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5화 〉episode13. 가브리엘 (3) (85/98)



〈 85화 〉episode13. 가브리엘 (3)

[너는 모르지. 내가 얼마나 쓰이지 않았는지를.]

‘미카엘’의 목소리가 차갑게 들려왔다.
음식점으로 향하던 우리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그와 동시에 ‘가브리엘’과 치요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일었다.

[‘가브리엘’. 목자의 삶은 행복하니? 네가 너의 과업을 충실히  때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녀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에도 힘이 실려 있었다.
일변한 분위기에 큐라도 공포를 느꼈는지  뒤에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말해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미카엘’이 물었다. 그녀가 사뿐사뿐 걸어 ‘가브리엘’의 뺨을 어루만지는데도 ‘가브리엘’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킬 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새하얀 공간에서 작디작은 모습으로 하염없이 자신이 과업을 받을  있으리라 생각하며 평생을 기다리던 그녀를.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오던 그녀를.

[아버지의 사랑이라도 받으며 지냈으리라 생각하니?]

‘미카엘’의 싸늘한 시선이 ‘가브리엘’을 향했다.
큐라는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고, 치요도 마찬가지로 ‘미카엘’의 위압에 견디지 못한 채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같은 신기인 ‘가브리엘’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니 정말 ‘미카엘’의 힘에 경외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미카엘’.”
[…응?]
“가자.”

주변에 일고 있는 분위기, 마나의 흐름이 조금씩 변해갔다.
주변 상가를 거닐던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살기가 뻗어 나가고 있었다.
시선이 이곳으로 모이기 전에 자리를 떠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큐라를 업은 뒤 ‘미카엘’의 팔을 붙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뭐 하는 거야.]

사람이 시야에서 없어지니, ‘미카엘’이 당장에라도  것 같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 손을 팍 뿌리친 그녀는 터져 나오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지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왜 그러는 거야. 천계로 돌아가는 것을 꿈꿨잖아.”
[이상해. 나는… 너와 공명한 뒤로 이상한 것을 본다.]

큐라를 잠시 내려놓은 뒤 ‘미카엘’에게 다가가 진정시키려 했다.
그녀를 살포시 끌어안으니, ‘미카엘’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원인이 나였기에 내게 말해주는  같았다.

[말해줘. 그게 정말로 있었던 일이야?]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무슨 기억을 보고 말하는 건지 알  없었다.
나는 그녀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눈만 마주했다.

[내가 정말,  여자에게 성하의 심장을 받고 천계로 돌아간 것이냐고.]
“…….”

나는 그녀의 물음에 아무런 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 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공명한 순간부터 나와 같이 부분부분 단편적인 것만 보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기억을 읽고 온 것인지 묻고 싶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침묵하자 ‘미카엘’은 내 옷자락을  잡았다.

[제발. 내게 말해줘. 너무 힘들어. 가짜지? 없던 일이지? 나는 그러지 않았지? 의리를 지켰지…? 왜, 왜 말이 없어. 왜…. 나는 정말 천계에 돌아가는 것에 미친년이었던 거야?]

그 누구보다 하얀 공간을 그리워했던 ‘미카엘’은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토해냈다.
그저 자신이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과는 별개로 3자의 눈으로 자신을 보게  결과였다.
객관적인 모습으로, 타인이 시점으로 자신을 바라본 그녀는 기억 속의 자신을 역겨워하고 있었다.
나보고 부정해달라고 애원하는 그녀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갑자기 ‘가브리엘’을 상대로 천계를 업신여기던 것도 아마 이 기억 때문이겠지.

“아무런 생각하지 마. 너는 너일 뿐이야. 다른 기억 같은 건 믿지 마.”
[어째서 성하는 태연한 거야. 어째서 이런 것을 품고서도 태연하게 있을 수 있어…?]

나는 ‘미카엘’을 감싸 안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이번 회차의 너는 다르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다른 회차에 관심을 두게 되는 순간 끝이 없을 같아 회차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미카엘’은 멈추지 않았다.

[나와 공명하고 있어서 그런 거지?]

‘미카엘’은 꿈틀거리는 입꼬리를 진정시킨  나지막이 물었다.
그녀는 차분하게 뛰는 내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태연이라. 너를 구하기 위해 습격을 감행한 것을 보아 너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만.]

뒤에서 몸을 추스른 큐라는 도끼눈을 뜬 채 ‘미카엘’의 말에 대신 대답했다.

[이 기억이 사실이라면, 나와 관계가 깊다고 생각해.]
[…무슨 기억이기에.]

‘미카엘’은 황금색 눈동자를 빛내며 큐라를 응시했다.
붉은 눈을 크게 뜬 큐라는 ‘미카엘’을 응시했다.
어느새 ‘가브리엘’과 치요는 뒷전이 된 채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자자. 그런 것은 차차 넘겨두고, 새로운 나라에 왔으니 돈이라던가 그게 없거든…?  자금은 저기 치요라는 용사에게 좀 빌려야  것 같아서 그런데 다음에 이어서 이야기할까?”
[…저녁에 마저 이야기하지. 하지만 가기 전에 확실히 하나 말해두자면, 공명했을  내가 성하의 감정을 느끼듯 성하는 내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거야.]

내가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이야기를 끊었다.
계속 이어가면 잠잘 곳도, 먹을 것도 구하지 못한 채 밤새 여기서 이야기나  것 같았다.
조심스레 현재 상황을 설명하며 앞으로의 일을 꺼내니 큐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자리를 뜨려는 찰나, ‘미카엘’이  소매를 붙잡고 입을 열었다.
이것만은 꼭 말해야   같다고 생각한 건지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사람은, 사람이 죽는 것을   동요해. 하지만 성하는 그러지 않았어. 그것은 마치….]
“마치 ‘미카엘’ 같네.”

그녀는 이런  말해도 괜찮은 걸까. 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머뭇거렸다.
그러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얼굴을 하고선 내게 일렀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선 쓴웃음을 지어 그녀의 말을 이어주었다.

“여기 있었구나.”
“치요?”
“에? 가,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면…!”

그렇게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골목 입구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치요가 그곳에서 숨을 허덕이며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를 찾아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녀 쪽에서 먼저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다.
얼빠진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니,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선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그  시간 동안, 저와 동생들은 인간들을 상대하고 있었기에 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가브리엘’.]

치요의 뒤로 ‘가브리엘’의 모습이 보였다.
‘가브리엘’은 푸른색의 눈을 반짝이며 몇 걸음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여 ‘미카엘’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그런 사과의 말을 들은 ‘미카엘’은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성하. 괜찮으냐?]
“어,  괜찮아.”
[…안색이 좋지 않다.]

그녀들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큐라가 조심스레 내 뒤로 다가와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지만, 큐라는  표정을 응시한 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고민이 많아지는 시간이라 그런지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저 근데 치요 씨. 죄송한데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비, 빌려줄 수는 있는데 이, 이름으로 부르는 건… 아직 부끄러워요.”

감정을 숨기기 위해 큐라의 머리를 벅벅 쓰다듬었다.
큐라가 [헤헤.] 하고 웃을 때까지 쓰다듬은 나는 미소를 지어주며 발걸음을 옮겼다.
치요의 앞으로 간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심호흡을  뒤 돈을 빌려달라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또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돈을 빌려준다곤 했는데, 아까부터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싶던 찰나, 이름으로 불리는 게 부끄럽다 했다.
일본인들은 그럼 성으로 부르나? 일본에 가 본 적이 없으니 문화를  턱이 없지.

“그, 뭐였죠 그럼? 이가라시…?”
“그, 그냥 치요라고 불러주세요… 익숙해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름이 뭐였더라. 이가라시 치요였던가?
기억을 쥐어 짜내며 조심스레 그녀의 성을 부르자,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얜  자꾸 이랬다저랬다 바꾸는 거야?

“그, 그럼갈까요? 음식점에 가면 빌려드릴게요!”

잠시 감정을 추스르던 치요는 얼굴을 도리도리 휘젓더니 골목을 앞장서서 빠져나갔다.

[…치요를 꼬시는 건 용납 못 해.]
“뭔데.”

뒤따라 걸으려 하는 순간, ‘가브리엘’이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속삭이듯 경고했다.
나를 제치고 치요의 뒤를 따라가던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제가 용사여서 나라에서 지원금을 많이 받거든요. 그래서 많이 드릴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주시면 못 갚으니까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빌려갈게요.”
“괜찮아요. 안 갚아도 되거든요.”

어느 음식점에 자리를 잡은 뒤 치요는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묵직한 금화를 테이블에 쿵 올려놓았다.
돈을 왜 이렇게 많이 들고 다니는 걸까. 사실 부자인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정신을 퍼뜩 차렸다.
돈주머니 채로 들이미는 그녀에게 정중하게 사양하며 빌릴 만큼만 빌리려 했는데, 오히려 그녀는 갚지 않아도 된다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는….”
“괜찮아요. 성하 씨. 저희 ‘가브리엘’이 신세도 졌으니 말이죠….”

내가 쩔쩔매고 있자니, 오히려 치요가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어디론가 자꾸 가는가 싶었는데,  시선의 끝엔 ‘미카엘’이 뚱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가브리엘’.  용사를 선택한 이유는 뭐야?]
[강해. 재능이 있고.  과업을 이뤄줄 용사라고 생각하고 있어. 물론, 다른 용사들도 분발해주면 좋겠지만.]

‘미카엘’은 옆에서 당사자가 듣고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대놓고 물었다.
‘가브리엘’도 같은 건지 그녀가 들을  있는 크기의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치요는 부끄러운 건지 테이블에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 타이밍에 음식이 나오는 바람에, 치요는 얼굴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우우…. 얼굴이 더워요….”
“여기 차가운 물.”
“감사합니다아.”

테베레스에선 보지 못했던 특이한 버섯이 눈에 들어왔다.
목이버섯처럼 생겼는데, 은근 두꺼웠다. 포크로 찍으며 이리저리 보고 있자니, 마주 앉은 치요는 빨개진 얼굴로 음식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내가 피식 웃으며 물컵을 건네자, 그녀는 고개를 꾸벅이며 받아들었다.

[정말이지. 다들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만 하고 나만 따돌리는 것 같다만.]

내 왼쪽에 앉아 있던 큐라는 볼을 부풀리며 내게 불평을 토했다.
아까부터 ‘미카엘’과 ‘가브리엘’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으니 심심했던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미안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사과를 했더니, 바로 풀어져서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큐라를 보면 500살이나 먹었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같았다.

[그런데 말이다만. ‘미카엘’과는 계속해서공명하는 것이냐?]
“아니, 아마 ‘미카엘’의 기술을 쓸 때만…?”

큐라는 음식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꿀꺽 삼키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까 ‘미카엘’과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한 질문이었다.
그녀만 모르는 이야기를 계속하기는 미안했기에, 나는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흐음. 그렇구나. 그럼  ‘가브리엘’이라고 하는 자도 무기로 변하는 것이겠지?]
“그렇지. 근데 뭘로 변하는지는 몰라.”

큐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카엘’ 앞에 마주 앉은 ‘가브리엘’을 힐끗 바라보며 질문을 이었다.
쇠뇌라고 했으니  그런 종류의 무기겠지.
나는 그녀의 말에 긍정으로 대답했다.

“꽃으로 변해요. 백합이요.”
[꽃?]
“꽃이라니.”

그렇게 무기에 대해 잠시 생각하고 있을 때, 치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난다는 듯이 대답했다.
큐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큐라의 옆에서 눈썹을 들썩이며 ‘가브리엘’을 힐끗 바라보았다.

[치요. 그런 건 조금 나중에 말해도…]
“뭐 나쁘진 않잖아.”

‘가브리엘’이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제지하려 했지만, 치요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그렇대. 소외할 생각은 없으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궁금한 거라….]

나는 씩 웃으며 큐라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소리를 들은 큐라는 잠시 고뇌하는 듯 턱에 손을 가져다    초간 생각에 빠져 있었다.

[성하의 눈 색. 조금 바뀌지 않았느냐?]

큐라는 식기도 다 내려놓은 채 고개를 완전히  쪽으로 돌리고선 순수한 의문을 던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