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episode11 카보드 (4)
“뭐냐…! 이 거대한 회오리는!”
“용사의 힘인 것 같습니다!”
거대하고 강력한 회오리가 일자, 주변에서 장로와 보좌진들은 다급한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몸을 챙기고 있었다.
몸 하나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로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이 시야도 가리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밖엔.”
이를 까득 깨문 늑대 수인은 자신의 어깨에 두른 가죽을 머리에 둘렀다.
늑대 수인이 늑대 가죽을 두르고 있는 것은 꽤 호러틱했지만, 지금 그런 여유로운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잠깐, 자네. 르미야 거목이 사라진 것 같은데.”
“뭐?”
장로의 식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계하던 수인들에게서 눈을 떼 다시 거목이 있던 위치로 시선을 돌렸다.
회오리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던 거목의 형체는 그림자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이 날아갈까 말까 한 회오리에 거목이 날아갈 일은 없을 텐데, 그 자리에 있던 거목은 흔적 하나 없이 사라졌다.
다들 어안이 벙벙해져선 입을 쩍 벌리고 거목이 있던 자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회오리가 멎을 때까지 그 누구도 자신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뭇가지…?”
톡. 머리 위로 떨어진 무언가에 깜짝 놀란 나는, 뭔가 하고 고개를 돌렸다.
잔디 사이로 은은하게 초록빛을 뽐내는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기분이 들어 올리니, 나뭇가지는 우우웅. 하고 공기를 울렸다.
“…설마. 나무 자체를 지팡이로 만든 것인가?”
“세레브 타빗! 대체 자넨 누굴 들인 것인가!”
“나도, 나도 모르네! 그는 ‘카보드’를 가지고 있는 이례적인 용사인 것은 알고 있네만!”
“…‘카보드’?”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는 건 어느 문헌에도 없거니와, 심지어 그것을 다른 세계에서 온 용사가 들고 있다고?! 언어도단이네!”
내가 나뭇가지를 들자, 시선이 이번에는 내 쪽으로 쏠렸다.
뭔가에 차오르는 듯한 기류를 느끼며 지팡이를 마법사들이 쓰는 것처럼 쥐는 방식을 바꾸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지팡이를 쥔 나는 마나의 기류를 느꼈다.
이게 마나의 흐름이라는 거구나. 당장에라고 감격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틈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눈앞에선 장로들이 혼란에 빠져선 저들끼리 서로 소리치며 화를 내었다.
‘카보드’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장로들의 표정은 일변해 험악한 분위기가 되었다.
믿는가, 믿지 못하는가의 차원을 넘어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것을 가능이라 단언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용사여. 자네의 힘은 잘 알겠네. 세계수, 르미야 거목을 통째로 그렇게 압축시킬 수 있는 자는 아마도 없겠지. 하지만 우리는 그 르미야가 없으면 안 되네.”
“그렇다. 지금 자네가 이 땅에 발을 디딘 것만 해도 우리의 조약을 멋대로 어긴 것인데, 어찌 르미야를 가져가려 하는가?”
“자네의 신분은 외부인이네. 외부인이 우리가 선조 대부터 대대로 지켜오던 것을 가져가게 둘 수는 없지.”
뭔가 내가 약탈자가 된 기분이었다.
힘에 감응한다고, 나를 받아들인 것 같다 하더래도 내가 가져가는 게 맞는 건가? 에 대한 의문은 당연히 있었다.
침묵을 지키며 장로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르미야 거목이 무슨 역할을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신성시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나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내가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사이에 거목에 있던 자리에 누군가가 서서 웃고 있었다.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생물이 아니었다.
“무엇인가?”
“저, 정령?”
“어째서 정령이 이곳에. 노한 거야. 르미야 거목이 없어서 노한 거라고!”
“죄송합니다! 정령님! 부디 이 미천한 몸에게 자비를!”
장로들과 그 보좌진들은 긴장한 채로 그것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긴장하고 있었다.
정령이라 불린 존재는 흐물적거리면서 슬라임처럼 몸을 꾸물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웃음을 멈추었다.
[르미야를 통째로 뽑아가는 용사가 있을 줄은 몰랐어. 게다가 소환 날 당일에 말이지.]
“누구, 십니까?”
[나는 수인들에게 힘을 빌려주는 정령. 실반이라고 해. 참, 우리들의 왕께서 너를 눈여겨 보고 계셔. 우리가 애지중지하게 키우던 르미야를 뽑아갔잖아.]
“죄송합니다. 돌려드릴게요.”
점점 사람의 형상을 띄기 시작한 정령은 씩 웃는듯한 모습을 하고는 손을 턱에 댔다.
나는 조심스레 그의 정체를 물었고, 그는 흔쾌히 이름까지 알려주었다.
그것이 뭔가 협박하는 투로 말하는 것 같아 조심스레 내 손에 쥐어진 나뭇가지를 내밀었다.
[아아, 받겠다는 게 아니야. 물론 나쁜 의미로 눈여겨본다는 것도 아니야. 그저, 르미야를 뽑아갈 만한 능력이 있는 너에게 호기심이 있다는 말이야.]
“그런 뜻인가요.”
[줄게. 그 르미야.]
“자, 잠시만요! 정령님! 그것은 우리가 지켜오던 것인데, 외부인에게 흔쾌히 넘기시다뇨!”
“외람된 말씀이오나! 우리의 정성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바람처럼 다가온 실반은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 얼굴에 형태는 없었지만, 만약 사람이었다면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느낌일 것 같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것의 의중을 파악하려 했지만, 정령이라는 형태 없는 종족의 상태를 눈으로 본다 해도 알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실패로 돌아갔다.
내가 신음하자, 정령은 내 손을 꼭 감싸며 말했다.
흔쾌히 준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이걸 이렇게 쉽게 받을 수 있을 줄이야.
하지만 역시나, 장로들은 쉽게 놔주고 싶지 않았는지 정령에게 항의했다.
[용사. 자격을 얻길 바라지.]
“자격이요?”
정령은 장로들의 말을 가벼이 무시하고는 내게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내가 되물었지만, 이미 흩어지듯 무너져내린 형태에 그것의 의식은 남아 있지 않았다.
자격? 무슨 자격을 말하는 걸까.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무슨 의미인지 알았으면 좋았으련만.
“너는 대체 뭐길래… 우리들의 르미야를 뽑아가고, 정령님의 총애를 받는 것이냐!”
“죄송합니다만. 나뭇가지는 제가 가져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안된다. 허락할 수 없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분노한 장로를 상대로,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정령의 말대로라면, 그 자격이란 게 르미야와 관련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지팡이를 꼭 들었다.
“바람이여!”
지팡이를 쥔 손을 위로 치켜들고 주문을 크게 읊자, 바람이 내 등을 있는 힘껏 밀어주는 것 같았다.
단번에 내 몸은 위로 튀어 올랐다.
갑작스럽게 산소가 부족해진 내 몸은 폐가 짓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프진 않았다.
“윽… 장로님! 정령님께서 놓아주신 것인지, 정령술을 쓸 수 없습니다.”
“…빌어먹을.”
“신 같은 분들은 다 그런 식이지. 선택받은 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자비로우면서도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차가운 분이시니까.”
보좌진들이 뭔가를 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는지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것을 들은 장로는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젠장.”
이대로 다시 테베레스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막막해졌다.
돌아갔는데, 엘리샤와 마주치면 어떡하지. 아니, 생각해보자. 매일같이 이동을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없다. 결국, 큐라의 등을 빌려야 할 때가 오고, 동료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어차피 마왕을 퇴치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동료는 필요했다.
허탈하게 나를 바라보는 장로들과 보좌진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날아왔던 방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
“정신이 없네.”
순식간에 나라 하나를 오간 탓에 몸의 피로가 장난 아니게 쌓여갔다.
테베레스 외곽에 몰래 착지한 나는 조심스레 도심을 살폈다.
내가 대로를 떳떳하게 걸을 수 있는 날은 이제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침을 꿀꺽 삼켰다.
“어이. 넌 능력이 뭐냐?”
“물어서 뭐 하게? 선수 치게?”
“용사끼리는 어차피 개인 활동인데 날 세울 거 있나?”
벌써부터 용사들끼리의 신경전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슬슬 길드에 다가왔다는 소리겠지. 소환 첫날, 나는 원래라면 교회에 맡겨진 몸이었으나, 지금은 힘이 있다는 이유로 이곳에 와 있었다.
그들은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와중에도 길드에 있었다.
동료를 구하는 걸까.
조심스레 기회를 살피던 나는 그들의 시선이 잠시 다른 곳에 머물 때를 노려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르미야 거목, 아니 지팡이. 그리고 내가 용사라는 사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용사라고 하면 무료로 할 수는 있지만, 승급시험을 볼 수 없는 S급 모험가가 되어버리고 만다.
S급 모험가가 승급시험을 보겠다고 하면 이상한 눈으로 볼 게 뻔했다.
하지만 일반 모험가로 등록하기엔 돈이 없다.
“혹시, 외상 되나요? 모험가 등록을 하고 싶은데….”
“됩니다. 대신 출국은 갚을 때까지 막힐 거에요.”
“네. 괜찮습니다.”
이렇게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거였다니. 아니, 내가 마력이 생겨서 얻을 수 있는 거구나.
나는 내 손에 잡힌 F급 모험가 카드를 보며 입을 떨었다.
그리고 받자마자 다시 탁, 내려놓았다.
“저, 고객님? 다 되셨는데요?”
“A급 승급 신청을 요청합니다.”
“A, A급이라 하셨습니까? 함부로 도전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이거, 르미야 나무로 만든 지팡이에요. 능력은 충분하니까 접수해주시겠어요?”
“…시일은 언제로 잡아드릴까요?”
“지금으로 해주세요.”
내가 카드를 내려놓고 침묵을 지키자, 길드 안내원이 나를 삐질삐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담담하게 신청 사항을 입에 담았다.
그 말에 당황한 안내원의 모습이 보였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A급이라면, 세라가 받았던 그 시험과 동일장소, 동일 몬스터일 것이다.
나를 만류하려는 종업원에게 내 손에 쥔 지팡이를 보여주며 설득했다. 그러자 그녀는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키고 종이를 하나 꺼내 들었다.
“르미야 거목으로 지팡이를… 만약 거짓말이라면 죽을지도 몰라요. 서약을 하나 해주셔야 합니다.”
“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다른 종업원이 눈치를 보더니 나를 어디론가 안내했다.
언젠가 한 번 왔던 기억이 있는 곳.
음침한 공간으로 이동한 나는 그 앞에 있는 문을 망설임 없이 열었다.
*
하이오크 따윈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하이오크를 두고, 나는 가만히 시험장 주변을 바라보았다.
아니, 큐라의 둥지를 멍하니 눈에 담았다.
[인간?]
“안녕.”
그렇게 해가 깜깜하게 졌을 무렵, 나는 그 앞에 불을 지피고 앉아 큐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눈동자가 날 선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인사했다.
[…인간이 무슨 일인가?]
역시 하루아침에 와서 그런가 치근덕대는 용사가 오기도 전에 만날 수 있었다.
첫 만남부터 발악하던 그녀와는 다르게, 지금의 그녀는 약간의 경계심만 가진 상태였다.
“나는 유성하라고 해. 너는?”
나는 손을 내밀어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다.
물론,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붉은 갑옷을 두른 드래곤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녀의 이름을 쉽게 담아봤자 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갈 것 같았다.
괜히 그녀의 경계심을 끌어올릴 필욘 없지.
[…신비한 인간이구나.]
큐라는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나와 초면이 맞느냐?]
“무슨 소리야?”
[너에게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 어디선가 맡아본 것 같은…]
큐라의 말에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전의 세계를 기억하는 것은 나였고, 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사람은 엘리샤였다.
하지만, 그런 나를 제외하고도 전의 세계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니, 기대해서는 안 돼. 그저 데자뷔일 뿐이야.
그렇게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빠진 순간, 데자뷔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큐라다. 유성하. 너는 내게 볼 일이 있나?]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 왔어.”
[내가 누군 줄 알고 다짜고짜 와서 친구를 하자는 것이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데자뷔는 내가 싸울 때마다 느꼈던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그 기억들은 전 세계에서 느꼈던 감각인 걸까.
전의 세계를 기억하지 못함에도, 데자뷔로는 어렴풋이 느꼈던 기억의 단편.
“그럼. 잘 알지.”
그녀의 물음에 나는 어떻게 답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엘리샤가 했던 것처럼,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