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4화 〉episode11 카보드 (5) (74/98)



〈 74화 〉episode11 카보드 (5)

“혹시 심심하지 않다면, 나랑 여행을 가지 않을래?”
[무엇을 위한 여행인가?]

크르릉 거리는 드래곤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붉게 물들이는 큐라의 형상을 바라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큐라는 흥미롭다는 듯이 콧김을 내뿜었다.

“…알고 싶은 것이 있어.”
[호오, 생각보다 지식욕이 높은 인간이었군.]


큐라이 물음에 나는 입을 꿈틀거렸다.
분명 저번에는 죽고 싶지 않아서, 살고 싶어서 마왕을 죽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살아야 한다는 것보다도, 지금 내가 이 상황에 놓이게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
엘리샤가 왜 내게 집착하는 건지 알고 싶어서 마왕을 잡은 이후의 특전을 얻어야 했다.


“큐라. 미안한데, 인간으로 변신해주지 않을래? 내가 목이 아파서.”
[…호오.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것도 아느냐?]
“난 널 안다니까.”
[얼마나 아느냐?]
“역린의 위치까지.”
[…….]

나는 조심스럽게 큐라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큐라는 콧김을 내뿜으며 나를 떠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큐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가늠했다.
나는 입을 열어, 그녀가 숨기는 것을 입에 담았다.

[어째서 그런 걸 알지.]
“드래곤도, 인간도 되지 못해 외톨이가 된 하프드래곤 큐라. 나와 계약을 하나 하자.”
[…윽!]
“소원이 있다면 들어줄게. 대신 나와 함께 해주겠어?”
[네 정체는 뭐냐? 신?]


인간으로 돌아온 큐라의 모습은, 봤던 것과 똑같았다. 뭐, 다른 것도 문제가 있겠지만.
나는 그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 뒤에 손을 내밀었다.
나체를 자랑하는 그녀는 숨을 삼키며 나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손을 내민 채 그녀와 몇 분이고 시선을 맞추었다.
큐라는 경계하는 듯하다가도 입을 쉽게 떼지 못했다.

“…아니, 너의 친구야. 너의 동료이고.”
[나는 그런 걸 가진 기억이 없다. 없다고!]


나는 꾹 다문 입을 떨었다.
그녀가 너무 안쓰러워서, 살아온 500년이 전부 외톨이인 인생이라면 얼마나 외로울까.
나는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그녀가 듣고 싶을 것 같은 말을 입에 담자,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타닥거리는 모닥불 너머로, 그녀의 붉은 눈이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내저으며 소리치자 공기가 떨려 내가 피워뒀던 모닥불이 꺼졌다.

[어째서 내게 외톨이라는 걸 상기시켜주는 것이냐!]
“큭!”

역시 너무 아는 체를 하면 경계 당하기 쉬웠다.
목을 붙잡힌 나는 그대로 벽에 쳐박혔다.
어둠 속에 갇힌 나는 붉게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신음을 흘렸다.

“괜찮아.”

그녀가 가지고 있는 외로움을 내가 공감해줄 수는 없다.
수명도 짧은 데다가, 인간인 내가 인간의 무리에 섞여 들어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서 내가 공감한다고 말을 꺼내는 순간 그녀에 대한 기만이  것이다.
나는 그녀를 다독였다.
떨리는 팔에 손을 얹고, 그녀의 슬픈 눈을 바라보았다.

[뭐가 괜찮다는 것이냐? 하나도 괜찮지 않다.]
“내가  친구가 되어줄게. 혹시 갈 곳이 없다면 내가 같이 있어 줄게.”
[그것은 청혼이 아닌가?]
“아니, 혹여 널 해치려는 인간이 있으면 내가 막아줄게.”
[농담은 잘 하는군.  해칠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녀는  말에 이를 아득 깨물고 나에게 소리쳤다.
나는 담담하게 목이 졸려오는데도 필사적으로 말했다.
죽어도 살아나니까 괜찮다. 하지만 이야기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는 것은 사양이었다.
큐라는  말을 듣더니 피식 웃으며 손의 힘을 풀었다.
청혼 같았나? 싶어 다시 한번 고쳐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콧방귀를 뀌면서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죽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러게.”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왜 그러느냐?]
“네 도움이 필요해.”
[흐응. 인간이 끈질기구나.]

내가 입을 다물자, 큐라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어둠 속이라 뭐가 잘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야행성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눈에는 내가  보이는  같았다.
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자, 큐라는 마냥 싫지만도 않은 듯이 콧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그래, 무슨 도움이 필요 하느냐?]
“테베레스 왕국의 마법사 협회를 치러 가야 해.”
[…이유를 물을 수 있을까? 왜 치는 것이냐? 대의가 있는 것이냐?]
“그런  없어. ‘미카엘’을 구하러 가는 거야.”
[‘미카엘’?]
“응. 세상에 얼마 없는 신기. 성검이야.”
[그것은 단순한 강탈이 아닌가?]

큐라는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물었다.
한번 들어보고 나서 결정하려는 것 같아 사실대로 말했다.
그녀는 내 말을 들은 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미카엘’도 우리처럼 의식이 있어.”
[호오. 그래서 그 ‘미카엘’이라는 것이 너에게 구해달라 요청하더냐?]
“아니, 그것은 아니야.”
[그래선 안 된다. 바라지 않는 구원을 하는 것은 하나의 기만에 불과하다. 그저 구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기만이자, 도움받은 사람의 불행이  뿐이다.]


나는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녀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도리어  설득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도 옳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 때의 이야기였다.
나는 전 회차의 기억을 보고 온 사람이자, ‘미카엘’을 구원할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게는 그녀를 구원할 유일한 물건을 가지고 있어.”
[그게 무엇인가?]
“‘카보드’.”
[…그것은 불로불사를 꿈꾸는 아이들의 어리석은  아니었던가? 신화로 만들어 떠받들고는 허상을 좇다 죽은 이들이 한둘이 아닌데.]

이미 그녀는 ‘카보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인지 입을 꾹 다물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는 내 심장을 움켜쥐며 조심스레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내 목을 움켜쥔 그녀의 손이 천천히 풀렸다.

“뭣하면 시험해봐도 돼.”
[이미 들고 있다는 것인가.]
“어.”
[그럼 사양않고.]

푹.

“와. 뒤지는 줄 알았네.”
[…아니, 알았네. 가 아니라 정말로 한 번 죽었었다.]
“그렇구나.”


점멸된 시야를 끔뻑이며 몸을 일으켰다.
뭔가를 터뜨리듯 숨을 토해낸 나는 땀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둥지의 한가운데 모닥불을 피운 큐라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내 상황을 말했다.
나는 진정한 뒤에 신음을 흘리며 모닥불 앞에 앉았다.


“어때? 이제 믿겠어?”
[인간들이 신화라고 떠받드는 것들도, 모두 허상만은 아니었구나. 어리석다고만 했는데, 그저 찾기 힘들 뿐이었어. 누군가의 생명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까. 그래. ‘미카엘’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냐?]
“응.”
[그런데 어떻게 줄 것이냐? 네 생명을 대체하고 있을 터인 그것을 내어줄 심산이냐? ‘미카엘’이라는 것에게 그런 가치가 있느냐?]

내가 조심스레 그녀에게 물었다.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이제 그녀에게 달린 것이었다.
잠시 뜸을 들인 큐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믿어주었다.
그렇게 둘 사이에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다시 큐라가 입을 열었다.


“…가치라.”


가치라는 건 생각해본 적 없었다.
천계에서 쫓겨난 이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보였을 뿐이었다.
하나의 동정심이라 해도 좋았다.

“그런 건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행동은 내게 있어 가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하지만, 심장을 교환 받을 수 있다면, 그녀에게 충분히 심장을 내어줄  있는 것 아닐까.

[이상한 녀석.]


큐라는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녀석이라면, 심장 정도는 교체해줄 테니까 괜찮아.”
[그렇다 하여도 말이다.]
“이상하긴 하다. 내가 말했는데도.”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너무 많은 것들을 경험한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래도 단순해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엘리샤에게 잡히면 조금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그 전에 마왕을 처리하고 특전을 받아내야 했다.


[자라. 해가 뜨면 이동하자.]
“응….”


무거워진 눈꺼풀이 천천히 감겨왔다.
그러자, 큐라는 내가 잘 거란  눈치챘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눈앞에 있던 모닥불이 촛불처럼 훅 꺼지고, 어두워진 시야와 함께 내 의식도 멀어졌다.


*






[갈까?]
“…큐라.”
[왜 그러느냐?]
“그런 모습으로 가기엔 너무 야하지 않니?”
[흥. 인간들 따위가 입는 옷은…]
“차라리 드래곤으로 변신해서 가자.”
[바라는 것도 많구나. 성하라고 했나?]
“응. 성하라고 불러.”


몸을 일으키니 이미 큐라는 일어나서 몸을 풀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를 대놓고 드러내고 있는 큐라에게 조심스레 말을 던지자, 큐라는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애원하듯 그녀에게 부탁하자,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입을 비죽이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알았다. 성하. …좋구나. 친구라고 했던가.]
“친구.”
[참. 이런 것을 가질 줄은 나도 몰랐는데,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큐라는 입을 잠시 꾹 닫고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이름을 한 번 더 입에 담았다. 그녀는 볼을 붉게 물들이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에 간단히 답하자, 큐라는 작은 미소를 입에 머금고는 드래곤으로 변신했다.


[타라.]
“고마워.”


드래곤으로 변신한 큐라가 손짓하자, 바람이 내 몸을 감싸고는 나를 큐라의 등 뒤로 데려다주었다.
손에 르미야를 쥔 나는 그녀의 비늘에 손을 짚었다.

[단숨에 가니 조심해라.]
“알았어.”

큐라의 말을 끝으로, 엄청난 바람이 내 얼굴을 때렸다.
 빠른 속도로 가고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순식간에 주변 풍경은 왕도로 바뀌었고, 이내 왕성의 모습이 보였다.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나와 큐라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군대가 이것을 봤는지 요격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드래곤이라는 이유로 벌써 공격할 준비를 하는 건가?]
“왕이 있는 곳이라서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 거야.”
[우두머리라. 그럴 법도 하군.]
“저기가 협회인 것 같아.”
[공격받기 전에 공격하자는 것인가?]
“큐라가 굳이 안 해도 돼. 나도 할 수 있으니까.”


왕도에 들어서고, 길드 건물이 보이고 나서야 나는 모험가 승급시험을 기억해냈다.
뭐, 여기까지 왔으면 포기해야 하겠지.
쓴웃음을 지으며 오른손에 지휘봉처럼 쥔 르미야를 들어 올렸다.
큐라는 내가 말한 위치를 힐끔 보더니 내게 물었다. 하지만 전과는 다르게 나 혼자서도 공격할 수단이 있었다.

“목표는 드래곤! 우리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요격한다!”

아래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그들에게 차례를 넘겨줄 일은 없었다.


“세상의 이치는 내 부름에 응하라.”
[성하? 그것은….]


내가 르미야를 들고 조심스레 주문을 읊자, 큐라는 당황한 목소리로 창공을 누볐다.
마법을 사용할 때는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그 이미지를 확고히 굳히기 위한 자기 암시, 즉 주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주문을 발동시킬 지팡이가 있어야 마법이 제대로 발동했다.
이미지는 설계도이고, 주문은 설계도를 보고 제작하는 단계, 지팡이는 제작한 것을 발동시키기 위한 스위치다.
이미지는 사용자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만큼, 암시 또한 제각각이었다.
웬만해서는 마법을 사용할 때 주문이 겹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일그러져라. 휘몰아쳐라. 찢어발겨라.”
[……!]


하지만, 나는 큐라의 마법을 가까이서 봤던 만큼, 첫 구절은 큐라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었다.
 구절, 한 구절을 입에 담을 때마다 맑디맑은 창공에 먹구름이 끼고, 파직거리는 스파크가 일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바람에 구름이랑 더 가까이 있으니 더 실감이 났다.
큐라는 놀란  몸을 흠칫 떨었다.

“사이클론!”

콰직, 콰릉.
하늘이 찢어지는  같은 강렬한 소리가 울렸다.
당장에라도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전 공간을 메꿨다.
파직거리며 구름을 빛내던 섬광들이 하나, 둘 모이더니 이내 내 마지막 구절에 멈춰 하나의 줄기처럼 뻗어나갔다.
너무 굵직하고, 올곧게 뻗은 듯한 빛은 마치 번개가 아니라 빔처럼 보였다.
콰가가각. 하고 모든 걸 짓누르고 태워버린 번개는 협회의 반을 괴멸시켰다.


[성하는 대체….]
“차, 착지해줘! 아니, 내가 내려갈게.”
[서, 성하?!]

내 마법을 본 큐라는 경악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번개가 흩어진 직후, 강력한 태풍이  뒤를 이었다.
큐라가 나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강대한 바람이 계속해서 덮쳐왔다.
아래서 요격을 하려던 병사들도 주변 건물로 달려가 뭔가를 하나씩 붙잡고 있었다.
 정도 바람이라면 큐라도 착지는 하기 어려울 테지.
결국, 내가 직접 내려가는 수밖엔 없었다.
나는 큐라의 등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래를 보니 사람도, 건물도 다 작아 보였다. 솔직히 무섭다. 위에서 떨어져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일까.
잔뜩 긴장한 탓에 온몸에 땀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몰아치는 비바람에 눈을 찌푸린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곤 입가를 한  닦은 뒤 그대로 큐라의 등 뒤에서 뛰어내렸다.
큐라는 당황한  나를 잡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떨어져 바닥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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