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5화 〉episode11 카보드 (6) (75/98)



〈 75화 〉episode11 카보드 (6)


비바람이 치고, 천둥 번개로 뒤덮인 왕도 한가운데.
마법사 협회는 반이 괴멸되고, 군인들과 마법사 협회 관계인들이 몰려왔다.
한가운데 떨어진 것은 나.
지면에 붉게 피운 꽃 사이에서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부러진 갈비뼈가 하나둘 맞춰지고, 배가 찢어져 튀어나온 내장들이 다시 들어갔다.
머리가 깨진 탓에 뇌가 흘러내리는  같았지만, 그것도 문제없었다.
입안을 가득 메운 피의 맛은 내가 한번 죽었다는 걸 알려주는  진하게 났다.

“괴물?”
“신인가?”
“불사신인 것 같은데.”
“그자는 방금 죽었잖나. 어떻게 일어나는 것이냐.”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듬뿍 받으며 일어난 나는 어두워진 시야에 불을 붙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름이 껴 어두컴컴해진 하늘 위로 큐라가 날고, 나는 그 아래에서 르미야라는 든든한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모두가 집중하는 곳에서, 나는 어지러운 시야를 바로잡고 지팡이를 곧게 들었다.
목표는 ‘미카엘’. 탈환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지는 모르지만, 그녀를 구하기 위해 하나의 나라를 뒤엎는 것과 같았다.
왕도 한가운데, 그것도 국가의 직속 기관인 마법사 협회를 이렇게 괴멸시키다니, 국가전복죄로 잡혀가도 할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듣고 싶은 게 있었고, 구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죽여라! 반역죄로 처형해도 상관없다.”
“곤란하네.”

정말로 곤란했다.
테베레스 해안에는 성창 ‘아크’가 있고, 3주 후에는 어느 여관에 세라가 첫 외출을 나올 텐데, 모두 만날 수는 없겠구나.
눈앞에 붉은빛이 번뜩였다. 하지만 그들의 마법은 나를 향하기 전에 불타 없어졌다.


“큐라…?”
“흥. 성하가 너무 필사적으로 보여서 도와준 것뿐이다.”


큐라는 자신의 거구를 넓은 부지에 착지시키더니 콧김을 내뿜었다.
나는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눈을 감고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붉은 갑옷을 두른 그녀가 꼬리  때마다 주변의 건물이 부서져 내렸다.
혼란스러운 지금 이 순간을 틈타 나는 부서진 부분으로 들어가 건물의 내부를 달렸다.
사실, ‘미카엘’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미카엘’을 챙겨!”
“젠장, 하필 이럴 때 ‘미카엘’의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니.”
“빨리 옮겨! 이건 그대로 잡지 못하는 물건이잖아.”


건물을  분이고 뛰어다녔다.
옷은 모두 피로 물들어 몸이 무거워지는  느껴졌다.
숨을 헐떡이며 달린 나는 어느샌가 3층을 모두 돌아보았다.
이제 남은 것은 4층인가? 싶은 찰나, 계단에서 무슨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위가 아니라, 아래였다. 아래는 분명 다 돌아봤을 텐데, 어째서 아래에서 그런 이야기가 들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달려야 했다.

“숨겨진 지하…!”
“미친! 침입자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리가 나는 1층으로 돌아갔을 땐, 처음에 보지 못했던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눈을 커다랗게 뜨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자, 연구원들은 식겁하며 나를 향해 휴대용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세상의 이치는  부름에 응하라. 앞의 적을 잠재우고, 꿈꾸게 하라!”


그들이 모두 잠들게 만드는 마법을 재빠르게 입에 담았다.


“큭!”
“딥 슬립!”


그들은 주문을 외울 새도 없이 내 앞에서 잠들었다.
풀썩 주저앉은 연구원들 사이에는 유리관 안에 소중하게 담겨있는 ‘미카엘’이 있었다.
나는 주먹으로 유리를 내리쳤다. 산산조각 부서진 유리가 손에 파고들었다.
고통에 휩싸이는 느낌이었지만, 그런 것에 멈춰설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누가 달려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빠르게 일을 해결해야 했다.

“…제발. 빠르게 해결됐으면.”

나는 이를 까득 깨물고 ‘미카엘’을 손에 가져다댔다.
전에는   시험에 들었다가 하루가 지나서야 일어났었는데, 이번에는 금방 끝나기를 바라며 칼자루를 쥐었다.






*


풍덩.
붉은 세상에 갇힌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피비린내가 나는 풍경에 긴장한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미카엘’.”
[…그대는 누구인가? 이 시험 들자마자 정신을 차리는 자는 없었는데.]
“나는 ‘카보드’를 가지고 있는 자. 유성하다.”
[‘카보드’? ‘카보드’라고 했느냐? 정말 그대가 ‘카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냐?]


그녀를 감싼 노이즈가 걷히고, 그곳에서는 내가 알던 ‘미카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머리카락, 황금색 눈동자. 그리고 작은 체형의 여자아이.
그녀의 성장은 가지고 있는 힘에 비례하며, 내가 가진 ‘카보드’를 내어주면 바로 성숙한 모습을 자랑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사실대로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형상이었느냐. 신님께서 내린 과제를 용사가 들고 있던 것이냐?]

나의 긍정에, 그녀는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입을 떨었다.


“아직은 내어줄 수 없어.”
[왜?]
“본디  것이었으니까.”
[내 것이었다.  것이다. ‘카보드’는 본디 나의 것이었단 말이다! ‘카보드’라 함은 신의 영광. 신의 영예. 그것은 원래 천사의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의 것이었단 말이다! 동생들도 가지지 못하는 신의 영예를 어찌 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 그런 망발을 떨치는 것이냐! 신자도 아니고, 천사도 아닐 터인데 어찌!]
“…‘미카엘’.”


내가 고개를 저으며 어떤 형태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심장이었으니까. 그것은 이세계에 오기 이전에도 같은 사실이었다.
그러자 ‘미카엘’은 어금니를 까득 깨물며 소리쳤다.
쾅. 하고 그녀가 땅을 밟자 나를 절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무대는 흩어지고 이내 사방이 모두 새하얀 방으로 바뀌었다.
‘미카엘’이 이렇게까지 격분하는 이유는 아마도 당장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수단이 있는데 받지 못하는  때문일까.
나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심판의 날 이후로 연대 책임을 물어 천계에서 쫓겨난 지 수천 년이 흘러도 그녀는 돌아갈 기미 없이 이곳에서 무력한 하루를 보낼 뿐이었겠지.


“나를 도와준다면 바로 내어줄게.”
[…무엇을 도와주면 되는 것이지.]
“‘카보드’에 대해 알려줘. 그리고 마왕을 처치하는 걸 도와줘.”
[그리하면, 정말 주는 것이냐? ‘카보드’에 대해 알고도 내어줄 자신이 있는 것이냐? 아니, 인간은 그렇지 않아. 인간은 욕심 많은 생물. ‘카보드’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도 내어줄 것 같진 않다. 나는 후자만 도와주겠다.]
“…힘으로 해결해도 믿어줄 건 아니잖아?”
[쿡쿡. 힘으로 해결한다고? 나를 앞에 두고 힘이라 하였느냐?]


나는 조심스레 입을 떼 그녀에게 제안했다.
‘미카엘’은 의심하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조건을 내걸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조건을 믿을  없는지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카보드’에 대해 진실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에 전자도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됐다.
내가 표정을 굳히고 위협하듯이 이야기하자, ‘미카엘’은 그런 나를 비웃으며 대답했다.


“어. 힘.”

마력이 충분한 나는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쿵. 하고 울리는 순간, ‘미카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

흔들리는 새하얀 공간.
모든 것이 새하얘서 어디가 흔들리고, 어디가 균열이 일고 있는 것인지  수 없다.
그저 나와 ‘미카엘’이 서 있는 곳이 떨리고 있었기에 흔들린다는 것을 알  있던 것이었다.
그녀는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닫고선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놀라? 주도권은 나한테 있어.”
[…어떻게? 이곳은 나의 심상인데.]
“‘카보드’를 들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어때, 이제  믿겠어?”
[으으.]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마주한 그녀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게 주도권을 뺏긴 그녀는 이 상황이 혼란스러운지 신음을 흘리며 뭔갈 고민하는 듯했다.

[…그, 정말 내어주는 것이냐.]
“정말이라니까. 마왕 잡기 전에만 알려주면 돼. 그럼 마왕 잡고 나서 줄 테니까.”
[알았다.]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 ‘미카엘’은 조심스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에게 확답을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너에게서 익숙한 냄새가 나.]
“…그러냐.”


‘미카엘’은 내 손을 꼭 잡더니, 입을 뗐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큐라도 그런 말을 하던데, 그녀도 그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데자뷔 같은 것은 나의 능력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역시 다른 사람에게도 존재하는 것일까.


*




“얼마나 지났지?!”
[성하! 일어났느냐?]
“큐라!”


내가 식겁하며 일어나자,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나체로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나를 기점으로 마법사 협회 주변에 통째로 병사들이 포위하고 있었다.
건물의 창문으로 그들을 바라본 나는 신음을 흘리며 ‘미카엘’을 쥐었다.
나를 주인으로 인정한 ‘미카엘’을 보니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그녀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점이겠지. 아마 내가 성급하게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 본론으로 넘어간 것이 그녀의 태도에 변화를 준 것 같았다.
나를 주인님이라 부르던 ‘미카엘’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런지 기분도 미묘해졌다.

[어찌할 것이냐.]
“야 너. 괜찮아?!”
[이, 이 정도는 괜찮다.]


괜히 인간으로 변신한 큐라는 나체를 내게 들이대며 계속 재촉하고 있었다.
재촉하는 큐라에게 시선을 힐끔 돌리니, 그녀의 몸은 상처와 멍투성이였다.
왜 인간으로 변신했나 했더니, 몸을 작게 줄여 최대한 마법에 덜 맞으려 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그녀의 팔을 붙들며 소리치자, 큐라는 말을 더듬으며 손으로 상처를 가렸다.

“미안해. 나 때문에.”
[아니다. 잘 됐으면 됐다.]


죄책감에 내가 고개를 떨구자, 큐라는 씩 웃으며 나를 일으켜주었다.
나는 이렇게 강력한 힘이 생겼는데도, 내 동료에게 짐을 떠넘기는 사람인 건가 싶었다.
입을 꾹 다문 나는 그녀를 힘껏 안아주었다.

[서, 성하…?]
“정말, 고마워.”
[부끄럽다. 하지 말아라. 그것보다 지금 사람들이 너를 죽이려 하고 있다. 어찌할 것이냐?]
“저 녀석들은 경계하느라 지금 천천히 오고 있으니, 지금 빨리 갈 곳을 정해야 해.”
[그래. 그러니까 어딜 갈 것이냐?]
“내가 아는 마계가  있어.”

큐라는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내 품에서 버둥거렸다.
나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결국, 참다못한 큐라가 나를 힘으로 떨어뜨려 놓고는 지금의 상황을 입에 담았다.
정신을 차린 나는 눈빛을 바꾸고 주변의 상황을 살피고서 손가락을   펼쳤다.


[둘이나 있느냐? 단서라도 있었느냐?]
“아니, 그냥 알고 있어.”
[그것은 나를 잘 안다고 했던 그 말과도 통하는 것이냐?]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래.”
[알았다. 그럼 어디로 가는 게 좋겠느냐.]
“동쪽에 있는 바닷가. 아마 마계로 가는 문은 내가 열 수 있을 거야.”


큐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대충 대답했다.
내가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자, 그녀는 자신이 들었던 것을 끼워 맞추더니 정확하게 정곡을 찔러 질문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녀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긍정했다.
그러자 그녀는 곧바로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의견을 물었다.
세라가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하면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곧장 출발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럼, 성하가 말한 대로 날아가면 되는 것이냐?]
“괜찮을까?”
[성하가 날 지켜주리라 믿는다.]
“믿어줘서 고맙네.”

큐라는 자신 있게 말하더니 씩 웃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그녀에게 물었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 말에 나는 미소지으며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간다!]


콰광.
치료받은 큐라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부풀렸다.
건물을 찢고 나온 붉은 갑옷을 두른 드래곤이 포효했다.
나는 그녀의 바람 마법을 타고 등에 올라간 뒤에 왼손에 쥔 르미야를 휘둘렀다.

“‘미카엘’! 지금은 인간으로 변해 있어 봐.”
[네. 주인님.]
“…어?”
[내가 방금 무슨 말투를….]

당장에 ‘미카엘’보다 르미야를 휘두르는 게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미카엘’을 인간으로 돌려놓았다.
성검은 번쩍이더니, 이내 사람의 형태로 바뀌었다.
그녀의 대답에 내가 멍때리며 바라보자, ‘미카엘’ 본인도 놀랐는지 자신의 입을 가리며 눈을 크게 떴다.
일순간이었지만, 전 회차에서 봤던  목소리 톤과 말투였다.
그녀가 전 회차의 기억이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어렴풋이 그녀에게 작용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들이 전 회차의 기억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