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episode11 카보드 (2) (71/98)



〈 71화 〉episode11 카보드 (2)

장로를 따라 숲을 걸으며, 수많은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그리고 그 끝에는 거대한 촌락이 있었다.

“드시지요. 토인족의 촌락입니다.”
“거대하네요.”
“하하. 다른 촌락도 다 비슷할 겁니다.”


토끼 귀를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 외부인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내는 이도 적지 않아 내가 긴장하자, 장로가 미소지었다.

“용사님이 마음만 먹는다면, 르미야 거목 일대가 모두 불탈 것이란  알고 있으니 다들 덤비지 않을 겁니다. 주먹을 펴주십시오.”
“그런가요.”
“아무튼, ‘카보드’에 대해 듣고 싶다고 하셨죠. 이야기를 진행해볼까요.”


촌락의 한 가운데에 심어진 조금 커다란 나무에는 나무로 만든 계단과 문이 보였다.
뮤는 장로 바로 옆에 있는 나를 경계하며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장로에 대한 충성심이 커다란  아닐까.
저런 충성심이라면 장로도 웬만한 곳에선 안심하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로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제가  200년을 살았지만, ‘카보드’라고 하는 것은 전설이라고만 여겨졌습니다. 대체 그것은 무엇이며, 무슨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무슨 기능을 하는지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의문은 또 전설로만  수 있었죠.”
“그럼 모르시는 건가요?”
“하하. 진실을 알고 싶다 하시면,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소문으로만 알 수 있는 것과 실제로  사람의 견해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비슷하기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에 전설을 계승하는 것이 저희지요.”


타빗은 집 안에 있는 풀을 톡 떼서 컵에 하나씩 집어넣고 중얼거렸다.
맹물이 담겨있던 컵에는 열기가 가해지고, 이내 하나의 차가 되어 기분 좋은 향기를 내기 시작했다.
내게 하나를 건넨 장로는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댄 뒤, 호록. 하고 한 모금 마신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카보드’에 관해선 ‘미카엘’ 본인도 본 적이 없다고 했으니 볼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많은 설이 있습니다만, 형체를 띄고 있다고도, 형체가 없다고도 하니 저희로선 답답할 따름이지요. 그것이 무슨 형체를 띄고 있는지 알 턱이 없으니 당연한 언쟁이라 생각됩니다만.”
“형체는 상관없습니다. 무슨 기능을 하며, 무슨 역할로 쓰이는지 알고 싶습니다.”

나는 장로의 말을 빠르게 넘겼다. 알고 싶은 정보만 빠르게 빼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빠르게 넘길 필요가 있었다.
과거가 변한 게 아니라면, 내 심장에 박혀 있는 것이 ‘카보드’였다.

“일단, 그것을 가지면 신의 영광을 누릴  있게 된다고 합니다. 영생을 살 수 있고, 무한한 힘을 가질 수 있으며, 신의 오른쪽 자리에 서서 총애를 받을 수 있다고 전승되어 옵니다. 사실, 신이 있음을 알면서도, ‘카보드’를 찾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죠.”
“왜 그러죠?”
“‘카보드’의 주인은 ‘미카엘’이며, ‘미카엘’만이 그 자격을 얻고 있다고 생각할  있죠. 신화란 그런 것입니다. 자격이 있냐, 없냐의 차이일 뿐. 일개 생명체가 얻을  있는 자격이 아닙니다.”

장로는 자신의 수엽을 쓰다듬으며 신화를 언급했다.
‘카보드’와 ‘미카엘’의 관계를 입에 담으며 그것을 소유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  생에 신화를 쫓고 쫓은 끝에 아무것도 얻을  없다는 결론을 내린 그의 눈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카보드’.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저를 우롱하려고 하시는 건지, …! 진심입니까.”


나는 입을 한 번 다시고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믿지 않던 그가,  표정을 보더니 말을 묻었다. 그리고선 몇 번이고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제야 그는 믿을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애야. 나가보거라.”
“…네? 그, 그치만.”
“나가보라 하지 않았느냐.”

장로는 시선을  곳 없이 방황하더니 이내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수염을 한 번 쓰다듬고는 뮤를 물렸다.
그를 보좌하던 자리에 서 있던 뮤는 갑작스러운 물림에 당황해 눈을 커다랗게 떴다.
하지만 타빗은 확고하게 그녀를 내보냈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던 뮤는 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숙여 그대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래서, 그것은 무슨 형태를 하고 있습니까? 무슨 기능을 하고 있습니까? 제 일평생의 의문을 깨주시는 겁니까?”
“잠시 마음 좀 가다듬어도 되겠습니까?”
“기다리겠습니다. 준비가 끝난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호기심 앞에서는 노인도 하나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보였다.
장로라는 체통을 이미 잊은 체 그는 자신이 평생 궁금해했던 의문을 내게 털어놓았다.
신화는 신화일 뿐인가. 라는 의문에 도달할 수 있다니, 나라도 그럴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가슴을 쓸어내리며 입을 다물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비밀이며, 제가 말하는 대가로 장로님께서 뭔가를 해주리라 믿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장로의 권한으로 들어줄  있는 것이라면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
“동료를 하나 데려가고 싶습니다.”
“그것은 개개인의 자유이니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겠군요.”

나는 조심스레 입을 뗌과 동시에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 말했다.
하지만 역시 개개인의 의사인 소원에는 장로의 권한이 닿지 않는구나.
노예가 득실거리는, 인권이 개판인 세계에서도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곳이 있다니 신기했다.
뭐, 나는 노예를 구하려던 게 아니었으니 상관없었다.


“그렇다면 조금만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후에 천천히 말해주시지요.”
“아무튼. ‘카보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카보드’는 제 심장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이신지. 개인의 심장이 ‘카보드’라고요?”


내가 바라는 바는 차차 미뤄두고 장로가 듣고 싶은 말을 먼저 입에 담았다.
‘카보드’ 자신의 심장의 이름을 그리 부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우는 달랐다. 내 기억에서는 분명히 그러했다.
죽지 않는 몸을 만들어준 것도, 몸에 엄청난 마나를 돌게 했던 것도 모두 ‘카보드’ 덕이었다.
내 말을 들은 장로는 당연히 내 말을 믿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칼을 하나 주실  있겠습니까?”
“…문 앞에 있느냐?”
“네.”
“와서 날붙이를 하나 주거라.”




내가 조심스레 부탁하자, 장로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문에 소리쳤다.
문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던 뮤가 대답하더니, 장로의 말에 문을 열고 들어와 나이프를 건넸다.
그녀는 나를 경계하는 것인지, 장로 앞에서 나이프를  날 노려보고 있었다.

“…이건.”
“…뭡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나이프를 거꾸로 쥐고 왼쪽 팔을 강하게 찍어 내렸다.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꿈처럼 흐릿하게 보이는 기억의 단편 덕분일 것이다.
콰득. 소리를 낸 팔에선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처음에는 경악하던 그들도 어느샌가 알아서 치료해가는  몸을 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치유되어 가는  팔을 바라보았다.
기억과 다르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이내 내 걱정은 사라졌다.
기억과 내 몸은 똑같았다. 마력의 여부와 용사인지, 아닌지를 제외하면.


“이게 바로 ‘카보드’의 능력입니다. 방대한 마나, 죽은 자도 살리는 치유력. 그것이 ‘카보드’의 능력입니다. 혹시, 더 연구하고 확인할 수 있는 바가 있을까요. 기한은 제게 지팡이가 쥐어지는 날까지 드릴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저는 더할 나위 없지요. 용사님에게 지팡이를 드리는 것도 영광인데, ‘카보드’를 보고 연구할  있다니 신이 저를 총애한다는 기분이 들 정도군요.”


내가 알던 정보를 뱉어냈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에는 영양가가 없다.
내가 모르는 부분도 알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장로는 내 말에 반짝이더니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내게 도움을 약속했다.


“당신… 뭐야?”
“당신이라니! 불손한 언사를 조심하거라!”
“죄, 죄송합니다.”

뮤는 나이프를 내려놓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장로가 뮤에게 호통을 쳤다.
장로의 말에는 쩔쩔매는 뮤. 그녀는 고개를 연신 숙이며 사과했다.


“제 보좌가 계속해서 무례를 범하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괜찮습니다.”
“그보다, 테베레스에서 벗어나신 것입니까? 다음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그렇습니다만. 아무래도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요.”

장로는 고개를 숙여 뮤의 무례를 다시 한번 사과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하며 고개를 들게 했다.
장로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다음 목적지를 물었다.
엘프에도 관심은 있고, 다른 나라에도 한 번쯤은 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생각했다.
기억에는 테베레스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니 색다른 나라의 문화를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 때문에 돌아간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이 돌아온 이상, 전에 지냈던 동료가 편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지.


“호오. 뭔가 두고 오신 게 있나 보군요.”
“많은  두고 왔거든요.”

장로는 내 눈빛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입을 오므리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예측을 긍정해주었다.


“그럼, ‘카보드’에 대한 연구는 언제로 하는 것이 좋을까요? 식사 이후에 할까요?”
“식사…. 아, 아무것도 안 먹었었구나. 그럼 그렇게 할까요.”

장로는 몸을 일으켜 지팡이를 톡 짚었다.
그리고선 내 연구를 속행하고 싶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 깨달은 건데, 오늘  끼도 안 먹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꼬르륵 조용히 울리는 내 배를 부여잡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만찬을 준비토록 해라.”
“넵.”


장로를 따라 밖으로 나오자, 수많은 토인이 뒤를 따라 장로의 수발을 들었다.
장로가 명하자 그들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식간에 멀어졌다.
발이 빠른 동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됐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숲에 우거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기억에는 3주간 리타와 함께 모험가 생활을 전전하다가 이후 10일이 조금 넘어가는 나날에 갑작스러운 상황에 빠져 동료를 구하고, 마왕을 접했었다.
리타는 성당에 있지만, 엘리샤와 밀접하게 친분이 있었으니 당장에 동료로 삼기엔 불안했다.
세라는 내가 소환된 후, 3주가 지난 시점에 마계에서 첫 외출을 한다. 그렇기에 내가 제1 마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면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미카엘’은 테베레스의 국가 기관이 소유하고 있으니 가져가기 힘들 것 같았고, ‘아크’는 수중도시 베르틱에 있으니 나 혼자선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엘리샤는 말할 것도 없이 패스니, 결국 남은 것은 하나였다.


“큐라… 뿐인가.”

신음한 끝에, 시간과 계획을 짜내 동료를 다시 모으기 위해 고민했다.

“무슨 말씀 하셨습니까?”
“아니요. 혼잣말입니다.”
“자, 연회장입니다.  많은 토인이 이곳을 메울 테니, 원하는 자가 있다면 한 번 이야기를 건네보시지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중얼거림을 들은 장로는 긴 토끼 귀를 쫑긋 세우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귀가 토끼처럼 길어서 그런지 소리에 예민한 건가. 싶어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나를 신경 써준 장로는 손을 활짝 벌리며 거대한 장소를 가리켰다. 그곳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토인들이 긴 테이블에 하나씩 음식을 채워갔다.
나는  광경을 보며 장로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뭐 이 정도는 아무런 일도 아니지요. ‘카보드’에 대한 사실에 다가간 것만 해도, 토인족은 앞으로 엄청난 영예와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토록 후세에 회자 될 종족이 되는 것이지요.”
“높은 사람들은 기록에 이름 새기는 것을 좋아한다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요.”
“가진 게 많을수록 그런 법이지요. 지금 제 몸은 병들어 노쇠해지지만, 역사서에서만큼은 영원토록 살 수 있으니까요.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것은 없지요. 저는 그런 불멸이 좋습니다. 치욕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채 평생을 살아가는 것보다, 죽어 그들에게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 제 후대에도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토인족들은 장로님을 모시는 걸 왜 기쁘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생각이 올곧으신 분이군요.”
“하하, 이런 노인을 칭찬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로는 허허. 웃으며 뭔가에 빠진 듯 손을 쩍 벌려 말했다.
‘카보드’의 정체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그는 뭔가에 홀린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형체는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  능력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주절주절 뭔갈 말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그가 가진 확고한 가치관이 있었고,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이름을 남겨서 후대에 전설적인 인물로 남게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그는 소리 내어 웃으며 내게 감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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