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episode11. 카보드 (9)
번쩍. 하고 빛이 눈에 들어왔다.
먹구름의 층을 뚫은 큐라는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 건지 바람 마법으로 나를 등으로 올려주었다.
테베레스에 있을 땐 하늘로 이동하면 안 된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너무 경솔했다.
그로 인해 미카엘은 힘을 잃었다.
“…어떡, 하지.”
미카엘은 나를 힐끗거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힘이 있을 때와 다르게 쓸모가 없어져버린 것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뭐, 그녀에게 있어서 신이 줬다고 하는 힘이 전부였고, 자존감, 자존심의 원천도 그곳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니까 그럴 법도 했다.
“‘카보드’에 대해 들을 수 있을까. 지금 들려줘. 바다에 도착하기까진 시간이 좀 있으니까.”
미카엘과 마주 앉은 나는 큐라의 상처 어린 등을 어루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카엘은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카보드’는 신의 영예라고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라. 가지게 되면 영예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리 부르는 것뿐일 거야. 하지만 ‘카보드’는 누군가를 선택하지 않아. 그저 소유되냐, 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
“그게 무슨 소리야?”
“성하가 ‘카보드’를 심장으로 갖고 있듯이, ‘카보드’는 성하에게 소유되었어. 그것은 ‘카보드’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 그에 견주는 무언가를 했던가, 할 것인가. 그런 이야기. 소유된다면 본래의 성능을 내겠지만, 소유되지 않는다면 몸에 지니는 것조차 할 수 없어.”
미카엘이 하는 말은 결국 내가 무언가를 했거나, 할 거라는 기대치에 따라 소지할 수 있냐 없냐를 가르는 것 같았다.
복잡해지고 있었다.
원래 세계에서는 하나의 부품으로 내가 보는 시야만을 신경 쓰고, 내 팔이 닿는 범위 내에서만 관심을 두었는데. 한 세상의 진실에 다가가는 것만 같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카보드’는 힘의 원천. 신님의 힘이 깃들어있으며, 마음이 계속되는 한 멈추지 않아. 그것은 세상을 이끄는 힘이자, 사람들을 이끄는 힘의 중심지야.”
“참. 손에 쥔 것 좀 줄래?”
미카엘은 비장하게 ‘카보드’의 힘을 입에 담았다.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한 계속된다니, 얼마나 편의적인 물건인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미카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미카엘은 깜짝 놀라더니, 자신의 왼손에 꽉 쥐어진 ‘브레이커’를 바라보았다.
“…내 힘을 가져간 검이야. 가, 갖고 있으면 다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 기능은 없어. 네가 미카엘이었기에 살아남은 거야. 일반 사람이었다면 마나가 분해 당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야.”
“그, 그런.”
미카엘은 필사적인 얼굴로 입을 떨었다.
‘브레이커’를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쥔 미카엘은 내어줄 수 없다는 듯이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그만큼 신님이 그녀에게 준 힘이 소중했던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현실의 상황을 비정하게 꽂았다.
그러자 미카엘은 절망하는 듯이 눈에 생기를 잃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자, 줘 봐.”
“…응.”
‘브레이커’를 반쯤 뺏듯이 가져온 나는 오른손에 꽉 쥐었다.
날을 내 쪽으로 향하게 하고, 마력을 사용해 마나를 흘려 넣었다.
마나 소모가 큰 ‘브레이커’의 특성상, 꽤 많은 마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성하?”
미카엘은 내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치켜떴다.
어차피, 그녀가 계속 이 꼴이라면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걸 받고 기운이 났으면 좋겠다.
“울지마.”
눈을 감자, 미카엘이 전 회차에서 미소지으며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카보드’를 받자마자 천계로 떠나버린 모습도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씁쓸했지만, 그래도 지내온 시간의 경중을 따지면 내 쪽이 훨씬 가벼웠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손에 힘을 꽉 쥐고 강하게 심장을 도려내었다.
“성하…!”
[뭐, 뭐냐! 어, 어째서….]
“…‘카보드’야. 받, 아.”
아무리 고통을 받아도 고통에 무뎌지는 일은 없이, 나는 격렬한 통증에 휩싸였다.
심장을 도려낸 ‘브레이커’는 제한 횟수를 다 써버려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경악하는 둘 사이에서 나는 조심스레 손을 심장에 대고 뽑았다.
죽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카보드’.”
미카엘은 울먹이는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꿈틀댔다.
자신이 여태까지 찾았던 것이 한 사람의 심장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나는 점점 멀어지는 의식에도 그녀의 표정을 눈에 아로새겼다.
“고마워.”
미카엘은 슬픈 모습으로, 해맑게 미소지었다.
눈물을 머금은 그녀는 조심스레 내 손에 쥐어진 ‘카보드’를 받아들더니, 자신의 심장을 떼어 내게 넣어주었다.
조심스레 회복하는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현격히 마나를 회복한 ‘미카엘’은 어느새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카보드’가 정말 내 손에.]
‘미카엘’은 성인 여성의 모습을 한 채로 감격하더니,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 자리를 찾은 ‘카보드’는 그녀에게 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이제 마나가 풍부한 마법사도 아니고, 되살아날 수 있는 심장을 가진 불사신의 몸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인간이 되었다.
[성, 하는 괜찮은 거야?]
“뭐가?”
[‘카보드’는 성하가 가지고 있어서, 주기 싫다 하면 안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애초에 인간이 지니면 불사신이 될 수 있다고? 마법을 난사해도 지치지 않을 수 있어. 이건 세상의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할 하나의 개념인데.]
그녀는 뚝뚝 끊기는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검고 긴 생머리를 흩날리는 그녀는 황금색 눈동자를 내게 향했다.
흰색 원피스를 입은 가녀린 여성이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머금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입을 꿈틀거렸다.
“…솔직히 욕심나긴 하지. 그래도, 마왕을 잡으려면 너도 있어야지. 안 줬으면 반대로 네가 일반인 아니야? 아까 그 모습이었으면 네가 신한테 돌아가는 건 평생이 걸려도 힘들 텐데.”
[그렇지. 마나가 하나도 없다면, ‘카보드’를 찾는 여정은 몇천 년이고 더 걸렸을 거야.]
어깨를 으쓱이며 ‘미카엘’의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내가 아무리 힘이 넘친다 해도, ‘미카엘’이 일반 소녀처럼 변해 있어서는 서로가 불편할 뿐이었다.
아무리 누군가의 힘이 강하다 해도, 전장은 전장. 누군가를 지키고 싸울 수 있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도, 그건 ‘미카엘’의 심장이니까. 도움이 될 거야.]
“푸핫. 고마워.”
‘미카엘’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더니 내게 슥 다가와 가슴을 어루만졌다.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내 옷자락을 잡으며 고혹적인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빵 터져서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뭐야. 왜 웃어?]
“아니, 자기 심장은 좋을 거라고 품질 보증해주는 것 같아서 말이야.”
[품질… 보증? 그, 그런 뜻이 아니다만.]
힘을 되찾은 ‘미카엘’은 순간적으로 내 웃음에 당황하는 듯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한쪽에 내려두었던 르미야 지팡이를 다시 손에 쥐었다.
‘미카엘’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입술을 비죽였다.
[성하. 괜찮은 것이냐?]
“어. 괜찮아.”
[거의 다 왔다.]
“응. 고마워.”
큐라가 조심스레 내 상태를 확인하는 듯 거대한 몸을 떨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의 비늘을 쓰다듬었다.
큐라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바닷바람이 내 코를 스치고 지나갔다.
“일단 오늘은 하루 쉬고 가자. 큐라 기동력을 하루 안에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으니까.”
[그러도록 할까.]
모래사장 위에 착지한 나는 어깨를 잡고 굳어진 몸을 풀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큐라의 등장에 공포에 빠졌는지, 경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큐라는 이런 시선이 익숙한 건지 아무런 반응 없이 인간으로 변신했다.
“아, 맞다….”
[왜, 왜 그러느냐?]
“네 옷 사준다는 걸 깜빡했네. 자꾸 어디서 싸우기만 해서 그런가.”
내 옆에서 나체로 멀뚱멀뚱 서 있는 큐라의 모습을 보아하니 한숨만 절로 나왔다.
옷을 사준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자꾸 그럴 타이밍이 나질 않았던 게 이제야 떠오르다니.
원래라면 왕도에서 입고 벗기 편한 옷을 사주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사러 가면 되는 거 아니냐!]
“아니, 길거리에 나체 꼬맹이를 데리고 다니면 법적으로 문제 있을 것 같아서 그래.”
큐라는 내 소매를 꽉 잡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꽉 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맞다. 그러니 얌전히 있도록 해라. 내가 성하랑 다녀올 테니.]
[…흥. 듣자 하니 그것이 어른의 모습이라지? 얼마 크지도 않은 그 키에 어른 행세를 하려 해도 내게는 안 통한다.]
그걸 빤히 바라보던 ‘미카엘’은 내 팔짱을 끼고, 달라붙던 큐라를 톡 밀쳐냈다.
그렇게 입꼬리를 올리던 ‘미카엘’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큐라는 손가락질하면서 자신보다 조금 큰 ‘미카엘’에게 대들었다.
전 회차였다면 보지 못했을 광경에 나는 새로운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회차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의 관계는 이리도 달라질 수 있구나. 싶었다.
“둘 다 여기 있어. 나 혼자 다녀올게.”
[엑?]
[어째서….]
투닥대는 둘을 같이 밀어낸 나는 손을 까딱이며 입을 열었다.
큐라는 싫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고, ‘미카엘’은 자신을 왜 두고 가는지 의문을 품는 것 같았다.
“‘미카엘’이 그래도 옆에 있어야지, 괜히 큐라만 나체로 놔둘 수는 없잖아. 사람들 잘 안 보이게 바다에 들어가서 놀던가.”
[물놀이 좋지!]
[알겠다.]
나는 그녀들이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던져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큐라는 내 말을 듣자마자 그 채로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미카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하는 ‘카보드’를 내게 넘겼으니, 무한한 마나도, 영원한 생명력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 조심하도록 해. 혹여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내 이름을 불러. 어디든 갈게.]
“참, 고맙네.”
[이것은, 내가, 평생을 들여 성하에게 해야 할 보답인걸.]
‘미카엘’도 큐라를 따라 바다로 뛰어드는가 싶었더니, 빙 돌아 내 멱살을 꽉 잡았다.
뭔 일이지, 하고 당황해서 ‘미카엘’을 내려다보니, 그녀는 나지막이 내게 주의해야 할 사항을 입에 담았다.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는 걸 보니 뭔가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 같았다.
“갔다 올게.”
[응,]
나는 그녀의 가녀린 손을 잡고 내 멱살을 잡은 두 손을 풀었다.
그리고선 아이에게 이르듯 상냥하게 인사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뉘, 슈?”
“죄송합니다. 제가 용사인데, 혹시 옷을 두 벌 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입을 옷하고, 아이들이 입는 원피스로요.”
“아, 안됩니다. 용사님인지 아닌지 제가 확인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조금 걸어 사람들이 있는 마을로 들어갔다.
간판을 읽으며 옷 가게를 찾아 들어가자, 안에 있던 직원이 숨을 삼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계속해서 찔리고, 터지고, 베어내는 바람에 옷을 입은 건지, 걸레짝을 걸친 건지 피투성이에 누더기가 된 옷을 입고 있는 내가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사정을 설명하며 옷을 받을 수 있나 물어보았지만, 가게 직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내 수중에 뭐 들고 있는 게 없어서 돈을 구할 방도가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터덜터덜 가게를 나와 다시 다른 곳을 찾아보려던 찰나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길드?”
눈에 들어온 것은 왕도보다 조금 작은 길드였다.
그래도 기본적인 기능은 하는 건지 사람들이 많이 오갔고, 나도 이끌리듯 발걸음을 옮겼다.
“…힉.”
“저, 죄송합니다만, 여기서 제 신분증을 발급받을 수 있나요?”
“네, 네! 성함과 직업이 어떻게 되시죠?”
“유성하. 용사요.”
직원은 내 몰골에 신음하며 눈을 돌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신경 쓰며 입을 열었다.
“…기록이 말소되어있는데요? 용사님 맞으시나요?”
“말소요? 사유가 따로 있나요?”
“국가, 전복죄. 역모죄. 살인, 미수?”
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종이를 만졌다.
마법의 종이인가 싶어 고개를 힐끗 들어 올리니, 내 정보가 없다는 것 아닌가.
그녀에게 말소 사유를 물으니, 그녀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펜이,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리고 직원은 조심스레 그것을 입에 담았다.
한 단어, 한 단어를 읽을 때마다 그녀의 안색은 새파래졌다.
“대역죄인이다! 포박하라!”
옆에 있던 직원이 그것을 들었는지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몸을 이쪽으로 틀었다.
그리고는 커다란 고함으로 길드를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