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episode9. 7번째 마계 (4) (65/98)



〈 65화 〉episode9. 7번째 마계 (4)

주저하지 마라. 그들은 이런 족속이다.
이미 죽어 무기로 변한 그들이 살아 돌아갈 방법 따윈 없다.
앞의 적에게만 집중하면 될 일이다. 내게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흡!”

정의도, 대의도 없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겠다 생각한 적도 없다.
그저 내가 살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두 손에 강하게 쥐어진 검은 허공을 가르고, 붉은 창은 옆에서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대의 존재는, 흥미롭지만 놔줄 수가 없어 안타깝군.]
“놔달라는 소린 한마디도  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몬은 창을 정면을 찌르듯이 팔을 뻗었다.
곧게 찔러진 창은 그대로 길이가 늘어나더니  왼쪽 어깨를 뚫었다.
으드득 살갗이 뜯어지는 듯한 과격한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틀어 어떻게든 충격을 완화해보려 했지만, 아몬은 놔주지 않겠다는 듯 손목을 틀었다.
창의 사거리가 얼마나 긴 건지 감이 오질 않았다.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 마나로 정제한 무기여서 형태가 자유자재로 변하니 감 같은  쓸모 없었다.

“제발, 좀 반응해라…!”

나는 ‘미카엘’을 꽉 쥔 채로 이를 까득 깨물었다.
어깨에 꽂힌 창은 날이 달린 칼처럼 변모해 내 어깨를 뜯어내고는 다시 줄어들어 아몬의 사거리로 돌아갔다.
저런 성가신 무기를 가지게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차라리 40의 군단을 상대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미카엘’의 이름을 입에 담아도 제대로 감응하지 않는 무기를 꽉 쥔 채로 간절하게 외쳤다.

[성하…!]
[칫. 날개 달린 년이라 그런가, 금세 합류해버렸군. 성가시게.]

발을 앞으로 디딘 순간, 붉은 드래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큐라가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뒤로 날아오고 있었다.
아몬은 점점  동료가 모여드는 것을 보고는 혀를 차며 창을 다시 휘둘렀다.

“피해!”
[이 정도는 금방 피한다!]

레이저처럼 하늘을 베어 가르는 붉은 창의 횡포에 내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큐라는 쓸데없는걱정이라는 듯 날개를 멈추더니 이내 작은 몸으로 변화시켰다.
거대한 몸을 맞추기 위한 창술은 몸이 작아진 큐라의 머리카락 하나 스치지 못하고 허공만 갈랐을 뿐이었다.

“성하 님! 성하 님도 타실래요?!”
“너 이씨… 마나  아껴…!”

그리고 그 위로 큐라를 낚아챈 검은 새가 붉은 하늘을 일직선으로 갈랐다.
 새에 타고 있던 백발의 소녀가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내게 인사하고 있었다.
무사했구나. 싶었지만, 생각보다 커다란 새를 소환한 세라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마족인가. 머리 색만 바꿨을 뿐이군.]

아몬은 큐라를 붙잡고 날아오른 검은 새를 보더니 금세 세라가 마족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래도 마나를 탁기로 바꾸어 그림자처럼 보이는 마법을 보고 알아챈 듯했다.

[배신자. 배신자가 있군. 신인류의 손에 놀아난 어리석은 존재. 그런 존재는 바알의 하인이라 해도 용납할 수 없다.]
“윽! ‘미카엘’ 지금, 지금 가야만 해.”

순간 내가 얼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아몬의 목소리에 뭔가 불길함이 차올랐다. 마족에 대해서 마왕이 제어권을 가진다면 세라도 그의 범주 내였다.
콰득, 하고 대지를 밟을 때마다 불길함은 차오르고, 그 불길함은 점점 눈앞을 채워갔다.

[죽음으로 책무를 다하게. 제1 마계 주민이여. 그대의 죄는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나니.]
“윽.”
[세라…!]

아몬이 검은새를 보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가 다가가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애초에 검을 휘두르는 것과 손을 뻗어 주먹을 쥐는 것은 속도가 다르다.
나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주먹을 쥔 아몬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모두 늦었다는 듯이 검은 새는 허공으로 흩어지고 자신의 심장을 움켜쥔 세라는 맥없이 지면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큐라는 당황한 듯 세라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 손은 세라에게 닿지 못한 채 허공을 잡을 뿐이었다.
그래. 나는 주인공도 아니었는데, 뭐가 그리 잘 될 거라 확신했던 걸까.

[크아아악!]
[세라…! 세라! 정신 차려라!]

‘미카엘’이 뿜은 빛은 아몬의 몸을 갈랐고, 그 뒤에서는 큐라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멈추면 말하는 것도 잊고 그대로 절명한다고 했는데, 그녀는 다른 방법을 쓰기도 전에 지면으로 떨어져 붉은 꽃을 피웠다.
목이 꺾이면  되는 방향으로 꺾인 세라의 모습을 보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의 뼈는 부분부분 살갗을 뚫고 튀어나와 있었으며, 머리는 깨져서 뇌수와 뇌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라에게 다가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만신창이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어, 어떡하느냐. 성하… 세라가, 세라가 숨을 쉬지 않는다…. 어찌 도리가 있느냐?]
“아니… 죽으면 고칠 방도가 없어. 이러면 결국 신에게 비는 수밖에… 방금 마왕을 죽였으니까….”

큐라는 이미 세라의 피를 뒤집어 쓴 채로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큐라를 달래듯이 말하면서도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고개를 떨구었다.
죽어버렸다면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마왕을 잡은 이후  소원을 세라에게 쓰는 방법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그런 것도 모두 필요 없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느냐? 나는, 성하가 나를 잊는 것도 싫다. 나도, 성하를 잊는 것이 싫다. 그러니까,그러니까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면 되지 않는 거냐?]
“…….”
[제발, 부탁이다. 내가 이렇게 욕심을 부려서 곤란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너를 잊고 싶지도, 세라를 잃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까, 이번만 눈 감고 기억을 잃지않도록 만들고,  뒤 세라를 살리면 되지 않겠느냐? 이것은 내 욕심이다. 내가 이리 추악한 자라는  알지만, 나는… 나는…!]

큐라는 입술을 떨며 붉은 눈동자를 내게 향했다.
고뇌 끝에, 큐라는 입을 열었다. 내가 자신을 잊는 것도, 자신이 나를 잊는 것도 싫다. 세라를 잃는 것도 싫다.
어린아이가 어리광부리는 것 같은 발언이었다.
모두 갖고 싶고, 버리고 싶은 것은 없는 욕심쟁이 아이의 어리광. 하지만 나 또한 그 어리광에 기대고 싶었다.
나는 슬픈 눈으로 고민하며 입을 다물었다. 쉽사리 결정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금 고민했다.
하지만 큐라는 이미 내가 뭔가를 다짐했다고 생각했는지  묻은 손으로 내 손을 꽉 잡더니 나를 설득시키려 했다.

[죽이다니. 그대가 그리 오만한 자일 줄은 생각도 못 했군.]
“……!”

그렇게 처리했다고 생각한 아몬이 뒤에서 주춤거리며 일어나기 전까지.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그곳에는 심장에 창을 꽂은 아몬이 있었다.
수많은 생명으로 만든 창을 자신의 심장에 꽂아 재생한 것일까. 그의 몸에는 붉은빛이 감돌더니 절단된 부분을 메꾸고 있었다.

“역시 7번째 마왕은 질기구나.”

나는 한숨을 내쉬며 큐라의 손을 떼어놓았다.
울먹이던 큐라는 힘없이 손을 떼고는 세라 앞에 주저앉아 세라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이 마왕이 제대로 죽지 않으면, 결국 무슨 소원이든 허상이나 다름없으니  일은 마저 끝내야만 했다.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삼키고 ‘미카엘’을 높게 치켜들었다.

“‘아크’!”

심판자의 이름을 가진 창을 부르자, 붉은 창이 저 멀리서 빠르게 날아와 내 앞에 꽂혔다.
그리고 일렁이는 바다가 눈앞의 적을 삼키려는 듯이 큰 파도를 만들어 철썩였다.

“…‘미카엘’.”

간절하게,  이름을 불렀다.
제발 전과 같은 힘을 빌려달라고 간절하게 ‘미카엘’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파직 파직. 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제7 마계 마족들이여! 울부짖어라!]

아몬의 몸에 붉은빛이 감돌더니, 이내 거대한 흐름이 창을 커다랗게 만들었다.
마치 기마병이 들 법한 거대한 창이었다. 나는 그것을 응시한 채로 ‘미카엘’에게서 쏟아지는 힘을 느꼈다.
콰앙. 하고 울려 퍼지는 굉음과 함께 내 몸에서 강대한 빛이 흘러나왔다.
‘미카엘’의 마력을 빌린 힘의 방출이라 그런지, 황금색 빛이 하늘을 가르는 기둥을 만들어냈다.
마법이랑 연이 없다고 생각한 나도, ‘미카엘’이나 ‘아크’가 있으면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설레인다.
열심히 파도를 갈라내는 아몬을 바라보며 걸음을 내디뎠다.

[명하노니.]

마법을 쓰는 사람들이 암시 주문을 입에 담듯이,  또한 하나의 마법을 떠올리며 주문을 입에 담았다.
솔직히 해본 적 없어서 허공에 뻘짓하는 것 같아서 조금 쪽팔리는 광경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는 그런 걱정 같은  집어넣고서 적을 응시했다.

[끄으으! 신기가  자루나 있으니 역시 버겁구나…!]
[빛이여.]

파도를 가르고 겨우 나를 바라보는아몬은 이를 까득 깨물고 내게 창을 겨누었다.
던지려는지 도움닫기를 하며 발을 크게 내디뎠다.
나는 그런 틈을 주지 않고 검을 그대로 내리쳤다. 일반 무기였다면 사거리로 상대가 전혀 되지 않았을 테지만, ‘미카엘’이라면 이 먼 거리에서도 그를 상대할 수 있다.

[적을 섬멸하여라.]

내 모든 마나를 뽑아내서라도 눈앞의 적을 처리하고 싶었다.
그 마음은 무척이나 강해서 당장이라도 깨문 이빨이 부러지는 것만 같았다.
‘미카엘’을 쥔 손은 후들거리고, 핏줄은 금방이라도 파열될 것 같았다. 근육은 당장에 찢어지는 감각이 들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고통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미카엘’의 힘을 빌려썼다.

[큭!]

아몬이 던진 창은 ‘미카엘’이 쏟아낸 빛에 형태도 없이 흩어졌다.
그의 몸을 꿰뚫은 빛은 가볍게 그의 몸을 반으로 가르고 가루로 흩어지게 했다.
갈라진 부분으로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그는 이내 점점 몸이 흩어졌다.
아까랑은 다르게 그가 지니던 창조차 없어 재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혀를 차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불우하군.]
[그러냐.]
[지금 네 꼴을 보아라. 네가 평범한 인간일리는 없지.]
[…그러냐.]
[어느 용사도 그만큼 힘을 끌어올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너는 ‘카보드’의 그릇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라는 거겠지.]

아몬은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한탄하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런 그의 말에 천천히 대답해주었다. 그가 혹여 죽지 않고 어디론가 도망가지 않을까 싶어 바라보던 것이었지만, 그는 이제 그럴방도가 없다는 듯이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한순간의 허풍이나 거짓말로 치부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보아라. 지금 너의 모습이 평범한 모습으로 보이나? ‘미카엘’의 전력을 모두 삼킨 네 모습 말이다.]

아몬의 말에 나는 손을 펼쳐 내려다보았다.
몸 사이로 흘러나오는 황금색 빛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은은하게 몸을 비추고 있었다.
검에 내 얼굴을 비쳐 보니, 내 눈동자 색깔이 ‘미카엘’처럼 황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원래 검은색이었는데, 마법은 이런 것도 되는 건가.

[나를 죽였으니, 원하는 것을 얻길 바라지.]

나는 얼빠진 모습으로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아몬을 바라보았다.
뒤로 수만의 시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끔찍한 참상이었다. 전에 45번째 마계에서도 왜 그들이 죽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용사가 일일이 집에 들어가 죽인 것이 아니라, 마왕의 필요에 의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 축하합니다. 당신은 7계의 왕을 물리쳤습니다. 당신에게는 돌아갈지, 남을지 선택할 수있는 기회와 함께 원하는 소원을 들어드립니다.
“…내가 그동안 겪은 일들, 내 기억들. 하나도 빠짐없이, 세상이 바뀌어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줘.”

내 위를 덮던 붉은 하늘이 푸른색으로 돌아오더니, 파직하고 균열이 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빛과 함께 전에 들었던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나는 그 목소리에 잠시 고민하고는 눈을 내리깐 채로 소원을 입에 담았다. 당장에는 이것이 우선되는 사항이었다.

알겠습니다. 이제 당신은 세상이 바뀌어도 기억을 보존할 권리를 얻으셨습니다.
[성하… 미안해. 나의 욕심을 들어줘서, 고마워.]
“아니, 괜찮아.”

공명하는 목소리가  소원을 받아들였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크게 들이 내쉬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다듬었다.
큐라는 자신이 내 선택을 강요했다고 생각했는지, 미안하면서도 고마워하는 감정을 입에 담았다.
어차피 이 경험을 잊고 싶지 않았던 것은 나 또한 매한가지였다.

[…무슨 짓이냐.]

내가 조심스레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큐라가 쓰러져 있었다.
주저앉은 큐라의 목에는 빛나는 단검이 꽂혀 있었다. 나는 그 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브레이커’. 그게  지금 큐라의 목에 꽂혀있는 걸까.

“미, 미안해.”
[서, 성…하. 끄윽]

그 단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던 것은 리타였다.
뭔가 겁을 잔뜩 집어먹은 리타는 벌벌 떠는 손으로 큐라의 목을 관통시키고는, 마력을 흘려넣었다.
‘브레이커’는 리타의 마나를 잔뜩 먹더니 날에서 찬란한 무지갯빛을 산란하듯 뽐내더니 이내 큐라의 숨을 끊었다.
‘브레이크’의 능력은 생명체의 마나를 폭주시켜 내부로부터 상대를 무너뜨리는 잔악한 검이었다. 그걸 그대로 받은 큐라는 엄청나게 괴로워하던 표정을 짓더니 내게 팔을 뻗어 허우적거리다 죽어버렸다.
나는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당최 알  없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릴 뿐이었다.

“…뭐 하는 거야?”
“…….”

리타에게 천천히 다가가 조심스레  상황을 묻는데, 리타는 내 시선을 회피하기만 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브레이커’에 마나를 죄다 써버린 리타는 숨을 허덕이며 털썩 주저앉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성하. 미안해.”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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