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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화 〉episode12. 엘리샤의 기억 (1) (79/98)



〈 79화 〉episode12. 엘리샤의 기억 (1)

아수라장이  길드 안. 모두가 나를 바라봤고, 모두가 나를 향해 창을 들었다.
중세인지, 근대인지는  몰라도, 마법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정보 전달 속도가 현대에 견줄 정도니 지금의 상황이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긴장한 나머지 르미야를 쥔 손아귀에서 땀이 차고 있었다.

“저 자식 잡아!”

모두가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평범하게 그녀의 범위 밖에서라면, 이라는 생각으로 벗어난 것이었는데 이래서는 테베레스에 발을 붙일  없게 되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거겠지.

“세상의 이치는 내 부름에 응하라!”
“저 새끼 마법 쓴다. 막아!”


핏. 하고 무언가가  몸을 스쳤다.
길드 한가운데에 있어서 그런가, 암기를 쓰는 탐색꾼도 있는 것 같았다.
단도는 빠르게 내 볼과 다리를 스쳐 상처를 만들었다.
그리고 거구의 사내들이 날붙이를 들고 다가오며, 뒤에서는 다른 마법사들이 영창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따윈 들어주지 않을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을 불사르고, 내 앞의 적을 재로 만들어라! 윽!?”

그새 다가온 한 사내의 검이 팔을 내리쳤다.
그의 검을 막은 왼팔이 당장에라도 부러질 것 같았다.
괜찮아. 아프기만 할 뿐이야. 라고 생각하며 이를 아득 깨물고 마지막 영창을 입에 담았다.


“플레어!”

어디선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어깨에 화살이 꽂히고 몸은 균형을 잃은 채 쓰러졌다.
지팡이를 놓치고, 모두가 나를 제압하기 위해 내  위에 올라탔다.
마법은 발현되지 않았고, 내 몸은 재생하지 않았다.
낫지 않는 상처에 극심한 통증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애새끼가 사람 놀라게 하고 자빠졌어.”
“묶어!”
“국가전복죄의 대역죄인이다! 뭘 할지 모른다고 했으니 포박해서 공주님께 헌상하라!”
“이제  길드도 크기를 조금 키울 수 있겠군요.”


사람들은 어딘가 분에  목소리로, 어딘가 흥겨운 목소리로 나를 제압하며 언성을 높였다.
짓눌린 탓에 피를 흘리며 칼을 막던 왼팔은 부러지고, 폐는 당장이라도 터질  같았다.
시야는 흐려지고, 숨은 가빠졌다. 아무리 아픔이라는 것을 많이 겪어봤다 하더래도, 골절상에는 버틸  있는  아니라는  당장 느끼고 있었다.
몸이 낫질 않으니 계속해서 고통에 휩싸였다.
‘카보드’가 없으니 나는 내 마법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건가.


“‘미카엘’!”


결국,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게 된 나는 ‘미카엘’의 이름을 불렀다.
‘미카엘’의 이름을 부르자 공간은 일렁이고, 붉은빛이 위를 감쌌다.
어느새 내 앞에는 검은 머리카락을 자랑하는 우아한 여성이  있었다. 그리고 위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큐라가 나타났다.
붉은 갑옷을 두른 그녀는 입에서 붉은 입김을 토해내며 길드의 지붕을 뚫었다.
굉음에 모두가 패닉에 빠져 얼 타고 있을 때, 발걸음을 옮겨 길드를 벗어나려 했다.

“어딜 가냐!”
“개새끼가, 어딜 튀어!”


하지만 개중에 정신을 빨리 차린 사람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근육이 가득 찬 거구가 무기를 들고 내게로 돌진해왔다. 거대한 망치, 검이 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생사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은 채 죽여서라도 공적을 올리려는 것 같았다.

[…성하. 이놈은 성하를 죽이려 했다.]


큐라가 무기를 날카로운 발로 걷어차면서 차갑게 말했다.


[그렇다면 죽음을 각오했다는 것이죠?]


‘미카엘’은 큐라의 말에 대답하듯이 그들을 향해 돌진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복싱선수처럼 휘두른 주먹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팡. 팡. 하고 공기를 부딪치듯 휘두른 주먹은 그들의 머리에 정확히 꽂혔고, 폭파음과 함께 그들의 머리는 터져 없어졌다.

“우, 우아아아악! 사람을 죽인다!”
“저, 저놈은 용사가 아니라 마족이다! 죽여!”
“지금 저 마족을 죽이지 않으면 다음은 우리와 우리 가족의 차례일 것이다!”


그들이 죽자, 그것을 바라본 모험가들이 식겁한 목소리로 고함쳤다.
모험가들은 눈앞에서 사람이 죽자, 마침 검은 머리카락인 나와 ‘미카엘’을 마족으로 단정 짓기 시작했다.
착잡한 심정이었다. 내 앞에서 사람이 죽었는데도 나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나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라지만, 시체를 보면 뭔가 느끼는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음은 어느새 ‘카보드’에 매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계로 도망가자. 안 되겠다.”
[…어떻게 가겠다는 것이냐?]
[마계를 찾았어?]


내가 자포자기한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자, 큐라와 ‘미카엘’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미 알고 있어. 대신, 쉬지 못할 거야.”
[…그래도 지금 여기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만. 나는 가는 것을 추천하지.]
[마계로 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거예요. 아마,  공주가 있는 한.]
“그러겠지.”

나는 그녀들의 물음에 긍정으로 답했다.
큐라는 내 말을 듣고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찬동해주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당장 일을 미룰 수는 있겠지만, 돌아오고 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상황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이것이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가야만 했다.
괜히 이곳에 남아있을수록, 큐라와 ‘미카엘’이 사람을 더 죽여나갈  같았기에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럼, 간다.”




*



큐라의 등에 타고 날아, 해변에 인접한 마을에 도착한 나는 세라가 했던 그대로 주문을 읊었고, 내가 보았던 그대로 마계의 문이 열렸다.
이곳이 45번째 마계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짙은 파란색을 자랑하는 하늘, 그리고 그 위에 수많은 별들이 자수처럼 놓여져 있었다.
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별만으로 하늘을 밝힐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검은 땅 위에 선 나는 바람 냄새를 맡으며 몸을 움직였다.

[마계라는 것은 이렇게 생긴 곳이구나.]
[천계와는 다르게 어두컴컴한 곳이군요.]

큐라는 신기하다는 듯이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고, ‘미카엘’은 자신이 있던 천계를 비교하며 주변을 확인하고 있었다.

[…용사 소환 날로부터 3일도    것으로 알고 있다만, 어찌 이리 빨리 올 수 있던 것이냐? 나는 45계의 마왕 비네. 네놈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주지.]


얼마나 걸었을까, 귀에 직접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묻어져 나왔다. 너무 빨리  탓이겠지.
원래라면 마계에 이렇게까지 빨리 도달하는 용사는 없을 테니까. 준비할 새도 없이 침입을 당하면 당황할 만도 했다.


“‘미카엘’. 검으로 변해.”
[네.]


조심스레 ‘미카엘’의 손을 잡아 명령을 내리자, 그녀의 부드러운 손은 이내 딱딱한 칼자루로 변했다.

“큐라는 너무 성급하게 드래곤으로 변신하지 말고 인간인 채로 최대한 오래 싸워. 괜히 크게 변신하면 그의 능력에 표적이 되기 쉬울 거야.”
[호오. 그러냐. 요는 몸집을 줄인 채로 싸우면 된다는 것이지?]
“맞아.”


그리고 무기로 변하지 못하는 큐라에게는 괜히 화살을 맞고 치명상을 입지 말라고 주의사항을 입에 담았다.
내 말을 바로 이해했는지, 확인차 내 명령을 언급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을 검으로 만들고 나면 2인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작전을 논할 필요는 없었다.
몸을 움직이며 ‘미카엘’을  손으로 쥐었다.


[큭… 뭐냐 이 전율은.  크하하핫! 내가 두려워한다고? 이 몸이? 단순한 마검에?]

어느새 몸을 드러낸 비네는 손을 움찔 떨더니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자신의 앞머리를 뒤로 사락 넘긴 그는 떨림을 떨쳐내려는  일부러 눈을 크게 뜨며 나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간다! 세상의 이치는 내 부름에 응하라!]

비네의 시선이 잠깐 내 쪽으로 향하는 순간, 큐라는 그대로 땅을 박차고 나와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가속이 붙자, 그녀는 등에서 날개를 펼치더니 퍼득 날아 쏜살같이 비네의 뒤를 잡았다.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재로 만들어라.]
“‘미카엘’!”


그녀가 두 번째 구절을 읊자, 당황한 비네는 내 쪽으로 당기던 활시위를 돌려 큐라를 겨눴다.
나는 그때를 노려 ‘미카엘’과 공명하기 위해 이름을 불렀다.
거대한 빛의 기둥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몸은 찬란한 금색 빛에 휩싸였다.
이것이 전성기 ‘미카엘’의 힘인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도 모르는 새에 발이 땅을 박차고 나섰다.


[두,  명이 나를 우롱해!]


콰직.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비네는 고함을 치며 활시위를 튕겼다.


[인페르노!]


비네가 큐라를 향해 활시위를 튕기자 그곳에 별이 떨어졌다.
하늘에 박힌 작은 보석 같던 별은 커다란 운석이 되어 큐라를 뒤덮으려 했다.
하지만 큐라도 이미 마지막 영창을 남겨놓은 상태였고, 운석이 큐라의 머리 위에 떨어지기 직전에 그녀는 주문을 완창했다.
거대한 돌덩이가 빨간빛을 내뿜었다. 그리고 솜사탕을 물에 넣은 것처럼 큐라를 향해 떨어지던 돌덩이는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졌다.
이때가 기회였다. 큐라에게 정신이 빨린 이때, 내게로 시선을 돌려도 시간을 제대로 못 맞출 이 순간.

[빛이여…!]

‘미카엘’과 공명한 나는 이를 까득 깨물고 검을 뒤로 가게 들었다.
휘두르기 위해 자세를 잡은 나는 그녀의 힘을 이미지하며 발을 굴렀다.


[이 뜻이 주와 같아라!]

나는 ‘미카엘’을 다루기 위한 주문 같은 건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공명한 지금에는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내 몸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미카엘’이 대신 영창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영창이 끝나는 순간, 내 몸을 감싸던 거대한 빛의 기둥이 검으로 빨려 들어감과 동시에 비네를 가를 거대한 참격으로 변했다.

[끄아아악! 가, 감히…! 인간 따위가!]

비네를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가른 나는 그대로 땅에 엎어졌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적응하지 못했다.

- 축하합니다. 당신은 45계의 왕을 물리쳤습니다. 당신에게는 이후 생존권을 보장하며 돌아갈지, 남을지를 선택할 기회와 함께 원하는 소원을 들어드립니다.
“…….”

비네를 처치한 나는 하늘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를 깨물었다.
무슨 소원을 빌어야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까. 어차피 이 상태로 돌아간다 한들 다시 수배범일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도저히 잡을 수 없던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샤의 0회차를 보여줘.”


말을 고르고, 골랐다.
이 순간이 영원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생각을 떠올렸다.
스치듯 지나가는 쓸모없는 의견은 잊고, 조금씩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의견을 담으려 했다.
끝내, 나는 엘리샤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빛의 구슬에 손을 대는 순간,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퐁. 하고 떨어져나온 빛의 구슬.
다른 용사가 받은 보상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색은 조금 달랐다.
연보랏빛을 뿜어내는 빛의 구슬은, 내 가슴팍 앞에 두둥실 떠올라 찬란하게 나를 유혹했다.

“다녀올게.”


나는 조심스레 그 말을 입에 담은 채 빛의 구슬에 손을 댔다.


*


나는 테베레스의 제3 왕녀. 사람들은 나를 귀엽게 보는지 공주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모험가였다.
다른 모험가와는 다르게 왕족을 뜻하는 백금색의 테두리를 쓰지만, 그래도 신분증을 꺼내기 전까진 다들 나를 하나의 모험가로 대우해주는 감각이 새로웠다.
아버지는 내가 암살이라도 당하는 건 아닐지, 어디 가서 해코지라도 당하는 건 아닐지 걱정했지만, 그렇게 쉽게 당할 정도라면 모험가를 자처하진 않았겠지.

“흐으음.”


동화책에서만 보던 용사라는 존재들이 우리나라에 25명이나 있었다.
아름답고도, 고귀한 존재라고만 들었는데, 막상 용사라고 불리는 그들은 꽤 속물이었다.
소환식 때는 보지 못해서, 이렇게 모험가를 자처하며 보러 온 것이었는데 막상 보니 실망이었다.
역시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그들은 마족처럼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고, 용사만의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고는 여기 사는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돈을 좋아했고, 이성을 사랑했고, 손익계산하는 데 급급했다.
돈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았고, 인기가 떨어진다 싶으면 눈을 돌렸다.

“네? 작은 촌락이 위험하다고요?”
“그, 그래서 지금 급하게 용사님들을 모아보고는 있지만….”
“그럼 제가 할게요.”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다시 왕성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을 때 빛 같은 사람이 들어왔다.
 용사는 명예도, 돈도 물어보지 않았다. 단순한 손익계산의 물음조차 없이 탁자를 탁, 치며 각오를 다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에게는 동료가 없는 것 같았다.
혼자만 행동하는 사람인 걸까. 아니면, 오히려 명예와 돈이 없어서 그에게 아무도 꼬이지 않는 걸까.
나는 그런 용사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이 호기심을 멈출  없었다.


“저기, 그렇다면 혼자로는 힘들지 않을까요? 저랑 파티를 맺지 않으실래요?”


동화책에서만 나올 법한 용사님을 눈앞에서 놓칠 수 없던 나는, 조심스럽게 지팡이를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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