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6화 〉episode15. 큐라 (2) (96/98)



〈 96화 〉episode15. 큐라 (2)

아무래도 큐라의 마음이 일부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에 쫓기듯 초조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아직 기다려. 우리는 해야  일이 있잖아.”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마왕도 잡아서 세상을 구해야 하잖아.”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곳도 마련해야 하잖아.”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내가 무슨 말로 그녀를 설득하려 해도, 그녀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생각은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것에 무관심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상대에게 보이는 감정이었다.
근시안적인 생각을 하는 것뿐이라며 타일러 봤자 악영향이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일단 그녀를 잠재우는 것이 우선이겠지.


[내가 싫으면 싫다고 말해라. 자꾸 이런저런 이유나 대지 말고.]


주륵. 그녀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손톱이 그녀의 손바닥을 후비고 피를 떨구었다.


“…그렇게 원하면 해줄게.”
[정말이냐? 도망가지 않는 것이냐?]
“어. 그래.”
[…….]

한숨을 내쉬고 비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큐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큐라에게 확신에 찬 대답을 들려주었다.
이 이상 불안해하지 말라고, 자해하는 것을 멈추도록.
 대답을 들은 큐라는 만족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얼굴을 발그레 물들였다.

“…좋아?”
[응. 좋다. 성하가 내게 진심이라는 것만 알 수 있다면 좋다.]
“하프 드래곤이라서 힘들었어?”
[…아니, 힘들지 않아.]

쓴웃음을 지으며 큐라에게 물었다. 그러자 큐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으로 보내다, 그녀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외로움에 치를 떨었던 그녀의 감정을 물었다.

[외롭지 않았다면, 친구가 있었더라면 나는 성하를 만나지 못했을 거니까.]
“…….”

뭔가 뒤통수를 쎄게 맞은 듯한 대답이었다.
그런 생각을 해줘서  고맙긴 한데, 한순간에 500년간 느꼈던 감정을 없던 일로 치부할 줄이야.
큐라를 보니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딘가 모르게 병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성하에 대해 많이 알지만, 성하는 나에 대해 모르겠지. 그렇다면 우린 서로 알아가는 것부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런가?”
[그렇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그러니, 이런 나를 이해해다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다오.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느낄 수 있도록.]


큐라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 일렀다.
서로를 더 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큐라의 모습이 눈에 꽉 차게 들어왔다.

*


알을 깨고 나온 곳은 돌무더기 속. 난생이라 이미 어느 정도 크고 나온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하늘은 푸르렀고, 내가 본 땅은 산뜻했다. 하지만내가 있는 둥지는 폐허나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돌무더기 위에서 홀로 자란 나는 밥을 구하는 일로도 벅차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 겨우였다.


[끼엑.]

할  아는 말도 없었다. 알려줄 사람도 없고, 대화할 사람도 없었기에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그런 것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이런 곳에 드래곤이 있다고?]
[동족의 느낌이 나나, 붉은색인 것을 보니 불길하군. 내버려 두도록 하지.]


그렇게 열매를 먹으며 삶을 버티던 어느 날, 커다란 드래곤이 이곳을 지나쳐갔다. 그들은 나를 본 것인지 가까이 다가와 나를 관찰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렸던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드래곤의 본능인 건지, 아주 약간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선택받지 못했다고, 버려졌다고.

[끼엑…]
[허. 말도 못 배운 것을 보니 부모도 없는 모양이로군. 이렇게 버린 드래곤이라면 그저 반푼이 아닌가? 순혈이었다면 이런 곳이 아니라, 네스트에 두고 왔을 터.]
[그것도 그렇군. 하프니까 버려진 건가.]


부모라는 것을 알게  순간,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태생부터 버림받은 아이. 나는 드래곤이었지만, 드래곤이  수 없었다. 그저 순혈이 아니라는 이유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에레으.]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버려졌지만, 심심했다. 라는 감정을 달래기 위해 말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약초를 캐러 산을 둘러보는 인간들을 보며 그들이 하는말을 익혔다. 검은 돌을 캐러 바위산 주변을 서성거리는 인간들을 보며 입모양을 익혔다.

[테, 베리스.]

내가 무슨 말을 했고,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앵무새처럼 인간의 말을 따라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이번에 얼마나 캤냐. 이번에 약초  비싸졌다고 들었는데.”
“요새 비싸졌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주변에서 다 캐가더라. 나도 얼마 못 캤어.”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보던 사람을 또 보게 되는 일이 생겼다.
수많은 인간이 지나가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자주 띄는 인간이 보였다.
 비슷한 풀을 뜯어갔기에 기억에 남았다.


[…약. 초?]


돌무더기를 조금 벗어나면, 그가 찾는 것이 있었다.
이곳은 날개가 있는 나밖에 모르는 곳이었다. 이걸 가져다주면 나는 이야기할 상대가 생기는 걸까.
배웠던 말을 써먹을 수 있는 걸까.
저 인간들처럼 같이 다닐 수 있는 걸까.


“우왁! 뭐, 뭐야! 드, 드래곤?”
[야, 약. 초.]

내가 아는 약초를 한 움큼 뜯어 그의 앞에 다가갔다.
붉은 날개를 펄럭이며 그의 앞에 다가가니, 그는 놀란 것인지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나는, 배웠던 말을 천천히 써먹었다. 유창하게 말하지는 못해도, 이게 약초라고 불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통하리라 생각했다.

“…약초를 주는 거야?”
[으, 응. 약, 약초다.]
“고마워!”


내게서 약초를 받은 인간은 기뻐하며 돌아갔다.
뿌듯했다. 나도 평범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 정말로 해츨링이 사는 거야?”
“그렇다니까? 전에는 나한테 직접 약초도 따다 줬어. 요즘 약초 캐기도 힘든데 어떻게 그런  알고 가져다줬는지 참.”
“푸핫. 맨날 약초 캐러 오니까, 그만 오라고 건네준  아니야?”
“뭔 소리야. 이렇게 간단하게 받아가면 돈은 금방 버는데, 이런 기회를 놓치겠냐고.”


하지만 그 인간은 속으로는 내게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저 약초를 캐다 줄 뿐인 그런 존재에 불과했다. 그저 평등한 관계를 원했을 뿐인데.

[약, 초. 필요, 없어.]

나는 그날 아무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숲을 돌아다녔다.
숲에서 약초를 발견할 때면 발로 짓밟아 뭉갰다.
탐욕 어린 인간들은 내게 상처를 줄 뿐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오지 않을 장소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부모. 자식. 음. 몰라.]

시간이 흘러 인간들의 발길도 뜸해지고, 나는 매일같이 혼자 중얼거리며 말을 습득했다.
하지만 어려웠다. 이 단어가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이가 없어 답답했다.
드래곤들과는 이야기를  수가 없으니, 비교적 가까운 인간들과대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말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바꾸면, 인간들도 나를 받아들여 줄까. 라는 생각에 마법을 배웠다.
드래곤의 선천적인 재능인 걸지도 모른다. 마법을 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 인간의, 모습. 좋아.]

귀나 꼬리, 머리카락색은감출 수 없었지만 괜찮았다. 인간의 모습과 꽤 비슷하니, 인간이라 생각될 것이다.
그렇게 안일한 생각으로 인간이 지내는 곳으로 걸어갔다.


“우왓! 이상한 괴물이 옷을 벗고 다녀!”
“드, 드래곤이 인간으로 둔갑했나? 도, 도망쳐1”


인간으로 변신했음에도, 인간들은 금세 나를 알아보고 도망쳤다.
나는 인간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못한  날붙이를 들이미는 병사들에게 쫓겨 달아났다.

[괴물. 아니야. 나, 괴물 아니야…]

눈물이 흘러나왔다. 드래곤에도, 인간에도 속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었다.
삶을 살아왔다. 피폐해지는 정신을 이끌고 본능대로 살아왔다.
드래곤에게는 멸시당하며, 인간에게는 두려움, 선망, 신앙, 경외의 대상이 되어 살아왔다.



“드, 드래곤님. 제 모든 것을 드릴 테니 복수를 해주십시오. 제가 죽더라도 그들만은 용서하지 못하겠습니다.”


인간들은 때로 내게 복수를 요청했고.

“토벌하라! 여기 이 드래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두려움이 될 뿐이다!”


인간들은 때로 나를 몰아내려 했다.

[어리석구나.]


나는 인간들과는 다르다.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말을 배우는 것조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던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을 터득하고 난 뒤로는 모든게 따분해졌다.
말을 배우러 다닐 때에는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끝나니 심심하고, 괴롭기만 했다.
탐욕 어린 인간들은 나를 받아 들여주진 않으면서 내게서 무언가를 바라고, 내게서 무언가를 뺏으려 한다.
증오스러운 드래곤들은 순혈이 아니란 이유로 나를 받아들이지 않고, 철저하게 나를 배척해왔다.
어디에도 내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하루하루 언제 어디서 인간들이 나를 죽일까 두려워 더 높은 곳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내게 부탁을 하러 찾아오는 인간들을 피해 작은 인간의 몸으로 둔갑해 숲으로 숨은 적도 있었다.

“내일이 용사님들의 소환식이래!”
“와 진짜? 내일 그럼 용사님들을 볼 수 있는 거겠네?”
“그렇지.”

그러던 어느 날. 인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사라는 단어가 내 귀에 들려온 것이다. 하지만 용사라 한들 똑같은 인간이 아닌가.
그저 마족과 인간의 싸움을 위해 용사라고 불리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안녕?”

시시하다고 생각하며 며칠을 보냈을 무렵, 누군가 내 둥지에 찾아왔다.
성하 너였다.

[…하찮은 것이 내 둥지에 들어왔구나.]

용사라는 것들은 힘에 취해 있는 자들이다. 같은 종 중에서 자신이 가장 우월하다고 믿는 자들이다.
이번에도 그런 것을 이용해 내게 뭔갈 요구하러  것이 틀림없으리라 생각했다.

“…나랑 친구가 되지 않을래?”
[…친구?]

친구? 그런 단어가 뭘 의미하는 거였더라.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인가? 아니, 이건 나와 친해진 뒤에 내 등쳐먹으려는 속셈이다.
나는 믿지 않는다. 이 이상 나는 인간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굳게 먹고 입에서 불을 내뿜었다. 강렬한 열기에도, 그는 죽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어.”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시체에서 눈을 뜬 너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죽지 않는다 해도  죽는 것은 분명 괴로울 텐데 너는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네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저, 내 옆에 있어 주길 바라.”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야. 믿을 수 없어. 인간이란 본디 탐욕스러운 존재가 아닌가. 그저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은 없어.
분명 내 힘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약초를 캐다 달라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던가, 금광을 찾아달라 할 것이다. 나를 죽여 피를 취하고, 살을 취하려 할 것이다.
인간은 믿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야.”
[…….]


이틀을 꼬박 지새워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왜 죽지 않지? 왜 도망치지 않지? 왜, 포기하지 않지?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그가 하는 일방적인 말을 내가 들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인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나에게 말을 할 때마다, 그가 나를  알고 있는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외로움에서 나를 구원해주기 위해 온  같았다.
믿는 것도 여유가 있는 자가, 강한 자가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나약했기에 믿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마지막으로 용기를 낸다면, 조금은 나도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정말이냐?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냐? 이렇게널 죽이려 했는데도?]
“다 알고 왔어. 괜찮아.”

너는 상냥했다. 나는 너를 부정하며 죽이려 했는데, 너는 화내지 않았다.
미안하다. 아프게 했구나. 너는 진심으로 다가왔는데, 나는 너를 믿지 못했었다.
나는 한 번 더 용기 내어 너를 믿고, 너의 곁을 걷기로 했다. 네가 허락하는 한 너의 곁을 지키겠노라고 생각하며 걸었다.

[…필요 없느냐?]
“뭐가?”
[내 힘 말이다.]
“어…. 어. 그렇게 필요하진 않아.”


필요하지 않다.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다.
어딜 가도 지지 않을 힘이라 생각했는데, 너는 거절했다.
흔히 하는 인간의 자만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너의 힘을 본 순간 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흘러넘치는 마나의 양은 이미 다른 괴물을 초월했고, 너의 구체적인 상상력은 다른 이들의 마법을 금세 터득할 정도로 유능했다.
이리도 강한 자가 왜 나를 곁에 둘까. 내 어디가 그렇게 필요했기에 나를 데리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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