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episode14. 달 세뇨 (3) (93/98)



〈 93화 〉episode14. 달 세뇨 (3)

[…갑자기 깨워졌다고 생각하니, 웬 이상한 사람들 사이네.]

‘미카엘’은 고고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
황금색 아우라가 퍼져나갈  같은 그녀의 분위기에 압도된 건지, 모두 긴장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게, 어쩌다 보니 들르게 돼서 지나가게 됐는데, 언니의 기척이 느껴졌단 말이지.]

그 가운데, ‘가브리엘’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보기 힘들다 했는데, 어느새 이 공간에는 ‘미카엘’, ‘가브리엘’, 나, 치요로 네 명이나 있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셀렛 교수와 그의 조수를 보았더니, 사색이  채 ‘미카엘’을 보고 있는  눈에 들어왔다.

[그래. 과업은?]
[안타깝게도 과업은 아직이야. 하지만 그걸 이뤄줄 사람을 구해놓긴 했지.]

‘미카엘’은 관심 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회차에서 봤던 성인 여성의 모습이 아닌, 작은 크기였다.
그녀는 아이 같이 생겼으면서도, 분위기는 성인 여성 못지않았다.
‘가브리엘’은 ‘미카엘’의 말에 쓴웃음을 머금은  대답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옆에 있던 치요를 끌어왔다.
잔뜩 긴장한 치요는 눈을 깜빡이면서 “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시답잖아. 용사의 재목이라곤 생각 들지 않네.]

 본 새 차가워진 듯한 ‘미카엘’의 모습을 보자니 조금 새롭게 느껴졌다.
‘미카엘’은 ‘가브리엘’이 끌어안은 치요의모습을 보며 독설을 내뱉었다.
치요는 ‘미카엘’의 말을 듣고 풀이 죽어선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말이 심하다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나는 눈을 살포시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말을 거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만약 이 일을 알게 된다면, ‘미카엘’이 무슨반응을 보일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있을까.

[언니, 너무 말이 심하잖아. 그래도, 내 주인인데.]
[됐어. 네가 왔으니 슬슬 움직이는 것도 좋을  같네. 매일 검에 갇혀 사는 것도 지루하고.]

‘가브리엘’은 기가 한껏 죽은 치요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미카엘’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가브리엘’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앉아있던 보관함에서 내려온 ‘미카엘’은 기지개를 피며 몸을 풀었다.

“아, 안됩니다. 이미 국가의 재산으로 취급되는…”
[뭐? 재산? 언니가 가만히 있어 주니까 기어오르는 모양이네.]

‘미카엘’이 자리를 뜨려 하자, 셀렛 교수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었다.
그 말을 들은 ‘가브리엘’은 얼굴을 찌푸리며 셀렛 교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푸른 안광을 흩날리며 분위기를 잡기 시작하니, 모두의 시선이 ‘가브리엘’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와중에도 ‘미카엘’에게 시선이 갔다.

[뭐냐, 인간. 할 말이 있느냐? 왠지 죄인의 눈빛을 하고 있구나.]

‘미카엘’을 힐끗힐끗 보고 있자니, ‘미카엘’이 내 시선을 눈치채고는 도끼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는 맨발로 총총 다가와서는 고개를 들어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바른대로 고하거라. 내가 이리 올려다보는 것도 좀체 없는 일이니.]

‘미카엘’은 자신이 선심 써서 올려 봐준다는 소리를 하며 숨기고 있는 사실을 낱낱이 고하라고 말을 꺼냈다.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미카엘’을 밀어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미카엘’은 점점 몸을 밀착시켰다.

[어, 언니?]
[아, 이 인간이 뭔가 숨기는  같은데 아무런 말도  하잖아.]

안 그래도 분위기를 잡고 있던‘가브리엘’이 뻘쭘해졌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미카엘’을 불렀다.
‘미카엘’은 답답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내 배를 쿡쿡 찌르며 말을 이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설마 첫눈에 반한 건…?”

내가 손을 내저으며 부정하자, 치요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틀어막았다.
벌써 오해할만한 소리를 꺼내면 나는 뭐가되냐, 이런 어린 모습에 반할 리가.

“헉, 그럼 나도?”
“어? 자, 잠깐만.”

부정하려는 순간, 모두의 뒤에서 슬쩍 눈치를 보던 세라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옆에 있던 테스는 깜짝 놀라 세라와 나를 번갈아 보는 게 아닌가.
나는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이런 모습이 취향이라 그런 거였구나. 재미없네.]

‘미카엘’은 주변과 나의 반응을 한 번씩 보더니 바로 결론을  듯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결론에 흥미가 없다는 듯, 금세 내게서 몸을 떼어놓고 고개를 홱 돌렸다.
다행이었다. 어떻게 말하겠는가. 내가 그녀를 배신하고 이번 세계를 선택했다는 것을.

[뭐, 됐다. 이만 갈까? ‘우리엘’과 ‘라파엘’은 만났고?]
[으음, 다들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고 있으니까 이제 만나러 가야겠지?]

‘미카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목을 풀고선 발걸음을 옮겼다.
‘가브리엘’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이 방을 나가버렸다.
셀렛 교수와  조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틀어막을 뿐이었다.

“이, 이럴 수가, 신기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거였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힘이 깃들었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수는 그들을 막아 세울 수 없다는 무력함이나 국보를 잃어버렸다는 좌절감보다 또 다른 가능성을 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조수도 뭔가 느낀 듯, 손을 벌벌 떨며 뭔가를설명하려는 듯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니 정말 미친놈들만 모였구나. 싶었다.
대학원생 같은데 교수 밑에 있었더니 머리가 이상해졌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나 그런 취향 아니야.”
“…너무 하시네요. 꼭 그런 말을 해야만 했나요?”

나는 조심스레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와 동시에 세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확실하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세라는 불만을 표하듯 볼을 부풀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성하 님이 곤란해하시잖아.”

그녀의 오빠 테스는 조심스레 세라를 타이르듯 말을 꺼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 있자니, 옆에 치요가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가자.”
“응.”

잠시 치요와 눈을 마주친 나는 고개를 까딱 움직여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치요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하는 이런 모습이 좋으냐? 이런 작은 모습이라도…]
“큐라, 나를 계속 그런 포지션으로 밀고 나가고 싶은 거냐…?”

뒤를 졸졸 따라오던 큐라는 붉은 눈을 빛내며 뭐나 희망이라도 가지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을 꺼냈다.
그런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는  수 있었지만, 마냥 그녀에게 희망찬 대답을 해줄 수는 없었다.
나는 쩔쩔매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대답 대신 곤란하다는 말로 돌려 말했다.

[정말이지, 친구라는 허울 좋은 말만 늘어놓아선 진전이 없단 말이다. 애초에 수명이 긴 탓에 오랫동안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도 내 의지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자 큐라는 입을 비죽이며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아름답게 빛나는붉은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걸어나간 큐라는 자신도 불가항력이라며 불평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자신이 원해서 이런 어린 모습으로 지내는 게 아니라는 것을 구태여 말하는 것 같았다.
내 수명이 다할 때까진 자신의 모습에 진전이 그다지 없을 거라는 걸 말하는 거겠지.
나는 그녀의 불평을 듣고 있자니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 은근 편하게 얻고 나왔네.”

마법사 협회의 건물을 나온 뒤, 나는 애들을 모아두고  바퀴 둘러보았다.
‘미카엘’, ‘가브리엘’, 치요, 큐라, 세라, 테스. 벌써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의 파티가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다른 마왕 토벌 파티와 인원수가 맞는다.
그들과  번씩 눈을 마주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자, 파티 리더로써 한마디 하겠습니다.”

길거리의 한구석에서 그들을 모은 뒤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미카엘’의 기분도 맞출 겸 존댓말로 말을 꺼냈다.

“이 파티의 목적은 모든 마족의 토벌입니다.”
“어…? 그럼 저랑 오빠도?”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이 파티가 만들어진 목적을 입에 담았다.
다른 용사들과 다르게 특전을 받으면 헤어지는 그런 파티가 아님을 재차 강조했다.
그렇게 목표를 입에 담으니, 세라가 새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모든 마족이라 했으니 두려움에 떨 법도 했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마족을 모두 잡고  뒤엔 잔당은 인간계에 남게 될 테니, 그 몇몇은 보호할 생각이라 괜찮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마왕의 절멸이니까요.”
[그 의견은 좋아. 하지만 어떻게 절멸할 거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인지, 대략 우리가 잡아야 하는 마왕의 수는 알고 있나?]

세라와 테스는 기본적으로 보호할 것이라 말을 꺼내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우리의 주된 목적은 평범하게 삶을 살아가는 마족보다, 마왕을 죽이는 것에 중점이라는 것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브리엘’이 손을 들어 의견을 제시했다.
그녀의 과업 또한 그에 관련되어 있으니,  말을 한 순간부터 그녀도 진지하게 임할 이유가 있었다.

“알려진 마왕의 수는 총 72명.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마왕의 수까지  73명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해야 우리의 일이 완수됩니다.”
[호오, 인간 주제에 많이 알고 있네.]

우선 우리가 토벌해야 하는 목표의 수를 입에 담았다.
모든 마왕을 제쳐두고, 사탄이 수까지 포함하니 ‘미카엘’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자, 잠깐. 마왕을 모두 토벌하는 건 좋은데, 다른 용사들이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모두 짓밟을 셈이야? 아무리 우리가 사기적인 능력이 있는 ‘미카엘’이나 ‘가브리엘’이 있더라도 그래서는…”
“물론, 다른 용사들이 살기 위해 마왕을 잡으려는 건 압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되기에 그럴 수는 없습니다.”

치요는당황한 듯한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마왕을 잡은 용사만이  수 있다. 그 사실에 기반한 걱정이었다.
나 또한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호응해주었다. 그와 동시에 차갑게 말을 올렸다.
용사들이 자신의 목숨줄을 챙기기까지 기다리기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0회차의 기억을 따라가기 위해선, 마족들의 왕 사탄을 잡기 위해선 다른 용사들의 목숨을 안중에 두면 안 됐다.

“앞으로의 목표를 정하겠습니다. 치요도 용사니, 치요의 생존권을 보장할 마왕을 하나 잡은 뒤, 제가 10명의 마왕을 잡을 겁니다.”
[잠깐, 10명이나 잡을 셈이냐?]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말을 이었다.
치요의 생존권을 챙기고, 나는 나 대로 마왕을 10명이나 잡아야 하니, 다른 용사들은 10명이나 살지 못하는 것이리라.
내가 첫 번째 목표를 입에 담자, 큐라는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곳에 희망을 겁니다. 마지막 마왕을 쓰러뜨렸을 때, 조금 더 큰 보상이 있다면, 그때 모든 용사의 생존권을 바란다고.”

결국, 이 작전의 핵심은 다른 용사들의 특권을 박탈하되, 살려 보내는 것에 있었다.

“성하 님. 그렇다면 그걸 다른 용사님들에게 말하면 되는  아닌가요? 협조를 받으면…”
“오빠. 오빠는 누가 살려줄 테니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을거야?”

내 작전을 들은 테스는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하지만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세라가 테스의 팔을 다시 내리면서 내가 생각하던 바를 입에 담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어째서 마왕을 혼자 10명이나 잡겠다는 거지? 역시 너도 특권의 독식을 바라는 것이냐?]
“아닙니다. 이는 모든 마족의 사탄을 잡는데 필요한 일입니다.”

‘가브리엘’은 날카로운 눈매를 내게 향하며 질문을 던졌다.
치요에게는 하나의 마왕만 잡게 해주면서, 나는 10명이나 먹겠다니 그럴 법도 할  같았다.
나는 모두를 설득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말했다.

“사탄은 지금, 세계의 계약에 묶여있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얻기위해선 열쇠가 필요하며, 그것은 모두 특전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어,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나는 사실대로 모든 것을 말했다.
그러자 테스는 불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그를 시작으로 모두가 내게 이상하다는 눈을 보내고 있었다.

“맞아. 성하도 나랑 같은 용사고, 나랑 같이 지내온  아니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오히려 ‘가브리엘’과 함께 있던 건 난데.”

치요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던졌다.
목소리가 더해지고, 의문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래. 나 또한 그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만, 너는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지?]

‘가브리엘’은 치요의 의문에 의문을 더했다.
의문이라고 불리는 눈덩이는 구르고 굴러 자신의 몸집을 키워나갔다.

“말해줘.”

치요는 자신의 불안을 해소해달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했을까. 너무 안일했던 걸까.
만약, 나는 전 회차를 겪고 너희를 만나러 왔다고 한다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믿지 않으려 할까.
엘리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신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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