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episode12. 엘리샤의 기억 (3)
“마족은 찾기 힘들지만, 마계를 찾기 위해서라면 마족을 찾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그건 맞지만, 자신의 고향을 부순다고 하는 용사를 쉽게 들여 보내줄까요?”
“아. 그러네….”
그는 단순하지만, 어딘가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방향도, 방식도 올곧은 그의 뒤를 따르면 그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거대한 명예를 얻지 않을까. 모든 동화의 끝이 그러했듯이.
아마 막대한 부를 쌓지 않을까. 모든 세상의 결말이 그러했듯이.
아마 강대한 권력을 잡지 않을까. 성공한 자들의 마지막이 그러했듯이.
“풉. 푸하하하!”
“에리?”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아는데,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뭐야. 갑자기 그렇게 웃지 마. 소름 돋잖아.”
“아니, 성하가 너무 재밌게 말하잖아.”
성하는 입을 비죽이며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 내게 불평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런 성하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단순한 듯한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그의 모습이 그렇게 매혹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갈수록 그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에게 물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마족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해? 마계가 아니라면 숨어있을 텐데.”
잡담도 잠시, 리타가 본론으로 넘어가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마계를 찾기 위해서는 마족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대로 마족을 찾기 위해서는 마계로 가야 했다.
물론 인간들이 사는 곳에 마족이 숨어지내거나, 사람들을 먹기 위해 나타난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그건 결국 운에 맡겨야 하는 것 아닐까?”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리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성하의 말은 결국 이상론이고, 순전히 운에 맡기는 것뿐이라는 걸 리타가 꿰뚫어본 것이었다.
결국, 성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선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런가…. 어쩌지?”
성하는 마족을 들인다는 생각을 철회해야 하나 고민하는 건지 앓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아, 뭐라고 해야 그를 응원할 수 있는 건지고민이 됐다.
한 발짝 더 가까워지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그에 대해 알고 싶었다.
궁금한 것이 많았기에 그에게서 한순간이라도 더 곁에 있고 싶었다.
우리는 소소한 의뢰를 받으며 모험을 떠나고 시간을 보냈다.
*
“하아. 오크 토벌도 어지간히 힘든 일이네.”
“아직 훈련이 덜 된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나한테 맡겨.”
어느 단체 의뢰에서 오크 토벌을 끝내고, 성하가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는 상체만 굽혀 성하를 빤히 내려다보면서 씩 웃었다.
어깨를 으쓱여 말하자, 옆에 있던 리타가 아직 팔팔하다는 듯이 자신의 팔뚝을 다른 손으로 잡았다.
역시 S급 모험가라 확연히 다른 것 같았다.
용사라서 S급 모험가 카드를 받은 것과 일반인이 실력으로 S급 모험가 카드를 받은 것은 역시 다른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사는 용사. 성하의 습득 속도와 성장 속도는 다른 일반인과 견줄 수 없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우와. 나 힘든데.”
“내가 그런 건 없애줄게.”
“혹독하구나…?”
성하는 죽어가는 소리로 하기 싫다고 버티려 했지만, 나는 그가 조금 더 빨리 강해져서 용사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에 치유 마법을 걸어주었다.
이로써 그에게 쌓인 피로는 조금 완화됐을 것이다.
마법을 받은 성하는 리타에게 끌려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자 봐봐. 공격과 방어. 그것을 한 번에 담는 것이 가장 큰 핵심이야.”
“대체 공격과 방어를 어떻게 한 번에 하는 건데.”
리타가 넓은 곳으로 가더니 검을 잡고 휘둘렀다.
아무리 왕가의 검을 배웠다고는 하나, 매일같이 수련한 사람의 눈은 가질 수 없었다.
그저 의례용 휘두르는 것만 배울 뿐이라, 그녀가 어떻게 휘둘러도 한눈에 보기는 어려웠다.
내가 생각만으로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자니, 성하가 먼저 얼빠진 목소리로 리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어떻게든 리타를 따라 해보려는 모습이 귀엽게보이기도 했다.
“방어와 동시에 공격하며, 공격과 동시에 방어하는 건데, 자. 성하가 먼저 휘둘러봐.”
“이렇게?”
“어어. 그렇게. 그럼 이런 식으로 무기를 튕겨내는 동시에 적의 몸을 찌르는 거야. 이렇게 하면 벨 수도 있고.”
허공에 검을 휘두르던 리타는 성하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성하는 리타를 향해 조심스럽게 검을 휘둘렀다. 리타를 향해 내려오던 검은 리타에 의해 튕겨 나가고 이내 리타의 검은 성하의 가슴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복습하듯 몸을 움직여 검을 휘둘렀다.
“이런 건 맨몸으로도 할 수 있어?”
“가능한데, 완력 차이가 너무 나면 힘들어.”
“그게 얼마인데?”
“너랑 나…?”
성하는 지이잉 울리는 검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리타를 향해 물었다.
리타는 어깨를 으쓱이며 시원하게 대답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성하는 호기심에 질문을 던졌지만, 리타는 성하의 마음도 모르는지 칼같이 말했다.
“…그렇게 차이가 심해?”
“전에 겨뤘을 때는 그랬지. 근데, 성하가 가지고 있다던 스테이터스 능력이었나? 그거라면 비등할지도?”
“그럼 해보는 게 낫겠네.”
성하는 잠시 흐음. 하고 뭔갈 생각하더니 기죽은 기세 없이 검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리타를 향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래, 저 실패해도 주저앉지 않는 모습. 그야말로 용사의 모습이었다.
몇 번을 넘어져도, 그만큼 다시 일어서는 것이 그의 모습이었다.
한 번 졌다고 포기하는 것은 없었다. 어느샌가 다시 발전한 모습으로 돌아와 맞서는 모습이 나를 이끌리도록 했다.
“후후. 그럼 한 번 해볼까?”
“자, 잠깐만. 다시 한번 제대로 알려줘야지.”
리타는 그런 성하의 모습에 만족한 건지 기세등등해져선 돌진했다.
그런데,뭘 알려준 게 있던가?
성하는 당황한 목소리로 리타에게 소리쳤지만 리타는 멈추지 않은 채 실전으로 돌입했다.
“아아. 머리야….”
몇 시간이나 했을까.
성하는 내 앞에 쓰러진 채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아무리 성하가 리타를 도발했다지만, 리타가 너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긴 했다.
이제 막 검으로 한 번 가르쳐 줘놓고선 갑자기 실전이라니 성하가 아파하는 게 보였다.
“괜찮아?”
“아파….”
내가 조심스레 성하의 이마를 문질러주자, 성하는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내게 칭얼댔다.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에는 성공했어.”
그렇게 성하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쯤, 리타는 얼빠진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공했다니. 아무리 호각으로 싸운 것 같이 보여도 성하가 리타에게 한 방 먹였다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되려 리타가 성하를 패면 팼지, 성하가 성공했다니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리타의 모습을 보니 성하가 성장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
이게 0회차 엘리샤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엘리샤의 기억에 있던 성하라는 존재는 나와는 별개의 인물이었다.
나라고 하기엔 괴리감이 심했다. 나는 이 세계에 와서 사람들을 이렇게 공손하게 대한 적이 없는데, 환경 탓인 건가?
“아직, 아직 덜 봤어. 죽는 것까지 봐야 해. 회귀 조건이 죽는 것이라면… 대체 어떻게 죽었는지도….”
손이 벌벌 떨렸다. 방금 기억만 들춰봤는데도 기묘한 기분이 몸을 덮어가는 기분이었다.
[안돼. 이 이상은 마계가 버티질 못한다. 일단 나가야 해.]
“하,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엘리샤가 올지도 몰라.”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려 하자, ‘미카엘’이 고개를 내저으며 나를 멈춰 세웠다.
여기가 지금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무너질지라도 엘리샤가, 다른 사람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곳에서 기억을 마저 봐야 했다.
내가 본 기억에서는 아직 마왕의 모습 하나 나오지 않았다.
‘미카엘’을 설득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튀어나온 말들 끝에 내 기억이 흘러나왔다.
[성하. 정신 차려라. 지금 마계가 무너지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돌아갈수 없게 된다.]
내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몸을 웅크리고 있자, 큐라가 내 팔뚝을 잡고 강제로 일으키려 했다.
더 봐야만 하는 기억인데, 지금 보지 않으면 다음에 기회가 언제 될지도 모르는데, 나가야만 한다니 마음은 불안정해졌다.
“알았어…. 열게.”
[괜찮아. 내가 열었어.]
힘없이 손을 뻗어 마법을 쓰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마법을 쓸 새도 없이 ‘미카엘’이 내 손을 낚아챘다.
그녀가 이끄는 곳으로 힘없이 끌려가니, 그곳에는 균열이 있었다.
무식하게 차원의 벽을 힘으로 부순 것처럼 보였다.
“허억.”
돌아가고 나니, 눈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이를 갈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역시 돌아오고 나면 0회차의 기억을 마저 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쏴라!”
누군가가 고함을 치자, 일제히 화살이 날아들었다.
‘미카엘’은 자신의 몸을 던져 내 앞에 날아오는 화살을 받아냈다.
‘미카엘’이 손을 뻗는 순간, 앞에는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쳐진 것처럼 화살은 튕겨 나갔다.
[성하! 이쪽으로 와라!]
정면에서 날아오는 화살들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와 동시에 큐라가 옆에서 작은 날개를 펼쳐 날아왔다.
빠른 속도로 다가온 큐라는 나를 붙잡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날아갔다.
“뭐야…! 왜 그러는데?!”
[근처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렸다. 모두 우리를 죽이기 위해 온 거겠지.]
당황한 나는 큐라에게 당장의 상황을 물어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개를 돌려 ‘미카엘’이 있던 곳을 바라보자, ‘미카엘’은 지킬 사람이 없어져 조금 자유로워졌다는 듯 목을 풀기 시작했다.
어른스러운 그녀의 흑발이 찰랑거리고, 황금색 눈이 번쩍였다.
“…‘미카엘’!”
그녀의 황금색 눈이 나와 마주친 순간, 그녀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 것 같았다.
큐라에게 잡혀 하늘을 가로지르는 동시에, ‘미카엘’을 향해 손을 뻗어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자 ‘미카엘’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되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몸을 찬란하게 빛냈다.
‘미카엘’을 둘러싼 사람들은 갑자기 ‘미카엘’이 빛이 되어 흩어진 것을 보고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마라. 우두머리를 등진 순간부터, 인간은 너의 적이다.]
손에는 빛의 입자가 모여들더니 이내 ‘미카엘’이 찬란한 검으로 변해 쥐어졌다.
내가 검을 쥐자, 큐라는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일렀다.
아까 길드에서 혼자 망설였던 것을 꾸짖는 것 같았다.
“알아.”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성하가 기억을 마저 볼 시간을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 시간은 성하가 만들어야 할 터이다.]
나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러자 큐라는 다음 할 일을 입에 담았다.
지상에는 많은 사람이 활시위를 당긴 채 우리를 겨누고 있었다.
긴장한 나는 침을 삼키고 ‘미카엘’을 고쳐 쥐었다.
“―‘미카엘’.”
네.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는 순간,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미카엘’의 목소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신의 대리자가 명하노니―]
공명하는 듯한 울림이 나를 ‘미카엘’과 하나가 된 것처럼 만들어주었다.
공명하는 순간, 사람을 죽인다 했던 망설임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이게 ‘미카엘’의 감정인가. 이게 ‘미카엘’의 기분인가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이 나를 덮쳤다.
본래의 힘을 찾은 ‘미카엘’의 모습인 걸까.
[하늘이 그대를 비추리라. 빛은 그대를 인도하리라.]
내 몸인데도 멋대로 움직이는 감각이 나를 기묘하게 만들었다.
‘미카엘’이 내 몸의 주도권을 잠시 잡은 채로 계속해 주문을 읊었다.
‘미카엘’은 형형색색의 찬란한 빛을 뿜어내더니 이내 전신을 뒤덮도록 했다.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았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전능감이 몸을 덮쳤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저건.”
“신이시여….”
일부 사람들은 거대한 빛을 보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공격을 감행했다.
“죽여! 마법을 쏘란 말이다!”
바람을 가르는 화살이 내 몸을 꿰뚫었고, 큐라는 어느새 뒤를 치려는 사람들을 걷어내고 있었다.
파삭. ‘미카엘’과 공명한 순간, ‘미카엘’이 가지고 있던 ‘카보드’의 효과를 이어받고 있었다.
화살이 꿰뚫은 상처가 다시 복구되고, 마법에 그을려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빛이 그들을 인도하리라.]
결국, 마지막 구절을 완성한 순간 하늘이 거대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