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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화 〉episode12. 엘리샤의 기억 (2) (80/98)



〈 80화 〉episode12. 엘리샤의 기억 (2)

“…아뇨 괜찮아요.  혼자 갔다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내 제안을 거절했다.
혼자 다니는  같은데, 왜 내 제안을 거절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신기하기도 했다. 동화책의 용사는 동료를 필요로 하던데, 동료애를 중시하던데,  용사는 왜 동료조차 만들지 않는 걸까. 그것이 궁금해졌다.
나는 조금 더 그에게 다가가 보기로 했다.

“왜 그러세요? 다른 용사님들은 동료를 구하던데, 왜 용사님은 그러지 않으시나요?”
“…그게, 죄송하지만 제가 하는 일은 돈도 되지 않고, 명예도 얻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

그를 힐끗 바라보며 조심스레 다른 용사들을 들먹였다.
용사는 난처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뒤에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용사는 자신이 하는 일 때문에, 다른 동료들에게서 버림받은 것이라는 것을.
돈도 명예도, 권력도 되지 않는 일을 하느라 다른 동료를 구할 수 없던 것이었음을.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그, 위험에 처한 마을을 구하러 가는 일이에요.”
“왜 그게 돈도, 명예도 되지 않는 일인가요?”
“그야, 마족을 잡는 것도 아니고 마왕을 죽이기 위한 발판이 되는 일도 아니니까요.”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가 기분이 나쁘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의뢰를 받은 뒤에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그 뒤를 총총 따라갔다.
용사는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힘겹게 입을 뗐다. 그는 조금 부끄러운 듯한 얼굴로 길드 한쪽에 있던 빈 테이블에 앉았다.
그런 훌륭한 일을 하면서도  그는 부끄러워하고, 떳떳하지 못하는 건가.
그리고 그 답은 금방 나왔다. 모든 용사는 마족을 위해 싸우고, 마왕을 위해 싸우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을 낮췄다.

“그럼 용사님은 돈이랑 명예, 권력 그 무엇도 필요가 없나요?”
“돈은 국가가 지원해줘서 충분한 데다가 명예나 권력은 관심이 없어요.”
“그런가요… 근데 마왕을 잡으면  수 있잖아요? 다른 용사들은 살기 위해 열심인데, 용사님은 왜…?”
“아, 그거요? 괜찮아요. 조금 늦게 해도…”

그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바라지 않았다.
선한 사람인 걸까. 아니면 흉흉한 속내가 있는 사람인 걸까.
뭐가 되었든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그의 곁에 있는 것은 손해라고 판단되기 마련이었다.
하는 일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며, 작은 마을에서  의뢰비뿐이라 거액을 벌기도 어려울뿐더러, 권력에 관련된 일도 아니라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생존에 관련된 일조차 시작하지 않은 그는 그저 미련한 사람인 걸까. 궁금한 마음에 계속해서 그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그는 씁쓸한 모습으로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조금 생각하고 있어요.”
“무슨 생각을요?”
“마왕보다, 용사의 수가 많으면 마왕을 잡지 못하는 용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들 죽는 건가요?”
“그렇게 되겠죠…?”
“그럼 제가 만약 잡는다면, 저는 그들을 짓밟고 살아나는 건가요?”

그는 생각에 잠긴 눈을 내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꺼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가에 대해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 방황은 옳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말, 용사다운 생각이었다.
자신의 생존권이 걸려있는데도 그는 초조해하지 않은  작은 촌락을 도왔다.
그는 아무래도 자신이 다른 생명을 짓밟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같았다.

“…그렇군요. 마침 저도 돈이랑 명예, 권력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저 파티로 어떠세요?”

나는 왕녀로서의 체면도 버린 채 그에게 내 모습을 어필했다.
왕족이라 그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는 내가 그에게 정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엑, 저 싫으신가요?”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미소를 지으며  제안을 사양했다.
아무리 어필해도 그는 나를 받아줄 생각이 없던 것 같았다.

“제가  말은 아니지만,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다가오는 사람은 조심하고 있거든요.”
“말이 안 되잖아요…? 다른 사람들에게서 거절당한 것에 상처를 크게 받은 건가요?”
“하하…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저는 상처받고 싶진 않으니까요.”


그는 돈과 명예, 권력을 그 무엇도 바라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과 같은 사람은 경계하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자, 그는 허탈한 웃음을 토해내며 씁쓸한 표정을 머금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서 거절당하는 상처가 무척이나 큰 것이리라.
나는  번도 거절당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처럼 거절만 당한다면 아마 좌절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고 있었다.

“괜찮아요! 이번엔 저를 한 번 믿어보세요! 제가 신성 마법도 배워서 회복 마법을  수 있다니까요?”
“힐러인가요?”
“네! 그러니까 저를 파티 동료로 삼아주세요. 저는 용사님의 성품이 마음에 들었는걸요.”
“…….”


나는 활기찬 목소리로 그에게  번 더 어필했다.
내 앞의 용사님은  말을 듣고선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무거운 입을 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용사님이 실존할 수 있다니 신기했다. 사실, 바라던 것이기는 했지만, 이런 용사님을 만날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내 말을 천천히 곱씹던 용사는 고민을 해보려는지 입을 작게 움직이며 자신의 턱을 잡고 있었다.


“그럼 이번 모험만….”
“자,  부탁드려요!”
“잘 부탁합니다.”

그는 몇 번이고 나의 제안을 곱씹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내게 내밀어진 손은 무척이나 고운 손이었다. 힘겨운 일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없는 고운 손.
이런 손이 용사님의 손이라니, 무척 신비로웠다.
용사님이 있던 세계는 원래 평화로운 세계였던 걸까.
용사님이 내게 내민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그의 승낙에 크게 기뻐했다.





*





“고블린의 무리라니, 역시 당신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같네요.”

3일이 지나고, 고블린의 무리를 모두 토벌한 용사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나는 더러워진 옷을 톡톡 털며 힘겨운 몸을 그의 옆에 두었다.
모험을 좋아하던 성격이지만, 역시 이렇게 비위생적인 모습이 되는 것은 조금 힘들었다.
뭐, 정의감 넘치는 용사님과 함께라면 언제든지 마음이 두근대지만.
그는 투박한 단검을 내려놓고 나를 향해 최고의 극찬을 뱉었다. 아마 그는 나를 보고 조금씩 의심하며 의식하며 거리를 두려 했던 것 같았다.
내게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점수를 딴 것이다.

“후후. 제 치유 능력은 괜찮았나 봐요. 그런데 이건 조금 실례일 수도 있지만, 용사님의 능력은 무엇인가요?”
“아, 그거요? 스테이터스 창이라고…”
“그건 다른 용사님들이 크게 말하고 다녀서 알고 있어요. 제가 알고 싶은  용사님의 고유 능력이에요.”
“저, 저는….”


나는 이 기회를 살려  공을 조금 올려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나서 그의 고유 능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졌기에 물음을 던졌다.
3일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다른 용사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는커녕 고블린을 잡는 데에도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고블린을 토벌하는  고유 능력을 쓰는 것은 조금 과할 수 있겠지만, 그런 모습은 일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발톱을 숨기는 맹수와도 같이 느껴졌다.


“제 고유 능력은 ‘용사’입니다.”
“에?”

그리고 그 발톱은, 그의  마디에 의해 쉽게 드러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거대한 발톱이란 것을 깨달은 나는, 얼빠진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고유 능력이 ‘용사’라니. 그런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용사님 중에서 고유 능력을 ‘용사’로 들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로 ‘용사’인 것이었다. 태생부터 용사였던 사람이었다.

“그럼 다른 특별한 능력을 알지 못해서 숨기시는 건가요?”
“네에, 이름이 거창한 건 알겠는데, 딱히 무슨 능력이 있다고 알려주질 않으니 저의 힘에만 의존하고 있어서 부끄럽네요.”

그가  밝히는 것을 주저했는지  수 있었다.
다른 용사처럼 ‘붉은 발톱’ 이라던가, ‘번개의 창’ 같은 능력의 이름이 아니라, ‘용사’라는 이름의 고유 능력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미지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수밖에 없는 능력이었다.

“저, 이름을 물어볼  있을까요?”
“…제 이름은 유성하예요.”
“유, 성하.”


나는 그의 옆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산들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그의 이름을 물어보자, 그는 바로 대답주었다.
그의 이름을 입에 담자 조금 두근거렸다.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동화책에서 나온 것 같은 용사님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마음은 쿵쿵 뛰고 있었다.

“저는 엘리샤 넬 테베레스라고 해요. 엘리샤라고 불러주세요.”
“테베레스? 공주님인가요?”
“네. 공주님이에요. 어떠세요? 이제 조금 믿을만한가요?”
“그래서 돈이랑 명예, 권력도 필요 없다고  거군요.”

내가 미소지으며  이름을 말하자, 그는 단박에 테베레스라는 한 단어를 듣고 눈을 번뜩였다.
공주님이라. 나를 귀엽게 봐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의 말에 싱긋 웃었다. 그러자 그는 소리 내어 웃으며  3일 전의 말을 떠올렸다.


“저는 간단하게 성하라고 불러주세요.”


성하는, 내 옆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별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다.


“참, 성하 님. 동료가 필요하다면 제 친구를 불러볼까요?”
“님이라는 호칭은 그냥 빼도 돼요. 친근하게 부르는 게 좋거든요.”
“그, 그럼 성하? 혹시 말도 편하게 놓을, 래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없었다.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성하는 내가 부른 호칭을 듣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바로 말을 놓기로 제안했다. 사이를 단박에 좁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는 해맑게 웃으며 내 마음을 더욱 뛰게 했다.



*



“라니엘 리타라고 해. 이제 성하가 마왕을 잡을 수 있게 파티를 꾸려나가야지.”
“괜찮은 걸까?”
“괜찮아. 어차피 다른 용사들도 자신이 먼저 살겠다고 저렇게 악을 쓰는걸. 자, 리타. 이 사람이 용사님. 유성하라고 해. 인사해.”

나는 내 고위 성직자 자리에 있는 리타를 소개했다.
그녀는 만능 올라운더로 아마 성하에게 도움을 줄  있을 것이다.
성하는 마왕을 잡는 것에 아직 껄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만, 이럴 때일수록 내가 그를 리드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성하는 마지막 마왕이 죽었을 때, 죽어버리고  거니까.
나는 성하를 안심시킴과 동시에 리타에게도 인사를 시켰다.


“안녕하세요. 라니엘 리타입니다. 고위 성직자지만 전열, 후열 모두 가능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성하라고 합니다. 용사입니다.”


서로 인사가 끝나고, 시간을 들여 친해지기를 시도하며 우리는 서로 말을 놓기 시작했다.
그래, 이 분위기라면 정말로 성하가 마왕을 잡을지도 몰라.
성하가 용사인 한, 그가 마왕을 잡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3명으로는 모자라지 않을까?”


리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입을 열었다.
리타의 말이 옳았다. 마왕을 잡으려면 마계로 먼저 쳐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3명으론 택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 권력을 사용해 병사를 파견한다면 그것은 용사로서 마왕을 토벌했다는 명예를 잃게 되겠지.
어쩔 수 없이 다른 동료를 찾아야만 했다.
믿을 수 있으며, 그와 생사를 같이하며 동고동락할 사이를 찾아야 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내게 생각이 있어.”

그렇게 내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하고 고민할 무렵, 성하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을 갈랐다.
성하는 마왕을 잡는 것에 대해 조금 머뭇거릴까 싶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조금 고민을 해둔 게 있는 것 같았다.


“마족과 친해지는 거야.”
“성하… 제정신이야?”


그는 명안을 냈다는 뿌듯함을  얼굴로 나타내고 있었다.
리타는 어이없다는 듯 허탈한 목소리로 성하를 바라보았다.
나도 조금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마족과 친해지려는 걸까.
인류 최대의 숙적인 마족과 친해진다는 발상을 하는 것은 용사인 성하밖에 없을  같았다.
나는 그의 허무맹랑한 말에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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