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0화 〉episode11 카보드 (1) (70/98)



〈 70화 〉episode11 카보드 (1)

*


“아무리 아인이라지만, 늑대가 사람을 두려워해서 쓰겠어요?”
“토끼는 닥쳐. 애초에 거목 일대는 평화구역이라는 걸 모르나? 침입자가 발생한 것만으로도 우리의 안위가 위험해진다는 뜻이다.”
“헤에. 그게 바로 겁쟁이들이 하는 말들이구나?”


긴장되는 순간, 손에는 땀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침을 꿀꺽 삼키고 숲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어느 목소리가 들려왔다.
힐끔 돌아보니 하얀색의 머리카락, 그리고 길쭉한 귀를 자랑하는 수인이 늑대 수인들을 도발하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도발에 다른 늑대 수인들은 으르릉대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지만, 토끼 수인은 기죽은 기세 없이 도발을 이어나갔다.

“안녕하세요. 인간은 진짜 오랜만에 봐서요. 저는 넬라 뮤에요. 간단하게 뮤라고 불러주세요.”
“…안녕하세요.  씨. 저는 유성하라고 해요. 성하라고 부르면 돼요.”


토끼라 다리의 힘이 좋은 건지, 엄청난 점프력을 자랑하는 그녀는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귀를 쫑긋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하얀 머리카락, 붉은 눈. 전형적인 토끼의 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특이한 종족을 실제로 보게 되니 정말 나는 이세계에 온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나도 그녀에게 내 이름을 말해주었다.

“성하. 성하. 성하…? 너무 이국적인 이름인데. 혹시 소환 용사세요?”
“용사라고?”
“어이 토깽이 그게 무슨 소리냐!”
“한 번만 토깽이라 하면 평화 협정이고 뭐고  죽이는 수가 있어요.”

뮤는 내 이름이 이상한지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날카로운 촉은 내가 무슨 존재인지를 빠르게 맞추었다.
뒤에서 주춤거리던 늑대 수인이 놀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었고, 개중 하나는 무례하게 그녀를 얕잡아보고 있었다.
물론, 그 기세는 뮤의 강렬한 눈빛에 사그라들었지만,


“참나. 토끼 수인이라고 토깽이라 부르다니 너무하지 않나요? 장로님들이 평화 협정을 맺지 않았더라면 저런 놈들은 발차기 한 방으로 죽일  있는데.”
“길을 알려줘서 고마운데, 이제 보내줄  있을까요?”
“…용사님 맞으시죠?”
“일단은….”


입을 비죽이며 불평을 토로하던 뮤는 허공에 발길질을 몇 번 하며 늑대 수인들을 위협했다.
그녀가 다리를 한 번 뻗을 때마다 바람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저게 마법이 아니라면 순수한 체력이라는 뜻이겠지?
나는 여기 있기 조금 두려워졌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그녀를 재촉하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나에 관해 물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 부정하진 않았다.

“흐응. 소환 날짜는 오늘인데, 어떻게 벌써 여기에 도달할 수 있던 걸까요.”
“소환 날짜…?”
“각국에서 용사를 소환하는 날은 동일하게 정하거든요.”
“아니, 그냥 길을 잃었는데 거대한 나무가 보이길래.”

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도망가기 위해 하늘로 튀어 올랐고, 그대로 낙하산처럼 두둥실 떠올라 보인 것이  나무였다.
르미야 라는 이름을 가진 거목인지도 모르고 왔을 뿐이었다.
애초에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이 나무가 무엇이고, 이 일대가 뭐 하는 곳인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늘로 날아다니는 분이 길을 잃다니 특이한 분이시네요. 뭐, 아무튼 용사님에 대해선 저도 들은  있거든요. 용사님들은 다들 자신만의 특이한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 성하는 무슨 능력이 있나요?”


그냥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넘기기로  건지 그녀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나도 그녀의 미소에 같이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내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의 말에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읽지 못하게 난도질  글자에, 나더러 무슨 능력인지 알려달라니 언어도단이었다.
바싹 말라가는 입술에 침을 바르고 겨우 입을 뗐다.

“나도 몰라.”
“…자신의 능력을 숨기는 건가요?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가요? 용사는 맞는 거죠? 아닌 것처럼 보이는 데요. 설마 용사님들이 소환되는 날짜를 노린  아니죠?”
“소환 용사는 맞는데, 내 능력을 읽지 못하게 해 놔서 진짜 몰라.”
“저어, 지금  상황을 장로님들도 보고 계시거든요? 너무 숨기는  좋지 않아요.”


사실대로 말했으니, 이대로 먹히기를 바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나 그녀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고,  나아가 나를 추궁까지 했다.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판단과 함께, 어디까지 거짓말인지 파헤치려는 것 같았다.
나는 확실히 선을 정함과 동시에 내 상태를 말했다.
그러자, 뮤는 협박하듯이 장로님이라는 사람들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동시에 키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일대의 새들이 푸드덕 날아올랐다.

“아아, 놀라지 않아도 돼요. 곧 오신다는 것 같으니까요.”


숲에서 우르르 빠져난 새들의 날갯짓에 놀라 고개를 쳐올리니, 뮤는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이 손짓하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금화 한 푼 나오지 않는 이 상황이 답답할 뿐이었다. 당장 모험가 카드를 발급받는 것도 고생일 것 같은데, 여기서 발을 묶인 채 있을 수는 없었다.

“아니. 여기에 계속 있을 수는 없어. 나는 갈 거야.”
“보내드린다 한 적 없는데요. 아직 나가실 수 없어요.”
“비켜.”
“…장로님들을 거역할 심산인가요?  일대 중심에 발을 들여놓은 침입자 신세에?”
“그러니까 금방 나가주려 했는데 막은 거잖아.”

이래선 안 되는데, 신경이 날카로워져 간다.
자꾸만 초조해지는  마음은 내 말투도, 표정도 날카롭게 바꿔갔다.
내 바뀐 분위기에 뮤도 으르릉대며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용사님이라 해도 햇병아리나 다름없는 지금은 제가 우위인 거 모르시나 봐요.”
“그건 해봐야 알지. 그 장로란 놈들 때문에 내 길을 막는 거라면, 당장 비키는 게 좋을걸?”
“장로란 놈들? 장로 보좌진인 저를 앞에 두고, 장로님들을 모욕하는 언사는…!”

 바뀐 태도에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은 그녀는 발차기를 하기 위한 자세를 잡았다.
나는 그녀를 도발하듯이 턱을 치켜올려 턱짓하며 그녀를 내려다보듯 시선을 SOFUtE.
그러자 그녀는 내 도발에 응해주겠다는 듯이 팟, 하고 땅을 박찼다.

“좋지 않을 거예요?”

쾅!
지진이  것처럼 울리는 지반에, 늑대 인간들은 이미 혼비백산 도망가기 바빴다.
그들은 이만한 힘이 없는 건지, 뮤의 공격에 혼란스러워하는  같았다.

“아무리 내가 내 전용 능력을 모른다 해도 용산데, 너무 얕잡아 보는  아니야? 곱게 비키는 게 좋았을걸?”

나는 그녀를 앞에두고 뒷걸음질을 치며 정면을 응시했다.
거리를 잠시 벌리고 그대로 주먹을 쥐었다.


“하. 뭐가 그리 바쁜진 모르겠지만, 르미야 거목에 해를 가할지도 모르는 침입자를 곱게 두지 않는 게 우리 신조라서요.”

뮤가 발차기하는 것을 겨우 몸을 틀어 피했지만, 스치기라도 했는지 볼에 핏. 하고 생채기가 생겼다.
쓰라린 상처에 눈을 찌푸리자, 뮤는  방 먹였다는 듯이  웃었다.

-


질긴 녀석이로군. 전신을 태워버렸는데도, 돌아오다니. 진저리가 나. 살갗이 타는 냄새는 불쾌하군.


-

원한에 차오르는 목소리.
하지만 내 기억과는 다르게,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 기억에 섞인 주문을 읊었다.


“세상의 이치는 내 부름에 응하라.”


그리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붉은 머리카락, 붉은 눈동자, 붉은 비늘의 주인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주문의 주인은 하프 드래곤이었으며, 외톨이였다.
그녀를 떠올리며 주문을 읊자 세상에 진동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대체  주문은…?”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재로 만들어라.”
“잠깐! 여긴 숲이다! 미안, 미안하다! 불태우지 말아라! 그 주문은 제발!”

암시에 담긴 내용을 들은 뮤는 당혹스러웠는지 성급한 목소리로 나를 멈춰 세웠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산들거리는 잔디가 있고, 그 주변에는 울타리처럼 쳐진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있었다.
나와 싸우다간 숲이 남아나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는지, 그녀는 이내 항복 선언을 하며 두 손을 위로 들었다.

“미친 용사가 있었군요…. 주문 하나에 세상이 떨릴 정도의 마력과 마나를 가지고 있다니….”

뮤는 식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내가 진짜 급해서 말이야.”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십니까. 용사님.”
“…누구시죠.”
“제 보좌가 무례를 범한 것을 사죄드립니다. 저는 토끼 수인의 장로. 세레브 타빗. 이라고 합니다.”


뮤를 뒤로하고 빠르게 숲을 벗어나려 하자, 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방해꾼인가 싶어 슬쩍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고개를 숙인 나이든 수인이 있었다.
자신을 장로라 소개한 그의 몸은 비단옷을 치렁치렁 걸치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신비해 보이는 지팡이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당신이 그 용사님입니까?”
“저 말고도 용사는 98명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 흔한 용사님들은 뭐, 마왕을 잡기 위해 대거 소환된 것뿐이지요. 그와 다르게 당신에게는 특출난 뭔가가 보이는군요.”
“그런 소리는 관두시죠. 딱히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네요.”

장로는 나를 가늠하는 듯한 눈빛으로  몸을 훑었다.
용사는 99명이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차고 넘치는  용사다.
그렇게 떠받들어봤자 내가 반응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자, 세레브 타빗은 이에 맞서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리 봐도 아부로 보이는 말을 자르자, 옆에 있던 뮤가 “저 자식이.”하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상황에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죄송하군요. 당신이 쓰는 마법이 계를 달리하는 것처럼 보여서 말이죠.”
“다른 세계에서 왔으니까 그런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점점 이야기에 영양가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더더욱 이야기를 나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르미야 거목을 어찌하려고 온 것이 아니니 바로 떠나겠습니다.”
“…세계수라고 불리는 르미야 거목에 진실로 흥미가 없으십니까?”
“세계수?”
“예. 용사님에게 힘이 되어드릴 무기 정도는 만들어드릴  있습니다.”
“…장로님! 저자는 갑자기 들어온 침입자입니다! 인간들이 신분증을 만들기 위해 르미야의 일부를 캐간 사실을 잊으신 겁니까!”
“조용히 하도록.”


발길을 돌려 숲으로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장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은 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세계수. 뭔가 있을 것 같은 칭호를 가진 르미야 거목을 이용해 무기를 만들어준다니, 바라는 바였다.
옆에서 뮤가 뭔가 말하며 항의했지만, 장로는 그녀의 말을 일축했다.


“며칠 묵고 가시지요. 지팡이를 하나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며칠씩이나 있어야 합니까?”
“예. 르미야가 당신을 인정하는 순간, 스스로 당신에게 나뭇가지를 떼어줄 겁니다.”
“자아가 있는 거목이군요.”
“자아와 비슷한 의지랄까요. 신께서 심었다 하시는 거대한 나무입니다.”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는 장로를 보니 뭔가 마음이 수그러드는 기분이었다.
턱을 어루만지며 잠시 고민한 끝에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가봤자 첫날부터 모험하고, 동료를 구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기를 하나 쥐고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자, 우우웅. 하고 뭔가가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카보드’라고 하는 것을 아십니까.”
“…‘카보드’라,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용사님께서 하루아침에  만한 소재가 아닌 듯합니다만.”
“제가 그 소재를 조금  일이 있었는데, 혹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해서요.”
“역시 제가 점찍으신 분이시군요. 다른 장로들에게도 말을 전해봐야겠습니다. 제가 아는 ‘카보드’는 신의 영광이라고 불리는 최강의 소재라고 합니다만, 저보다 오래 산 장로는  잘 알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나는 이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어 물었다.
아마,  기억이 다르지 않다면 ‘카보드’는 내 심장에 박혀 있는 것이었다.
그 단어를 들은 장로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응시했다. 나는 자연스레 그 말을 넘기며 미소지었다.
그러자, 장로는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가벼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토끼 수인들이 우르르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들아. 다른 수인들에게 알리거라. 용사가 르미야에 발을 들였노라. 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