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episode13. 가브리엘 (4)
“그게 무슨 소리야?”
큐라의 말을 들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포크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카엘’도 큐라의 말을 들었는지 고개를 힐끔 내밀어 내 눈을 보려 했다.
“…눈? 진한 갈색?”
“…갈색?”
오늘 만난 치요는 당연히 알 턱이 없었지만, 그래도 큐라의 말이 신경 쓰였는지 그녀도 내 앞에서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눈을 몇 번 깜빡이며 내 눈을 바라보던 그녀는 한참 있다 입을 열었다.
눈 색이 뭐 별거 있나. 라고 생각하며 넘기려던 나는 그녀의 말에 손을 멈추었다.
입으로 향하던 포크를 내려놓고 멍하니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전에는 검은색이었다만.]
[…정말이네.]
나의 눈동자 색은 원래부터 검은색이었다.
그런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는듯이 큐라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미카엘’도 큐라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인간의 눈 색 정도는 바뀐 전례가 있지 않나?]
“바뀔 수 있는 거였어?”
‘가브리엘’은 개의치 않고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그러자 치요는 옆에서 깜짝 놀라며 ‘가브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치요의 물음에 음식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공명이란 것 때문 아니냐? 물론 확신은 없지만. 몇 번 정도 반복해보면 알 것 아니냐?]
큐라는 손가락으로 ‘미카엘’을 가리키며 이유를 짐작했다.
자신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어느 정도 맞는 말 같았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은 손을 천천히 내 눈이 있는 곳으로 가져다 댔다.
“눈 색이 조금 바뀌었다고?”
[언니와 공명했다고?]
나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다시 한번 되물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내 눈 색이 바뀌었다는 사실보단 ‘미카엘’과 공명했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신기와 공명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 아니었던가.
베르틱에서도, 마계에서도, 그리고 테베레스에서도 아직 ‘미카엘’과 공명했던 감각이 남아있었다.
“치요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공명? 그게 뭐야?”
나는 ‘가브리엘’의 의문에 대답하는 대신, 치요를 향해 물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은 치요는 잠시 당황한 듯했다.
왜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 용사 소환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할 법도 한가.
오히려 내가 이상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한 듯이 말하지만, 공명은 당연하지 않다. 그런가… 누가 뭐래도 ‘카보드’를 가지고 있던 인간이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군.]
“당연한 게 아니었던 거구나.”
‘가브리엘’은 어이가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내가 ‘미카엘’과 공명하며 싸운다는 것은 원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 같았다.
나는 감탄을 내뱉으며 내 손을 바라보았다.
[만약 이게 나와 공명해서 그런 거라면 치요는 그럼 파란 눈으로 변하겠네? 어울릴지도 몰라.]
[언니. 그런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야….]
‘미카엘’은 흥미롭다는 듯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더니,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러던 중 그녀의 시선이 치요에게로 향했다.
잠시 생각에 빠진 그녀는 뭔가 떠올렸다는 듯 손바닥을 맞부딪히더니 싱긋 웃어 보였다.
‘미카엘’의 그런 모습에 ‘가브리엘’은한숨을 내쉬며 작은목소리로 답했다.
[자, 일단 정리를 해보지. 우리와 공명하는 것은 본래 아버지뿐이었다. 이유는 알겠지.]
[보통의 인간으로선 감당할 수 없는 힘이기 때문이지.]
‘가브리엘’은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마음을 추스르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공명에 대해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
‘미카엘’은 ‘가브리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맞장구를 치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나와 치요, 그리고 큐라는 그 말을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러니 원래라면 인간과 공명하는 일은 거의 없도록 하고 있다만… 언니는 어째서인지 감응했다. 언니가 잘못한 거야?]
[…그보다, 나는 원래 인간들이 건들지 못하도록 시련을 설정했는데, 성하는 그걸 무시하고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니까?]
‘가브리엘’은 자신의 턱을 몇 번이고 쓸어내리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깊은 고민에 빠진 그녀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더니 고개를 들어 ‘미카엘’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미카엘’은 자신도 할 말이 있다는 듯, 해명하듯이 자신의 입장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카보드’ 탓에 주도권을 빼앗겼다곤 하지만, 원래부터 성하는 정신력이 강한 것 같아.]
[견딜 수 있는 것은 그럼 역시 ‘카보드’가 원인인가?]
‘미카엘’은 자신이 겪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해도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전 회차의 기억을 더듬어 빠르게 정신을 차리려고 했을 뿐.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열심히 내달렸을 뿐이었다.
‘미카엘’의 말을 들은 ‘가브리엘’은 그 원인을 추측하며 말을 중얼거렸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런 것도 아니야. ‘카보드’없이 공명했으니까. 전에도… 했던가?]
‘미카엘’은 ‘가브리엘’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 근거로 아까 공명했을 때 내게 ‘카보드’가 없다는 것을 말했다.
그와 동시에 나와 공명하며 훑어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나와 얼마나 공명했는지 헷갈려하는 것 같았다.
[그럼 조건만 충족한다면 치요도 나와 공명할 수 있는 거겠네.]
[그 조건만 알게 된다면. 당연하겠지만, 역시 용사가 아니면 무리일지도 몰라.]
‘가브리엘’은 가만히 있더니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치요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랫동안 치요에게 머물러 있더니, 이내 아예 대놓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치요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가브리엘’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미카엘’은 피식 웃으며 그녀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공명해서 뭘 하는 거야?”
[치요는 잘 모르는구나. 공명하면 나의 기술을 쓸 수 있어.]
“마검의 기능을 쓰는 거랑 같은 거야?”
한참을 듣고 있던 치요는 공명의 필요성을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을 들은 ‘가브리엘’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더니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 번에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치요는 자신이 이해한 게 이게 맞는 건지 예시를 들으며 물었다.
[맞아. 마검이 쓸 수 있는 전용 마법이 있듯이, 나도 나만의 기술이 있어. 단순하게 무기로 써도 강하지만, 기술을 쓰면더 강하니까.]
“그럼 이제 지팡이처럼 쓰지 않아도 되겠네.”
[그렇지, 공명만 한다면 이번에야말로 쇠뇌를 쓸 수 있는 거지.]
‘가브리엘’은 치요의 말에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요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으며미소를 지었다.
쇠뇌라니, 꽃의 모양을 하고 있다면서 어떤 방식으로 쓰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붉은색으로 변하게 해주고 싶구나. 나와 공명하는 법은 없느냐?]
“너는 무기가 아니잖아….”
옆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던 큐라가 요망하게 웃으며 몸을 들이댔다.
내 팔에 몸을 밀착시킨 그녀는 나의 팔을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그녀가 상처받지 않게 말할 방법을 고민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 조건은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가브리엘’은 치요와 공명하고 싶은 건지 공명할 수 있는 조건을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오질 않는지 내게서 알아내려는 것 같았다.
시선이 힐끗힐끗 마주치고 있었지만, 돈을 받았다는 정도로 조건을 같이 찾아주는 일은 해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알려줬으면 하는데.]
[잘 모르지만 찾으려 하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가브리엘’은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내가 입을 꾹 다물고 한눈을 팔고 있자니, ‘미카엘’이 먼저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보다, 마왕을 찾게 되면 내게 넘겨줬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조건 정도는 같이 찾아줄수 있는데.”
“뭐야…? 잡았다고 하지 않았어?”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돈을 받은 정도로 그런 일에 협력해줄 수는 없으니까 다른 조건을 내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무슨 조건을 내걸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엘리샤의 기억이 하나둘 피어올랐다.
0회차를 본 나는 다음 회차의 기억을 보고 싶었다. 더 봐야만 했다.
그녀에게 회귀 능력을 준 것은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내 쪽에서 마왕을 내줄 것을 조건으로 내걸자 치요는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마왕을 잡았다는 것은 거짓말?”
[언니가 말했던 건데 거짓말은 아니야. 언니는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 애초에 언니가 본모습을 되찾았는데 하루 안에 마왕을 잡아도 이상하지 않아.]
치요가 표정을 굳히며 조심스레 입을 열자, ‘가브리엘’은 고개를 내저으며 치요의 말을 부정했다.
‘미카엘’의 힘이 강대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가브리엘’이었기에, ‘미카엘’을 봐왔던 그녀였기에 가질 수 있는 확신과 믿음이었다.
나도 최근 ‘미카엘’의 강함에 다시금 놀라고 있었다.
신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그녀가 이 세계에서 정말 마음먹고 날뛴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을까. 어째서 마왕을 또 잡으려는 거지?]
“필요로 하는 게 있어.”
[특전을 노리는 거구나. 알았어. 공명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정도는….]
‘가브리엘’은 호기심에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푸른 눈을 응시한 채로 나지막이 대답했고, 그녀는 그 말만 듣고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그렇게 공명에 집착하는 거야?”
[치요가 해줘야 할 일은 그대보다 커. 기대하는 바도 크고. 아무리 언니의 주인이라곤 하지만, 나는 과업이 있는 이상 대충할 수는 없어. 누가 뭐래도 내가 선택한 자니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왜 공명에 집착하는지 물었다.
‘가브리엘’은 그윽한 눈빛을 치요에게 보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씩 웃던 그녀는 무언가 꿈을 꾸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구 인류의 절멸을 바라는 그녀의 과업을 이룰 자가 치요라는 걸까.
“엣. 나, 나 그렇게 큰일을 해야 해?”
‘가브리엘’의 말을 들은 치요는 눈을커다랗게 뜨고서 ‘가브리엘’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그렇게까지 막중한 기대를 받고 있는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그저 ‘가브리엘’이라는 신기가 자신에 있었던 것에 안심하고, 만족하고 있던 거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옆에 있던 큐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밥을 다 먹은 큐라는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러게. 언제 다 잡으려고 그러는지.”
나는 태연하게 맞장구를 쳤다.
내 안에 싹트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숨기기 위해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뭔가 아는 눈치네.]
‘가브리엘’의 눈빛이 확연히 달라졌다.
아무래도 내가 지은 미소에서 위화감을 느낀 것 같았다.
그녀의 푸른 눈빛은 나를 경계했고, 나를 위협했다.
‘미카엘’처럼 살기를 뿜어대는 위협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긴장하게 할 정도의 위압을 뿜어대고 있었다.
[내 과업을 아는 거지?]
“…알아.”
그녀는 구체적으로 물어왔고,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사실대로 토해냈다.
[언니도 알고 있었어?]
[어렴풋이.]
‘가브리엘’은 어이가 없다는 듯 ‘미카엘’을 향해 쏘아붙이듯 물어보자,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으로 표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로 인해 과업을 완수한 그녀니 알아챌 수밖에 없겠지.
‘카보드’를 줄 테니 내게 협력해라. 라는 식으로 말한 것이 나였으니 ‘미카엘’은 확신하진못해도 짐작은 했을 것 같았다.
[치가 떨리는군. 이래서야 이미 다 알고 날 가지고 놀았다는 생각만 드네.]
‘가브리엘’은 허탈하게 웃으며 나를 응시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가 나를 향하고 있으니, 나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피로감이 장난 아니었다.
전 회차에서는 죽지 않으니 이런 상황에서도 편하게 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아니, 전 회차에선 죽지 않는답시고 너무 설쳤던 감이 없잖아 있었다.
원래라면 판타지 세계에선 이렇게 긴장하며 사는 게 일상이긴 하다.
그저 원래 세계를 생각하면 긴장할 일이 별로 없어서 비교되는 것뿐이지.
“미안한데…”
[언니, 이 자를 옆에 둬야 할 이유가 있어? 수상할 정도로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소환된 지 얼마 안 된 용사가 맞아?]
내가 조심스레 ‘가브리엘’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녀는 내 말을 잘랐다.
그녀의 시선은 내게서 ‘미카엘’에게로 옮겨갔고, 그녀는 솔직하게 나에 대한 의심을 털어놓았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긴 했다. 소환된 지 이제 하루 이틀 할 용사가 갑자기 이 세계에 해박한 지식을 들고 오면 누구나 그럴 것 같았다.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구나.
좆됐다. 싶던 찰나, ‘미카엘’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성하는 사실 그럴 이유가 있어. 내가 보증할게.]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든든한 목소리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