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episode11 카보드 (3)
“‘카보드’란 무엇인가. 신화에서는 그 정의를 신의 영광. 영예로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추상적이기에 ‘미카엘’이 가지고 있는 추상적인 개념의 무언가. 라고 지정했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아무래도, 신의 오른쪽 자리, 바로 곁에 있을 수 있는 특권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천사가 되기 위한 조건이라고 할까요. 둘 중 하나라는 것은 틀림없다고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개 용사님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지요.”
긴 테이블 한가운데 앉아 장로를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자니, 장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포크를 음식을 찍었다.
‘카보드’에 관한 신화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긴 세월 동안 한 이야기를 분석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경청하며 들었다.
원래라면 지루해했을 이야기도, 흥미가 솟는 주제가 되니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심장의 형태를 했다고 한다면, 그게 태초부터 심장의 모양을 했던 것인지, 아니면 용사님에게 딱 맞는 모양으로 변환한 건지 알 필요가 있겠군요. 기능 또한, 심장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런 능력을 발현하는 건지, 태초부터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건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그것을 알 수는 있는 건가요?”
“아무래도, 장로회를 열어 방도를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신, 심장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라면 심장을 빌려달라는 꼴이 되어버리겠네요. 그때는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장로는 빈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뭔가를 쥐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입에 음식을 밀어 넣고 우물거리고 있으면서도 그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내 질문에 그는 아직 확답을 줄 수 없는지 입맛을 다시며 씁쓸한 눈빛을 내리깔았다.
아무리 궁금하다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심장을 내어주는 꼴이 될 수는 없으니, 만약 그럴 때가 오면 그냥 거절해야겠다.
“저, 잠시, 빈 그릇 좀 치워드릴게요.”
“…혹시 그릇 치우기만 하니?”
“네에. 그러려고 온 것뿐인 걸요.”
“괜찮으니까 앉아서 먹고 가.”
이야기를 나누는데, 누군가가 옆에 서서 눈치를 보더니 내 앞에 놓인 빈 그릇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여기에도 일만 하는 녀석이 있고, 먹을 수 있는 녀석이 있는 건지 배고파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나는 내 빈 자리를 손으로 두드리며 아이에게 식사를 권유했다.
배가 고프면서도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아이를 보니 뭔가 마음이 미어졌다.
결국, 반강제로 아이의 손을 잡고 의자에 앉힌 후 음식을 먹게 하는 꼴이 되었다.
“허허, 정이 많은 분이시군요.”
“뭐, 눈에 밟히는 것들은 쉽사리 넘길 수 없는 성격이라서요.”
“가, 감사합니다.”
허허. 하고 웃는 장로에게 눈웃음을 지어 양해를 구하며 음식이 담긴 그릇을 아이의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장로의 말에 멋쩍은 듯 건조한 웃음을 지었다.
옆에 있던 아이는 눈치를 보더니 자신에게 주어진 식기를 보고 조심스레 쥐었다.
그렇게 한 아이가 빈 그릇을 나르다 식탁에 앉으니, 그 옆에서 일하던 토인들이 이쪽에 시선을 보냈다.
부러움의 시선일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그들을 앉혔다.
원래부터 식탁에 앉아있던 사람이 조금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나에게 뭐라 할 마음은 없는지 입을 꾹 다물고 음식을 입에 옮겼다.
“뭐,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요.”
“그러죠.”
“르미야 거목에서는 장로회 소집이 한 번씩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그 소집을 열 권한이 있죠. 내일 아침, 소집을 열 것입니다. 그때, 저의 보좌 뮤와 함께 용사님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러면 ‘카보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건가요?”
“그렇죠. 인간들이 있는 나라에도, 어느 정도 영생에 관심 있는 왕족, 귀족이라면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장로회에 속한 장로와 후계들이지만요.”
어느 정도 다들 굶는 사람이 없어지니, 이제 내가 좀 마음이 놓였다. 괜히 공짜 밥을 얻어먹는데 눈앞에서 굶는 사람이 있으니 적당히 불편해야지.
밥 먹는 자리가 가시방석이 되어 체할 정도로 불편해지는 것은 사양이었다.
자리에 앉아 다시 포크를 잡으니, 장로가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윗사람일수록 ‘카보드’에 관한 신화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은지, 장로는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앞으로의 일을 말했다.
“하지만 이건 영생과는 달라요.”
“그런가요… 그렇게 몸을 치유하는데도, 영생과는 거리가 먼 건가요?”
“그냥 죽지 않게만 해줄 뿐이지, 늙어서 죽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흐음.”
“아무래도 ‘카보드’를 ‘미카엘’에게 건네는 것이 제 역할이 아닐까 생각도 해보고 있어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군요.”
영생에 꿈을 꾸는 것 같은 장로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기가 죽은 듯한 표정을 짓던 장로는 내게 다시 확인하듯이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나는 내 손을 빤히 바라보며 그에게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며 그 가능성을 입에 담았다.
‘미카엘’에게 ‘카보드’를 전해주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사실은 조금 씁쓸했지만, 그런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이세계에 소환된 것도, 그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도 설명이 됐다.
우연일까. 하지만 은근히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오른손에 쥔 포크를 내려놓았다.
“‘카보드’가 애초에 무슨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것 같지만, 특별한 역할은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만약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거라면, 한 사람에게 귀속될 수 있는 거라면, 그에게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고, 그가 무언가 해낼 사람이라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귀속되는 물건보다, 그것을 귀속시킬 사람을 유심히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는 건….”
“용사님을 조금 더 유심히 보고 싶다는 이야기지요. ‘카보드’도 신기합니다. 평생 선조들에게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던 물건이, 제 앞에 있다고 하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지요. 신기루를 잡은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 앞에 있는 분은 대체 무슨 사람이길래, ‘카보드’를 가지고 있을까. 사실 보기 전까지만 해도 믿지 않았습니다만, 특별한 마법 없이 자신의 몸을 치유한다는 것만으로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되지요.”
장로는 눈을 반짝이며 내 몸을 훑어보았다.
내가 지닌 ‘카보드’에도 흥미를 갖고 있었지만, ‘카보드’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도 흥미를 보였다.
“어렵네요. 모르는 세계에 정착된 신화를 이해하기란 아직 어려운 걸지도 모르겠어요.”
“저희도 저희 신화가 어려운걸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장로는 그런 나를 이해해주는 건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조해주었다.
*
“용사님. 용사님은 대단한 분이세요?”
“왜 아무것도 안 들고 있어요?”
“이 옷은 어디서 만들어진 건가요? 처음 봐요. 신기해요.”
식사가 끝나고, 촌락을 혼자서 걷고 있었다.
소화 시킬 겸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상에 빠져 있는데, 아까 옆에서 같이 밥을 먹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땐 몰랐는데, 어른도 있고 청소년도 있는 것 같았다.
하나하나 궁금한 게 있던 건지 내게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정말 호기심이 왕성한 나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대단한 사람은 아니고, 오늘 소환돼서 무기를 들고 올 시간이 없었어. 옷은 내 세계에 있던 옷이야.”
차근차근 물어보는 것들을 대답해주었다.
“‘카보드’가 뭐에요?”
“그러게. 내 심장에 있다고 하더라.”
“그런 건 누가 알려줘요? 심장이 알려줘요?”
“…….”
“용사님?”
그 뒤에 내 옆에서 밥을 먹고 있던 애가 내용을 들었는지, ‘카보드’에 관해서 물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뒤에 아이가 질문한 말에 나는 입을 닫았다.
그러게. 내 심장에 그런 게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지.
당장에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는 것 같았다.
“잠깐만. 미안해.”
자리를 벗어나 구석 숲으로 뛰어들어갔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뒤 토할 것 같은 느낌을 겨우 버텨내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엘리샤 넬 테베레스. 엘리샤는 확신하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했던 ‘카보드’의 정체를 내 심장이라고 단언하고 있었고, 그것을 ‘미카엘’에게 넘겨주었다.
어떻게 안 걸까. 그녀가 내게 심은 건가? 아니면 알 수 있을 정도로 뭔가를 겪었던 걸까.
내 이런 기억은 내가 한 번 겪고 왔던 것을 증명했다. 그것은 내가 회귀자라는 걸까.
아니, 내가 뭘 하기도 전에 그녀가 움직이고 있었다.
“잠깐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회귀자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녀의 능력에 빌붙어있을 뿐인 관찰자였을 뿐이다.
커다란 나무 하나에 몸을 기대 주저앉은 나는 두 손으로 몸을 감싼 뒤 몸을 떨었다.
무섭다.
순수한 공포가 느껴졌다.
공포가 치밀어 올라 당장에라도 내 속을 헤집어놓는 것 같았다.
“미쳐버릴 것 같아.”
기억을 되짚었다.
첫날 소환 때, 엘리샤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세계에서는 엘리샤가 급하게 등장했다.
도망간 것은 좋은 판단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 부분이었지만,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만큼 그녀도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그랬으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두 번의 회차일 뿐이다. 나는 지금 행동도 예측 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함은 가속화되어갔다.
“용사님?”
“요, 용사님!”
터덜터덜 돌아왔던 방향으로 걸어갔다. 걸음걸이는 점점 빨라져 갔다.
지금 이곳에서 ‘카보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미카엘’에게 묻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나는 돌아가기 위해 르미야 거목으로 돌아갔다.
이곳에서 멍하니 며칠을 소모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나를 틀어막는 토인들을 뒤로한 나는 이를 갈며 앞으로 나아갔다.
“무례하다. 첫 번째는 눈감아주었는데.”
“쯧쯔, 이래서 토인족은 안 되는 겁니다. 마음대로 용사라고 데려가다니.”
“엄중한 처벌을 내릴까요.”
그 앞에는 2인 1조로 팀을 꾸린 듯 다닥다닥 몰려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각 동물의 장로와 보좌인 것 같았다.
르미야 일대로 나온 순간 그들은 나를 향해 톡 쏘아붙이듯이 경계하며 입을 열었다.
“그 이상 다가오면 즉결 처형하겠다. 신성한 곳에 발을 두 번이나 함부로 붙이다니.”
“지금, 저를 막을 생각이십니까?”
멈출 수 없었다. 계속되는 불안감이 나를 계속해서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아가야만 했다.
나를 멈춰 세우려는 장로를 향해 으르릉대며 발을 크게 내딛자, 주변에 장로를 지키던 보좌진들 또한 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쾅. 하고 내가 땅을 디디는 순간, 일대가 일변했다.
“…무엇인고.”
“르미야가. 반응하고 있다네.”
구우우웅. 뭔가가 울리는 소리가 숲을 가득 메웠다.
르미야 거목에서는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넘쳐흐르는 것처럼 주변을 채색하기 시작했다.
공기를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듯 빛을 뿜어댔다.
“저는 가겠습니다.”
“…보내줄 수는, 없겠는데.”
“타빗 영감. 이상한 걸 주워왔군.”
나는 자세를 낮추며 시선을 돌렸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쭈욱 훑으며 그들을 응시했다.
내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마법을 쓰기도 전에 10명의 보좌진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세상의 이치는 내 부름에 응하라.”
-
성하… 성하구나. 나는 큐라. 내가, 지었어. 다들 가지고 있는 것 같길래 스스로 지어봤다.
-
책장처럼 넘겨지는 시야에 큐라가 눈에 들어왔다.
목 뒤가 오싹거리는 것 같았다. 당장에라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여기서 큐라가 썼던 인페르노를 쓴다면, 분명 모든 게 불타버리겠지.
그러면 세계수라 불리는 르미야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는 어디선가 곤란해할지도 모른다.
“바람은 이곳에, 작은 생명이 부르노니.”
“이 개자식이! 장로회가 우습게 보이더냐!”
“르미야 거목의 침입자!”
앞을 향해 달리는 것과 동시에 팔을 교차하며 정면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체술로 뛰어난 존재들인지 나보다 빠른 속도로 다가와 내 주변을 둘러싸 덮쳤다.
“…용사님.”
그리고, 그 앞에서 타빗과 눈이 마주쳤다.
뮤는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내가 갑자기 달려왔냐고 묻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답해줄 틈은 없었다.
“에우로스.”
미안하게 생각하고는 있다. 극진하게 대접해준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 꼴이라니.
내가 너무 급하게 행동했는지도 모른다. 엘리샤가 정말 회귀자라는 확증도 없는데, 내가 너무 성급했던 건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회귀자인 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주문을 읊는 순간 르미야 거목이 감응했는지 거대한 거목을 중심으로 거대한 회오리가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