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episode15. 큐라 (3)
[무슨 생각을 하느냐? 그런 슬픈 표정을 짓고서.]
“그냥, 이것저것. 나는 조금 무능한 게 아닌가 싶어서.”
[너처럼 유능한 자가 달리 어디 있느냐?]
“…유능이라. 물리적으로만 강한 것은 쓸 데가 없어. 사람의 마음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맨날 벽에 막히는 것 같아.”
어느 날에는 네가 그토록 슬픈 눈을 하고 있기에 말을 걸어보았다.
너는 자신이 무능한 게 아닌가. 하며 한탄하고 있었지. 너처럼 유능한 자가 어찌 무능하다 한탄하는 걸까.
그 이유가 궁금해 물으니 너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대답을 이었다.
마음이라. 일리 있었다. 아무리 재력이 많고, 힘이 세도 사람의 마음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무력하다 할만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대체 누구를 생각하기에, 성하는 이렇게 고민하는 걸까.
[사람에 대해 그렇게 고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교미?]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내가 좋아했던 사람을, 지금에 와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야.”
네가 고민하고 있음에도 그 고민을 내게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
궁금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고민하며 무엇을 선택하려 하는지.
인간은 탐욕스럽다고, 이기적이라고 단언한 뒤로 아무런 흥미도 없던 나는, 다시금 너라는 존재에게 흥미를 가졌다.
‘인간’이 아닌 ‘널’.
[좋아한다.라는 건 교미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 그런 이유를 가진 사람도 있을진 모르지만, 달라. 즐거움이 있다면 나누고 싶고, 슬픈 일이 있다면 덜어주고 싶고, 걱정이 있다면 풀어주고 싶고, 그런 게 좋다.라는 것 아닐까. 참, 추상적이라 그런지 설명하기도 어렵네.”
[…모르겠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이해할 턱이 없지. 누군가를 좋아한다. 라는 감정 따윈 존재한 적이 없으니 무슨 감정인지도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
“그거다.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고,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런 거.”
[인간은 생각보다 복잡하구나.]
“큐라도 언젠가 그럴 날이 올 거야.”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애초에 나는 종이 다르고, 나와 같은 자를 찾는 것 또한 하늘의 별 따기일 텐데.]
내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니 너는 보충설명을 해주었다.
그래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애초에 내게는 상대가 없었으니 그런 것을 품을 틈이 없었다.
네 말에 콧방귀 뀌며 흘려넘겼다. 그럴 리 없다고 단언했다.
정말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하염없이 둘만 있다 생각했을 때쯤, 너는 새로운 이들을 들였다.
인간이 아닌 마족을.
“아, 안녕하세요. 세라에요.”
“안녕하십니까. 테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성하의 힘에 굴복한 건지, 그들은 고분고분하게 성하를 따랐다.
오히려 마족 남자애는 성하를 동경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종을 위협하는 다른 종을 자신의 파티로 들이다니 멍청한 짓에도 정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와 달리 필요했기에 들여왔음을 알게 되었다.
마계를 찾기 위해. 라는 명목으로 파티원이 된 자들이었다.
역시 성하도 인간이었다. 이해득실에 의한 계산에 빠삭하며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는 그런 인간이었다.
[난?]
그런데 난 뭐지. 너와 단둘이 있던 3주라는 시간 동안, 성하에게 필요하다고 들은 적이 없었다.
나는 무슨 연유로 너의 옆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네가 나를 들인 이유가 궁금해진 나는 천천히 옆을 따라다니며 지켜보았다.
“이, 이가라시 치요입니다.”
[가브리엘이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다른 나라로 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타국에서 소환된 용사를 들여왔다. 그녀의 옆에는 ‘가브리엘’이라 불리는 신기가 있었다.
[성하. 굳이 여기까지 와서 그녀를 파티로 들인 이유가 무엇이냐?]
“…이유가 있어. ‘가브리엘’도 필요하고.”
[그렇구나.]
이번에도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긴시간 동안, 나는 이유를찾지 못했다.
네가 나를 찾아와 그토록 애를 써서 옆으로 들인 이유를.
너를 관찰했다. 음식은 무엇을 좋아하며, 무슨 손으로 밥을 먹는지.
너를 지켜보았다. 보폭은 나에 맞춰져 있었고, 네 시선은 간간이 나를 향한다는 것을.
너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나긋나긋했지만, 그 목소리는 우리를 향했을 때뿐이라는 것을.
너를 눈여겨보았다. 말투는 어떠하며, 습관적으로 하는 표정이나 습관을.
네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계속해서 눈에 담고, 귀 기울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신경은 어느새 너에게 쏠려 있었다.
그저 네가 나를 들인 이유가 궁금해 신경을 쏟았을 뿐인데, 어느샌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거 먹어.”
[그럼 성하는 이걸 먹거라.]
성하는 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고 내게 넘겨준다.
나 또한, 성하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고 넘겨주었다.
딱히 거래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왜인지 내가 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갖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아니. 괜찮다.]
네가 나를 보는 만큼 나도 너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눈이 맞는 경우가 점점 잦아졌다.
처음에는 내가 무언가를 바랐기에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너도, 시간이 지나고 다음에 눈을 맞았을 때 그저 눈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마음이 통한 기분이 들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 같았다.
내가 널 보고 있던 만큼, 너도 날 보고 있던 걸지도 모르지.
[성하. 슬픈 눈을 하고 있구나.]
“슬프다니?”
[그 왕녀라는 여자가 그리 좋은 것이냐?]
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너는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전에 이야기했던, 좋아한다. 라는 것을 말했을 때의 표정이었다.
왜인지 마음이 미어졌다. 전에는 모른다고 웃어넘겼을 내가, 이제 와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너를 지켜봤고, 지켜봤고, 지켜봤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서, 네가 왜 나를 옆에 두고 있던 건지 그 이유를 찾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하지만 네가 왕녀를 보고 애틋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이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질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치밀어오르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이대로 성하가 그 여자와 만나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하며 둘의 시간을 갖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걸까.
인간이 가족을 이루면, 그 가족을 제한 다른 이들은 다른 집에서 생활한다고 하며, 가족의 구성원은 그 구성원만을 위해 살며 그 구성원 위주로 삶을 꾸려나간다고 한다.
내가 아무리 친구로 남자고 한들, 찬밥신세가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 그대로 나는 성하의 그 무엇도 아니었던 채 잊혀지게 되겠지.
싫다. 싫다. 싫다 싫다. 싫다. 싫다. 그 무엇도 아니게 되는 것은 싫다.
나는 어느샌가 너의 옆자리를 탐하고 있었다. 어느샌가 너의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탐욕적인 인간들을, 이기적인 인간들을 욕하기 바빴던 내가, 그 누구보다 인간적인 존재처럼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친구 좋지. 친구 좋아. 평생을 외롭게 살았다. 평생을 홀로 살았다. 하지만 성하와 있던 5주가 그토록 행복해서, 500년이라는 세월이 다 허무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알차게 살았다는 감각도 처음이다. 이토록 살아가는 게 충실했다는 생각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겠지. 성하가 있다는 것 하나로 나는 마음이 이렇게 미어진다.]
성하의 마음을 이쪽으로 돌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말했다.
나는 추잡한 생물이다. 다른 순혈 드래곤처럼 고결하지도 못했고, 내가 하등 생물이라 깔봤던 인간을 따라하고 있었다.
[나를 봐다오. 나를]
나를 더 봐줘.
[친구로는 안돼. 그저 친구로 너를 보낼 생각은 없다.]
친구라는 존재를 그토록 바라왔건만, 이제는 친구보다 더한 관계를 갈망하는 내가 있었다.
친구로 지내봤자, 이 이상의 관계가 될 수 없음을 알게 되니 이토록 애절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너를 바라보았던 만큼, 너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느냐.
하지만, 내가 너를 생각했던 만큼, 네가 나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느냐.
처음 마주한 감정이 내 목을 죄어온다. 너를 놓아줄 수 없다는 일념이 나를 괴롭힌다. 두려웠다. 처음으로 마주한 감정이 이렇게 무서운 것일 줄은 몰랐다.
좋아한다. 라는 좋은 감정 뒤에, 질투라는 무서운 감정이 따라왔다.
눈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마음을 마주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그 감정이 불같이 일었다.
*
[솔직하게 말하마. 네가 좋다.]
이야기를 마친 큐라는 열망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몸을 잘라가며 마음에 들도록 하겠다고 할 정도인데, 내가 달리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데, 달리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니, 나를, 나를 봐다오. 성하.]
나는 그런 큐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어딘가 불안한 듯 떨고 있는 손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응. 좋다. 편안하고, 마음이 놓인다.]
그녀가 이렇게 갑자기 터놓은 것은, 엘리샤에 대한 내 반응이 원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착잡할 따름이었다. 또 나는 다른 이의 감정을 망친 게 아닌가.라는 무능함을 느끼게되었다.
언제나 나는 무능한 기분을 느꼈다.
죽지 않는 몸을 가졌을 때는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방패만 있을 뿐 창이 없어 무력했던 내가 있었다.
강한 힘을 가지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생각도 무색하게, 사람의 감정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힌 내가 있었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큐라…”
[왜 그러느냐?]
“내가 죽으면 어떡할 거야?”
[별달리 수가 있겠느냐.]
나는 조심스레 회귀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배시시 웃는 큐라는 귀를 쫑긋거리며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 질문에, 큐라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수긍할 것이라는 대답을 할 것처럼 평온한 대답이었다.
[같이 죽는 것 말곤 답이 없잖느냐.]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뉘앙스였다.
[성하가 아니라면, 내가 있을 곳은 그 돌무더기 말고는 없으니 외로워질 게 분명하다. 응. 그러하다. 그러니 어쩔 수 있겠느냐. 성하가 있는 곳만이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인데.]
“내가 죽더라도 그런 선택은 하지 마.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많으니까…”
[아니. 세상에는 성하가 단 하나뿐이다. 그러니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성하가 없는 생활은 이제 견딜 수가 없어.]
큐라는 상쾌하게 대답했다. 대답의 내용은 전혀 상쾌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달래려 해봤지만, 큐라는 물러설 기색도 보이지 않은 채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처음으로 큐라에게 있을 곳을 만들어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게 집착하는 것 같았다.
“돌아갈까?”
[돌아가는 것이냐.]
“그래. 슬슬 돌아가야 저녁도 먹고, 잠도 자고 할 거 아니야?”
[그렇겠구나. 음.]
골목에 서 있던 나는 큐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자 큐라는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오, 오늘 잊지 않겠지?]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돌리는데, 큐라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입을 열었다.
이러니까 왠지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모르는 하나의 소녀 같기도 했다.
“그래. 오늘 밤은 각오해. 애 하나 만들지도 몰라.”
[애, 애까지…!? 아, 아무래도 그건 너무…]
“그럴 각오도 없이 하자고 한 거야?”
[아, 아직 난 500년 정도밖에 안 살았는데 애를 보는 건 조금…]
“내가 죽을 때쯤에도 500대 중반 겨우 될 텐데.”
[우, 우와아아. 어, 어떡하지? 애를 벌써 봐도 되는 건가?]
큐라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니 펑. 하고 터진 것처럼 큐라의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당황한 큐라가 말을 버벅거리며 몸을 배배 꼬았고, 나는 일부러 그녀를 도발하듯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드래곤 기준으로 500살에 애를 낳는 것은 조금 이른 건지, 큐라는 양쪽 검지를 서로 톡톡 맞대며 입을 비죽였다.
“이미 하자고 한 거니까 결정된 거잖아. 오늘은 잠 못 잘 줄 알아.”
[어? 어…? 서, 성하! 자, 잠깐만. 얼마나 격하게 할 생각인 것이냐?!]
“큐라가 울고불고 애원해도 그만두지 않을 정도.”
[으, 으아아! 자, 잡아끌지 마라!]
자신을 봐 달라고 집착하며 자해할 때는 언제고, 어느샌가 부끄러워하는 소녀로 전락한 큐라는 빨개진 얼굴을 작은 두 손으로 가리려 했다.
나는 그런 큐라의 팔을 낚아채 잡아당겼다.
질질 끌며 길거리로 나서려 하니, 큐라는 갑작스런 공세전환에 당황한 건지 발길을 멈추었다.
하지만 나는 마법에는 일가견이 있는 남자. 다른 사람이었다면 모르겠지만, 큐라 정도는 간단히 끌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신체를 강화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집합 장소로 큐라를 질질 끌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