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episode11 카보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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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샤와 리타는 다이센으로 가는 마차를 탔다.
엘리샤가 다이센으로 가겠다고 정한 것은 예감 같은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통계였고, 거의 확신할 수 있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변수는 역시 성하가 전 회차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에리.”
“…왜?”
“저건 뭘까.”
“아무래도 상관없잖, 아.”
손톱을 깨물고 있는 엘리샤를 뒤로하고, 리타는 바뀌어 가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왕도를 벗어나려던 찰나, 리타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새나 드래곤 같은 것이 아닌데, 사람의 형태를 하고 날아다니는 것은 유독 사람의 눈에 띄었다.
줄줄이 왕도를 벗어나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았는지 웅성거리는 소리로 하늘을 나는 사람을 가키렸다.
리타가 조심스레 엘리샤를 불러 물어보자, 엘리샤는 관심 없다는 듯이 눈을 흘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엘리샤는 그것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성하?”
“성하라니, 저게? 맨몸으로 하늘을 날 정도라면 이미 장난 아니라고… 설마 저걸 잡겠다고 하는 거야?”
“됐으니까 마차를 돌려. 빨리!”
엘리샤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선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리타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당황한 채로 그녀에게 말했다.
엘리샤가 쫓는 사람이란 건 알지만, 하늘을 활공하는 사람을 상대로 쫓아간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국가에서조차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은 한둘 찾기가 겨우인데, 어찌 저런 사람에게 대항할 수 있을까. 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었다.
리타가 아무리 항의하듯 외쳐도 엘리샤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소리쳤다.
결국, 리타는 엘리샤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마부를 시켜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어떻게 잡을 건데?”
“왕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두 개가 있어.”
“뭔데?”
“‘미카엘’을 국가 기관인 마법사 협회에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길드의 A급 승급 심사장이 드래곤의 둥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동료를 구하기 위해 돌아온 걸 거야.”
“…용사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오늘 소환됐잖아.”
리타는 한숨을 내쉬며 마차의 벽에 등을 기대었다.
엘리샤는 비장한 눈으로 성하의 목적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두 개 펼친 엘리샤는 전 회차에서 꺼내 들었던 ‘미카엘’과, 성하가 우연히 맞닥뜨린 큐라의 존재를 떠올리며 담담히 말을 꺼냈다.
리타는 당일 소환된 용사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엘리샤를 바라보았다.
“일단, 왕도 한가운데로 가면 알 수 있을 거야. 마법사 협회장에 침입했다면 소동이 났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길드를 통해 드래곤을 잡으러 갔다는 이야기야?”
“응.”
엘리샤는 달리는 마차를 답답하게 느끼는 건지 초조한 눈빛으로 손톱을 잘근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도착해서 성하를 잡고 싶다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다.
리타는 숨을 삼키며, 그녀의 생각을 입에 담았다.
긍정한 엘리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둑어둑해진 왕도 한가운데에 내려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없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엘리샤는 이를 아득 갈고 눈을 내리깔았다.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입을 꽉 다물고 어디론가 향했다.
“어디가?”
“마법사 협회.”
“왜 거기로 가는 건데? 성하라는 용사는 이미 드래곤 쪽으로 갔다며?”
“성하의 본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는 알 수 있어. 기억하고 있다면, ‘미카엘’도 구하려고 할 거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데?”
“성하는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는 누구든지 구하려 하고, 사랑하고, 희생하려 해.”
말도 없이 어디론가 향하는 엘리샤의 뒤를 따르는 리타는 그녀에게 물었다.
엘리샤는 담담히 목적지를 말하고서는 재빠르게 발을 옮겼다.
당장에 드래곤 쪽으로 간 것을 알면서도 왜 길드로 가지 않는지 의문을 가진 리타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엘리샤는 확신에 가득찬 눈빛으로 성하의 다음 행동을 예측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은, 엘리샤의 표정이 대답하고 있었다.
“그건 마치….”
“맞아. 성하는 용사야. 나의 용사고. 나만의… 나만을 위한 용사야. 그런 용사는 어딜 가도 만날 수 없어. 다들 자신을 위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하지, 어떤 자는 성욕을, 어떤 자는 명예를, 어떤 자는 부를 원해. 모두가 그럴 거야. 그런 존재가 원래 사람이니까. 하지만 성하는 달라. 자신이 뭔가 해줄 수 있다면 모두 내어주는 것이 성하야. 그러니까…”
리타는 엘리샤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아무리 들어봐도, 그것은 어느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용사의 표본이었다.
엘리샤는 그런 리타의 말을 끊고서 자신이 생각하는 성하를 입에 담았다.
그녀의 광적인 사랑이 계속해서 성하를 향해 튀어나오고 있었다.
자신의 것이고, 자신만의 것이어야 하고, 자신만을 향해야 한다는 생각을 입에 담으며 중얼거리듯이 그를 찬양하고 있었다.
엘리샤의 눈에 서린 광기를 본 리타는 경악하며 그녀의 몸을 붙잡았다.
“왜, 왜 그래! 오늘 처음 눈 마주친 용사잖아! 안 그래?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한 나라의 왕녀가 그런 식으로…!”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오늘 처음 눈 마주쳤다고? 성하와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넌 알지 못하잖아!”
“무슨 소리야.”
“넌 몰라, 아니? 아무도 몰라. 결국, 나를 이해해줄 사람은 또 성하밖에 남지 않았어…. 성하. 보고 싶어.”
“그, 성하라는 사람은 혹시 이 세계의 사람인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대체 뭐야?”
리타는 소리치며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용사의 소환식은 오늘이었는데, 어째서 한 용사에게 이렇게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리타는 엘리샤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엘리샤는 반대로 리타에게 손가락질하며 바들바들 떨며 외쳤다.
뭔가를 호소하고 싶은지 목소리마저 떨리는 그녀의 안에는 뭔가가 품어져 있는 것 같았다.
부들부들 떨며 소리치는 엘리샤를 본 리타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흐느끼듯 주저앉은 엘리샤는 자신의 몸을 끌어안은 채 성하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엘리샤의 말을 아무리 들어도 이해할 수 없었던 리타는 결국,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성하라는 사람은 그럼 이세계 사람이 아니라, 이 세계의 사람인 건가.
하지만, 그런 결론은 엘리샤의 부정을 듣고 금방 흩어져버렸다.
리타는 그녀의 말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도 알지 못해. 성하를 제외한 아무도….”
강박증에 가까운 그녀의 앓음은, 하나의 광기였다.
그녀는 초점 잃은 두 눈을 허공에 향한 채로 몸을 일으켜 다시 어디론가 향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성하는, 나에게서 도망치려 하는 성하는 있을 수 없어. 하지만, 하지만… 이런 날 이해해줄 사람은, 그런 성하뿐인걸.”
리타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결국, 경비와 야근하는 몇몇 연구원들이 있는 협회로 도착한 둘은 경비의 안내를 받고 안으로 들어섰다.
“제3 왕녀, 엘리샤 넬 테베레스 님의 방문이십니다.”
“와, 왕녀님이 이런 시간에 어째서…!”
“교, 교수님!”
엘리샤의 등장으로 혼비백산 뭔가를 빠르게 준비하는 연구원을 제쳐두고, 엘리샤는 어디론가 쭉 걸었다.
지하로 내려간 그녀는 컴컴하게 어둠으로 물든 복도 사이에서, 환하게 빛을 내뿜는 방을 발견했다.
‘미카엘’을 연구하는 거대한 연구실. 그곳은 다른 방보다 크고, 지하를 전부 다 쓰는 거대한 연구실이었다.
관계자가 아니고서야 알 수 없는, 그런 공간이었다.
“공주님께서 어인 일로 이곳에 오셨습니까?”
“‘미카엘’에 대한 연구에 진전이 있나, 확인차 왔습니다. 야밤에 확인하면 연구원들이 해이하게 지내고 있지 않을까 싶어 왔습니다만, 불편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럴 리 없죠. 저희는 밤낮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만을 모아두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마법사 협회의 한 교수가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급하게 엘리샤가 있는 곳으로 달려나왔다.
엘리샤는 침입자가 온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이곳에 머무를만한 변명을 생각해냈다.
기선제압을 하기 위해 눈빛을 쏘아붙이며 말을 날카롭게 세우자, 교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다른 연구원들을 소개하려 했다.
하지만, 엘리샤는 자신이 한 말과는 다르게 ‘미카엘’에 대한 연구에는 흥미가 없으며, 이곳에 온 이유도 ‘미카엘’이 아니라 성하였기 때문에 시큰둥하게 대답하고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무엇을 찾으십니까?”
“잠시, 돌아볼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물론입죠. 리타 님의 호위를 원하신다면, 저희는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물러나도록 하세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엘리샤를 보던 교수가 눈치를 보며 말을 붙였다.
그러자 엘리샤는 차가운 말투로 그에게 대답을 강요하는 듯한 물음을 던졌다.
어차피 거절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터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용 랜턴을 들고 왔다.
앞을 밝게 빛내는 재질을 담았는지, 작은 랜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도 밝은 시야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엘리샤는 사람을 물리고 리타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에리… 뭘 하려고 하는 거야?”
“일단, 지하 계단을 모두 숨겨야 해. 여기엔 총 네 개가 있으니까….”
“그 용사를 잡기 위해 하는 거야?”
“응.”
엘리샤는 휴대용 지팡이를 꺼내 계단마다 마법을 걸기 시작했다.
이로써 성하는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찾지 못해 위에 있는 4층을 모두 뒤져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는 모자랐다.
숨기기만 해서는 성하가 다른 곳에 있다고 판단하고는, 빠르게 이곳을 단념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판단 하에 다른 작전을 연계해야 했다.
“성하가 분명히 침입해올 거야. 그러면, 왕성이 안전을 확보한다고 하고, 저쪽 계단을 통해 나가게 해.”
“그러고 나면? 에리의 말 대로라면, 그 용사는 드래곤을 데리고 있을 거잖아. 그 용사 스스로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건 이제부터야. 밤새 마법진을 구축하겠어.”
엘리샤는 손으로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성하의 한 수 앞을 치기 위해 계속해서 준비했다.
손가락으로 한 계단을 가리키며 리타가 할 일을 지시하자, 리타는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을 입에 담았다.
성하가 하늘을 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개인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었다.
하늘을 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국가의 한둘밖에 없는 대마도사 뿐이었으니까.
협회장조차 10분 나는 것이 겨우라고 했다.
리타의 걱정을 들은 엘리샤는 비장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그리고선 지하 한가운데 서서 성하를 위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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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궁.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위에는 커다란 천둥이 사람들의 귀를 찢었다.
엘리샤는 커다란 마법진 위에 서서 입꼬리를 올렸다.
“‘미카엘’을 왕성으로 옮겨라! 어서! 성검을 침입자에게 뺏길 수는 없다! 다른 문은 모두 숨겼으니, 저 문으로 빠져나가도록 해라!”
리타는 엘리샤의 작전대로 그들을 이곳에 숨겨두지 않고, 위로 올라가도록 했다.
성하가 이곳에 계속해서 머무르도록.
그렇게 리타의 명령을 따라 밖으로 나간 연구원들은 엘리샤의 계획대로 ‘미카엘’을 성하에게 내주었다.
엘리샤는 지하에서 타이밍을 재느라 위층의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미카엘’까지 확보한 성하가 다음 목적지를 어디로 정할지는 알 것 같았다.
멀지만, 빠르게 갈 수 있는 동쪽 해안으로 가 마왕을 칠 거라 확신한 그녀는 미소지었다.
“이번에는, 제 승리네요.”
콰륵, 하고 거대한 날갯짓 소리가 들린 것을 신호탄 삼아, 엘리샤는 지팡이를 천장에 겨누었다.
“뭐야!?”
모든 것이 일그러지는 것과 동시에, 땅은 위로 솟아오르고, 천장과 바닥은 뒤집혔다.
엘리샤는 곧게 솟아오르는 땅 위에 서서 1층, 2층, 3층, 차례차례 건물을 부수며 위로 올라갔다.
하나의 엘리베이터처럼 땅을 타고 올라온 그녀의 발에는, 평범한 흙이 아닌 골렘이 서 있었다.
거대한 골렘은 손을 뻗어, 이제 막 날아오르기 시작한 큐라의 꼬리를 잡아 바닥에 팽개쳤다.
“커헉!”
[큭…!]
[무슨 일이냐…!]
바닥에 팽개쳐진 성하는 피를 토하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고, 큐라는 신음했다.
그리고 ‘미카엘’은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채 몸을 일으키며 황금색 눈을 치켜떴다.
세 명은 모두 거리를 둔 채로 떨어져 있었고, 엘리샤는 곧바로 골렘을 이끌고 성하에게 다가갔다.
“성하. 사랑해.”
엘리샤는 자신이 내내 지니고 있던 ‘브레이커’를 슬쩍 꺼냈다.
피를 토하고 몸을 겨우 일으킨 성하의 위를 잡은 엘리샤는 그에게 입을 맞추고선, 단검을 치켜들었다.
사랑스럽지만, 싸늘한 목소리. 성하는 눈을 치켜뜬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에, 엘리샤… !”
성하는 경악하며 그녀의 이름을 외쳤지만, 엘리샤의 손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빠르게 성하의 심장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