나는 무언가를 싸지르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벌써 갔어?”
[가… 다니? 헉, 흑. 흐으]
“이제 시작인데.”
[자, 잠깐… 머, 머리가아파.]
가다니. 어딜 간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런 말은 입에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 뇌까지 범하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무슨 이름을 가진 감각인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숨을 허덕이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게 몸을 탐한다는 걸까. 몰랐는데, 경험한 것도 나쁘진 않았다. 처음에는 억지로 쑤셔 넣는 감각에 아팠지만, 마지막에는 기분이 붕 뜨는 느낌이라 좋기까지 했다.
여운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성하도 옷을 훌렁 벗었다.
“큐라가 옷을 벗었는데, 나도 벗지 않으면 반칙이니까.”
[어… 그, 그건 맞다만…]
“이걸 큐라에게 넣는 거야.”
[이, 이렇게 큰걸? 드, 들어가긴 하는 건가? 아까 손가락도 겨우 들어간 것 아니었느냐.]
“이걸 넣으려고 전에 풀어주는 거야.”
나체가 된 성하의 몸은 처음 봤다. 그리고 나와 다르게 사타구니에 뭐가 달려 있었다.
처음에는 남자의 생식기겠거니 했지만, 축 늘어져 있던 생식기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딱딱하고, 커진 생식기를 보니 남자는 저렇게 되는 거구나.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데, 갑자기 내게 넣는다고 하니 안일한 생각은 모두 싹 달아났다.
저건 흉기지 않느냐. 저렇게 큰 게 내 안에 들어갈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성하가 내 몸을 끌어 안았다.
체온이 느껴졌다. 갑옷을 두른 드래곤이었다면, 느끼기 힘들었을 성하의 체온.
“좋아한다 했으니 받아들여 줄 거지?”
반칙이다.
그래도 좋아.
나는 성하를 좋아해.
[당연하… 아극!?]
미소를 지으며 성하의 말에 대답한 순간 성하의 몸이 내 몸과 밀착했다.
푹. 하고 순간 칼에 찔린 기분마저 들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별님이 보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신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에? 어?으?]
혀가 풀려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성하의 생식기가, 내생식기에 꽉 차게 들어왔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내 배가 성하의 생식기 모양 그대로 볼록 튀어나와 있었으니까.
정말 흉기가 따로 없었다. 배를 관통한 것처럼 느껴졌다.
“움직일게?”
번식을 위한 사무적 행위라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혼자 지내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무것도 깨우칠 수 없다. 계속 어리석은 채 살았겠지.
체온을 나누었을 뿐인데, 마음이 통한 것 같았다.
성하의 생식기가 내 몸 안에 들어오니, 내가 성하를 받아들인 것만 같았다.
성하가 허리를 흔드니 성하가 나를 탐해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성하의 목에 팔을 둘러 꼭 끌아안았고, 성하는 발정난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었다.
[으극, 너무, 격해.]
하프 드래곤이라 아무리 격한 움직임에도 죽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성하의 커다란 흉기가 내 깊숙한 곳을 찌를 때면 내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짜릿하다. 이 애매하게 터질 듯 말 듯 한 감각도 어느새 쾌락의 파도가 되어 터질 거라는 걸 알게 된 나는 기대하게 된다.
안아줘. 흔들어줘. 범해줘. 좋아해. 사랑해. 같이 있고 싶어. 평생 같은 것을 하며,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며,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지금처럼 같은 기분을 느끼는 일도 드물 것이다. 왜 인간들은 쾌락을 위해 몸을 섞는지 알 수 있었다.
육체적인 쾌감도 있지만, 정신적인 쾌감도 있었다.
상대와 하나가 되었다는 묘한 쾌락이. 전류가 내 등을 내달리는 듯한 짜릿한 쾌감이 나를 덮쳐왔다.
“갈 것 같아?”
[…가. 갈 것 같다.]
내가 어딜 간다고 그러느냐. 라고 대답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성하가 그리 말한다면 연유가 있는 거겠지. 혹시 이 감정을 간다고 부르는 걸까.
나는 또 추상적인 감각의 이름을 배웠다. 그리고 이를 까득 깨물며 가는 것을참으며 말했다.
나만 가는 것은 싫어. 나와 똑같이, 성하도 갔으면 좋겠다.
혼자 가면 외로울 것 같다. 어감상으로도, 실제로도.
“나도.”
성하가 얼굴을 들이밀고 내 귀에 속삭였다.
바람이 소곤소곤 들어오는 순간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참아왔던 것들이 모두 터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폭탄의 뇌관을 터뜨린 것처럼 머리에서 파직거리는 스파크들이 연쇄작용하며 일어났다.
[앗?! 가, 가아앗?!]
성하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리듯 내 골반을 붙잡고 몸을 꽉 끌어당겼다.
성하의 생식기가 내 깊숙한 곳을 괴롭히듯 찔렀다. 배가 뚫리는 기분을 받으며 몸을 굽게 휘었다.
내 안에서 성하의 그것이 바르르 떨며 무언가를 토해냈다. 꿀럭거리며 내 안에 가득 차는 것이 느껴진다. 온기가 들어왔다.
비명을 지르듯 신음한 나는 그렇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쾌락의 늪에 빠진 채 숨을 허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